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91)화 (191/246)

188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집으로 물건이 와서일까, 복도엔 새로 도착한 물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도에 있는 물건 양은 어제와 비슷했다. 찾아가지 않으면 버리겠단 연락을 돌렸음에도 가져가지 않는 심본 뭘까.

“…….”

혹여 물건을 찾으러 왔다가 팀원과 맞닥뜨리게 되면 얼굴이 팔릴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인지, 찾으러 오는 것보단 버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저들은 내가 곤란해하고 있단 걸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단 것이었다.

아침부터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았지만, 마냥 감정에 집중하며 시간을 허비할 여력은 없었다. 빠르게 짐을 풀고 복도로 나와 새로 온 물건들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을 때였다. 미리 꺼내 둔 새 봉투를 집어 드는 손에 옆을 바라보았다.

“아, 오셨어요?”

“예. 생각보다 양이 적으니 둘이 정리해도 충분할 듯하군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던 부팀장이었다. 그가 손을 보태자 물건을 정리하는 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봉투를 하나씩 채우고 또 채우다 보니 얼추 새로 온 물건들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허리를 펴며 봉투를 세어보니 너덧 뭉치가 나온 상태였다. 그리 물건이 많지 않다고 여겼는데도 이만큼 나왔다는 건 저기 벽 한쪽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치울 때 봉투가 상당히 많이 든다는 걸 의미했다. 한 마디로 쓰레기를 버리러 제법 많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단 말이었다.

오늘은 눈앞의 봉투만 버리면 되는데,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한숨이 나는 걸 참으며 쓰레기봉투 세 개를 집어 들자 부팀장 역시 남은 봉투를 들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양이 적을 줄 알았는데, 막상 봉투에 넣으니 제법 되는군요.”

엘리베이터에 오른 부팀장이 바닥에 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주억이며 답했다.

“아무래도 남은 거 정리할 땐 각오해야겠어요.”

“각오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빨리 정리될 겁니다.”

“하하, 네.”

각오란 말을 들은 부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를 따라 웃는데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잠시 내려놓았던 봉투들을 들어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그러고 보니 도로 잘 메꿔졌네요.”

쓰레기를 버리고 사무실로 가려 몸을 트는데, 푹 파였던 그 장소가 깔끔하게 메꿔져 있었다. 대충 구멍을 때운 게 아니라 정말 공을 들였다는 게 티가 나는 모습에 나는 김세현이 날뛰었던 그날과 달라진 곳이 있나 둘러보았다.

“…….”

깨진 유리도 말끔히 치운 듯 도로에는 빛을 반사하는 부분이 없었다. 그뿐이랴, 협회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구멍이 났던 부분을 보았다.

“으음.”

다른 곳이 워낙 깔끔하게 마무리된 터라 건물도 제법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건 너무 앞선 생각이었다. 건물 내부가 훤히 보이던 위치에 하얀 천으로 가려 둔 것을 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무슨 일로 나와 계십니까?”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는 박 주무관이 다가와 곁에 서며 나와 부팀장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나는 부팀장과 시선을 교환하곤 피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박 주무관님.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도착한 물건들 버리러 잠깐 나왔어요.”

“벌써 정리가 끝난 거야? 오늘은 별로 안 왔어? 아니면 일찍 출근한 건가?”

박 주무관이 이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사무실로 온 물건이 상당했으니까.

“사무실론 별로 오지 않았더군요.”

“…설마 집으로 간 겁니까?”

따로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바로 캐치할 줄은 몰랐다. 부팀장의 설명을 듣고는 더욱 동그래진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이를 향해 고갤 주억였다.

“어젯밤에 부팀장님이 가시고 얼마 안 지나서 택배가 오더라고요. 부른 게 없어서 돌려보내고 바로 자러 갔는데, 일어나 보니 집 앞에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어요.”

“…어제 피곤해서 잘 듣지 못했나 보네.”

김 주무관이 아니라 박 주무관이 돗자리를 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정확하게 상황을 캐치해 낸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입에 매단 채 볼을 긁적였다.

“네, 아침 알람 울리기 전까진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라고요.”

“그럴 만도 하지. 몸도 피곤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제법 신경 쓰였을 테니까.”

“이야긴 들어가서 마저 나누도록 하죠. 보는 눈은 없어 보여도 듣는 귀는 제법 될 겁니다.”

대화를 이어 나가는데 부팀장이 어서 들어가자 종용한다. 확실히 그의 말마따나 밖에서 이야길 나누는 건 좋지 않았다. 박 주무관과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금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집으로 얼마나 온 거야?”

“어제보다 많아요.”

“…집에도 택배 받지 않겠다고 글 붙여야 하는 거 아냐?”

내 말을 들은 박 주무관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럴 만도 했다. 어제 사무실에 도착한 선물은 그제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 하늘 씨가 문구를 적어서 가지고 나왔더군요. 함께 붙이고 출근한 상황입니다.”

“사무실이야 보는 눈이 많아서 좀 자제할 수도 있겠지만, 집으로 보내는 건 과연 멈출까 싶긴 하네요.”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불편해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적어도 선물을 보내는 일은 줄어들겠죠.”

부팀장의 말이 맞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쉬이 포기할 것 같진 않아 보였지만, 적어도 물질적인 어필은 그만두게 될 터였다. 이후 어떤 식으로 관심을 표해 올지 걱정이 일었으나 그 걱정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지금 이렇게 고민해 봤자 그 상황이 닥치면 또 걱정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눈앞의 일을 정리하고 처리하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으며 두 사람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 앉자 팀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해 자리를 채웠다.

마지막으로 아슬아슬하게 출근한 강승빈이 자리를 잡자 팀장이 당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조회를 시작했다.

“요 며칠 사무실이 뒤숭숭했었는데, 오늘은 그런 일도 없고 하니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하자. 이제 곧 주말인데 이번 주 쉴 사람들은 그 전에 일 마무리 잘하고. 아, 그리고 오늘은 내가 시청에 다녀와야 해서 오후엔 없을 거야.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하는 거 잊지 않도록 해.”

“예, 팀장님!”

“시청엔 무슨 일로 가십니까?”

나도 그게 궁금하던 참이었다. 김 주무관의 말에 고개를 주억이며 팀장을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출근길에 갑자기 연락이 온 거라서. 가 봐야 알겠지.”

“무슨 문제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그래야지. 자, 조회는 이만하면 되었으니 다들 일 시작하자고!”

“예!”

팀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답하며 오늘 할 일들을 훑어보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니 팀장이 날 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끔벅이다가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그냥 보는 거야.”

하긴, 사람이 그냥 볼 수도 있긴 했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팀장의 말에 웃자, 그 역시 웃으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긴다. 나 역시 다시 모니터를 보며 마저 할 일들을 파악해 하나씩 작업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드시게요?”

“아니. 시청 가 봐야지.”

“…점심 드시고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였다. 오후에 간다고 한 터라 당연히 점심 식사 후에나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 전에 이동할 줄은 몰랐다. 놀라 팀장을 바라보는데, 이미 팀장은 나갈 준비를 마치곤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밥은 됐어. 나중에 먹어도 돼.”

“다른 곳도 아니고 시청에 가는데, 든든히 배를 채워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먹으면 체할 거 같아서 말이야.”

체할 것 같단 말을 하는 팀장의 얼굴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아 하니 우리가 모르는 중요한 이야기가 오갔던 듯했다. 팀장의 대답에 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경직되었지만,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을 챙겼다.

“조회 때도 말했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정시 퇴근들 해. 혹시 일 생기면 언제나처럼 움직이도록 하고.”

“예!”

“그럼 내일 보자고.”

팀원들에게 인사한 팀장이 마지막으로 나와 부팀장 쪽을 보는가 싶더니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바로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릅니다.”

따로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는 건 정말 부팀장도 모른단 말이었다.

“보통 시청에 간다거나 하면 우리에겐 몰라도 부팀장님껜 항상 귀띔하는 거 같던데 말이죠.”

팀원들의 말을 들으니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듯했다. 진지하던 팀장의 표정을 떠올리며 덩달아 심각해지는데, 부팀장이 입을 열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든 간에 항상 같을 겁니다. 팀장님은 우릴 최우선으로 생각하니까요.”

“부팀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걱정이 좀 덜어집니다.”

“어휴, 전 팀장님보단 시청이 더 걱정되네요. 진짜 우리 팀장님 마음먹으면 완전 다 뒤집어엎고도 남을 사람인데 말이죠.”

누가 봐도 과장된 몸짓을 하며 김 주무관이 말하는데, 평소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것이 아무래도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간 팀장이 시청에 다녀온다거나 혹은 통화를 나눌 시 결코 물러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시청 소속이긴 했지만 헌터부에 해가 가는 일이라면 물러섬 없이 나서던 그였기에 이리 걱정할 필욘 없었다.

작게 한숨을 뱉으며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던 나는 이어진 박 주무관의 지적에 풀리던 마음이 다시 꽁꽁 얼어붙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