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01)화 (201/246)

198화

24. 뜻밖의 상황

“뭐 할 말 있어요?”

내 시선을 느꼈는지 태블릿을 보던 김세현이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들었다. 푸른 눈동자가 날 직시하는 상황에 나는 어색하게 입가를 끌어 올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치를 보느라 조심하는 거냐 묻기엔 좀 그랬다. 내 대답이 너무 싱거웠던 걸까, 말없이 날 보던 김세현이 이내 눈가를 잘게 휘었다.

“할 말 있으면 삼키지 말고 해요. 형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 좋으니까.”

“…그럴게요.”

역시 내가 다른 생각 하고 있단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민망함이 차오르는 한편으론 뭐든 좋다는 말에 심장이 가쁘게 뛰기 시작했음이 느껴졌다. 더욱이 그런 날 바라보는 김세현의 눈가가 예쁘게 접히는데, 타이밍이 절묘해도 너무 절묘했다. 설마 심장 박동까지 들을까 싶었지만, 굳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만 이랬다면 한 번 민망하고 말았을 텐데 김세현 앞에서 심장이 팔딱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괜스레 헛기침하며 마저 작업을 이어 갈 때였다.

한동안 울리지 않아 잠시 잊고 있었던 긴급 전화벨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Rrrr- Rrrr-

“하.”

“어쩐지 요새 조용하다 싶었지.”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세 번째 벨이 울리기 전 수화기를 든 김 주무관이 재빠르게 말을 꺼냈다.

“서울특별시 헌터붑니다.”

D-15구역에 연달아 두 차례 던전이 생성된 이후 처음 울린 전화이기 때문일까, 김 주무관의 목소리엔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감이 묻어났다. 덩달아 긴장하며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Z-6구역이요, 예. 진정하시고 상황을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대방이 어지간히 흥분했나 보다. 상대를 다독이며 대화를 이어 간 김 주무관이 전달할 정보가 있었는지 이쪽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Z-6구역에 머리통만 해도 2층 정도 크기를 가진 문어 형태의 몬스터가 출몰했단 말씀이시죠?”

“색깔은?”

김 주무관의 말을 들은 팀장이 바로 물어보았다. 자연스럽게 색깔을 물어본 김 주무관이 순간 멈칫했다.

“블랙이라고요?”

“다들 준비해! 서강민 씨는 나랑 같이 던전 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던전 경계 면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강승빈 씨는 다 나을 때까진 사무실에서 대기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검은색이란 말에 팀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재빨리 지시를 내린다. 서강민도 덩달아 일어나자 다른 이들 역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을 빠르게 둘러본 팀장이 이번엔 내게 지시를 내렸다.

“김 주무관 통화 끝나면 정확한 내용 네트워크로 전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 주무관은.”

“재난 문자는 제가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상황이 긴박한 듯했다. 부팀장이 재난 문자를 대신 보내겠다고 하자 고갤 끄덕인 팀장이 먼저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나머지 팀원들이 출입문으로 향했다.

“…….”

몬스터 색이 거론된 직후 긴박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빠르게 중계기와 네트워크를 작동시키곤 자리로 돌아왔다. 이어 교통센터 CCTV를 켠 나는 Z-6 구역을 훑어보았다.

“정확히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예, 감사합니다! 신고자분도 어서 근처 대피소로 몸을 피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평소완 달리 통화 시간이 길어진다 싶었는데, 경찰서나 소방서 쪽을 통해 연락이 온 게 아니라 제보자가 직접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 주무관이 부팀장과 날 바라보았다. 사뭇 긴장된 표정에 덩달아 긴장되었지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에게 말했다.

“네트워크 막 켰습니다!”

“땡큐! 팀장님, 지금 Z-6구역의 창동 중학교와 초등학교 근방에 블랙 옥토퍼스가 한 개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신고자분이 너무 흥분하셔서 자세한 내용을 듣긴 어려웠지만, 주변에 다른 몬스터 개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창동 중학교와 초등학교 근방이라.

김 주무관의 말을 들은 나는 그 근방 CCTV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직 제보자가 말한 그 근처에서 검은색의 커다란 무언가를 발견했다.

“…….”

둥그런 형체가 일정 간격마다 들썩이는데, 단지 그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문어 형 몬스터 곁에는 비슷한 크기의 버스가 한 대 세워져 있었으니까. 순간 차오르는 긴장감에 입 안이 버석하게 메말라 붙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곤 곧바로 상황을 알렸다.

“몬스터 확인했습니다! 현재 제보받은 위치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어와 비슷한 외양이라면 다리가 보여야 할 텐데 화면엔 둥그런 모습만 잡힐 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다른 방향의 카메라도 확인해 보았지만, 그 각도에서도 모습은 비슷했다. 나는 확인된 몬스터의 모습을 곧바로 전달했다.

“카메라로 계속 살펴보는 중인데, 아무래도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혹시 모르니 다른 곳도 둘러봐!

“네!”

팀장의 지시에 답하며 Z-6구역 곳곳에 있는 CCTV들을 띄워 살피던 나는 블랙 옥토퍼스가 있는 곳과 상당히 떨어진 곳의 카메라들이 꺼지고 있단 사실을 알아챘다.

“현재 블랙 옥토퍼스를 중심으로 북서 방향으로 약 1km가량 떨어진 곳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CCTV가 동쪽을 향해 계속해서 꺼지는 중인데, 근처 카메라로 둘러봐도 화면에 특별한 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간 CCTV 화면이 꺼질 때면 그 장소에 몬스터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전혀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요목조목 뜯어봤지만,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확히 위치가 어딥니까.”

부팀장이 다가와 모니터를 보자, 곧바로 지도 화면을 한쪽에 띄웠다.

“루씨 빌딩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될 듯합니다. 빌딩 근처에 대서삼거리가 있고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부팀장이 곧바로 재난 문자를 보낸다. 뒤이어 울린 재난 문자 소리를 들으며 계속해서 현장을 둘러볼 때였다. 혹시 놓치는 곳이 있나 집중해 모니터를 살피던 나는 내 왼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곤 고갤 틀었다.

“세현 씨?”

“같이 좀 보려고요.”

눈이 마주친 김세현이 같이 보겠다며 의자를 끌어 좀 더 다가왔다. 나야 그가 함께 봐준다면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이 앉아 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반짝이는 그의 얼굴을 보니 진정되었던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한다. 나는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김세현과 함께 모니터를 살폈다.

- 연 주무관, 뭐 따로 보이는 거 없나?

“혹시나 해 동쪽의 꺼지지 않은 카메라로 상황이 발생한 쪽을 확인하는 중인데요. …따로 보이는 건 없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속 살피고 있었지만,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내 대답을 들은 팀장이 침음을 삼키는데 박 주무관이 의견을 냈다.

- 혹시 창동 쪽 몬스터가 그 방향으로 흐르는 전기선을 건드린 게 아닐까요?

- 그것도 배제할 순 없지. 부팀장은 그쪽 알아봐 줘!

“알겠습니다.”

- 옥토퍼스면 촉수 공격 조심해야 하죠?

- 블랙 등급이면 위험하지. 지금은 B급이지만 내년에 새로 등급 조정되는 몬스터들 중 하나라고 하니까.

- 다른 말이지만, 인원이 충원되어 좋네요. 함께 사무실에서 출발하니 이동하는 동안 작전도 짤 수 있고 말이죠. 더군다나 계약직분들에겐 네트워크 기계가 지급되지 않아 의사소통하는 게 불편했는데, 최근엔 통신 때문에 발이 묶이는 일은 없어 좋네요.

- 그치? 그건 나도 좋더라고.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지 나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말마따나 네트워크 기기 사용은 정규직만 가능했으니까. 더군다나 같은 곳에서 현장으로 함께 이동하는 것도 아닌지라 일각을 다투는 현장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시간을 재차 가져야 한다는 건 큰 부담이었을 테니까.

- 팀장님을 따라 열심히 몬스터를 해치우겠습니다, 하늘 씨!

“…….”

아마 뭔갈 열심히 한다는 티를 내고 싶어서 한 말일 테지만, 타이밍이 너무 뜬금없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는지 순간 사무실도, 그리고 네트워크에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면 서강민이 이런 식으로 맥을 끊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긴 했다. 특히 김세현이 사람을 곤죽으로 만들었던 그날 이후 더 심해진 경향이 있었다. 부담스럽다고 하자 자제하는 듯했는데, 이런 뜬금없는 타이밍에 자신을 어필하다니….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앉아있는데 옆에서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김세현이 곁에 있단 것조차 깜박했다. 나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는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분명 뭐라고 했는데, 중요한 게 아니었는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긴, 그간 혼잣말을 자주 했던 터라 이번에도 그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 나는 다시금 현장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 아직도 보이는 거 없어?

“네, 팀장님.”

- 옥토퍼스 쪽은 어때.

“그쪽도 움직임이 없습니다!”

- 혹시 모르니 협회 쪽으로 협조문 보낼 준비해 둬.

“미리 준비해 뒀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 좋아! 나랑 서강민 씨는 이제 4분 후 도착인데, 다른 쪽은 어때?

- 저희는 15분가량 걸릴 듯합니다! 한 주무관님은 신호등을 먼저 지나셔서 좀 더 일찍 도착할 거 같고요!

- 일단 나랑 서강민 씨는 현장에 도착하는 대로 블랙 옥토퍼스를 처리하고 바로 연 주무관이 발견한 장소로 이동하지! 뒤따라오는 팀원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각 대피소 쪽으로 가서 대기하도록 하자고!

- 예!

둘러보는 곳마다 멀쩡한 거리의 모습뿐이라 어쩌면 조금 전 본 몬스터 한 개체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꺼진 게 영 마음에 걸렸다. 부디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만은 아니길 바라며 나는 카메라가 꺼진 곳을 중심으로 좀 더 넓게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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