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02)화 (202/246)

199화

24. 뜻밖의 상황

팀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계속해서 현장을 체크할 때였다. 창동 중학교와 대서삼거리 사이의 한 건물 옥상에 이상한 게 있단 걸 발견했다.

“부팀장님, 이것 좀 봐 주세요.”

“뭐 발견했….”

내 부탁에 곧바로 모니터를 확인한 부팀장이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놀라 그를 살피자 반쯤 입을 벌린 채 화면을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와 입꼬리를 보니 어지간히 놀란 듯했다. 나는 재차 모니터를 살폈다가 부팀장을 다시금 불렀다.

“부팀장님?”

하지만 부팀장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멍하니 모니터만 보고 있는 이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다른 곳에서 반응이 왔다.

“놀랄 만도 해요.”

대답을 한 건 김세현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에 나는 화면을 가리켰다.

“저게 뭔데 부팀장님이 이러시는 거예요?”

내가 발견한 것은 꼬마빌딩 옥상에 있는 검은 물체였다. 기다란 포도송이 알맹이처럼 길쭉한 것들이 있는데, 조경을 위해 일부러 둥그렇게 심어 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완벽한 원 형태로 펼쳐져 있었다. 만에 하나 모양만 보고 찾으라 했다면 지나쳤을지도 몰랐지만, 내가 저걸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불규칙하게 빛 반사가 되어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혹여 잘못 본 것이라면 부팀장이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거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저 거먼 물체를 뚫어져라 볼 때였다. 이번에도 부팀장이 아닌 김세현이 반응했다.

“저거 블랙 옥토퍼스 알이에요.”

- 뭐?

- 무슨 알?

알이라고?

던전에서 몬스터가 생성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몬스터가 알을 낳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보자 김세현이 이어 설명했다.

“옥토퍼스가 산란하면 그 알이 부화하는 데까지 시간이 무척 짧아요.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더욱 짧아지죠.”

말을 하다 멈춘 김세현이 턱을 만지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무래도 시간을 헤아려 보는 듯했다. 잠자코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금 눈을 마주해 온 김세현이 손가락 두 갤 펼쳐 보였다.

“언제 산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블랙 옥토퍼스라면 산란 후 20분 안에 부화할 거예요. 제보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도 있었을 테고 하니 아마도….”

한 박자 말을 쉰 김세현이 싱긋 웃으며 중지를 접었다. 꼿꼿하게 서 있는 검지의 모습에 나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마 10분 안으로 부화하겠네요.”

- 빌어먹을!

- 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일단 서강민 씨가 블랙 옥토퍼스 맡도록 해! 나는 알 처리하는 데 집중할 테니까!

- 알겠습니다!

설마 알 처리도 A급 헌터의 손이 필요한 걸까? 아니지, 아직 다른 주무관들이 현장에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피치 못하게 찢어져 움직이는 것일 터였다. 아마 알 처리를 한 팀장이 서강민 쪽으로 합류할 것으로 예상하던 나는 이어진 말에 당황했다.

- 서강민 씨는 블랙 옥토퍼스 잡으면 곧바로 이쪽으로 와!

“아….”

블랙 옥토퍼스의 처리가 더 힘들 줄 알았는데, 알 처리가 더 힘들 줄이야…. 내가 생각하던 것관 정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눈을 끔벅이는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가 웃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는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집어넣으며 옆자리를 흘겨봤다.

“그렇게 보지 마요. 귀여우니까.”

그간 김세현이 꺼냈던 허무맹랑한 소리 중에서도 단연 톱일 듯했다. 옥토퍼스가 산란했다는 소리보다 더 식겁할 말을 하다니. 그것도 팀원들 모두가 듣고 있는데 말이다.

- …거기, 사무실에 있는 잉여 놈은 좀 조용히 하지?

- 나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긴장 풀렸어.

- 진짜 말을 말자, 말아.

“…….”

긴 시간 함께한 팀원들이야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새로 온 팀원들이었다. 하지만 김세현은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모니터에 띄워놓은 화면 중 하날 가리키는 그에 나는 잡생각을 날려 보내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형, 이거 한번 확대해 봐요.”

“그럴게요.”

이전에도 김세현이 이런 식으로 무언갈 발견했던 적이 있었다. 곧바로 그가 말한 화면 크기를 키운 나는 뒤이어 주변 CCTV를 전부 보여 달란 말에 계속해서 주변 화면을 띄웠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요?”

“이즈음 어딘가일 텐데….”

뭘 보고 있는지 알려준다면 같이 찾을 텐데 혼잣말만 중얼거리니 답답하다. 나는 그가 유심히 살피는 건물 쪽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뭐가요?”

“알이요.”

“알은 방금 보셨잖아요.”

이미 알이 있는 위치를 파악했는데, 어째서 다시 알을 거론하는 건지 모르겠다. 의미모를 시선으로 김세현을 바라보자 그는 날 한 번 보았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주며 말을 이어 갔다.

“한곳에만 알을 낳으면 좋겠지만, 블랙 옥토퍼스는 여기저기 알을 낳아요.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다른 산란터를 찾는 거라고 짐작했을 텐데, 저렇게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을 제법 낳았다는 소리죠.”

방금 발견한 알들이 끝이 아닐 거라니. 순간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에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나 상당량의 알이 부화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던전 난이도가 쭉 상승하겠죠? 부화한 옥토퍼스는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성체가 되니까요. 더군다나 블랙 옥토퍼스는 부화한 그 순간부터 성체보단 좀 떨어져도 능력치가 제법 되거든요. 속도도 빨라서 처리하기 좀 곤란하죠.”

“아….”

던전이 생성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여기저기 알을 낳다 못해 그 알이 부화했을 시 성장 속도도 빠르다니…. 상식 밖의 상황에 쉬이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아야만 했다. 나는 곧바로 부팀장을 불렀다.

“부팀장님!”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좀처럼 반응이 없다. 오히려 부를수록 상태가 나빠지는 상황에 나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어디 편찮으세요?”

그 잠깐 사이에 이렇게나 식은땀을 많이 흘릴 줄은 몰랐다. 여기서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곧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려던 말을 삼키곤 다른 말을 꺼냈다.

“부팀장님,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잠깐 쉬다 오세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기 때문일까, 눈이 커졌던 부팀장이 이윽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게 맞나 보다. 자리서 일어나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걸 지켜본 나는 긴장감을 끌어 올리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웠다.

“전달 사항 있으면 뭐든 하세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 역시 연 주무관이야!

- 연 주무관에겐 사무실 맡길 수 있지!

혹여 내 독단적으로 던전 상황이 진행되는 와중 부팀장을 쉬게 한 상황에 대해 말이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팀원들은 내게 용기를 북돋워 줬다. 그 덕분에 한결 긴장이 덜어진 나는 이어진 질문에 바로 답했다.

- 부팀장님 상태는 좀 괜찮고?

“식은땀을 많이 흘리시더라고요. 좀 쉬셔야 할 거 같아요.”

상태를 전하자 네트워크 너머에서 앓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잠자코 CCTV 현황을 살피며 팀원들이 건넬 말을 기다리던 때였다.

- 연 주무관.

“네, 팀장님.”

- 잘했어. 역시 우리 팀엔 연 주무관이 딱이야.

“…네!”

- 칭찬은 여기까지 하고. 부팀장 컴퓨터 보면 아직 사이트에 협조문 올리지 않은 게 보일 거야. A급 헌터 서넛, B급 헌터 열 명 정도 해서 현장으로 보내 달라고 보내. 그리고 시청에도 연락 넣어서 계약직 헌터들 확인해서 급파하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곧바로 의자를 굴려 부팀장 자리로 간 나는 팀장이 말한 대로 숫자를 기입한 뒤 그대로 협조문을 전송했다. 상대가 수령하길 기다리고 있단 표시를 지켜보던 나는 얼마 안 가 협회에서 수령했단 표시가 뜬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시청으로 연락을 넣어 바로 현장에 합류 가능한 헌터들을 Z-6구역으로 보내 달라 요청했다. 시청 측과의 연락을 마친 뒤 그 사실을 전달했다.

“막 협회에서 협조문을 확인했습니다! 시청에 있는 헌터는 현재 B급 헌터 한 명과 C급 헌터 세 명이 있다고 합니다. 현장으로 급파할 수 있도록 전달했습니다!”

- 좋아, 그럼 우린 이대로 상황 이어 가도록 하지!

- 예!

- 연 주무관은 현장 지켜보면서 중계기 쪽도 계속 신경 쓰도록 해! 혹시 구조 요청이 들어온다거나 이송 요청이 들어오면 즉각 알리고!

“네!”

중계기 쪽을 다루는 건 아직 서툴렀지만, 그 정도 체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 현장을 둘러보고 또 중계기를 살폈다.

“하늘 형, CCTV는 내가 좀 봐 줄까요?”

“괜찮아요. 같이 보다가 혹시라도 제가 놓치는 알이나 몬스터를 발견하면 알려 주세요.”

김세현이 도와주려는 건 고마웠다. 하지만, 그에게 일을 떠넘기고 싶진 않았다. 이미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을뿐더러 일할 사람은 사무실에 또 있었으니까. 슬쩍 강승빈 쪽을 보자 그는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을 보고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당황하던 나는 고민하다가 그를 불렀다.

“강승빈 씨.”

“예, 연 주무관님.”

“상황이 궁금하시면 이쪽으로 오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여기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

“…그러시다면야.”

고개를 끄덕이며 부팀장의 컴퓨터를 확인한 나는 때마침 협회 헌터들이 출발했단 알람이 뜨자 곧바로 그 사실을 팀원들에게 알렸다.

- 오, 타이밍 괜찮은데? 나랑 서강민 씨도 막 현장 도착했어! 서강민 씨는 이대로 블랙 옥토퍼스 쪽으로 가도록 하고! 연 주무관, 몬스터 위치는?

“현재도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곧바로 블랙 옥토퍼스 및 알 위치 전송하겠습니다!”

- 확인했습니다. 바로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 나도 확인!

위치를 전달받은 두 사람이 각자 맡기로 한 곳을 향해 이동하는 듯 네트워크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세기가 더욱 강해졌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계속해서 김세현이 말한 현장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옥토퍼스의 또 다른 알 군집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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