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94)화 (194/246)

191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연 주무관. 일단 화해부터 하자.”

“…네?”

“그래야 확실하게 선전포고를 할 수 있어서 그래. 이목이 쏠린 지금 확실하게 정리해두면 앞으로 편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화해, 라.

자연스럽게 김세현이 떠오르는 건 김세현이 멀찍이서 날 보던 걸 눈치챘음에도 한 주무관이 여태 언급하지 않아서일 거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한 주무관을 살피는데, 반응을 보니 김세현과 화해하란 말이 맞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침묵했다.

“…….”

사실 그와는 딱히 화해랄 걸 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면 끝이었으니까. 모든 게 내 손으로 넘어와 있었기에 결정만 하면 된다지만 선뜻 연락하기 좀 그랬다. 주저하며 쉽게 말을 잇지 못하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이 말을 얹었다.

“뭐야, 정말 싸웠어?”

“싸우기는요! 제가 볼 땐 백 퍼센트 잉여가 잘못한 걸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막내가 이렇게까지 잉여랑 거리 안 두죠!”

팀원들이 내가 겪은 일을 알 리 없겠지만, 어째 나누는 대화 내용이 내 상황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들렸다. 괜히 찔려 부팀장을 바라보자 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을 보내왔다. 그런 그와 눈을 마주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내 부팀장이 깊은 한숨을 뱉었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혹시 김세현 씨에게 따로 연락한 적 없습니까?”

“최근엔 없었어요.”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생각에 잠겼다. 몹시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한 채 책상 위를 검지로 두드리는 것이 그 역시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듯했다.

하긴 내가 부팀장이었어도 섣불리 말을 얹기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아는 유일한 이였지만, 여태 김세현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이라고 했던 게 있었으니까. 한참 그렇게 고민하던 부팀장이 이내 날 바라보았다.

“…확실하게 선 그을 거 그으면서 취할 건 취해 봅시다. 상황이 녹록지 않게 흘러가는 듯하니까요.”

내가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 아는 건 여기서 부팀장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고심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건 정말 이 상황이 심각하단 뜻이었다.

“…….”

부팀장도 연락하는 게 좋겠단 말을 꺼냈지만, 섣불리 그러겠다고 답하기는 어려웠다. 주저하자 부팀장이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김세현 씨와 연을 이어 갈 거잖습니까. 차라리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못 박아 둔다면 앞으론 조심할 겁니다. 한동안 연락도 못 하고 하늘 씨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만큼 애가 닳았을 테니까요.”

과연 애가 닳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싹텄지만, 그도 잠시였다. 그 말을 하기 전 부팀장이 한 말의 잔상이 너무 크게 남았다. 김세현과 계속해서 친분을 이을 게 아니냔 말을 듣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난 김세현과 어떤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던 걸까.

근본적인 부분에 의문이 생기자 서운함에 집중되어 있던 내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복잡해진 마음이 얼굴에 드러날까 싶어 나는 표정 관리를 하는 데 애썼다.

“…….”

지금 당장은 서운한 나머지 연락을 단절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김세현과 연을 끊는단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더군다나 김세현도 본인 입으로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연을 끊을 게 아니라면 이렇게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좋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김세현과 어색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나온 결론에 나는 침을 삼키곤 입을 열었다.

“…바로 연락해 볼게요.”

“예.”

내 말을 들은 부팀장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자리 잡았다. 그를 따라 입가를 말아 올린 채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쥐었다.

“…….”

바로 연락한다곤 했지만, 한동안 그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인진 몰라도 이보다 더 어색하고 긴장될 수는 없었다. 아니, 따지고 본다면 평소에도 내가 김세현에게 먼저 연락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랬기에 더욱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몇 번의 심호흡 끝에 그에게 메시지를 적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과연 그가 언제 이 메시지를 확인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빨리 확인해줬으면 했다. 긴장하며 핸드폰을 바라보는데, 때마침 핸드폰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를 건 상댈 확인하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은 뒤 그 전화를 받았다.

- 형!

날 부르는 김세현의 목소리엔 반가움이 잔뜩 묻어났다. 마치 내가 언제 연락할까 기다린 사람처럼 빠르게 전활 받은 것도 그렇고, 이렇게 반겨주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목소리를 잠시 가다듬곤 답했다.

“네.”

- 이제 생각 정리 끝났어요?

목소리에 가득한 웃음기가 여기서도 느껴질 지경이다.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싶을 만큼 업된 김세현의 목소리를 듣는데, 수화기 너머로 주변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왔다.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되물었다.

“지금 밖이세요?”

- 세계헌터협횐가 뭔가 하는 놈들이 자꾸 저랑 같이 다니고 싶어 하네요. 굳이 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켜볼 것도 있고 해서 함께 다니고 있어요. 게다가 같이 다니면 TV에 나오잖아요.

지켜볼 게 있단 말은 그렇다 쳐도 TV에 나오려고 같이 다니고 있었다니.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 의문은 금세 풀렸다.

- 내가 TV에 나오면 형이 나 볼 수 있잖아요.

“…내가, 괜히 그 말을 해서는.”

“저놈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아요. 오늘도 참읍시다.”

“…….”

김세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주무관의 통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자리를 옮겼는지 박 주무관이 그 곁에서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나 싶었지만, 그도 아니었다. 마치 통화 내용을 바로 들은 것처럼 반응하는 이들의 모습에 당황하는데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 형, 그동안 나 잘 봤어요?

사실 너무 잘 봐서 탈이었다. 툭하면 김세현의 영상을 찾아보고 본 걸 또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굳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애써 담담한 척 답했다.

“좀, 보긴 했어요.”

- 다행이네. 소기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네요.

“…그래요.”

- 형, 나 바로 그쪽으로 갈 수 있는데. 지금 갈까요?

“일정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막 세계헌터협회를 거론해 놓곤 바로 오겠다니. 놀라 되묻자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형도 생각 끝났는데 이까짓 거 굳이 응하지 않아도 돼요. 저놈들, 찍힌 게 있어서 뭐라고 하지도 못해요. 이 이상 내 눈 밖에 난다면 좋을 게 없으니까.

세계헌터협회가 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찍혔다는 표현까지 쓰는 걸까. 궁금했지만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형, 나 바로 가요?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올 것만 같은 목소리다. 나는 곧바로 의사를 피력했다.

“으음. 그래도 일정은 소화하고 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보는 눈이 많은 만큼 말이 나올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던 일은 마저 하고 오란 말에도 계속 오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 한 번 더 말하려는데, 김세현이 한 박자 빨랐다.

- 내가 걱정되는 거죠?

마치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만 같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고갤 주억였다.

“…네.”

- 하, 어쩔 수 없네! 그럼 일정 얼른 마무리하고 바로 갈게요. 내 자리, 아직 잘 있죠?

자연스럽게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지금은 접힌 채로 한쪽에 세워져 있었지만 김세현의 자리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네. 잘 있어요.”

- 가는 길에 먹을 거 좀 사 갈까요? 거기 보니까 새로 온 노, 사람들도 있던데 거기 먹을 것도 사 갈게요.

“괜찮아요. …무슨 무슨 법에 걸려요.”

이전에 한 번 김세현에게 얻어먹긴 했지만, 이 이상 바라는 건 옳지 않았다. 괜히 안 좋은 쪽으로 얽히게 되면 여러모로 불편해졌다.

- 알았어요. 그럼 이따 그냥 몸만 갈게요.

“네.”

- 그럼 이따 봐요.

연신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던 김세현이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가 끊겼지만 전화 받던 자세 그대로 멍하니 있던 나는 한참만에야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통화 내내 이어진 김세현의 웃음소리를 상기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눈치를 살피고 또 시무룩했었는데, 이전과는 정말 다른 반응이었다. 물론, 그 일이 일어나기 전 통화 때완 비슷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의기소침했던 김세현이 살아나기 시작한 건 그날부터였다. 김세현이 갑자기 사람을 피떡으로 만들었던 그날 말이다. 전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보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던 참이었다. 나는 불현듯 떠오른 무언가에 멈칫했다.

“…….”

그러고 보니 당시엔 못 느꼈는데, 내가 왜 이리 덤덤한 건지 모르겠다. 김세현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못했다고 치기엔 말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곤죽이 될 만큼 크게 다친 걸 보았음에도 그쪽으론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예기치 못한 깨달음 때문일까, 절로 서강민에게 시선이 향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트럭에 치여 죽을 뻔했음에도 무덤덤했고, 크게 다친 이를 봐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걸 깨달았음에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져서는 뭔가 했잖아. 의논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혼자 고민하지 말고.”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걸 캐치했는지 박 주무관이 고민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 온다.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이 부분 역시 팀원들과 의논해 봐야겠다 마음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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