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97)화 (197/246)

194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이제 곧 사람들이 와서 치울 거예요.”

“고마워요, 세현 씨.”

“고마우면 사진 한 장 찍든가요.”

“…….”

미련이 남았는지 김세현이 재차 사진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그에 응할 생각은 없었다. 난처한 웃음을 흘리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김세현이 이내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어쩔 수 없죠. 대신, 나중엔 꼭 같이 찍는 거예요?”

“좋아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이 아니고, 또 저렇게 부담스러운 공간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찍을 의향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김세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얼른 퇴근해요. 내일 일찍 출근하려면 어서 가서 쉬어야 하잖아요.”

“네.”

집에 가면 도착한 물건들부터 치워야겠지만, 일찍 도착할수록 그만큼 빨리 정리가 끝날 터였다. 어서 퇴근하란 말을 뱉은 김세현이 돌아서더니 가벽 쪽으로 이동했다. 이어 가벽 모퉁이를 붙잡아 가뿐히 들어 올리더니 주차장 한쪽으로 치워 냈다.

“음, 세현 씨….”

부팀장의 차를 움직일 수 있게 된 점은 좋았다. 하지만 차들이 오가는 길목에 그것을 두면 다른 이들의 출입이 불가능했다. 당혹스러운 내 부름에 가벽을 손으로 툭툭 치던 김세현이 활짝 갠 얼굴로 돌아보았다.

“네, 형.”

“그게….”

저 얼굴도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몹시 뿌듯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가벽을 구석으로 치워 달란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주저하며 그를 바라보는데, 한 주무관이 말을 얹었다.

“거기 두면 우린 어떻게 가란 건지 원.”

“곧 사람 온다니까?”

“…….”

나를 대할 때완 달리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김세현이 대꾸했다. 몹시도 불퉁한 표정을 보아하니 한 주무관이 말을 건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순간 주차장 안의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나는 황급히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해 보려 입을 뗐다. 하지만 말을 전달할 순 없었다.

“일단 사람들이 오는 거 보고 출발하죠.”

한 주무관과 김세현이 신경전을 벌이는 게 걱정되지도 않는지 부팀장은 그저 할 말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두 사람에게도 제법 영향을 준 듯 한참 대거리를 이어갈 것 같던 한 주무관과 김세현의 입이 꽉 다물렸다. 조용해진 두 사람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팀장을 따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갤 끄덕였다.

“…네, 부팀장님.”

가벽을 치워 준 건 좋았지만 이런 상황에 먼저 출발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한 주무관을 바라보자 그가 고갤 주억이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니 다들 갈 길 갑시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있었던 일은 외부에 발설하지 맙시다들?”

“당연하죠!”

“이런 거 누설하면 정말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죠!”

“…예!”

“그럼 가 보겠습니다!”

한 주무관이 꺼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답하는 이들이다.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의 빠른 대답에 이어 새 팀원들도 뒤따라 답하는데, 표정이 영 이상했다. 몹시 충격을 받은 듯, 혹은 당황하는 듯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이들을 유심히 살피는데 이들이 황급히 인사를 하곤 먼저 자리를 떴다. 뒤따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 모두가 자리를 뜨자 주차장이 정말 휑해졌다.

“…….”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 했지만, 역시 새 팀원들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김세현과의 친분이 드러난 이후 그들의 태도가 변한 터라 오늘 이 상황 역시 분명 여파가 남을 게 분명했다.

설마, 오늘 이 일로 인해 또 거리감이 생기는 걸까?

이전엔 김세현을 말리려던 나를 본 것이었지만 오늘은 아예 김세현이 내게 꽃다발을 주기도 했고, 또 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준비한 터라 그럴 소지가 다분했다.

점차 차오르는 걱정 탓인지 표정이 굳어 가는 게 느껴졌다. 좀처럼 컨트롤하기 힘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편함을 내비칠 순 없었다. 팀원들이 사라진 쪽을 계속 응시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이곤 다시 몸을 트는데 김세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하늘 형,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요?”

잘 갈무리했다고 여겼건만, 이렇게 바로 들킬 줄은 몰랐다. 살짝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춘 그가 연신 얼굴을 살핀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딱히요?”

“문제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내가 바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부탁하는 게 과한 게 아닐까 싶어도요.”

“그럴게요.”

과하다 느낀다면 절대 그에게 말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알았다고 하는 게 맞았다. 고갤 끄덕이자 김세현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자리 잡았다. 거리가 있을 때도 제법 멋있었지만, 지금의 이런 분위기가 오래간만이라 그런지 몰라도 괜히 민망했다. …심장도 좀 뛰었고.

“이렇게 형 오래간만에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좋다.”

“…….”

“매일 이렇게 봐도 돼요?”

이런 거리에서 매일 그를 본다니. 지금이야 앞서 본 게 있어 떨림이 이전보다 덜한 듯하지만, 이 충격이 가셨을 때 본다면 심장이 터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가 가까이 있는 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입가를 손으로 가려 헛기침하곤 슬며시 눈을 맞췄다.

“음, 시간 맞으면요?”

“…….”

내가 너무 짧게 답한 걸까, 김세현이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에 나는 살을 붙여 한 번 더 말하며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세현 씨 스케줄도 있잖아요. 그러니 매일은 어렵겠지만, 시간이 나면 자주 봐요.”

이전 일처럼 혹여 선을 넘거나 한다면 다시금 확실하게 말하면 되었다. 이미 김세현도 당시의 일 때문인지 몰라도 내게 허락을 구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팀원들 역시 김세현과 화해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다고 했고.

설명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어 말을 덧붙였건만, 김세현은 좀처럼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함에 그를 바라보는데 묘하게 조금 전보다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아니, 서서히 김세현의 얼굴이 커지는 것이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듯했다.

“세, 현 씨?”

당혹감에 그를 불렀지만, 아무 말이 없다. 오히려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아 한 걸음 뒤로 물러설 때였다. 나와 김세현 사이에 커다란 손이 개입했다.

“하여간 틈만 줬다 하면 돌진이지. 얼른 주변 어지럽힌 거나 치우지 그래? 그러지 않아도 누구 때문에 우리 막내가 얼마나 고생 중인데, 눈에 띄는 행동이나 하고 말이야.”

“방해하지 말지?”

한 주무관의 말에 답하는 김세현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날카롭다.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한 주무관의 펼쳐진 손바닥 때문에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틀어 한 주무관을 바라보자 김세현에게 나직이 경고하는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해하지 않게 잘 좀 해 보던가.”

“…….”

“매번 자기감정만 앞세워선 말이지. 상대도 좀 생각하지?”

“하, 난 잠들어도 형 꿈꿀 정도로 생각하고 있거든?”

“아….”

그건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지만 역시 그의 얼굴은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슬쩍 고개를 틀어 김세현을 보려 했지만 손바닥이 내 얼굴을 따라 움직인 터라 확인할 순 없었다.

“하늘 형.”

“네, 세현 씨.”

“아까도 말했지만 부탁할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알았죠?”

“그럴게요.”

“절대 부담 갖지 말고요.”

반복해 부담 갖지 말란 말을 들으니 괜스레 부담이 생기는 것만 같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데, 앞을 가로막은 한 주무관의 손바닥을 김세현이 붙잡아 내리며 눈을 마주해 왔다.

“알았죠?”

“네.”

“좋아요.”

눈을 맞춘 채 대답하고 나서야 김세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와중 으르렁거리는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제 그만 놓지?”

“형, 이제 곧 사람들 와서 치울 건데…. 진짜 사진 안 찍어 줄 거예요?”

한 주무관의 말에 곧바로 그 손을 뿌리치듯 놓은 김세현이 재차 사진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이에 나는 한 번 더 솔직하게 말했다.

“좀, 부담스러워서요.”

“어떤 점이요?”

“그냥, 전부 다요.”

여기서 팀원들이 보고 있어 부담스럽다고 한다면 김세현이 바로 다들 고갤 돌리라고 할 거다. 그렇다고 저 장식이 부담스럽다고 한다면 실망할 것 같았다. 전부 다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자 김세현의 표정이 뚱하게 변했다. 나는 꽃다발을 안은 손에 힘을 실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도 고마워요. 꽃은 집에 잘 장식해 둘게요.”

“…뭐, 그런 거라면야. 나라고 생각하고 애지중지해 주는 거죠?”

“네.”

“어쩔 수 없죠. 다음엔 꼭 사진 같이 찍는 거예요?”

“…그래요.”

그때가 되어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다음으로 미룰 것 같았지만 말이다. 내 대답을 들은 김세현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갤 주억이며 씩 웃더니 몸을 바로 했다. 그와 동시에 멀어지는데,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음을 다독일 때였다. 김세현이 내 뒤를 가리켰다.

“이제 사람들도 왔으니 형 가는 거 보고 나도 갈게요.”

사람이 왔다고?

곧바로 뒤를 확인했지만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김세현을 보려 몸을 트는데 시야에 뭔가 잡혔다. 재차 주차장 입구 쪽을 보자 사람들이 레드카펫을 돌돌 말며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것도 충격적인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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