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89)화 (189/246)

186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퇴근길에 부팀장에게 의문의 시선에 관해 물어보고자 했던 내 다짐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차에 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로 곯아떨어진 게 그 이유였다.

꾸벅꾸벅 졸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파드득 몸을 떨며 일어났지만, 제법 많이 졸았는지 이미 집 근처까지 온 상황이었다.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데 운전석에서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운전하는 사람 옆에서 자면 예의가 아닌데, 죄송해요.”

나만 피곤한 것도 아닌데 혼자 너무 티를 낸 기분이다. 민망함에 연거푸 사과하자 부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따라 차도 막히지 않아 금세 도착했어요.”

“…….”

금세라곤 하나, 시간을 확인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시간이 되도록 집에 당도하지 못했다는 건 평소보다 차가 제법 막혔음을 의미했다.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사이 차가 집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내일 얼마나 물건들이 올진 모르겠지만, 내일부턴 바로 쓰레기로 분류해서 버리면 되니 어제오늘만큼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네. 일단 어제오늘 도착한 건 이번 주까지만 지켜보고, 다음 주엔 다 버리려고요. 팀장님이 다음 주 금요일까지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그 전부터 치워볼까 하고 있어요.”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워낙 많은 양이었던지라 그대로 계속 쌓아 둔다면 미관상 좋지 않았다. 부담감도 상당했고 말이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좀 더 일찍 출근할까요?”

집과 가까워지자 점차 속도를 줄이며 부팀장이 의견을 냈다. 확실히 일찍 가서 정리하는 건 좋은 생각이었지만 나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닌지라 걱정이었다. 이윽고 차가 집 앞에 멈춰 서자 부팀장에게 되물었다.

“저야 좋지만, 부팀장님은 괜찮으세요?”

다른 날도 아닌 월요일인지라 심적인 부담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내 이런 걱정과는 달리 부팀장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침잠이 별로 없어서 일찍 일어나는 편입니다. 하루만 일찍 출근하면 되니 문제 될 것도 없고요.”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나는 고갤 주억이며 말을 이었다.

“좋아요. 대신에 일찍 이동하는 만큼 제가 간단히 아침이라도 대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카풀이야 매달 일정 비용을 드리고 또 가끔가다 음료를 산다든지 하며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지만, 다음 주 월요일 조기 출근은 순전히 날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대접하는 게 마땅했다.

“좋습니다. 그럼 월요일 출근길에 간단히 먹을 걸 사 가는 걸로 하죠. 지난번에 들렀던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되겠군요.”

“아침부터 버거류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번거로울까 싶어 버거를 먹자고 하는 거라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혹시나 해 물어보자 부팀장은 고갤 저었다.

“지난번 일은 간혹 있던 배앓이였을 뿐이지 평소에도 제법 즐기곤 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일단은 아침에 버거 먹는 거로 하고, 그날 부팀장님 컨디션 보면서 우리 메뉴 다시 결정해요.”

나야 워낙 튼튼한 위장을 지니고 있어 아무거나 먹어도 문제없었다. 내 제안을 들은 부팀장이 고갤 끄덕이는 걸 확인하곤 안전띠를 풀어 차에서 내렸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 봬요.”

“예. 먼저 들어가요. 보고 가겠습니다.”

“네.”

“그럼 내일 봅시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 현관문 단속을 꼼꼼히 한 뒤 거실로 가 큰 창 커튼을 젖혔다. 먼저 들어가란 말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 걱정이 되었던 건지 이제야 부팀장의 차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골목에서 차 불빛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도로 커튼을 치고 뒤돌아섰다.

“후우.”

오는 길에 잠깐 눈을 붙여서일까, 기운이 나는 것이 아무래도 저녁을 먹고 대충이나마 집 정리를 해도 될 듯했다.

“아….”

정리란 단어에 돌연 사무실에 가득 쌓인 물건들이 떠올랐다.

“언제쯤 가져갈 생각들이지.”

어제오늘 정말 열심히 정리하고 전화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물건들을 찾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뇌물을 먹이려고 했던 게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주저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걱정이라면 처음부터 선물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일을 저지르고 모르는 체하는 건 정말 별로였다.

이미 바닥을 친 이미지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을 향한 호감이 땅을 뚫고 들어가는 것만 같다. 덩달아 기분조차 저조해지는 느낌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씻자!”

이런 기분일 땐 씻는 게 최고였다. 정리 후 청소하려 했지만, 간단히 정리하는 정도니 씻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나는 곧바로 갈아입을 옷을 챙겨다 욕실 앞에 두곤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탈의를 마친 뒤 샤워기 아래 섰다.

“…….”

그러고 보면 이 행동도 제법 몸에 밴 모양이다. 몇 번 욕실 안에서 탈의했다고 자연스럽게 안에서 벗고 말이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욕실을 채우는데, 그 소릴 들으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물론, 따뜻한 물을 맞고 서 있는 것도 한몫하는 중이었다. 이젠 피로만 가시면 되는데, 여느 날처럼 피로가 좀처럼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몸이 풀리기만을 고대하며 어제오늘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복기해보는데, 요 며칠 신경 쓰이던 상황이 퍼뜩 떠올랐다. 다름 아닌 새 팀원들의 반응이었다.

“…….”

김세현과 친분이 있다는 게 알려진 직후부터 묘하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 그들이었다. 날이 지나면 좋아지겠거니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반응은 심해질 뿐이었다. 아예 날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듯 시선도 마주하려 들지 않았고, 말을 섞는 것조차 조심했다. 가끔 말을 할 때면 부러워하는 듯 아닌 듯한 모호한 말을 내뱉기 바빴고 말이다.

“하아.”

그 묘한 시선을 떠올리니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피로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괜히 생각을 깊게 했나 싶어질 지경이다. 이 이상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면 깊이 땅굴을 파고 들어갈 것만 같단 생각에 샤워기 밸브 쪽으로 손을 뻗었다. 빠르게 뒷정리 후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고 몇 분이나 흘렀을까, 조금씩 허기짐이 느껴졌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부엌으로 가 반찬거리를 꺼내고 밥을 풀 때였다.

띵동-

“음?”

집이 조용해서인지 몰라도 다른 날에 비해 초인종 소리가 무척 크게 느껴졌다. 혹여 택배를 시킨 게 있었나 싶었지만 최근 뭔갈 주문한 적이 없기에 그 예상안은 바로 배제되었다. 이 시간에 올 게 있나? 그게 아니라면….

“아!”

혹시 부팀장이 다시 온 걸까?

따로 먹은 건 없었지만 혹시 몰랐다. 점심으로 먹은 게 탈이 난 것일지도 말이다. 나는 빠르게 현관 쪽으로 가 인터폰 버튼을 누르며 밖을 확인했다.

“…누구십니까?”

당연히 부팀장일 줄 알았건만, 시야에 들어온 건 헬멧을 쓴 채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낯선 이였다.

- 택뱁니다.

“죄송하지만 택배 부른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습니다만.”

만에 하나 내가 택배를 주문하고 잊었다고 한들 배송 시 핸드폰으로 연락이 들어와야 마땅했다. 그뿐이랴, 지인이 보낸 것이었다면 미리 연락을 해 줬을 터였다.

요 며칠 사무실로 찾아온 이들을 봤기 때문일까, 저 사람 또한 그와 관련된 일로 날 찾아온 듯했다. 그래, 사무실뿐만이 아니라 집으로도 올 수 있단 말을 들은 터라 더더욱 의심되었다.

- 연하늘 씨 댁 맞습니까?

“맞습니다만.”

- 다른 게 아니고, 연하늘 씨 앞으로 택배가 와서요. 나오기 곤란하시면 밖에 두고 갈까요?

“수령하지 않겠습니다. 돌려보내 주세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손에 든 물건과 인터폰 카메라 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이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해 왔다. 수고하시란 말과 함께 인터폰을 끄고 다시 부엌으로 가 앉는데,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

혹시나 했는데, 막상 배달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도대체 S급 헌터가 뭐라고 사람들이 나를 통해 김세현에게 연줄을 놓아 보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걸까.

S급 헌터를 알고 지낸다는 게 자랑스러운 일임은 맞았다. 하지만 그걸 과시한다거나 인연을 이용해 김세현에게 무언가를 바란다거나 했던 적은 없었다. 물론, 그에게 바랐던 건 있었지만. 지금 내게 접근해 오는 이들이 바라는 것과는 시작점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밥이나 먹자.”

저들을 상대할 바에야 밥을 먹는 편이 내게 더 이로운 일이었다. 혹여 방금 전처럼 집 앞에 물건을 두고 가거나 할 시엔 벽과 대문에 사무실 건물에 붙여 둔 것과 같은 문구를 적어 버리면 될 일이었다.

밤에 경고문을 적어 두었다가 내일 출근길에 좀 일찍 나가서 이곳저곳에 붙여 둬야겠다 다짐하며 식사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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