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14)화 (214/246)

211화

24. 뜻밖의 상황

“전달받을 자료 받았으니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말미암아 요즘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고 있을 텐데 그 부분은 제가 미안하단 말밖에 할 수가 없군요.”

“괜찮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도 알 텐데요. 게다가 지금 헐뜯기 바쁜 사람들은 처음부터 헌터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여기저기서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 양산되고 있긴 하지만 진실이 아닌 거짓은 조만간 정리될 것이었다. 팀장의 대답에 끄덕이며 동조하자 날 보던 이영혁 부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예. 저도 빠르게 상황 매듭짓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내일 오전 중으로 정부에서 협조금 관련된 내용이 발표될 겁니다. 한동안 시끄럽겠지만, 그냥 무시하세요.”

정부에서 그와 관련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니.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은 없었다.

그간 팀원들과 함께 협조금 관련해 열심히 정리해 위로 올려보낸 보람이 있다. 뿌듯함을 느끼며 팀장을 바라보자 그 또한 한결 마음이 놓인 듯 얼굴에 안도감이 자리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연 주무관님.”

“네, 이 부장님.”

인사를 하던 그가 별안간 날 부른다. 바로 답하며 바라보자 그의 얼굴에 묘한 뿌듯함이 차올랐다.

“덕분에 스트레스 확실하게 풀고 갑니다.”

“하하, 네.”

한 번 더 스트레스가 풀렸단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응어리진 게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저 인사말을 건넨다고 보기엔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이영혁 부장과 인사를 주고받은 뒤 그 역시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 한숨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 마음일 터였다.

“이런 말 해서 좀 그렇지만, 요즘 정말 파란만장하네. 그치?”

“그러게나 말이죠.”

김세현이 저지른 일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최근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의미했다. 물론, 그로 인해 팀원들 전부가 다사다난하게 되었고 말이다.

최근 있었던 일들을 나열해 보니 나와 관련된 일들 말고도 여러 일들이 있었단 사실에 헛웃음이 터졌다.

“진짜 일이 많긴 했네요.”

“그치? 헌터부가 원래 이런저런 일들이 많긴 했는데, 최근이 역대급이긴 한 거 같아. 지금도 물론 진행 중이지만 말이야.”

“…그나마 대피소 쪽 관련된 말이라도 잠잠해진 거 같아 다행이네요.”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침묵하던 한 팀원이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새로 온 팀원이 자발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상황은 정말 오래간만에 본다. 나는 곧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맞다. 그 일도 있었죠.”

“지금껏 나간 대피소 중 가장 통제하기 힘들었습니다.”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저도 좀 힘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운을 떼자 다른 이들도 역시 그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물꼬를 틀어 주기만을 바란 것처럼 말이다. 대화에 참여한 이들이 힐끔힐끔 내 쪽을 살피는 모습에 새삼스레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샘솟았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려고 했었는지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으려 노력하던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막상 저러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이젠 날 모른 체하려는 행동을 그만하려는 건가 싶었던 그 순간, 눈이 마주친 팀원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발견했다.

쳐다보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이 마주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딱히 할 말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고 못 본 척할 수는 없어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당황하던 이 역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은 아니었다. 뭔가 머쓱해 보이는 모습이 그간 날 모른 체하려던 행동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해석이 맞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

세 사람이 다녀가자 잠시 흐지부지되었던 분위기를 바로잡으려는지 팀장이 손뼉을 치며 소리를 냈다.

“다들 생각지도 못한 분이 오셔서 놀랐지? 같이 온 떨거지도 둘 있긴 했지만 그건 잊고! 헌터부에 우호적인 분이시니까 처음 보는 팀원들은 이영혁 부장의 얼굴 기억해 둬! 자, 우린 마저 하던 일에 집중하자고. 조회 때도 말했지만 시간 남는다고 해서 괜히 기사 찾아보고 댓글 보면서 상처받지 말자!”

“예!”

“네!”

팀장의 말이 맞았다. 지금쯤 어떤 말들이 오가고 있는지 궁금해 기사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그래 봤자 상처를 받는 건 나였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그로 인해 마음을 다독이느라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차라리 적당히 잊고 있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나는 팀장의 말에 크게 답하며 마음을 다잡곤 작업에 착수했다.

***

Z-6 구역에서 생성되었던 던전과 관련된 기사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살피던 나는 생각지도 못한 뉴스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와.”

이게 정말일까? 아니지, 정말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뉴스 헤드라인 기사들을 읽던 와중 중간 즈음에 떠 있는 반가운 제목을 발견하곤 곧바로 그것을 클릭해 뉴스를 살폈다.

“정말이네.”

혹여 낚시성 제목이면 어쩌나 했는데, 내용까지 확인하니 정말 제목 그대로였다. 세계헌터협회가 오늘 중 돌아간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니 절로 만족감이 차올랐다.

지금 당장은 기사와 뉴스를 통해 사람들이 협조금 관련된 부분을 계속해서 접하고 있어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계헌터협회가 한국을 뜬다면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돌아갈 것이고 지금처럼 거센 여론이 잠잠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더군다나 오늘 청와대에서 협조금 관련한 내용을 발표한다고 했기에 다른 것도 아닌 목숨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는 오명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후우.”

이 모든 건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막상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잠잠해질 거라 생각하니 이보다 더 설렐 수가 없다. 나는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는 것을 멈추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오늘따라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눈을 뜬 바람에 인터넷 기사들을 살필 수 있었는데, 이젠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다. 볼 것도 다 본 듯했고 말이다.

곧바로 부엌으로 가 아침상을 차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출근할 준비까지 마치곤 여느 날처럼 집 앞에 도착한 택배들을 먼저 치우려 대문 밖으로 나섰다.

“음?”

오늘도 몇 오지 않은 택배 상자들을 들어 올리는데 허리를 숙이고 있던 내 시선에 구두를 신은 발이 눈에 들어왔다. 광이 나는 검은색 구두와 짙은 회색빛이 감도는 바짓단을 보며 뭔가 싶어 짐을 든 채 그대로 몸을 일으켜 그쪽을 보자 낯선 인물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

이곳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었다면 그저 지나가던 사람과 우연히 맞닥뜨린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우연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가 내 곁을 지나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뚫어져라 날 바라보고 있단 사실에 다시 짐을 대문 한쪽에 내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하지만 내 물음에도 중년 남성은 좀처럼 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은색 테 안경 너머로 날카로이 날 훑어보는 시선을 마주하길 몇 분, 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자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당신이 서울시 헌터부 소속 연하늘 주무관입니까?”

이 목소린….

혹여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몇 번이고 곱씹어 봐도 그 목소리가 맞았다. 김세현의 집에서 들었던, 그리고 김세현과 통화를 하던 와중 들려왔던 예의 그 불편했던 목소리가 맞다. 나는 급속도로 표정이 굳었다.

“표정을 보니 내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가는 모양이군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어르신께서 만나고 싶어 하시더군요. …직접 와서 보니 볼품이라곤 하나도 없는 게 봐 봤자 눈만 버리실 거 같긴 하지만.”

김세현에게도 막말을 쏟아 내더니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말을 가리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뿐이랴, 말하는 내내 날 훑어보고 살피는 시선 또한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엔 당황해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했는데, 저 시선과 말투를 접하고 있으려니 조금씩 정신이 돌아온다. 나는 맹한 표정을 거뒀다.

“오늘 처음 본 걸로 아는데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불쾌합니다.”

“불쾌하라고 하는 소리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

사람의 속을 긁기 위해 하는 말이라니.

헌터부에서 일하며 인터넷으로 나오는 기사 댓글로 이런저런 내용을 받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을 면전에 두고 악의를 내보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방금 막 마음을 다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놀랐는지 절로 마음이 흐트러졌다.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느끼며 남자를 응시하자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혀를 끌끌 찼다.

“어르신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곳에 오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자, 가죠. 어르신 뵙고 출근하도록 해요.”

내게 제안하는 것도 아니고, 명령하는 듯이 말하는 걸 들을 의무는 없었다. 그것이 제아무리 김세현의 친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출근하는 것을 동네 마실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저 말을 듣고 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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