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와, 김 주무관님. 김 주무관님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김 주무관이 저리 확신하며 말할 때면 거를 타선이 거의 없을 만큼 적중률이 높았다. 박 주무관을 보다가 다시 김 주무관 쪽으로 고갤 돌리자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억울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설마 우리 팀장님이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거 아니지?”
“그건…, 아니죠.”
부서를 우선시하는 팀장이었지만, 일정 선을 넘는 모습은 본 적 없었다. …아직까진 말이다.
“와, 막내야. 말이랑 표정이 너무 다른 거 아냐?”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얼굴에 표가 난 모양이다.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던 김 주무관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잡담은 그만하죠. 슬슬 식사 시간이니 메뉴 정해서 주문하도록 해요. 오전 작업 끝난 분들은 좀 쉬도록 하고요.”
대화가 길어지자 바로 부팀장의 제지가 들어왔다. 안 그래도 이제 곧 오전 작업이 끝나 가고 있었다. 좀 더 가열차게 달려 음식이 도착하기 전 마무리될 듯했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네, 부팀장님!”
“예!”
내 대답에 이어 여기저기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휴식을 취하는 이들과 일하는 이들이 나뉜 상황 속에서 계속 작업을 이어 간 나는 중식으로 의견이 모여지고 있단 사실에 군침을 삼켰다.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나서 자장면을 먹으면 정말 맛있을 거다. 연신 입맛을 다시며 집중해 남은 작업을 끝낸 나는 아직 배달 음식이 오지 도착하지 않았단 사실에 안도하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하아.”
“웬 한숨이야?”
“너무 집중했나 봐요. 진이 좀 빠지네요.”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진이 빠지는 건 오래간만이다. 김 주무관의 물음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답하자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배고파서 그래. 밥 먹으면 다시 기운 나겠지.”
“네.”
“많이 허기지면 간식이라도 가져다 먹던가.”
박 주무관이 엄지를 펴 자기 뒤쪽을 가리킨다.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곧 자장면 먹을 거잖아요.”
“하긴, 자장면 좋아하지.”
“네.”
내 말을 들은 박 주무관이 웃으며 고갤 주억이더니 마저 작업을 이어 갔다. 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침묵하며 사무실 안을 둘러볼 때였다. 누가 날 보고 있단 느낌에 재차 팀원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하던 일을 하느라 바쁘기만 했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착각으로 넘기기엔 조금 전보다 더욱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사무실 사람들은 날 보고 있지 않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라….
“…….”
나는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눈을 옮겼다.
설마, 아니겠지?
이전에 김세현이 내가 보고 싶다며 창문을 열어 달라고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서 일어나 창문을 열곤 밖을 봤지만, 딱히 이쪽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들만 보일 뿐인 상황에 작게 한숨을 뱉을 때였다.
“밖에 뭐 있어?”
한 주무관의 바로 옆 창을 열어서일까, 그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물어 왔다. 이어 반쯤 의자를 돌려 밖을 바라보는 모습에 나는 생각나는 걸 아무거나 입에 담았다.
“그냥, 눈이 좀 피로해서요. 멀리 보면 좀 나아진다는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난 또. 밖에 누가 절절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라도 있나 했지.”
절절한….
설마, 팀장만 눈치챘던 게 아니라 한 주무관도 당시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고서야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꺼내 올 순 없었다. 놀라 한 주무관을 바라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리더니 좀 더 의자에 몸을 푹 기대며 반쯤 눕듯이 자세를 바꾸었다.
“내가 귀만 좋은 게 아니라 눈도 좋아. 코도 좋고.”
“아.”
저 말을 들으니 절로 민망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한 주무관을 보는데 그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작업하고 있던 모니터를 바라보는 모습에 덩달아 그쪽을 보려 고개를 돌리던 차였다. 사무실 출입문이 열리며 배달원이 들어왔다.
“배달 왔습니다!”
“아, 이쪽으로 주세요.”
원형 테이블 쪽으로 안내하자 곧바로 배달원이 그쪽에 음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온 음식들을 받아 다른 팀원들 자리로 옮기는데, 뒤늦게 새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음식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연 주무관님, 자리로 가셔서 식사하세요.”
막 일어난 서강민이 자리로 가라며 손짓하더니 새 팀원들과 함께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함께 하면 좀 더 일찍 마무리되겠지만 공간이 협소한 터라 이 이상 오가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게 더 방해였다.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로 가 앉자 곧바로 서강민이 나와 부팀장에게 주문한 음식을 건네준다. 그것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팀장이 박 주무관에게 카드를 건넸다.
“결제할게요.”
카드를 받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박 주무관이 배달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이 끝나고 배달원이 자리를 뜨자 다들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곤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나 역시 자장면 그릇 비닐을 벗기며 군침을 삼켰다.
“…….”
알 수 없는 시선에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는데, 음식 냄새를 맡자 빠르게 허기가 차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비닐을 벗기곤 팀원들을 보자 어느새 새 팀원들 역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부팀장을 바라보자 사무실을 둘러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식사합시다.”
“네!”
식사하잔 말과 함께 부팀장이 수저를 든다. 곧바로 젓가락을 들어 자장면을 비빈 뒤 바로 먹는데,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순 없었다. 평소보다 급하게 자장면을 먹어 치울 때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힐끔 창밖을 한 번 더 살펴봤지만, 역시 보이는 건 없었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는데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좋을지, 아니라면 혼자 감내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먹던 것도 멈춘 채 괜스레 젓가락에 자장면을 감던 나는 조심스럽게 부팀장을 불렀다.
“부팀장님.”
“예.”
“혹시, 그 날 말이에요.”
그날이란 말에 부팀장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곤 뒷말을 이었다.
“세현 씨가 누군갈 곤죽으로 만들었던 그날이요.”
그날 일을 거론하자 부팀장의 손이 완전히 멈췄다. 덩달아 사무실에 있는 모두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렸다. 조용해진 사무실을 인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팀원 전부가 어떤 시선을 느꼈던 상황이 궁금해서요. 탐색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느낌인가요?”
솔직하게 이러이러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기에 확신이 필요했다. 내 질문이 의외였던 걸까, 부팀장이 잠시 날 바라보더니 답했다.
“가볍게는 누군가 날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그 강도가 세지면 온몸에 개미 같은 작은 물체가 몸 위를 기어가는 느낌이 나죠. 물론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정도가 다르긴 합니다.”
“아….”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헌터가 헌터를 탐색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헌터가 일반인을 탐색하는 일은 더더욱 드문 편이죠.”
“그런데 그걸 왜 물어?”
식사하던 박 주무관이 젓가락을 놓으며 물어본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솔직하게 상황을 알렸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누가 자꾸 절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언제부터?”
이번엔 한 주무관이 반응했다. 내게 말을 걸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열린 창문을 이용해 이리저리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창문 열기 전부터요. 혹시나 했는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애매해서요.”
“내가 둘러볼 테니까 일단 밥 먹고 있어.”
“…….”
먹는 거야 언제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저렇게 열심히 살펴 주는 한 주무관을 두고 먼저 식사를 할 순 없었다. 젓가락을 그릇에 걸쳐 둔 채 한 주무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협회 쪽과 정반대되는 방향을 보는가 싶던 그가 갑자기 창문틀에 발을 올렸다. 그러더니 그대로 창을 넘어갔다.
“헉!”
이전에도 한 번 한 주무관이 저곳을 이용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땐 팀장이 한 주무관을 업고 나갔었다. 그랬기에 저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여 다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황급히 일어나 창밖을 보는데, 한 주무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주무관님이 뭔가 발견한 걸까요?”
“박 주무관, 김 주무관. 혹시 모르니 한 주무관 따라가 보도록….”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지시를 내리는 부팀장의 말을 자른 건 다름 아닌 서강민이었다. 부팀장에게 말을 건넨 그가 곁으로 오더니 곧장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어 조금 전 한 주무관이 바라보던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멀거니 그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