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95)화 (195/246)

192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출입문 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붙잡아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김세현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따 보자는 말이 집에서 보자는 말일까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김세현이 집까지 찾아올 린 없었다. 그래, 그날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말을 제대로 섞기 시작하자마자 집으로 온다는 건 섣불리 시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아무리 김세현이라고 한들 말이다.

“…….”

막상 생각을 정리하니 김세현이 여태 사무실로 찾아오지 않았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나야 오는 건데도 불구하고 심술궂은 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왜 이리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 자꾸만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미적미적 짐을 챙기던 중 김 주무관이 출입문 쪽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잉여가 안 오네요?”

“일정 마무리하고 오겠다고 했잖아. 아직 안 끝났나 보지.”

“그럼 오늘 이렇게 막내 혼자 보내야 하는 겁니까?”

난 언제나 혼자 퇴근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박 주무관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려는데, 부팀장이 한 박자 빨리 답했다.

“집 안에 들어갈 때까진 항상 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팀장이 즉각 반응하는 것처럼 내가 혼자 집에 간다는 건 너무 과장된 표현이었다. 물론, 그 뜻으로 말한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하여간 기회를 줘도 못 줍지.”

김 주무관에 이어 한 주무관까지 출입문 쪽을 보며 혀를 찼다. 기회라는 말이 좀 걸렸지만,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늘 팀원들이 재촉하지 않았더라면 김세현에게 연락하는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을 테니까.

“다들 퇴근 준비 끝났으면 바로 퇴근하도록 하죠.”

“고생하셨습니다!”

부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하나둘 인사말을 꺼냈다. 나 역시 덩달아 인사하며 짐을 챙겨 일어난 뒤 문단속을 마치곤 마지막으로 부팀장, 그리고 한 주무관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이제 곧 저 물건들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겠군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부팀장이 말했다. 기한을 줬던 만큼 이제 저걸 치울 일도 머지않았다. 고갤 주억이는데 한 주무관이 말을 얹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볼 때마다 우리도 스트레슨데, 당사자인 막내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모르겠네요.”

“모두가 도와주셔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괜찮아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다행이라 말하는 한 주무관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덩달아 미소 지으며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니 먼저 퇴근한 팀원들이 1층에 도착한 듯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서 있는 게 보였다.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눌러 기다리는데, 평소완 달리 좀처럼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혹시 다른 사람이 있다거나 뭔갈 두고 나온 이가 있어 되돌아오는 건가 싶었지만, 한참을 기다려봐도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무슨 일 있나?”

“일단 기다려 보도록 하죠.”

“네.”

어쩌면 1층에서 물건을 싣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건물을 우리만 쓰는 것도 아니니 그럴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길 기다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 주무관이 그새를 못 참고 계단 쪽을 가리켰다.

“제가 먼저 내려가서 상황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좀 더 기다리면 올라올 것 같기도 한데, 한 주무관을 잡기도 그랬다. 물건을 싣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먼저 내려간 팀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다. 곧바로 비상구 쪽으로 간 한 주무관이 모습을 감추자 나는 다시금 엘리베이터 층수가 표시된 쪽을 응시했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한 주무관이 내려갔으니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여기, 왔군요.”

막 계단 쪽으로 갔건만, 벌써 1층에 당도한 모양이었다. 부팀장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한 주무관이라 적힌 화면을 보여 주더니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며 귀로 가져간다. 나는 은근슬쩍 부팀장에게 붙어 서며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을 본 부팀장이 웃으며 스피커 폰으로 돌리자 나는 그만 머쓱해서 덩달아 웃고 말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 부팀장님, 일단 엘리베이터 올려 보내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보내겠다는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몹시도 비장하게 들렸다. 무슨 일이 있는 듯한 말투에 나는 부팀장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래요.”

- 막내야.

“네, 한 주무관님.”

- …마음 단단히 먹고 내려와라.

“…….”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날 콕 찍으며 말한 걸까.

한 주무관의 말을 들으니 이보다 긴장될 순 없었다. 순간 입 안이 바싹 메마른 듯해 괜스레 침을 삼킨 나는 한 주무관의 말마따나 위로 올라오고 있단 엘리베이터 표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 그게, 직접 와서 보시면 아실 겁니다. 부팀장님도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시고요.

“…….”

나만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아니라, 부팀장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섰지만 한 주무관이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느새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1층 버튼을 누르자 이윽고 문이 닫혔다.

“…괜히 긴장되는군요.”

“저도요.”

부팀장의 말에 동의하자 그가 날 보다가 이내 엘리베이터 층수가 뜨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나 역시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움직이기를 바랐지만, 속도는 한결같았다. 어느새 층수 표시판의 숫자가 2에서 1로 바뀌자 나는 마른침을 한 번 더 삼켰다.

되도록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래, 차라리 다들 나와 부팀장을 놀라게 하려고 장난친 거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띵-

1층에 도착했단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잔뜩 긴장한 채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앞에 들어온 광경에 말을 잃고 말았다.

“…….”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침까지만 해도 깔끔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깔끔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막 어지럽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조금, 정신이 사납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 이 상황에 김세현이 떠오르는 건 그의 기행 탓에 여러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놀랐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층 더, 아니 한층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화려하게 꾸며진 1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홍빛의 하트 모양의 풍선들이 두둥실 떠 있고, 반짝이들이 벽에 이리저리 매달려 있다 못해 바닥까지 가득 깔린 상황이었다. 그것만이었다면 조금 놀라고 말았겠지만, 그건 그저 빙산의 일각인 듯했다. 엘리베이터가 열림과 동시에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과 그 위를 덮은 꽃잎들은 마치 자길 따라오라는 듯 건물 바깥쪽으로 뻗어 있었다. 아무래도 엘리베이터 앞만 이렇게 꾸며진 게 아닌 것 같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데 옆에서 부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내립시다.”

분홍빛 공격에 마음이 흔들린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부팀장이 내리자며 먼저 걸음을 옮긴다. 나는 멍하니 그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몸을 건물 출입구 쪽으로 틀었다.

“아….”

이미 뭐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풍선만큼은 분홍빛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분홍빛으로 물든 엘리베이터를 지난 곳에는 새빨간 꽃잎들이 바닥에 잔뜩 깔려 있었고, 붉은빛의 하트 모양 풍선, 그 밖에도 기다란 풍선과 장미꽃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꽃이 전시되었다면 꽃 향을 미리 맡았을 텐데, 저걸 보고 나서야 향이 인지되는 것이 아무래도 엘리베이터 바깥 상황을 본 충격이 제법 컸던 듯했다. 좀처럼 가시질 않는 충격 속에서 부팀장을 따라 밖으로 나오자 건물 주변에 모여 있던 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주차장 쪽으로 이어진 레드카펫이 눈에 들어왔다.

“나오셨어요?”

“이거 그놈이 한 거 맞죠?”

새로 온 팀원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것과 비슷한 일을 몇 차례 겪었던 주무관들은 격한 얼굴로 발을 쾅쾅 지면에 구르고 있었다.

“일을 벌인 놈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저거 안 치워?”

“막내야, 그냥 계속 싸운 채로 있으면 안 될까?”

“화해했단 기념으로 이러는 건 아니지!”

아직도 정신이 혼미한 나와 부팀장관 달리 미리 1층에 도착한 세 사람은 무척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삿대질까지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뭐 하는 짓인가 싶어질 정도였다.

“일단, 레드카펫을 따라 이동하는 건 어떨까요? 그래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합니다만.”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서강민이 의견을 냈다. 지금으로선 그의 말대로 움직여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살피는 게 급선무였다. …이 카펫의 끝에 뭐가 있을지 두려웠지만 말이다.

나는 팀원들과 함께 레드카펫을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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