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09)화 (209/246)

206화

24. 뜻밖의 상황

어쩌면 그가 현장에 나가는 일을 그만두게 된 것과는 또 다른 기억이 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그 일이 떠오르는 건 어쩔 방도가 없었다. 걱정을 감추지 않으며 그를 바라보는데, 부팀장은 정말 괜찮아진 듯 표정이 밝았다.

“…….”

저 표정을 보니 순간 긴장했던 게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자 부팀장이 피식 웃어 보였다.

“이젠 괜찮습니다.”

“네.”

부팀장이 괜찮다면 정말 괜찮단 말이었다. 나는 고갤 끄덕이며 안도했다.

“슬슬 점심시간이 되어 가니 두 사람은 식사할 거 정해서 주문하도록 해요. 저는 오늘 죽을 먹겠습니다. 스트레스를 좀 받았더니 속이 말이 아니군요.”

“네.”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이어 관망 중이던 강승빈이 따라 답한다. 나는 그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물어보려 입을 열었다.

“혹시 광고 책자 있나요?”

“여긴 없습니다.”

본인 책상과 옆 책상을 둘러보는가 싶던 강승빈이 고갤 저었다. 나는 서류꽂이에 꽂혀 있던 책자를 가지고 가 그에게 건넸다.

“여기서 보고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예, 연 주무관님.”

고갤 끄덕인 강승빈이 곧바로 책을 뒤적인다. 그 모습을 보며 서 있자니 부팀장이 시청에 연락을 취한 듯 상황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사관을 파견해 주십시오. 예, 그렇습니다. 이번 던전은 위험성에 비해 피해가 현저히 적은 듯합니다. 예….”

한쪽에서는 시청과 통화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메뉴를 정하려 책자를 살피고. 나 혼자 멍하니 있는 것만 같다. 가만히 서 있기 뭣해 괜스레 여기저기 둘러보며 메뉴를 정하길 기다리던 참이었다. 드디어 강승빈이 음식을 다 골랐는지 메뉴를 입에 담았다.

“돼지국밥으로 먹겠습니다.”

“따로 더 주문할 거 있으면 말씀하셔도 돼요.”

“이걸로 충분합니다.”

“그럼 같은 걸로 두 그릇 주문하겠습니다.”

책자를 챙기려 손을 뻗는데, 강승빈이 그런 내 손을 막았다.

“제가 주문하겠습니다. 하는 일도 없는데 이거라도 해야죠.”

본인 입으로 직접 이야길 하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게 강승빈은 부상으로 인해 외근을 나갈 수 없어 사무실에 남아 있던 참이었으니까. 나는 손에 쥔 책자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세요. 그럼 부팀장님이 드실 죽은 제가 주문하겠습니다.”

양쪽에서 주문한다면 그만큼 음식이 일찍 도착할 것이었다. 특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을 땐 조금이라도 일찍 연락해야 조리 순번이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평소 주문을 넣던 죽집으로 연락을 넣은 뒤 모두의 통화가 끝나자 허락을 구하곤 TV를 켰다.

“…….”

언제나 그랬듯이 매체들은 오늘 Z-6 구역에서 발생한 던전에 관한 속보를 내보내기 바빴다. 혹여 전달되지 않은 상황이나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여러 채널을 확인해 봤지만, 엠바고가 걸리기라도 했는지 모든 채널에서 같은 장면만 보여 주고 있었다.

던전이 생성된 곳을 가려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끔 하는 건 숱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던전에 비해 멀쩡하다던 현장을 이렇게까지 통제할 이유가 있나 싶다. 그 어느 때보다도 통제가 심한 게 아닐까 하는데 부팀장이 때마침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김세현이 잡았다던 블랙 옥토퍼스 쪽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조각이 많이 났다는 건 체액이 그만큼 흩뿌려졌단 의미고, 그 근방이 썩 좋지 않은 색으로 뒤덮여 있단 말이니까요. 특히 블랙 옥토퍼스는 검은 체액을 비롯해 푸른 피가 흐르기에 어느 정도 치우지 않는 한은 외부에 공개하기 곤란할 겁니다. 끈적끈적하기까지 해 몹시 지저분해 보이니까요.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알도 많이 산란하고, 부화한 터라 정리할 게 많을 겁니다.”

그의 말마따나 Z-6 구역 전체에 체액이 뒤덮인 건 아니더라도 정리할 게 많을 듯했다. 특히 검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체액이 여기저기 흩뿌려졌다면 미관상 정말 보기 흉할 것이었다. 어쩌면 흉하게 체액만 뒤집어쓴 곳도 큰 피해를 보았다고 과장되어 전달될 수도 있었다.

“뉴스에 현장 사진이 나오기 시작한 걸 보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완전 공개가 될 모양이군요. 우린 하던 일 마저 합시다. 강승빈 씨는 따로 할 일이 없다면 일감 하나 줄 테니 그거 정리하도록 해요.”

“예, 부팀장님.”

고개를 끄덕인 강승빈이 일어나 걸어온다. 목발은 뗐으나 깁스를 풀진 않아 걸음걸이가 영 어색해 보였다. 말없이 그가 서류를 받아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불현듯 헌터들의 회복 속도가 정말 빠르단 사실이 떠올랐다.

“…….”

헌터의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본 것도 있고, 들은 것도 있었지만 상처까지 이렇게 빨리 호전되는 걸 직접 보게 되니 놀라울 따름이다.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고 말이다.

몸이 빨리 낫는다는 건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계속 현장에 나가야 함을 의미했다. 강승빈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간 함께한 팀원들을 생각하니 이보다 마음이 쓰일 수가 없다.

“…하아.”

그들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사무 일을 열심히 도와야겠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일부터 마무리해야만 했다. 나는 크게 심호흡 후 작업 속도를 올렸다.

일찍 돌아오겠다던 팀장의 말처럼 팀원들은 평소보다 빠르게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에 반해 상황을 정리하면 오겠다던 김세현은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곧 퇴근할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대할 사람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어 아쉬운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씻으러 간 사람은 도통 오질 않네.”

나만 허전한 게 아닌지 김 주무관이 말을 꺼냈다. 고갤 들어 김 주무관 쪽을 바라보는데 이번엔 박 주무관이 말을 이었다.

“한껏 치장하고 오는 모양이죠. …어쩌면 지난번처럼 1층에서 또 뭔갈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 말 들으니 벌써 오싹하네. 확인 좀 해야겠다.”

박 주무관의 의견을 들은 한 주무관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을 열어 밖을 살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농담 한마디에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한 주무관을 제지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조차도 말이다.

“밖은 뭐 없네.”

“너무 조용하니 이상하네요.”

“잉여가 자리를 오래 비워도 걱정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죠.”

“혹시 모르니 중간중간 바깥도 확인해 봐야겠어.”

“하하….”

대화를 나누는 팀원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한 것이 그날 충격이 제법 컸던 듯했다. 하긴, 한동안 얌전했던 김세현인지라 놀랄 만도 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지켜보는데 이미 그들은 곧 김세현이 나타나리라 확신하는 듯했다. 연신 출입문과 창문 쪽을 살피는 걸 볼 때였다.

“다들 할 일은 끝내고 수다 떠는 거겠지?”

부산스러운 팀원들의 반응에 팀장이 한마디 하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외근을 다녀와서인지 집중하기 어렵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번에 맡은 대피소는 목청 크신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 통제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거기도 그랬어? 내가 간 곳도 장난 아니더라고. 나중엔 그분들 도움받아서 통제하는 게 좀 수월해졌는데 그전까진 고역이었어.”

“하늘 씨, 혹시 부탁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서강민 씨는 연 주무관 거 챙길 생각 말고 본인 하는 일이나 하도록 하죠? …보아하니 제가 드린 일도 아직 끝맺지 않았는데.”

“…예.”

“…….”

서강민이 내게 잘 보이려 하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어필할 이윤 없었다. 이전의 연이 있어 그에게 고마워하긴 해야 했어도 그것과 지금 저 어필은 별개의 것이었다.

그래, 지금 저 어필은 누가 봐도 속 보이는 것이었다. 김세현과 내가 예상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판단을 내렸는지 김세현을 말린 이후 저렇게 툭하면 자기 어필하기 바빴다.

서강민은 알까?

내게 잘 보이려는 행동이 도리어 해가 되고 있단 걸 말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서강민에게 자제를 부탁해야겠다 여길 때였다. 복도 쪽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형!”

무슨 소린가 했더니 김세현이 뛰어오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소리로 날 부른 김세현이 빠르게 곁으로 와 앉는다. 곧바로 태블릿을 든 그가 날 바라보는데,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이 나는 건 어쩔 방도가 없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아뇨, 그냥요.”

돌아오자마자 태블릿을 들어 날 바라본다는 건 던전으로 가기 전 나눴던 말 때문일 터였다. 오늘 처리할 일은 미리 끝내 두긴 했지만, 현장에서 돌아온 팀원들의 일감을 나눠 받은 터라 지금 당장 태블릿을 보는 건 무리였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이를 보며 고개를 젓자, 김세현의 눈매가 축 밑으로 쳐졌다.

“퇴근 전엔 볼 수 있어요?”

“…열심히 한 번 해 볼게요.”

퇴근할 때까지 과연 나눠 받은 일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내일까지 해서 줘도 괜찮다는 것도 있으니 퇴근 준비를 하기 전 5분 정도는 함께 봐도 될 거다. 짬을 만들어 보겠단 내 대답을 들은 김세현의 표정이 조금씩 밝게 변하더니 고갤 끄덕였다.

“그럼 기다릴게요.”

“네.”

이어 다리를 꼬아 앉은 김세현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앉고는 혼자서 태블릿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

기다리겠다는 말과는 달리 김세현은 무척 빠르게 태블릿을 보는 데 몰입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리 집중한다는 건 일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일이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마냥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곤 다시금 일 처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기어코 퇴근 전 짬을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를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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