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06)화 (206/246)

203화

24. 뜻밖의 상황

“부탁드릴게요.”

“형이 말하는데 당연히 가야죠. 근데 부팀장은 언제 와요? 부팀장이 와야 내가 가든지 말든지 할 텐데….”

평소 묻지 않던 걸 물으니 의아할 따름이다. 김세현을 보는데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팀장이 와야 내가 자릴 뜨죠. 누구 좋으라고 형만 여기 두고 가요.”

“아.”

김세현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강승빈이 있는 자리였다. 잠시 강승빈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마주치면 예의 그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을 것만 같았으니까.

-바로 사무실에서 튀어나왔으면 헌터부 출입 금지하려고 했는데, 머린 좀 있네.

한창 전투 중이던 팀장이 중간중간 텀을 두며 말하는데, 아무리 봐도 김세현의 선택이 몹시 마음에 든 듯했다.

정작 그 말을 들은 김세현은 한쪽 입가를 비스듬하게 틀어 올렸지만 말이다.

“금지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

당당한 말투도 말투지만 출입을 막는다고 오지 못할 사람은 아니긴 했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데 강승빈을 보던 김세현이 웃는 낯으로 다시 눈을 마주해 왔다.

“형, 얼른 나가서 부팀장 데리고 와요. 안 온다고 하면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오고.”

“…그럴게요.”

굳이 멱살을 잡지 않아도 내가 찾아갔단 이유 하나만으로 신속히 자리로 복귀할 사람이 바로 부팀장이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네트워크 기계를 챙겨 착용하곤 사무실을 나섰다.

가장 먼저 그를 찾은 곳은 화장실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옥상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

가서 쉬라고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 찾아가는 게 미안했지만, 부팀장이 오지 않는다면 김세현이 자리를 뜰 것 같지 않았다. 빠르게 발을 놀려 옥상 문 앞에 당도한 나는 크게 심호흡하곤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부팀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라면 밖에서 누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건지 부팀장은 때마침 옥상 문 쪽으로 오고 있었던 듯했다. 떼었던 발을 내디딘 부팀장의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내 귓가를 응시하며 물어왔다. 나는 조금 전까지의 상황과 더불어 김세현이 현장에 다녀오기로 했단 걸 전달했다.

“바로 내려갑시다.”

“네.”

-얼른 내려와! 분하지만 잉여 한시라도 빨리 와야 할 거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대답하려는데 나보다 먼저 부팀장이 답했다. 순간 멈칫하던 나는 어째서 그가 대답할 수 있었던 건지 깨달았다.

항상 사무실을 지키고 있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부팀장 또한 헌터란 사실을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네트워크 기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서는 자연스럽게 답하진 못했을 것이었다.

역시 헌터는 헌터라 생각하며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니 김세현은 이미 복도로 나와 출입문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형, 다녀올게요.”

눈이 마주친 그가 사무실을 나오며 인사를 건넨다. 부팀장이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손짓하나 나는 고갤 끄덕였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시고요.”

“물론이죠! 사실, 조심할 것도 없지만요. 그래도 형이 걱정해 주니 조심, 또 조심할게요. 그래요, 기왕 조심하는 거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다치고 돌아오면 되죠?”

저리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걸 마주하자니 조심하겠다는 뜻으로 말을 한 게 아니라 정말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않고 돌아올 기세다.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도 나쁜 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면…. 더 좋고요.”

“좋아요, 그럼 얼른 다녀올게요. 오면 마저 보던 사진 같이 봐요.”

중간중간 김세현의 셀카가 있는 터라 괜히 끌린다. 그렇다고 냉큼 답하기도 뭐했기에 그저 얼버무리듯 고갤 끄덕였다.

“시간 나면요.”

그러자 김세현이 피식 웃더니 곧바로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아직 던전 상황이 진행 중임을 상기하며 재빨리 사무실로 들어섰다. 자리로 가 앉자 부팀장이 바로 내게 말했다.

“현재 대피소 상황 CCTV로 보여 주십시오.”

“네, 바로 띄우겠습니다!”

Z-6 구역 내에 있는 모든 대피소 화면을 띄우자 거리를 좁혀온 부팀장이 하나씩 살폈다. 그러다가 몇 개 화면을 고르는 모습에, 곧바로 그가 짚는 화면을 크게 띄우며 좀 더 살피기 용이하도록 도왔다.

“현재 팀원들이 머무는 대피소는 어디 어딥니까.”

“몬스터가 있는 방향 쪽 대피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쉬며 블랙 옥토퍼스가 있는 근방의 대피소를 하나하나 짚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주변에 있는 제5, 7, 8, 10, 13, 17 대피소입니다.”

-연 주무관, 잉여 출발했지?

“네. 곧 도착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동 속도가 워낙 빠른 터라 어쩌면 지금쯤 현장을 목전에 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블랙 옥토퍼스들이 날뛰고 있는 모습을 담는 화면을 살피던 와중이었다. 몇몇 카메라들의 작동이 연이어 멈추는 듯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이 보이는 방향을 비추는 카메라가 전부 꺼지고 말았다.

“현재 몬스터가 있는 방향을 비추는 모든 카메라가 꺼졌습니다!”

-막 잉여 도착했다!

소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팀장 또한 김세현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전해 왔다. 나는 반색하며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피소 방향을 주시하도록 합시다.”

“네!”

김세현이 현장에 도착했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이 클리어됨을 의미했다. 그간 김세현의 가공할 만한 힘을 본 터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과연 언제쯤 던전 클리어 소식이 전해질지를 기대하며 네트워크 소리에 집중한 채 부팀장의 지시대로 대피소 방향을 계속해서 살폈다.

-야, 거기 잡아!

그때였다. 난데없이 팀장이 무언가를 붙잡으라고 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하는데 서강민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제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닙…. 윽! 도, 련니….

-쟨 갑자기 왜 저렇게 날뛰어! 야, 김세현!

무언가 큰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서강민이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뿐이랴, 팀장 또한 몹시 당황한 듯 다른 때처럼 잉여라 부르지 않고 김세현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고 있었다.

-팀장님, 무슨 상황입니까?

-잉여가 무슨 짓…. 헉!

상황이 궁금한 건 비단 사무실만이 아닌 듯했다. 팀장에게 상황을 묻던 박 주무관이 돌연 숨을 들이켜는 소리에 놀라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지만 나보단 현장에 있는 이들의 반응이 더 빨랐다.

-박 주무관, 거기선 뭐 보여?

-그게 말이죠….

무슨 이유에선지 대답하는 박 주무관의 답변이 영 시원하지 않다.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박 주무관은 침묵할 뿐이었다. 결국 대답을 기다리기보다는 찾아보잔 생각에 작동 중인 CCTV를 이용해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했다.

박 주무관의 반응을 보면 대피소 근방에서 일이 생겼다는 뜻과도 같았다. 계속 주변을 탐색하면서도 팀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데, 다시금 큰 소리가 들려왔다.

“…….”

이 순간 부화한 옥토퍼스의 새끼들이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옥토퍼스 새끼들이 슬슬 성체가 되었을 거란 생각에 입 안이 바짝 말라왔다.

지금 던전에서 날뛰고 있는 옥토퍼스들은 조만간 등급을 조정받아 A급으로 상향될 몬스터였다. 부화 전 많은 수의 알을 제거했다고는 하지만 부화한 새끼들이 워낙 많았던 만큼 성체가 되었을 옥토퍼스의 숫자도 상당할 터였다.

“후우.”

옥토퍼스들을 생각하면 절로 긴장되었지만, 현재 현장에는 김세현이 있었다. 그래, 그가 있으니 상황은 빠르게 마무리될 터였다. 두 손을 모아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소식이 전달되길 기다리던 나는 좀처럼 클리어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다시금 긴장감이 솟구쳤다.

“…….”

조금 전 김세현이 날뛴다는 팀장의 말을 전해들은 상황이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긴 했지만 어쩌면 던전 클리어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되도록 빠르게, 그리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상황이 종료되었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소식이 한시라도 빨리 전해지길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는 한참만에야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하아.”

던전 클리어 소식이 좀처럼 전달되지 않아 다른 문제가 생겼나 긴장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중 팀장이 날 불렀다.

-연 주무관.

“네, 팀장님.”

-혹시 잉여한테 뭐라고 한 거 있어?

“그냥, 조심히 잘 다녀오라곤 했었어요.”

-그래? …그럼 왜 저러지?

웬만한 일 갖고는 팀장이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 터였다. 혹여 내가 놓치는 게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세현이 나가기 전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며 입을 뗐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옥토퍼스를 사냥하다가 갑자기 불같이 성을 내잖아. 머리카락이 어쩌고 하던데, 뭐 기억나는 거 있어?

아….

팀장의 말을 들으니 바로 떠올랐다. 머리카락 한 올도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다던 말 말이다. 내 침묵이 길어져서일까, 팀장은 기다림을 멈추고 다시 현장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가 침묵한 건지 짐작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