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도대체 뭘 봤기에 다급히 뛰어내린 건지 모르겠지만, 평소 급한 일이 있어도 항상 출입문을 이용하던 그인지라 이 상황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여태껏 느끼던 정체 모를 시선이 정말 날 탐색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순간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데,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잔뜩 긴장한 채 바깥을 내다보는데 부팀장이 다가오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서강민 씨도 저쪽으로 간 겁니까?”
“네.”
“…두 사람이 갔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주무관을 돕기 위해 서강민이 움직인 만큼 문제가 생길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그래, 알고 있어도 걱정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좀처럼 창문가를 벗어나지 못하자 부팀장이 자리로 돌아가자고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역시 이런 상황에서 홀로 자리로 돌아가 마냥 기다리는 건 마음이 불편했다.
“두 분 돌아올 때까지 지켜볼게요.”
“그러도록 해요.”
내 의사가 확실하게 전달되었는지 부팀장이 고갤 끄덕였다. 그가 돌아가 앉는 모습을 보곤 다시 창밖을 바라보는데 도통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이리저리 오가며 계속해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참 만에 저 멀리서 두 인영의 모습이 보였다. 점심시간이기에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던 터라 과연 한 주무관과 서강민이 맞나 싶었지만, 거리가 가까워지자 조금씩 분간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사람이 맞았다. 나는 뚫어져라 둘을 지켜보았다.
“…….”
혹시 다친 걸까?
두 사람의 걸음걸이가 평소완 너무 달랐다. 조금 더 자세히 보니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이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사무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 올라오고 있어?”
“네. 이제 곧 오실 거 같아요.”
“그럼 돌아가서 밥부터 먹어. 면 다 불었겠다.”
“오면요.”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와 젓가락을 드는 것도 웃겼다. 김 주무관의 제안도 뒤로한 채 계속해서 기다리니 이윽고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출입문이 열렸다.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들어오던 한 주무관이 날 발견하곤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나는 누그러진 그의 기세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마세요. 밥도 안 먹고 면 다 불도록 두 사람 올 때까지 기다리더라고요.”
“…먹고 있어도 되는데.”
“갑자기 뛰어내리셔서 걱정되어서요.”
걱정했단 말을 전하자 한 주무관의 표정이 좀 더 풀렸다. 그러더니 그는 뛰어내렸던 방향을 바라보며 조금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를 내었다.
“누가 여길 보고 있어서 말이야.”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먼저 이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는데, 좀 늦었다. 걱정 가득한 눈으로 한 주무관을 보자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멀쩡해.”
“한 주무관님, 누군지 확인하셨어요?”
뒤이어 박 주무관이 한 주무관에게 질문했다. 잠시 박 주무관을 바라보는가 싶던 한 주무관은 크게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기 좋게 놓쳤어.”
“아….”
삽시간에 움직였는데도 확인하지 못했다니.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데 한 주무관이 다시 날 바라보았다.
“혹시 그때 이후 누가 보는 것 같거나 하는 느낌 없었고?”
그러고 보니 한 주무관이 뛰어내린 직후 그 느낌이 사라진 듯했다. 고갤 주억이자 그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발이 빠르더라고. 서강민 씨도 따라붙지 못한 걸 보면 능력이 제법 되는 놈이었던 듯해.”
“그럼 A급 이상이 접근했단 겁니까?”
대화를 듣던 박 주무관이 물어왔다. 그에 한 주무관이 내 뒤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안 그래도 요즘 내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아 곤란한데, 이젠 헌터까지 꼬이다니. 물건들이야 돌려보낸다거나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헌터의 관심은 어떻게 쳐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선물 보낸 쪽에서 사람을 보낸 걸까요?”
“글쎄. 거기까진 파악할 수 없어서 뭐라고 말을 얹기가 좀 그러네.”
“우선은 식사부터 하도록 해요. 면은….”
식사하란 말을 하며 내 자리로 시선을 주었던 부팀장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이쪽을 보며 뒷말을 이었다.
“기사회생시킬 수 없을 듯하니 새로 주문하도록 하죠.”
“오, 좋죠!”
한 주무관이 반색하며 자리로 돌아가자 나 역시 돌아가 음식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부팀장이 어째서 새로 주문하라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떡이 되어 버린 자장면을 보며 뒤늦게 답했다.
“네.”
“나는 짬뽕. 서강민 씨는?”
한 주무관이 곧바로 메뉴를 말하며 서강민에게도 물어본다. 내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서강민이 웃으며 답해 왔다.
“저는 자장면 곱빼기 먹겠습니다.”
“혹시 더 주문하실 분 있으면 말씀하세요.”
전화를 걸기 전 팀원들을 둘러보며 물어봤지만, 다들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그에 곧바로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어 주문을 마치곤 한 주무관을 불렀다.
“한 주무관님.”
“음?”
“조금 전 상황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세요.”
“아, 말을 하다 말았지. 네가 말하자마자 주변을 살폈잖아? 그런데 내가 간 방향 쪽에서 누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더라고. 사실 우연히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서 반쯤 도박으로 뛰어내렸지. 한데 그놈이 바로 도망치더라. 뒤따라가는 와중에 서강민 씨가 날 지나쳐서는 그대로 따라붙었고. 이어진 상황은 서강민 씨가 말하는 게 어때?”
한 주무관이 서강민에게 시선을 주자 나 역시 그쪽을 바라보았다. 서강민은 한 주무관과 한 차례 시선을 주고받더니 날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곧바로 한 주무관님과 바톤 터치하고 뒤를 밟았는데, 상대와 거리가 가까워지니 갑자기 그쪽이 속도를 내더군요. 계속 뒤쫓았지만, 발재간에 특화된 이였는지 정말 빨랐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누구지?”
내가 궁금한 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A급 헌터를 짧은 시간에 따돌릴 수 있던 걸까.
“외국에서 S급 헌터가 들어오면 바로 뉴스 뜨죠?”
A급 헌터를 빠르게 따돌렸단 사실만 놓고 본다면 S급 헌터가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마 말을 꺼낸 김 주무관도 같은 선상에서 접근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팔짱을 낀 한 주무관이 미간을 좀 더 구기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다는 건 A급 헌터 중에서 발 빠른 사람이라는 건데….”
“뭐가 되었건 간에 연 주무관만 노린 걸 보면 상황이 영 좋지 않네요.”
“…….”
대화를 나누던 팀원들의 얼굴이 사뭇 심각해졌다. 나 또한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여태까지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팀원들은 항상 조언을 해줬는데, 지금은 모두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으니까.
뭐든 작은 것이라도 알려 주려 했던 이들이 이렇게 말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들 역시 지금 상황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다는 걸 의미했다.
“부팀장님, 막내 혼자 집에서 지내도 되는 겁니까?”
침묵이 감돌던 와중 박 주무관이 내 거취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내 예상대로 팀원들 모두 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지한 듯했다.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헌터들도 관심을 보인다는 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단 말과 같지 않나요? 막내는 일반인이잖아요.”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내게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한다. 우려 섞인 시선을 자주 받긴 했지만, 지금 보내온 시선들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잔뜩 긴장하는데, 생각에 잠겨있던 부팀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항상 하늘 씨 주변을 주시하는 놈이 있어 괜찮을 겁니다.”
“아.”
“…….”
놈이란 발언을 들은 세 주무관들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소리가 나왔다. 누굴 거론한 건지 바로 알아들은 듯했다. 사실, 저 말을 이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나 역시 부팀장이 어떤 이를 놈이라 부른 건지 알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김세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집 주변을 둘러싼 CCTV들도 생각이 났고.
“뭐, 놈이 주시하고 있다면야 마음이 제법 놓이긴 하죠.”
“물론 다른 쪽으론 걱정이 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우호적인 놈을 믿어 보는 편이 낫긴 하지.”
“하긴. 우리 막내가 선 긋는 건 세상 최고긴 하죠. 굳이 긋지 않아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 같긴 하네요.”
“1차적인 방비가 된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이거 일 생기기 전에 뭔가 이쪽에서 먼저 터뜨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뭔갈 생각하는 듯싶던 김 주무관이 의견을 냈다. 제법 괜찮은 말인지라 나는 뚫어져라 김 주무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걸 터뜨리면 될까요?”
“물론! 거기까지 생각해 보진 못했지….”
대답하는 김 주무관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리고는 멋쩍은 미소를 짓는데,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시나마 유해진 분위기가 사무실을 휘감았다.
“김 주무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방비하거나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뭔가만 있으면 섣불리 연 주무관에게 접근하지 못할 텐데 말이죠.”
“…확실한 거라면 역시, 그거밖에 없나.”
박 주무관의 말에 이어 무언가 비장의 무기라도 있는 듯 한 주무관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목소리가 작긴 했지만 여기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한 주무관에게 물어보았다.
“그거라뇨?”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보다 확실한 건 없지.”
도대체 무엇이 떠올랐기에 한 주무관의 목소리에 저리 힘이 실리는 걸까. 나는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