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200)화 (200/246)

197화

24. 뜻밖의 상황

시간이 흘러 이윽고 조회 시간이 되었다.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곧바로 메모할 준비를 마쳤다.

“다들 어제 고생 많았어. 그리고, 내가 어제 오후 시청에 갔던 이유 다들 궁금할 테지?”

“예!”

“가 보니 문제가 있어 부른 건 아니더라. 그냥 주기적으로 부르는 거였고. 거기서 퇴근할 수밖에 없었던 건 윗분들이 궁금증을 해소해드리느라 그렇게 됐어. 의외로 세계헌터협회에 관한 관심들이 많아서 말이야.”

“휴, 갑자기 연락이 왔다고 해서 긴장했습니다!”

“나도 제법 긴장했지.”

팀장이 불려 가거나 시청에서 연락이 올 때면 항상 일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도 당연히 그 연장선일 줄 알았다. 다행이란 생각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박 주무관이 손을 들었다.

“혹시 다른 말이 오간 게 있는데 저희한테 감추고 그런 건 아니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박 주무관의 말을 들은 팀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박 주무관이 아닌 김 주무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항상 안 좋은 소린 혼자 감내하잖습니까. 혼자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같이 나누는 것도 방법입니다, 팀장님.”

“어젠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니까 그러네? 궁금하면 시청으로 직접 연락해 보든가!”

“오, 그거 좋겠네요! 저 이따가 막간을 이용해서 시청에 있는 지인한테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거 좋지!”

핑퐁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김 주무관과 팀장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어린다. 저 모습을 보니 시청에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듯했다. 물론, 처음 물어본 건 진심으로 한 말이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나는 이랬고. 듣자 하니 퇴근길이 제법 소란스러웠다는데, 다들 어디 말 옮기거나 하진 않았겠지? 다들 알다시피 그놈 성격이 워낙 개차반 같아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도록 해. 놈이 비뚤어지면 감당 못 해.”

“예!”

“그리고 상황을 보니 앞으로 놈이 자주 여기 올 거야. 새로 온 팀원들은 걔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기억해 봤자 본인만 힘들어.”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슬쩍 새 팀원들을 살피는데, 서강민의 얼굴엔 묘한 기대감이 어려 있었고, 강승빈은 여느 때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남은 세 사람은 다소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

혹시 내게 시선을 주거나 하진 않을까 기다렸지만, 그들은 역시나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배제하고 있다는 듯 말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괜히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같은 공간 안의 이들에게 외면받는다면 의기소침해지는 건 당연했다. 나는 팀장의 말하는 일과 내용을 받아 적으며 작게 숨을 들이켰다 뱉었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부터 알고 싶었다. 질투하는 거라던 부팀장의 말이 있었지만, 질투라고 보기엔 뭔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

그렇다고 저들에게 가서 왜 그러는 건지 물어보는 것도 좀 그랬다. 그래,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어째서 그런 반응인 건지 알 수는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저리 날 피하기 급급한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 봤자 정말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을진 장담하기 어려웠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만큼 이런 불편한 관계가 어서 개선되어야 할 텐데….

계속 이런 식이라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래, 저쪽에서 먼저 다가올 생각이 없다면 이쪽에서 움직인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조만간 행동을 개시해야겠다 여기며 나는 이어진 조회에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

신경 쓰인다. 그것도 몹시.

나는 자꾸만 옆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붙잡았다.

이렇게 옆이 신경 쓰이는 건 조회가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을 찾은 김세현이 앉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확인하고 싶은 이윤 따로 있었다.

오래간만이라 그런 거라고 치기에도 그랬고, 또 내 눈치를 보느라 그런 거라고 하기도 뭣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너무도 조용한 김세현을 곁눈질했다.

“…….”

다른 날과는 달리 태블릿 하나를 챙겨 와서는 계속해서 그걸 보는데, 몸을 완전히 뒤로 젖힌 채 들고 있어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몰래 훔쳐보려 기지개를 켜는 척 할 수도 없고 말이다.

김세현이 신경 쓰여 연신 힐끔거리는데, 그런 내게 먼저 시선을 준 건 김세현이 아닌 팀장이었다. 그것도 김세현을 몰래 훔쳐보던 참에 말이다.

눈이 마주친 팀장이 묘한 시선을 보내오더니 어서 일하라는 듯 모니터 쪽으로 턱짓한다. 그에 나는 자세를 바로 해 앉았다. 하지만 그런 집중도 잠시일 뿐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흐트러진 정신에 나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혹시 커피 드실 분 계세요?”

“나!”

“나도 부탁해.”

“저는 율무차로 부탁합니다.”

김 주무관과 한 주무관, 그리고 부팀장이 내 말에 반응했다. 하지만 다른 때라면 그 누구보다 먼저 반응을 보일 김세현 쪽은 너무도 조용했다. 나는 내게 부탁한 팀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김세현에게 말을 걸었다.

“세현 씨.”

“네, 형.”

“커피 드시겠어요?”

“당연하죠!”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인 김세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히 개인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활짝 웃는데 저 모습을 보니 다른 문젠 없어 보였다. 조금은 안도하며 한 번 끄덕이고는 곧바로 정수기로 향했다.

“하아.”

혹여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 나와 약속을 지키느라 자리를 뜨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는데 방금 전 김세현의 태도를 보면 그건 아닌 듯했다. 그저 집중해 볼 것이 있어 그런 거란 생각에 마음이 놓였지만 그간 한 번도 내 곁에서 보인 적 없던 행동을 하고 있단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도대체 뭘 보는 걸까? 그것도 집중한 나머지 내가 곁눈질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

커피를 가지고 가서 슬쩍 물어볼까? 그러면 김세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보여 줄지도 몰랐다. …보여 주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래도 확률이 있어 보이는 만큼 물어보는 정도는 해 봐야겠다. 나는 빠르게 커피를 마저 타 팀원들에게 건네곤 자리로 가 김세현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여기 커피 드세요.”

“고마워요, 형.”

“음…. 그런데 세현 씨.”

“네.”

커피를 건네받으며 웃던 김세현이 내 부름에 즉각 답한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과 마주한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슬쩍 태블릿으로 눈길을 주며 물었다.

“뭐 재미있는 거라도 보고 있어요?”

“아, 이거요? 형도 볼래요?”

내가 고민한 게 무색할 만큼 즉각 답한 김세현이 태블릿을 내민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태블릿 화면을 확인한 나는 절로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인지했다.

“이건….”

“혹시나 해서요.”

“…….”

김세현이 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집 주변에 설치된 CCTV들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영상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데 김세현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CCTV 창을 내리더니 다른 창을 띄우며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켰다.

“이때 기억나요?”

“으음.”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반쯤 얼이 나간 내 대답을 들은 김세현은 이내 크게 띄운 내 사진을 닫고는 사진 파일들이 쫙 나열된 화면을 둘러보다가 이번엔 다른 사진을 띄웠다.

“어제 사진도 남겨 둬야 했는데, 너무 아쉬워요.”

“…….”

“물론, 어제도 사진을 찍긴 했지만! 기왕이면 같이 찍고 싶었는데 말이죠. 이거 봐요. 어제 형 기다리면서 나 혼자 찍은 사진이에요.”

원래도 훤칠했던 이였지만 셀카 사진을 보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수려했다. 화면 속의 김세현이 날 보며 웃는 것 같단 생각에 멍하니 그걸 바라보는데, 김세현이 화면을 넘기며 자기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잘 나왔죠?”

“…네.”

그간 접했던 김세현의 사진은 주로 타인이 찍은 것들이었다. 타인이 찍은 사진도 잘 나왔지만 스스로 찍은 사진도 참 잘 나왔다. 이전에도 확인했지만, 정말 이보다 잘생긴 얼굴은 세상천지에 김세현밖에 갖지 못한 듯했다.

“이건 세계헌터협회 놈들이 왔다고 연회를 열었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사진 찍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형 보여 주려고 기념 삼아 찍었죠.”

“하, 하.”

날 보여 주려 굳이 사진까지 찍었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게 또 싫은 건 아니었다. 마치 내가 말을 걸어 주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김세현은 쉴 새 없이 사진을 보여 주고 또 그 사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좀처럼 말을 끝낼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에 먼저 손을 들었다.

“나머진 좀 이따가 봐도 돼요?”

반절 이상 내 사진을 보여 주는 터라 민망했지만, 중간중간 김세현의 셀카 사진을 보여주니 괜히 그게 탐이 났다. 내가 꺼낸 말이 의외였던 걸까, 커다래진 눈으로 날 보던 김세현이 이내 고갤 주억였다.

“그럼요. 얼른 일해요. 난 형이 타다 준 커피 마시면서 계속 보고 있을 테니까.”

“…네.”

같이 보잔 말 때문에 즉각 물러선 듯했지만, 저리 바로 물러서는 김세현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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