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05)화 (205/246)

202화

24. 뜻밖의 상황

- 그건 네 기준이고!

“형이 이렇게 쳐다보는 데 가만히 있긴 좀 그렇고…. 이따가 산책 좀 하고 올게요. 괜찮죠?”

하지만 그 괴리감도 잠시였다. 팀장의 일갈에 더하여 김세현이 거론한 산책이란 단어가 내 정신을 일깨웠다. 나는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원래 영웅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잖아요? 거기다, 멋대로 굴기도 좀 그렇고….”

“아.”

멋대로 군단 말을 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그 날 일이 떠올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스웠지만, 김세현이 나에게 했던 말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풀어진 입가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 정말 가요?”

“네.”

성체 옥토퍼스가 있는 곳도 알이 한 무더기 있다고 했다. 거기다 옥상에서 부화한 옥토퍼스 개체 역시 많았고. 완전히 성체가 되기 전 저것들을 없애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긴 싫었으나 어쩌면 D-15 구역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매번 그의 도움을 받는 게 미안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 거, 잘 보이고 싶으면 미리 오지? 여기 상황 진짜 안 좋아!

“형, 산책하러 가는 김에 나한테 뭐 부탁할 건 없어요? 형이 하늘의 해를 따다 달라고 하면 바로 따 올 수 있는데.”

별을 딴다는 말을 들어봤지만, 해를 따 온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스웠지만,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걸 보니 여기서 말을 잘못 꺼낸다면 정말 태양을 짊어지고 올 것만 같았다. 나는 곧바로 고갤 저었다.

“산책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날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미 많은 걸 했는데, 여기서 뭔갈 부탁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내 이런 마음이 제대로 전달된 걸까, 김세현이 날 뚫어져라 보다가 이내 웃어 버린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웃을 때면 왜 이리 사람이 멋진지 모르겠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반짝이는 듯했다. 올라간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좀 더 위로 올라가려 움직인다. 더하여 평소보다 훨씬 휘어진 눈매 역시 그의 기분이 좋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와중 현장에서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잠시 집을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주먹 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넋을 놓지 않았다는 듯 재빨리 모니터로 시선을 주었다.

- 막 협회 헌터 도착했다! 서강민 씨, 그쪽으로 헌터 둘 보냈어!

- 예!

- 대피소 쪽으로 가지 못하게 무조건 막아!

- 알겠습니다!

“…….”

다들 저렇게 열심히들 하고 있는데, 혼자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오늘만 해도 벌써 여러 번이었다. 정신을 차릴 때마다 집중하자고 하면서 왜 자꾸 혼을 빼놓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따지고 보면 집중한 건 맞았다. …현장이 아니라 김세현에게 말이다.

보고 또 봐도 자꾸만 시선이 가는 사람이라곤 하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의 모습에 홀려서는 안 됐다. 잠시 딴눈을 팔았단 사실에 자책하며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자 김세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한 그의 반응에 민망함이 차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남아 있는 카메라를 통해 현장을 확인하던 나는 조금 전 보았던 블랙 옥토퍼스 새끼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커진 걸 보곤 기함했다.

“정말 빨리 자라죠?”

“네.”

블랙 옥토퍼스의 성장이 빠르단 말을 좀 전에 듣긴 했지만, 이렇게나 빠른 줄은 몰랐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듣는 것보다 충격이 컸다. 서강민 쪽 상황을 보는데, 어느새 현장에 도착한 지원 헌터들과 그가 새끼 옥토퍼스들을 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열심히 알을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알이 많았으면 사람에게 붙어 공격하는 옥토퍼스 개체가 적어도 열 개체는 넘어 보였다.

더하여 주변에 닿는 것마다 깨고 부수는데, 벌써 저런 위력이 나오는 개체들이 다 자랐을 땐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떨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나는 서강민 쪽을 보다가 아직 사람이 도착하지 않은 옥상 쪽을 확인하곤 곧바로 지원을 요청했다.

“팀장님, 제가 말씀드렸던 카메라 쪽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이쪽으로도 헌터 보내 주셔야 할 거 같아요!”

- 그래야지! 거기, 너! 저기 담당해!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팀장이 곁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협회 헌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치 수족을 부리는 듯한 말투에 놀랐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치 않았다. 팀장의 지시가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 옥토퍼스들이 몰린 곳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순간 멈칫하던 옥토퍼스들이 건물을 부수다 말고 그대로 사람에게 달려든다. 그에 두 사람이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서서는 옥토퍼스들과 대적하기 시작했다.

“아….”

전투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커지는 블랙 옥토퍼스들을 상대하는 헌터들을 보는데, 카메라 너머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다 무척 힘겨워 보였다. 이리저리 달려드는 옥토퍼스를 상대하는 이들을 보던 나는 순간 한 사람의 얼굴로 달려드는 한 개체를 발견하곤 흠칫했다.

“저런 건 안 보는 게 좋아요.”

김세현이 손을 들어 눈을 가리려 했지만, 나는 그 손을 밀어내며 화면에 집중했다.

“…….”

얼굴로 달려든 새끼 옥토퍼스를 눈치챘는지 그 잠깐 사이에 옥토퍼스의 다리를 잘라 내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에서 벗어난 헌터가였다. 하지만 수로 밀어붙이는 몬스터의 공격을 전부 막는 건 불가능했는지 성인 남성의 상체만큼 자란 옥토퍼스가 몸통 박치기로 가슴팍을 타격했다. 명치를 세게 맞은 터라 타격이 상당했는지 순간 휘청였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잡은 그는 곧바로 자신을 공격한 옥토퍼스를 향해 손을 내질렀다.

전투 중에도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옥토퍼스인지라 혹여 제대로 타격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의 손이 닿은 옥토퍼스는 구겨진 종이처럼 맥없이 날아가 옥상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저 옥토퍼스 한 개체가 나가떨어진 것이었지만, 이보다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계속해서 상황을 지켜보는데 계속 보고 있자니 현장에 나간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저것들을 발견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전투가 진행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아니, 벌어졌다고 한들 지금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 중간중간 딴짓하던 행동이 후회된다. 앞으론 한눈팔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겠다 다짐하며 상황을 지켜볼 때였다. 나는 순간 급변하는 상황에 눈이 커졌다.

“맙소사….”

“형도 눈치챘어요?”

저걸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조금 전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커지는 블랙 옥토퍼스도, 그런 옥토퍼스를 상대하는 게 버거워하는 헌터도 잘 보였다.

“새끼긴 해도 옥토퍼스 몸이 좀 그래요. 미끈거리고 점성력이 있는 액체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중간한 능력을 지닌 헌터들은 상대하기가 매우 곤란하죠. 웬만한 A급 헌터라면 어떤 곳을 노려야 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아주 서투네요.”

“그런가요?”

내 눈엔 서툶보다는 무자비한 블랙 옥토퍼스로 인해 고전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김세현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전투 중인 헌터가 걱정되었다. 심각하게 상황을 지켜보는데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나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으로 끝낼 수 있지만, 저놈은 애 좀 먹겠어요.”

“…….”

같은 협회 소속임에도 가차 없는 평가를 한다. 슬쩍 옆을 보자 김세현은 이미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하여간 협회 놈들은 번지르르한 외양만 내세울 줄 알지, 내실을 쌓을 줄을 모른다니까요? 그런 거 보면 정부 쪽이 아주 조금은 나아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 지금 조용하다고 해서 아무도 네 말 안 듣고 있는 줄 알아? 다 듣고 있, 어!

몬스터와 대적 중이던 팀장이 김세현에게 따끔하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김세현은 그에 아랑곳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간 저런 놈이 현장에 나온 거 보면 이번에 현장으로 나간 놈들은 전부 뜨내기겠네요. 마치 상황이 힘들어지면 누가 움직일 걸 예상한 것처럼 말이죠. …안 그래?”

내게 말을 하던 김세현이 돌연 창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뭔가 싶어 그쪽을 보았던 나는 강승빈이 이쪽을 보고 있단 걸 인지했다.

“뭐가 되었든 간에 김세현 씨는 협회 소속이니까요.”

“그런 것부터 계산하니까 문제지.”

“명성을 쌓을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요. 그건 협회뿐만이 아니라 이곳, 정부도 마찬가지죠.”

“…….”

정부를 거론하면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는데, 반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은 공치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순간 떠오른 이영진 의원의 얼굴에 주먹을 말아쥘 때였다.

- 서승빈 씨, 그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

- 옥토퍼스 개체 수에 비해 헌터 수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이젠 몸집도 커져 건물에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 팀장님, 저도 현장으로 갈까요?

대피소를 지키고 있는 게 그랬는지 한 주무관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의견은 바로 묵살되었다.

- 됐어! 좀 있으면 B급 헌터 온다니 그때까지 버티면 돼! 게다가 계약직 헌터들도 슬슬 현장에 도착할 때 되었고!

- 옥토퍼스 수가 늘어난 만큼 구역 내의 건물들이 상당한 피해를 볼 거 같습니다!

옥토퍼스가 성장할수록 상황은 급격히 불리해졌다. 카메라로 지켜보던 곳의 옥토퍼스들은 이미 성인 남성만큼 자란 상태였다. 긴장감이 차올라 연신 입술을 혀로 적시던 나는 자연스레 옆을 바라보았다.

“나 이제 가요?”

눈이 마주친 김세현이 곧바로 눈을 휘며 묻는다. 아무래도 내가 그를 보기 전부터 김세현은 날 보고 있었던 듯했다. 조용히 내 대답을 기다리는 이에 나는 곧바로 고갤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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