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11)화 (211/246)

208화

24. 뜻밖의 상황

시간은 흘러 어느덧 다음 주 수요일이 되었다.

“이제 이틀 남았네.”

그래, 이제 이틀 후면 주말이었다. 나는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청명하기 그지없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입가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이젠 좀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이렇게 설레는 것도 참 용하다. 괜스레 입가를 오므렸다가 펴길 반복하며 마음을 진정시켜보려 노력하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가라앉지 않는 감정에 헛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얼마 가지 못했다.

“하아.”

웃음이 한숨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지난주 던전이 생성되었던 순간부터 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다 어깨가 축 처졌다.

하긴, 앞뒤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뻔한 이들이 한쪽 편만 들고 대중 앞에서 마치 진실인 것처럼 말했는데 윗선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 뺨을 맞은 건 헌터부도 마찬가지였건만, 결국 그 여파는 일선에 있는 헌터부가 죄다 뒤집어쓴 꼴이 되고 만 거다.

“후우.”

이게 바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속담이 아닐까 싶다. 지난주에 갑자기 협회로 나갈 협조금 집행을 유예하라는 지시와 더불어 그간 협조금으로 나간 내역, 협회에서 협조한 헌터 수 등 협조금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시 정리해 올리라고 한 덕분에 지난주부터 헌터부 전체가 새로 통계를 내기 위해 자료 정리를 하느라 얼마나 바쁜지 몰랐다.

일과와 더불어 졸지에 하게 된 일을 떠올리니 자꾸만 한숨이 난다. 세계헌터협회면 협회인 거지, 남의 나라에 와서는 이러니저러니 떠들어 대며 일거리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무례한 행동에는 우리나라 헌터협회의 입김이 닿았을 확률이 높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한국헌터협회보다 더 밉게 보이는 건 당연했다.

“…….”

다른 건 몰라도 우리나라의 협조비를 터치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타국에 비해 높은 축에 속하는 협조비건만, 그 액수가 적다며 왈가왈부하다니.

물론 그 말을 꺼내며 덧붙인 내용만 놓고 보자면 어째서 액수가 적다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타국과 우리나라는 던전 생성 빈도 차이가 제법 컸으니까. 한 마디로 그만큼 위험하기에 위험수당을 더 붙여야 한다는 말이겠지. 설령 그렇다 해도 협회 소속 헌터들의 피로도를 거론하며 난데없이 김세현을 거론하며 협조금이 제대로 정산되지 않고 있단 말을 꺼낸 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었다.

“…이래서 팀원들이 싫어하지.”

협조금과 관련된 항목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통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자발적 협조 부분을 마치 협조금을 내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해선 안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한국협회 측에서 입김을 넣었기에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정부에서 허락을 받아 들어갈 수 있었던 Z-6 구역에서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그야말로 돌발 발언이었던 바람에 현장을 함께 찾았던 이영혁 부장이 당황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매체를 타고 말았지.

그 덕분에 현재 인터넷에선 협회 측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이들과 헌터부 편을 든 이들로 갈려 팽팽한 줄다리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더하여 김세현도 다시금 헌터부를 찾던 발길을 끊은 상황이었다. 괜히 불똥이 튈 수도 있다며 말이다.

“…….”

오늘도 내 왼쪽 자리는 비어 있을 거로 생각하니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설렘이 사라진다. 나는 연거푸 한숨을 뱉다가 슬슬 나갈 시간이 되자 커튼을 치곤 그대로 집을 빠져나왔다.

“날이 좋긴 좋네.”

역시 밖에 나와 보니 안에서 볼 때보다 날이 더욱 좋았다.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도 그렇고, 머리카락이 살포시 흔들리다 말 정도의 산들바람이 부는 것도 그렇고. 내 축 처진 기분과는 너무도 정반대였다.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기왕 날씨가 좋은 거 주말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금 떠오른 주말 약속을 곱씹으며 집을 나선 나는 곧바로 대문 구석진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제법 줄었네.”

처음 집으로 택배들이 몰려왔던 걸 생각하면 양이 엄청나게 줄긴 했다. 눈으로도 개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개수가 줄어들었다는 건 그만큼 저 문구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단 말이었다. 물론, 동네 어르신과 앞집 아저씨의 도움이 더 크겠지만 말이다.

“…이번 주 주말에 선물도 좀 살까?”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인 듯했다.

여윳돈이 그리 많은 건 아니어도 고마움을 표시할 정도는 있으니 간단한 먹거리라도 꼭 사야겠다. 간 김에 김세현과 함께 장도 좀 보고 말이다.

“으읏.”

혼자 사는 만큼 장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장을 보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런 드문 일을 김세현과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막 요동쳤다.

벌써 이렇게 뛰는데, 당일이 되어 같이 장을 보게 되면 내가 어떤 상태일지 심히 걱정된다. 혼자 긴장하고 또 혼자 설레서는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상상하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자동차 엔진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하하.”

부팀장의 차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설렜다가 혼자 심각해졌다가. 그러다 다시 설렘 속에 빠지다니.

“아침부터 기운이 넘치네, 연하늘.”

여력이 없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연신 피식거리며 웃다보니 이윽고 부팀장의 차가 집 앞에 당도했다. 나는 차에 오르기 전 크게 심호흡했다.

“후우.”

이제 출근하면 다시 또 세계헌터협회가 쏘아 올린 폭탄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마음을 다스리고 일에 집중하자 다짐하며 나는 차에 올랐다.

그랬는데….

출근하며 이미 폭탄과도 같은 상황을 각오했지만, 이런 자리가 만들어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원형 테이블 쪽에 자리를 잡은 이영혁 부장, 그리고 그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두 사람을 연신 힐끔거렸다.

“…….”

이영혁 부장이야 오가는 길에 잠시 들른다고 해도 반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볼일이 있다고 이영혁 부장을 따라온 걸까. 저렇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거라면 차라리 협회로 돌아가 자기 볼일을 보는 편이 더 이득일 터였다.

무슨 이유로 이곳을 찾은 건진 감이 오지 않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겠다. 저들이 헌터부를 방문한 의도가 썩 좋지 않다는 걸 말이다.

연신 그들을 훔쳐보며 의중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던 나는 때마침 이쪽으로 시선을 주는 외국인을 피해 급히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

슬쩍슬쩍 바라본 걸 들키거나 한 건 아니겠지?

혼자 긴장한 채 모니터를 보는데, 유독 주변이 고요하다는 걸 인지했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사무실은 일을 처리하느라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괜스레 눈치를 보던 중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절로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이 부장님,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 자료를 부탁한 제가 더 죄송할 뿐입니다.”

팀장이 원형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자 이영혁 부장도 일어나 다가오더니 사무실 중간에서 만난 두 사람이 서로 악수를 나눈다. 이미 한 차례 인사를 나눈 상황인데도 악수한 자세 그대로 대화를 주고받는데, 저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요즘 생각지도 못한 일로 헌터부가 바빠서요. 마음 같아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눌 텐데 여유가 없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바로 대응하지 못한 제 실책이 큽니다.”

“실책이라뇨. 이 부장님이 우리 헌터부를 위해 발 벗고 뛰고 있다는 건 여기 있는 헌터부 직원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앞뒤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문제인 거죠.”

팀장의 말마따나 이영혁 부장은 공개하기 시기상조였던 공간을 이례적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을 뿐이었다. 그런 이에게 고마움을 가지기는커녕 블랙 옥토퍼스의 체액이 미처 다 치워지지 않은 공간에서 협조금과 관련된 이야길 꺼낸 거다.

협회의 손을 빌려서만이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는 무능한 정부라는 뜻으로 말을 던져 놓고는 무슨 생각으로 이영혁 부장을 따라 이곳까지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인터뷰를 진행한 당사자가 헌터부를 찾아오다니. 나는 두 사람을 보다가 힐끔 외국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또한 예상하던 바였지만, 그런 곳에서 실익을 논하는 말을 꺼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무렴요! 이 부장님의 마음 잘 압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민간인이 피해를 본 곳에서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죠!”

“…….”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내용 중 틀린 부분은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이영혁 부장이 팀장과 티키타카를 하며 대화를 이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점차 고조되는 두 사람의 감정을 느끼며 계속해서 외국인을 바라보다가 얼떨결에 그 사람 곁에 앉아 있던 이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연 주무관님, 많이 바쁘십니까?”

이영혁 부장을 따라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을 때를 제외하곤 침묵하고 있던 사람이 어째서 지금, 이 순간 날 부르는 걸까. 마치 시선이 마주치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몹시 반갑게 말을 붙이는 이를 보았다. 남자의 반응에 덩달아 세계헌터협회 측 사람이 몸을 틀자 얼른 답했다.

“네, 바쁩니다.”

괜히 말이 길어진다면 이런저런 불편한 대화가 오갈 게 분명했다.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대답에 뭔가 말을 하려던 남자가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 그러시군요.”

나는 시큰둥하게 그 남자를 보다가 다시금 세계헌터협회 사람과 눈을 마주했다. 저 사람 또한 말을 건다면 단호하게 자르겠다 다짐하는데 팀장이 날 불렀다.

“연 주무관.”

“네, 팀장님.”

“일이…. 바쁘긴 하지?”

이영혁 부장과 대화를 나눌 때완 달리 팀장의 말투는 몹시 말랑말랑했다. 덩달아 씰룩거리는 입매를 보며 고갤 끄덕였다.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협조금 담당이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집단 이익만 거론한 어딘가 덕분에 제가 몹시 곤란하네요.”

“큭!”

“풉!”

…이 소리도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거 같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 참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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