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24. 뜻밖의 상황
-연 주무관.
한참 현장 지휘를 하던 팀장이 짬이 났는지 날 부른다.
“네, 팀장님.”
- 위험한 것들은 어느 정도 치웠으니 경찰청과 소방청에 연락 넣어 현장 통제 및 복구 시작한다고 전달해.
부팀장이 복귀했기에 당연히 그에게 맡길 줄 알았다. 의외의 지시에 놀란 나는 곧바로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얼른 해 봐요.”
혹여 이 상황을 불편하게 생각하며 어쩌나 싶었는데, 부팀장은 그저 웃으며 고갤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곤 곧바로 중계기를 통해 전달 사항을 안내했다.
-어느 방향을 중점으로 인력 배치하면 될까요?
안내를 끝냄과 동시에 곧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지금 상황에서는 인력을 배치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팀원들이 있는 대피소를 입에 담았다.
“우선은 제5, 7, 8, 10, 13, 17 대피소 방향 위주로 배치해 주시면 됩니다. 아 참, 그리고 대서삼거리 쪽에 광범위한 정전이 발생하였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쪽을 통해 오시는 분들은 돌아서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변경 사항이 있거든 곧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바로 현장에 말 전하겠습니다.
“헌터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예!
중계기로 연락을 마친 뒤, 같은 내용을 팀원들에게도 알렸다. 여러 사람이 알았다고 답하는 가운데 팀장이 반 박자 늦게 답해왔다.
-전기 끊어진 쪽은 혹시 모르니 내가 가서 둘러보도록 하지! 그리고 서강민 씨는 어서 병원에 가 봐.
병원?
혹시 전투 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던 걸까. 나는 곧바로 상황을 물어보았다.
“어디 다치셨어요?”
-아, 하늘 씨. 크게 다친 건 아니고, 몇 바늘 꿰매면 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몇 바늘이야? 대충 지열하고 바로 가!
이어진 팀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서강민이 한 말 그대로 받아들였을 거다. 지열부터 하고 가라는 걸 보면 현재 상당한 피를 흘리고 있단 말이었다. 약간의 걱정과 함께 조금 전 협회 소속의 A급 헌터가 곤란해하던 모습이 떠올라 팀장에게도 바로 물어보았다.
“팀장님은 괜찮으세요?”
-나? 멀쩡해! 지난번에 다친 곳만 좀 뻐근할 뿐이지 이번 던전에서는 다친 곳 없어.
“…다행이네요.”
이전에 다친 곳이 아직 다 낫지 않은 터라 걱정했다.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데 팀장이 김세현을 입에 담았다.
-잉여는 도착했어?
“아뇨. 지금 현장에 있지 않나요?”
-옥토퍼스 처치하자마자 어디론가 달려가길래 곧바로 사무실로 간 줄 알았지.
“…오는 길일 수도 있겠네요.”
팀장이 확인한다는 건 던전이 클리어되자마자 잽싸게 자리를 떴단 말이었다. 슬슬 그가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에 중간중간 출입문 쪽을 확인하며 계속해서 현장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팀장님, 대피소 쪽으로 경찰과 소방관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현장 상황 전달하고 시청에서도 사람 나오면 바로 교대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팀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작동되는 카메라를 찾아 팀원들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화면에 띄워 두었던 CCTV가 크게 흔들렸다. 위아래로 거세게 흔들리는 화면이 이윽고 멈춘다. 순간 벌어진 일에 당황하던 나는 곧바로 작동되는 카메라를 찾아 그 화면을 띄웠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모니터를 본 부팀장이 다급히 팀원들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팀원들의 무사하단 소식이 아닌, 연이어진 굉음이었다. 소리가 날 때마다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에 내 마음도 위아래로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답변을 기다리는데 한참만에야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이게 무슨 상황이야! 대피소 상황은?
-대피소 쪽 계속 통제하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쪽도 통제 중입니다!
-이쪽도 무사합니다!
-많이 놀랐을 텐데 시민들 진정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 그리고 전부 경계 태세 계속 유지하고! 아무래도 삼거리 쪽에 일이 생긴 거 같아! 나도 이제 곧 도착하니 상황 확인하고 다시 연락하지! 그리고, 혹시 모르니 던전 클리어 정정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자!
다른 것도 아니고 던전 클리어를 정정할 수도 있다니.
그 어느 때 들었던 말보다 긴장된다. 삼거리 쪽을 보고 싶었지만, 확인이 가능한 카메라는 없었다. 그저 카메라의 흔들림이 멎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위아래로 거칠게 흔들리는 카메라로 인해 좀처럼 분간할 수 없던 상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카메라의 움직임이 잦아들자 내 의문은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커졌다.
“…….”
조금 전 진동을 보건대 건물 한두 채 정돈 쓰러졌어야 정상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카메라에 비춘 현장은 너무도 깨끗했고 또 멀쩡할 따름이었다.
-팀장님, 도착하려면 머셨습니까?
-이제 곧 도착해!
지금으로선 팀장이 전달하는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안은 채 계속해서 네트워크로 전달되는 상황에 집중했다. 그렇게 1초가 10분 같은 기다림을 이어갈 때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혹여 문제가 컸다면 팀장이 저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거다. 반쯤 얼이 나간 듯한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팀장에게 물어보았다.
“팀장님, 상황이 어떤가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표현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물론, 빈 수레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꽉 찬 수레이긴 한데.
얼떨떨함을 감추지 않는 팀장의 대답을 들으니 더더욱 현장 상황이 궁금해졌다. 한 번 더 물어보려 입을 뗐지만, 그보다 팀장의 말이 더 빨랐다.
-잉여 아직 사무실에 도착 안 했지?
“네.”
-여기서 한 판 했나 보네.
-한 판이라뇨? 몬스터가 또 있었습니까?
팀장의 대답에 놀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김 주무관의 질문에 팀장이 답했다.
-그런 모양이야. 와 보니 블랙 옥토퍼스 세 개체가 죽어 있어. 쯧! 몸통은 그대론데, 다리가 다 썰렸네. 보아하니 처음부터 성체였던 거 같고.
-맙소사….
-그럼 옥토퍼스들 때문에 그 일대 전기가 나갔다고 봐야겠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몬스터가 바닥에 뚫어놓은 구멍 말곤 크게 눈에 띄는 게 없는 걸 보니 정말 잉여가 한 판 한 게 맞네.
처음부터 성체였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팀장도 눈치채지 못한 몬스터를 김세현이 알아차리고 없앴다니….
얼마나 김세현의 능력이 뛰어난지 한 번 더 체감할 때였다. 책상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자 황급히 집어 들었다.
[형 o(≧ㅂ ㅠo), 사무실에 좀 늦게 갈 거 같아요.]
메시지를 보낸 건 김세현이었다. 이모티콘을 사용한 건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뭔가 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말없이 메시지를 보던 나는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 있습니까?”
“잠깐 통화하고 올게요. 세현 씨 메시지가 왔는데, 뭔가 좀 이상해서요.”
“그래요.”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부팀장이 어서 다녀오라 손짓한다. 그에 꾸벅 인사를 건네곤 곧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와 출입문이 닫히는 걸 보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형?
“무슨 일 있어요?”
-…….
일이 있냔 물음에 좀처럼 김세현이 대답하지 않는다. 걱정이 밀려들어 재차 물어보았다.
“방금 대서삼거리 쪽 상황 전달받았어요. 블랙 옥토퍼스 때문에 무슨 문제 생긴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인지라 일이 생길 확률은 극히 낮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침묵하는 이에 재차 물어보는데,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형, 나 지금 걱정한 거예요? 걱정한 거 맞죠?
“당연하죠! 혹시 어디 다쳤어요?”
매번 일이 마치면 득달같이 달려오는 사람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서 갑자기 일이 생겨 늦을 것 같다고 한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걱정될 터였다.
-형이 걱정해 준다니까 기분 좋다. 근데 걱정 안 해도 돼요. 몬스터 잡다가 체액을 뒤집어쓴 바람에 씻고 가려고 집에 온 거뿐이니까.
“아….”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큰일이 있었던 게 아니란 걸 확인해서일까, 마음이 놓이는 한편 혼자 호들갑을 떨었단 생각에 민망함이 샘솟았다.
-얼른 씻고 갈 테니까 걱정 그만하….
다정함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하던 그가 갑자기 말하다 말고 침묵한다. 이동을 하는 중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와중에 수화기 너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계셨군요. 찾았습니다.
-내가 분명 멋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혹여 소리가 들어갈까 걱정되었는지 핸드폰을 손으로 가린 듯 김세현의 목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하지만 건너편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 건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
평소 김세현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내게 지금 대화를 들려주는 게 곤란하단 말과도 같았다. 전화를 끊으려던 나는 다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멈칫했다.
-문이 없다면 그러겠지만, 떡하니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오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고저 없는 남자의 목소리, 게다가 묘하게 고압적인 말투까지….
분명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었는지 고민하던 와중에, 뇌리를 스치는 어느 날의 광경이 있었다. 나는 절로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