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12)화 (212/246)

209화

24. 뜻밖의 상황

“목숨을 걸고 던전을 클리어한다는 건 헌터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만큼 단 한 번도 협조금을 늦게 전달한 적 없는데, 지급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맥이 빠지네요.”

“크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우리 연 주무관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데 말이야. 내가 잊어도 연 주무관이 척척 챙겨서 제때, 정확히 지급했는데 난데없이 그런 말을 들으면 억울하지.”

“저도 공감합니다. 다른 분들이 쉬는 시간에도 쉴 새 없이 업무를 보고, 또 다른 분들 일을 돕던 연 주무관님이 자기 할 일을 잊거나 실수한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본 적도 없고요.”

아, 그건….

대견하다는 듯 날 바라보며 말하는 이영혁 부장의 어깨에 점차 힘이 들어가는 게 보인다. 몹시도 자랑스러워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내 표정이 많이 이상했는지 맞은 편에서 날 보던 박 주무관이 모니터 아래로 사라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빠르게 사무실을 둘러보자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굳이 보이지 않아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훤히 보였다. 아마 모니터 아래로 몸을 감춘 채 어깨를 들썩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터였다.

“…….”

설마, 부팀장도 웃고 있을까?

혹시나 해 옆을 봤다. 그러자 때마침 이쪽을 보던 부팀장이 입가를 씰룩이다가 눈이 마주치자 허리를 굽혔다. 나는 책상과 한 몸이 되어버린 부팀장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뱉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인지라 조금 반가웠지만, 모두가 똑같은 반응을 보이니 내가 또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얼굴에 좀 더 힘을 주며 표정 관리에 집중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우리 연 주무관이 얼마나 신경을 써 줬는데,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이야기를 멋대로 내보내고 말이야.”

“멋대로 꺼내다니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용을 헌터부와 정부 측에 허락받고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가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남자가 불만을 토해낸 부분은 지금 대화와 조금 거리가 있었다.

“논점 흐리지 마시고! 거참, 그런 뜻으로 말하는 게 아닌 거 잘 아는 사람이 그쪽으로 물고 늘어지네!”

팀장의 지적처럼 은근슬쩍 말꼬리를 잡아서는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행동이 참으로 별로다. 나는 뚫어져라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분이 인터뷰한 내용처럼 우리나라의 협회 협조금이 노동 강도보다 현저히 적은 건 사실이죠! 안 그렇습니까, 강 실….”

여기저기서 보내는 날 선 시선들이 이제야 인지되었는지 남자가 불평을 토해 냈다. 하지만 그 불평 속에는 말꼬리를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섞여 있었다. 남자도 그걸 깨달았는지 다급히 말끝을 흐렸지만 그걸 놓칠 팀장이 아니었다.

“설마. 강승빈 씨, 설마 아직도 실장직 겸임하고 있는 건가?”

조금 전 불필요한 말꼬리를 잡았던 게 불편했던 걸까, 팀장이 콧방귀를 끼며 남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남자가 아닌, 조용히 상황을 관망 중이던 강승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입에 밴 소리일 뿐입니다. 겸업을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협회 분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실언이었습니다.”

단호하기까지 한 강승빈의 선 긋기에 남자가 꼬리를 말았다. 그 모습에 팀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우리야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거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고. 조금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그거나 물어봅시다. 도대체 여긴 뭐 하러 온 겁니까?”

나도 그게 참 궁금하던 참이었다. 자료가 필요해 가장 가까운 행정기관으로 온 이영혁 부장과는 달리 저 두 사람은 와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남자야 몇 마디 말이라도 했지만, 세계헌터협회 소속이라는 사람은 인사만 했을 뿐, 정작 아무 말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

다른 때였다면 이영혁 부장이 함께 온 이들이 어째서 이곳을 찾은 건지 대신 설명해 주었을 거다. 하지만 그 역시 입을 다문 걸 보면 저들이 함께 온 게 내키지 않는 듯했다.

팀장의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하지 않자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감돈다. 나는 남자, 그리고 세계헌터협회 소속이라던 남자가 있는 원형 테이블 쪽으로 눈을 움직였다.

“이곳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때였다. 침묵하던 남자가 입을 연 것은. 나는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

남자의 말에 턱을 만지작거리던 팀장이 힐끗 날 바라보았다. 다른 때였다면 어째서 날 보나 의아했을 거다. 나는 침착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

어쩌면 너무 넘겨짚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간 협회에서 오는 사람들마다 날 찾는 일이 많긴 했었다. 협조금 담당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래,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하건 간에 단호하게 답하자고 생각하며 이어지는 말에 집중했다.

“여기 김세현 헌터와 친분이 있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다른 사람을 찾아온 게 아닐까 했는데, 역시다. 나는 곧바로 한 손을 들었다.

“접니다.”

“아….”

“으음.”

재빠른 내 대답에 놀랐던 걸까, 팀장과 이영혁 부장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날 바라본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내게 쏠린 팀원들의 시선을 느끼며 계속해서 세계헌터협회 측 사람과 시선을 교환했다.

“…당신이군요.”

반응을 보건대 아무래도 내가 답할 거라곤 미처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날 알고 모르는 척하며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

말없이 날 보며 눈만 끔벅이던 세계헌터협회 소속 사람이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린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세계헌터협회 측 인사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곁의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사전에 오간 정보에 문제가 있었던 듯했다. 하긴, 처음부터 정보가 제대로 오갔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첫인상이 바닥을 치는 상황은 없었을 터였다.

“…….”

다른 누군가가 내게 환심을 사려 찾아오고 또 선물 같은 걸 보낼 수도 있단 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만에 하나 선물 공세를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째서 저 사람이 날 찾나 싶어 당황하고 있었겠지.

…설마하니 선물이 내게 도움이 될 줄이야.

혼자 묘한 기분을 느끼며 침묵하는데 돌연 세계헌터협회 측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어느새 박 주무관의 옆까지 온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우선, 사과부터 하겠습니다. 당신이 협조금 담당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인터뷰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말을 꺼낼까 궁금했는데, 이런 말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놀라 그를 바라보자 남자가 조심스럽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한 번 더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세계헌터협회 소속 데미안 리입니다. 한국헌터협회의 초청을 받아 온 것이지만, 사실은 연 주무관님을 보려고 왔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보러 왔다고 하니 좀 당혹스럽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말을 던졌다.

“어째서 저를 보러 오셨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표정을 보니 대충은 짐작 가시는 듯하군요.”

…또 티가 난 건가?

어색하게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자 데미안 리라고 본인을 소개한 남자의 입매가 슬며시 올라갔다. 저 모습을 보니 민망함이 차올랐지만, 그도 잠시뿐이었다. 나는 남자가 김세현에게 연을 대 보고자 이곳을 찾았다는 걸 상기하며 표정을 굳혔다.

이 사람 역시 그 이유로 날 찾은 것일 터였다. 하지만 굳이 옆 건물까지 찾아올 필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김세현은 협회에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연이 닿고 싶다면 직접 그를 찾아가 얼굴도장을 찍고, 또 말을 건네면 될 텐데 굳이 날 찾아오다니.

혹시 김세현이 아닌 날 찾은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을 때였다. 거의 동시에 들려온 남자의 말에 절로 눈이 커졌다.

“그 짐작이 맞을 겁니다. 저희는 김세현 헌터와 연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연 주무관님을 세계헌터협회로 스카우트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데미안 리란 사람이 꺼낸 말에 가장 먼저 발끈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협회 소속 남자였다. 저 반응을 보니 이 또한 사전에 이야기가 오간 적 없는 내용인 듯했다. 빠르게 데미안 리에게 접근한 남자가 그의 어깨를 붙잡아 돌려세웠다.

“지금 김세현 헌터가 욕심이 나는 겁니까?”

“세계헌터협회뿐만이 아니라 김세현 헌터란 존재는 세계 각국에서도 탐을 내는 인재이죠. 그러니 저희는 큰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인재를 모셔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말, 협회에 가서도 할 수 있습니까?”

“자, 거기까지. 싸울 거라면 여기 말고 옆집 가서 하시죠. 다들 일하느라 바쁘니까.”

점차 목청이 커지는 남자와 데미안 리의 대치를 보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 끼어든 사람은 다름 아닌 팀장이었다. 두 사람을 떼어 놓고는 곧바로 출입문 쪽으로 한 손을 뻗으며 안내하는데, 그런 친절한 안내와는 달리 두 사람은 꿈쩍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가만히 있던 날 들쑤시고서는 김세현이 중요한 사람이라 논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다. 나는 점차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두 사람이 나누던 대화에 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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