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
벌인 일이 있기에 치우는 게 당연했지만 저렇게 여럿이 와 저만큼 정리했다면 어느 정도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야 마땅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모두가 주차장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악 어린, 혹은 못 볼 꼴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말이다. 저들이 저런 표정을 짓는 건 그럴 만했다. 저들이 입은 옷은 정말….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니까.
가벽에 나와 김세현의 이름 풍선을 붙인 것으론 부족했는지 이쪽으로 오는 이들이 입은 점프 슈트는 핑크빛이었다. 그뿐이랴, 언뜻언뜻 보이는 옷의 앞판엔 내 이니셜과 김세현의 이니셜이 보였고, 그 사이에도 하트가 새겨져 있었다.
분홍색 옷이라 그런지 흰색으로 프린트된 듯한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너무 눈에 띄었다. 심하게 말이다.
저 꼴을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이 미리 자리를 뜬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마 저 모습까지 봤다면 새 팀원들은 나와 더욱 거리를 두려 했을 거다. 내가 그들이었다고 해도 이 꼴까지 봤으면 그랬을 테니까.
함께 레드카펫을 치우던 이들은 주차장으로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무리로 분리되었다. 한 무리는 계속해서 레드카펫을 말고, 다른 한 무리는 가벽 쪽으로 가 그것을 들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김세현이 말을 이었다.
“건물 입구도 청소 잘해서 보낼게요.”
“고마워요, 세현 씨.”
“얼른 가 봐요. 집에 일찍 가야 빨리 쉬죠.”
고맙다는 내 말에 김세현이 한 번 더 싱긋 웃는다. 몹시도 뿌듯해 보이는 그를 보며 고갤 끄덕였다.
“네.”
어느새 레드카펫도 정리가 끝난 터라 오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어서 가 보라는 김세현의 말에 부팀장과 한 주무관 쪽으로 고갤 트는데 두 사람 뒤로 강승빈이 조용히 이쪽을 바라보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
워낙 조용해 그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차라리 목발이라도 짚고 있었다면 눈에 띄기라도 했을 텐데 얼마 전 병원에 다녀온 뒤로 목발 없이 다니고 있어 더 몰랐던 듯했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데 돌연 강승빈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강승빈 씨도 가 봐요.”
“알겠습니다.”
부팀장의 말에 강승빈이 고갤 끄덕이며 다가왔다. 물론, 그의 차가 어디 주차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서 다가온다는 표현이 어폐가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다가온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승빈은 날 뚫어져라 바라보며 가까이 오고 있었으니까.
점차 가까워지는 거리 때문인지 절로 긴장된다. 이윽고 내 앞에 선 강승빈이 날 내려다보았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연 주무관님.”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 대답을 들은 그가 한 번 더 미소 짓더니 이내 내 쪽이 아닌, 본인이 걸어온 방향으로 이동한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계속 지켜보는데, 강승빈이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 바로 옆에 주차된 차에 탔다. 시동이 켜진 차가 잠시 뒤 움직이자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주차장을 나서며 한 번 더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그가 자리를 뜨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한 주무관의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까 그 인사는 뭘까요?”
“의미심장한 행동을 너무 많이 해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군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습니다.”
나만 이상하다고 여기나 싶었는데, 남은 이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로 막 강승빈이 빠져나간 주차장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야 서강민을 맡고 있어 저놈이 얼마나 피곤한 상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 주무관이 툭하면 메시지로 저놈 좀 정신세계가 이상한 것 같다고 토로하더라고요.”
말없이 입구를 바라보던 한 주무관이 몸을 틀어 부팀장과 날 보며 말을 꺼냈다. 그간 김 주무관이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런 내막이 감춰져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이어지는 한 주무관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한데, 어떻게 보면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주 드물게는 협회에 환멸이 나서 정말 마음 바로잡고 여기로 왔나 싶기도 하더랍니다. 계속 옆에서 지켜보는데 계속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속내를 꼭꼭 감추는 모양입니다.”
“흠.”
한 주무관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아리송해지는 것만 같다. 심각하게 부팀장과 한 주무관을 바라보는데 돌연 내 등 뒤에서 김세현이 말을 꺼냈다.
“그래 봤자 협회 개지.”
“개, 요?”
강승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잠시 그가 있다는 걸 잊었다. 황급히 몸을 틀자 김세현의 웃는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강승빈이 헌터부로 온 건 분명히 협회 윗놈들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야 정부 밑으로 들어올 놈이 아니죠.”
“혹시 그와 관련해 아는 거 있습니까?”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짓던 부팀장이 김세현에게 물었다. 하지만 김세현은 누구에게나 같은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나 저놈이랑 안 친해.”
단호한 대답과 함께 심드렁한 얼굴로 부팀장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표정은 평소와 같았지만 묘하게 방금 질문을 불쾌하게 받아들인 느낌이었다. 이번엔 부팀장을 살피는데, 다른 날과는 달리 김세현의 말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긴, 협회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듣긴 했습니다.”
“되도록 형이랑 저놈이랑 단둘이 있게 하지 마. 지금은 저 꼴이라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거뿐일 테니까.”
“그건 김세현 씨가 지적하지 않아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하여간, 협회에 있으니 막내 생각해서라도 저놈 관련한 정보는 좀 공유하지 그래?”
조용히 두 사람을 지켜보던 한 주무관이 끼어들었다.
“여긴 내 정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나 보지?”
“…하?”
하지만 이어진 김세현의 답에 한 주무관의 말문이 막혔다. 그도 그럴 만했다. 김세현의 대답은 웬만한 자신감을 지닌 사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김세현 본인이 가진 정보의 질이 월등하다는 식의 말투에 팀원들이 기가 찬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날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 얼굴이 후끈거릴 지경이었다.
보는 사람은 이렇게 민망한데 당사자는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이미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 그가 입을 열자, 나는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의 감정을 느끼며 김세현을 응시했다.
“하긴.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세계최고헌터니까. 그렇죠, 형?”
“…….”
능력이 되기에 저런 말을 자신 있게 하는 모습이 무척 잘 어울렸다. 하지만 오늘따라 저 말이 과하다고 느껴지는 건 김세현의 표정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자신감이 넘쳐 보였기 때문인 듯싶었다.
“하늘 형?”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데 김세현이 한 번 더 날 부르며 대답을 종용한다. 그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늘 씨, 슬슬 돌아가죠.”
“아, 네.”
부팀장의 말에 김세현을 보자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봐요.”
“…네.”
다른 때 같았다면 좀 더 같이 있겠다고 한다거나 했을 텐데 너무도 담백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낯설다. 유심히 그를 살피는데, 그는 정말 붙잡을 의향이 없는 듯 계속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막내야, 나 이만 가 볼게.”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제 한 주무관도 슬슬 출발하려는 모양이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는 나 역시 부팀장과 함께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얼른 가요.”
괜히 이상해 몇 걸음 옮기다 말고 김세현 쪽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역시나 얼른 가 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알 수 없는 묘한 허전함과 더불어 아쉬운 마음에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차에 오른 나는 곧바로 김세현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기 서 있던 김세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허리를 숙여 대시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앞쪽을 살피는데 갑자기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곧바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갤 돌렸다.
“형.”
“세현 씨?”
차에 탈 때만 하더라도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차에 타서는 잠깐 벨트를 매느라 시선을 떼긴 했지만, 무척 짧은 시간이었던 지라 이렇게 바로 이동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지, 김세현은 S급 헌터이기에 그 시간이라면 충분히 이쪽으로 이동할 수 있을 터였다.
새삼스레 김세현의 실력을 다시 느끼며 그를 보는데, 유리창을 노크하던 자세 그대로 날 보며 웃던 김세현이 손을 흔들며 재차 인사를 건네 왔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전 느끼던 아쉬운 감정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슬며시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덩달아 손을 흔들었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네, 부팀장님.”
김세현이 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고갤 끄덕이며 몸을 바로 하는데 그는 여전히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백미러를 통해 그가 서 있는 곳을 살피다가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완전히 김세현의 모습이 사라지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바로 앉았다.
“내일 온다니 너무 그렇게 아쉬워하지 말아요.”
“많이, 티 났나요?”
“무척.”
딴에는 열심히 감정을 눌러 봤는데, 많이 티가 났던 모양이다. 머쓱한 표정을 짓자 부팀장이 힐끗 날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민망함에 꽃다발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며 품 안의 장미꽃을 바라보았다.
“…….”
날 닮은 꽃을 구하지 못해 자길 닮은 꽃을 준비했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이전에 받았던 꽃들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꽃이 싱싱하고 또 탐스러웠다. 이렇게 붉은 장미꽃을 보고 있자니 어째서 그가 자기 자신을 장미꽃을 닮았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화려함도 그렇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도 그렇고. 다듬어지긴 했지만, 가시가 있던 것조차 김세현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래, 보면 볼수록 그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