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90)화 (190/246)

187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

어제 분명 택배를 가지고 온 사람을 돌려보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깥 상황은 왜 이런 걸까.

어제 퇴근해 집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집 밖은 깨끗했다. 그뿐이랴, 초인종을 누른 배달 기사 또한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침 상황은 어제완 너무 달랐다. 출근을 위해 나와 보니 대문의 여닫는 부분을 제외한 모든 곳에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건들은 대문을 넘어 담벼락 쪽까지 넘어가 있었다.

이만큼 물건이 왔다는 건 밤새 집 앞으로 택배기사 혹은 퀵 배달원들이 왔다 갔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 다시 말하자면 밤새 골목이 시끄러웠음을 의미했다.

피곤했다고는 하나 밖이 시끄러웠는지도 모를 만큼 깊게 잠들었을 줄은 몰랐다. 중간에라도 깼다면 이 많은 물건이 이렇게 쌓여 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

대강 훑어만 봤는데도 어제 사무실에 도착한 물건들보다 훨씬 많이 와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이 쉬는 날이었다면 열심히 치웠을 테지만 이제 곧 부팀장이 올 것이었다. 시간을 낸다면 낼 수는 있겠지만, 많이 내봤자 10분 정도 여유가 될 터였다. 그 이상은 차가 막힐 수도 있어 바로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후우.”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종이로 시선을 주자 그 생각은 더욱 명확해졌다.

그래, 지금 당장 이것들을 치우긴 힘들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어젯밤 문구를 적어 뒀던 종이를 담벼락에 빠르게 붙여 가며 대문 쪽으로 이동할 때였다. 익숙한 소리와 함께 이윽고 부팀장의 차가 집 앞에 당도했다.

집 쪽으로 오며 상황을 파악했는지 다른 날과는 달리 부팀장이 차에서 내려 집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날 보며 물었다.

“…이게 다 뭡니까?”

그가 이렇게 질문해 오는 건 당연했다. 날 바래다줄 때만 해도 이 골목, 그러니까 내 집 앞은 정말 깨끗했었으니까.

“그게….”

어젯밤 택배가 왔었던 일부터 시작해 종이를 붙이고 있는 상황까지 전달하자 부팀장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저도 주십시오. 가기 전에 택배 사절 종이부터 붙여야겠군요.”

“여기요.”

손이 느니 좀 더 빨리 붙일 수 있겠단 생각으로 계속해서 부팀장과 함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이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하늘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좋은 아침이에요, 아저씨.”

아침 러닝을 위해 나왔는지 집 맞은편에 사는 아저씨가 대문을 열고 나오다 만 채 물어 왔다. 나는 꾸벅 인사를 건네곤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게…. 아마 한동안 집 주변이 좀 어지러울 예정이라서요. 다녀오면 바로 치울 테니까 한동안만 양해해 주세요.”

“혹시 이거 어젯밤에 온 것들이야? 밤새 골목이 어수선하더라니.”

역시, 나만 듣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네, 그냥 이렇게 두고 갔더라고요.”

“뭐 도와줄 건 없어?”

다른 때 같았으면 괜찮다고 거절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조금의 도움이라도 필요했다. 어느새 다가와 선 아저씨를 보며 등 뒤의 물건들을 엄지로 가리켰다.

“일부러 시간 내거나 하진 마시고, 오가다가 택배라든가 뭔가 가지고 오는 사람 있으면 수령하지 않겠다고 말만 전해 주세요. 혹여 그냥 두고 가려고 하면 그거 제가 버릴 거라고 말 한 마디만 얹어 주시면 돼요.”

“그 정돈 어렵지 않지. 집사람이랑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이야기 좀 해 둘게.”

그것도 좋았지만, 괜히 이웃분들께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저어되었다. 쉬이 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는데 침묵하던 부팀장이 앞집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늘 씨가 이런 걸 받게 되면 문제가 커져서요.”

“아, 오가다 하늘이랑 같이 출퇴근하는 거 몇 번 봤습니다. 회사 동료분이시죠?”

“예. 저는 서울시 헌터부 부팀장 부유진이라고 합니다.”

“부 부팀장님, 반갑습니다. 저는 여기 하늘이 맞은편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하늘이가 애가 참 착하거든요. 뭐든 터득하면 곧잘 하고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갑작스럽게 이어진 통성명에 이어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아저씨를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악수를 한 두 사람이 이윽고 날 바라보자 그들과의 거리를 좀 더 좁혔다.

“저거 퇴근하면 치운다고? 몇 시에 퇴근하는데? 시간 맞으면 좀 도와줄게.”

“아니에요. 그냥 오가다 말씀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일단 알았어. 이쪽은 나랑 어르신들한테 맡기고. 챙겨가거나 하면 안 되는 물건 맞지?”

“네.”

마음 같아선 이웃들에게 나눠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저걸 내가 받았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시나 해 부팀장을 보자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내 생각이 맞았다. 한 번 더 아저씨에게 물건들을 챙겨 가면 안 된다 말을 전하곤 출근길에 올랐다.

“이 동넨 아직도 정이 많은 것 같군요.”

“네. 큰일이 있거나 하면 다들 모여서 함께 치르곤 해요. …그래서 예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정말 크게 도움 받기도 했고요.”

다른 동네였다면 혼자 아무것도 모른 채 발만 동동 굴렀을 것이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니 이 동네가 얼마나 좋은 동네인지 한 번 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움직인 김세현을 향한 고마움이 재차 샘솟기도 했고 말이다.

“집에도 이렇게 물건이 오는 걸 보니 오늘은 사무실에 어느 정도 왔는지 파악부터 해야겠습니다. 사무실로 보내던 걸 집으로 보내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막 김세현을 떠올리는데, 부팀장이 바로 내 정신을 현실에 붙잡아놓았다. 그래, 지금은 김세현보단 내 앞에 뜬금없이 나타난 가시밭길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와 관련된 생각은 아주 조금 뒤로 미뤄도 되었다.

어느새 골목길을 벗어난 차가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다. 나는 부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사무실로 오는 것보다 집으로 오는 게 더 나은 거 같아요. 사실…. 요즘 새로 온 분들이 제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좀 고민되었지만, 어쩌면 부팀장에게서 조언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빤히 그를 바라보자 전방을 주시하던 부팀장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해왔다.

“일반인도 S급 헌터에게 연을 대고 싶어 하지만, 헌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김세현은 곁에 사람을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터라 아마 질투하느라 그런 걸 겁니다.”

“아….”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질투했던 자신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김세현이 하늘 씨 앞에서는 고분고분하지만, 다른 이들 앞에서는 정말 인성이 글러 먹어서 말입니다.”

인성이, 글러 먹었다니….

김세현을 이야기할 때 간혹 강한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는데, 이 순간일 줄은 몰랐다. 놀라 부팀장을 바라보자 그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그래도 조금씩 개과천선하는 느낌이라 다행이긴 합니다. 그래서 다들 하늘 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는 걸 테지만요.”

마치 나로 인해 김세현이 바뀌고 있단 말로 들렸다. 민망한 웃음을 흘리자 부팀장이 말을 이었다.

“뭣하면 김세현에게 말을 흘리는 것도 괜찮겠군요. 알아서 다 처리해 줄 테니까요.”

“그건 좀….”

김세현과 어떻게든 해 보려는 이들이 보낸 물건들이었다. 한 다리 걸치고서라도 그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이들인데, 괜히 김세현이 나섰다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차라리 내 선에서 정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난감해하는데, 부팀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입니다. 김세현도 관망 중일 테니 지나치다 싶으면 알아서 개입하던지 할 겁니다. 따로 하늘 씨가 말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관망, 이라….

그러고 보니 협회 건물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던 날 김세현에게 나중에 말하자는 말을 건넸었지.

언제까지 기다리느냐 물을 때만 해도 잔뜩 시무룩한 얼굴이었던 김세현은 내가 걱정하고 있단 말을 들은 순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활짝 폈다. 이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무척 기분이 좋아진 모습으로 날 팀장이 있는 곳까지 바래다주곤 돌아갔지.

그리곤 연락 한번 오지 않았고.

“……”

알고는 있었다. 지금은 김세현이 기다릴 때고, 내가 먼저 연락해야만 한다는 걸 말이다. 알고는 있는데, 막상 연락이 오지 않으니 기분이 좀 그랬다. 부팀장이 표현한 것처럼 김세현이 현재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다.

평소엔 툭하면 전화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도 계속해서 연락해 오더니, 이번엔 왜 이리 조용한 건지 모르겠다.

사실, 알고는 있었다. 김세현이 쉽게 행동할 수 없단 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완 달리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김세현의 행동에 괜히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오려는 나도 내 속을 모르겠다.

이런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오늘따라 출근길은 제법 한산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차창 너머를 바라보며 나조차도 짐작하기 힘든 감정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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