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23)화 (223/246)

220화

25. 생각지도 못한

어떨 때는 서로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들으면 제법 친근하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다 보니 어느새 집이 목전이었다. 부팀장의 차가 골목길에 접어들자 계속해서 서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대화를 이어 가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슬쩍 곁눈질로 부팀장의 표정을 살펴보니 의외로 그의 입가엔 미미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몹시 만족스럽다는 듯한 그런 미소가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팀장의 표정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저리 웃기 시작한 이유가 따로 있을 텐데, 도통 짐작가는 바가 없다. 정말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나 싶어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이 나누던 대화를 곱씹어 보는데,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시간 보니 10분 정도 후면 음식들 도착하겠네요. 그 전에 얼른 정리하죠, 형.”

“…좋아요.”

자신감 넘치는 김세현의 말투 때문인지 몰라도 어쩌면 정말 그 안에 제법 치울 수 있을지도 모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심기일전했다.

혼자서 치우게 된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 셋이 있는데 그만큼 치우는 속도가 빠를 테고 S급 헌터인 김세현도 있고 하니 집중해 정리하면 정말 김세현이 말한 것처럼 10분 안에 몽땅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상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도착하면 곧바로 짐 정리에 집중하자 다짐하던 참에 차가 집 앞에 당도했다.

“저는 주차하고 바로 합류하겠습니다.”

담벼락 쪽을 가리킨 부팀장이 먼저 내리라 손짓한다. 나는 곧바로 벨트를 풀곤 차에서 내렸다.

“형, 얼른 가서 정리부터 해요.”

“그래요.”

뒤따라 내린 김세현이 곧바로 날 잡아끈다. 못이기는 척 그와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는 현관에 있는 바깥 조명부터 켰다.

굳이 불을 켜지 않더라도 대문 근처에 가로등이 있어 잘 사용하지 않는 조명이긴 하나 이럴 때 사용하기엔 제법 쓸 만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일하는 데 지장이 가지 않을 거다. 만족하며 밖으로 나가는데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이번 기회에 저쪽 불도 잘 들어오는지 확인해봐야겠다. 곧바로 창고로 가 창고 바깥벽에 달린 조명까지 켜니 밤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마당이 훤하다. 만족하며 김세현 쪽으로 향하자 그의 입꼬리가 위로 향했다.

“바깥 불 다 켜니까 분위기가 좋네요.”

“그래요?”

“환하니 정리하기도 딱 좋고요.”

저 말을 들으니 불을 켜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세현을 따라 웃는데 그가 이리저리 몸을 푸는가 싶더니 쌓인 상자들 쪽으로 다가갔다. 뒤따라 그쪽으로 가다가 김세현의 맨손을 발견하곤 황급히 그에게 말을 건넸다.

“세현 씨,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래요.”

갑작스러운 제지 때문일까, 김세현이 멈칫하다가 이내 고갤 끄덕인다. 나는 김세현을 두고는 다시 창고로 향했다.

“여기 어디 있을 텐데….”

짐을 치우려면 일단은 준비를 해야 했다. 이리저리 창고 안 바구니를 뒤적이며 준비물을 찾기를 몇 차례, 가장 아래에 놓인 바구니 속에서 반코팅된 목장갑을 발견하곤 곧바로 그것을 세 켤레 챙겨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여기 장갑….”

김세현에게 장갑을 내미는데, 뒤늦게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절로 말끝이 흐려지던 참에 김세현이 내민 장갑을 가져가더니 그대로 손에 끼우기 시작했다.

부지직- 찌익-

“뭐, 이 정도면 잠시는 쓸 수 있겠네요.”

“그, 럴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저 장갑 속에 손이 들어갈 수 있던 건지 모르겠다. 사실 들어갔다는 표현보다는 걸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장갑에 손을 넣을 때 들려온 찢어지는 소리도 요란했을 뿐더러 소리만큼이나 장갑 위 코팅된 붉은 부분이 갈라지는 것도 눈으로 직접 목격한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보이는 손등 쪽 장갑부분이 찢겨져 나간 게 보이는 것도 한몫했다.

“아직 시작 안 했습니까?”

“하려고 했거든?”

주차를 마쳤는지 부팀장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을 건넨다. 그러자 바로 김세현이 말을 받아치더니 바로 앞에 있는 박스로 손을 뻗었다.

“…참 나, 국회의원이 이렇게 통이 작아?”

박스를 이리저리 살피던 김세현이 비소 지으며 곧바로 박스를 뜯어낸다. 그리고는 내용물을 보더니 날 불렀다.

“형, 분리수거 봉투요.”

“바로 가지고 올게요.”

장갑은 챙겨 놓곤 미처 봉투를 꺼내지 못했다. 김세현의 말에 집으로 들어가 봉투 묶음을 들고 나오자 김세현이 곧바로 그것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분리를 잘할까 싶어 방금 그가 버린 내용물을 살필 때였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도 챙겨 뒀죠?”

“네.”

“오늘 이거 정리한다고 공부 열심히 해 왔으니까 내 걱정은 말고 형도 얼른 정리 시작해요. 음식 오기 전에 끝내야죠.”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나는 김세현의 말에 머쓱해져서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요.”

“하늘 씨, 장갑 주십시오.”

“여기요.”

상황을 지켜보던 부팀장에게도 장갑을 건네자 그 역시 짐들을 분해해 정리하기 시작한다. 나도 두 사람에게 밀리지 않으려 바로 앞의 박스를 붙잡았다.

부우욱, 지익-

세 사람이 말없이 작업을 하니 들리는 소리라곤 박스 테이프를 떼어 내고 또 쓰레기들을 분류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박스 몇 개를 정리하고 다음 박스로 손을 뻗으려는데, 김세현이 날 불렀다.

“형.”

“네.”

“이대론 안 되겠어요. 내가 박스 뜯을 테니까 형이 내용물 정리할래요? 박스 다 정리하고 나서 물건 분류하는 거 도울게요.”

막상 김세현도 정리를 시작하니 막막하긴 한 모양이었다. 분업하면 시간을 유용하게 쓰기 더 좋을 터. 나는 곧바로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좋아요. 그럼 부팀장님이랑 저는 내용물 정리할게요.”

“그래요.”

나와 김세현의 대화를 듣던 부팀장이 들었던 박스를 내려놓더니 내 쪽으로 걸어온다. 그와 함께 김세현이 뜯어내는 박스 속 물건들을 분류해 쓰레기봉투를 계속해서 채우는데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반쯤 열어 둔 대문 틈 사이로 헬멧을 낀 사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때마침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길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저 사람이 들어와도 모를 뻔했다. 나는 침착하게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배달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배달원의 대답에 황급히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10분이 금세 지나가 있었다. 역시 세 사람이 있더라도 전부 정리하는 건 무리였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헬멧을 쓴 이에게 다가갔다.

“저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배달 온 음식이 많아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세현이 주문한 음식을 제법 챙겨 온 듯 기다리라는 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미리 전달받은 음식을 한쪽에 둔 채 대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

김세현의 위장이 대단하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음식을 주문했을 거라곤 차마 예상치 못했다. 오토바이 뒤에 실린 배달통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들, 그리고 양쪽 핸들에까지 걸려 있는 비닐봉지까지. 배달원이 음식들을 계속해서 대문 안쪽으로 나르는 이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김세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음식 다 왔어요?”

이쪽을 보고 있지도 않으면서 내 시선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박스를 분해하느라 바쁜 김세현의 물음에 반 박자 늦게 답했다.

“지금 기사 분이 계속 나르고 있어요.”

“형은 들어가서 상 차릴래요?”

손님들에게 일을 시키곤 나 혼자 안으로 들어가 밥을 차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뇨. 그냥 음식만 현관 쪽으로 옮겨 두기만 할게요.”

일하다 중간에 밥을 먹어야 할 것 같긴 했지만, 모두 함께 움직이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슬쩍 몸을 틀어 날 보더니 씩 웃으며 고갤 끄덕인다. 그에 부팀장을 바라보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조했다.

“여기 마지막 음식까지 전부 놓고 갑니다.”

“네. 고생하셨어요.”

이윽고 마지막 음식까지 전달한 이가 인사를 건네곤 자리를 뜬다. 오토바이가 멀어지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도착한 음식들을 한쪽으로 옮긴 뒤 김세현을 호출했다.

“안 온 음식이라도 있어요?”

“무슨 음식을 주문했는지 제가 몰라서요. 확인 부탁드리려고요.”

분명 갈비와 냉면을 말했던 거 같은데, 도착한 음식 가짓수가 제법 되었다. 아니지, 제법이라고 하기엔 정말 많았다. 마치 내게 보여준 리스트 전부를 주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바로 볼게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세현이 다가와 도착한 음식들을 하나하나 살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대신 부팀장의 곁으로 가 함께 분리수거를 하려는데 김세현이 반가운 소리를 뱉었다.

“다 왔네요. 대문 닫아 둘까요?”

“좋아요.”

그러지 않아도 내가 닫으려던 참이었다. 바로 긍정하자 김세현이 웃으며 문을 걸어 잠근다. 쓰레기를 버리려면 다시 문을 열고 나서긴 해야겠지만, 문을 잠그니 이보다 더 마음이 편할 순 없다. 안도하며 다시금 분류를 시작하는데 김세현이 나와 부팀장의 행동을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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