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이 정도라면 시선이 느껴졌을 법도 한데 두 사람은 좀처럼 나와 마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내 쪽에서 모니터가 보이는 방향에 자리한 이는 컴퓨터가 켜져 있지도 않은데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시선을 악착같이 피하고 있었다.
“…….”
현장에 나가며 얼굴을 익힌 다른 팀원들과는 달리 이들은 나와 여기서 만나는 게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있긴 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인사조차 나누기 어려울 만큼 경직되어버린 관계가 참 그랬다.
같은 공간, 그것도 같은 팀이 된 상황에서 저들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었다. 하지만 마냥 의식하며 눈치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내 앞엔 처리할 게 태산이었다. 다시 마음을 다독이며 일에 집중하려는데, 재차 출입문 쪽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이번엔 또 누굴까 했는데 팀장이 들어오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 그가 끄덕이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아아. 그나저나 밖에 쓰레기가 더 많아졌네?”
“네. 좀 많이 버려야 할 거 같아요.”
“…하긴. 손이 많이 갈 거 같긴 하더라.”
내가 버린다고 할 줄 몰랐는지 눈이 커졌던 팀장이 웃어 보였다. 그를 따라 웃는데 이번엔 서강민과 박 주무관이 함께 출근했다.
“어휴, 오늘은 더 왔네요? 어제 그렇게 가지고 가라고 연락 돌렸는데 챙겨 가지도 않은 거 같고요!”
“좋은 아침입니다.”
오자마자 혀를 차는 박 주무관과 모두를 보며 인사말을 던진 서강민 역시 자리로 가 짐을 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오자 사무실이 제법 찬 느낌이 들었지만, 빈자리가 있어서인지 몰라도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바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인 건가 하며 피식 웃는데 서강민이 날 불렀다.
“하늘 씨.”
“네, 말씀하세요.”
“저는 오늘도 도울 수 있으니 꼭 불러 주세요.”
“그럴게요.”
도와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윤 없었다. 더군다나 어제도 서강민이 손을 보태준 덕분에 보다 빨리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고 말이다.
“오늘 나는 일 처리하고 합류할게.”
“네, 감사해요.”
어제에 이어 박 주무관 역시 도와주려는 모양이다. 고마움을 표하며 웃는데, 마지막으로 강승빈과 함께 새로 합류한 팀원이 출근했다.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할 시간인지라 두 사람이 빠르게 짐을 풀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팀장을 바라보자 그의 시선이 벽시계로 향해 있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짐 정리를 마치자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다이어리를 펴며 이어질 조회에 집중했다.
“일단, 어제 퇴근길에 받은 연락부터 전달할게. 세계헌터협회에서 헌터부로 오기로 했던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해. 이윤 전달되지 않았지만, 속보가 뜨던 날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큰 영향을 끼친 거 같기는 하더라고.”
“밖에 잔뜩 있는 쓰레기들이 매체에 찍히면 곤란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
물건에 집중하느라 세계헌터협회가 헌터부에 방문할 예정이었다는 걸 깜빡했다. 혹시 깜박한 다른 게 있진 않을까 기억을 더듬는데, 이번 주 중에 회식하기로 한 것이 기억났다. 나는 곧바로 손을 들었다.
“팀장님, 점심에 회식하기로 한 건 언제 준비하면 될까요?”
“그러지 않아도 그 말 하려고 했어. 다들 오늘 점심 따로 약속 있는 사람 있어?”
“없습니다!”
“저희도 없습니다.”
팀장의 말에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팀원들이 하나같이 일정이 없음을 알렸다. 그에 팀장이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 그럼 오늘 점심에 회식 진행하는 걸로 하자! 자린 대충 그때 가서 정리해 보자고. 매번 공간이 부족해서 각자 자리에서 먹었는데, 오늘은 같이 먹어야지!”
“좋습니다!”
“참, 팀장님. 저기 밖에 있는 쓰레기 말인데요. 아까 먼저 출근한 팀원들이랑 이야기했는데, 쓰레기는 받지 않는단 문구 적어서 엘리베이터랑 사무실 층 복도, 그리고 사무실 문 앞에 붙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점심 이야기가 끝나자 한 주무관이 곧바로 경고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경청하던 팀장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갤 끄덕이며 반색했다.
“그거 좋지! 내가 건물주한테 연락 넣을 테니까 대문짝만 하게 적어 붙이자고!”
“예!”
혹여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자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다. 한 주무관과 부팀장, 그리고 김 주무관과 시선을 교환하며 이어진 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아침까지 도착한 쓰레기는 어제처럼 연락 돌리고 리스트 만들자고. 이후 도착하는 건 곧바로 버리는 것으로 하지.”
“예!”
“그리고…. 부팀장이랑 연 주무관은 D-15 현장 언제 갈 예정이야?”
“세계헌터협회가 돌아가면 가보려 하고 있습니다.”
“하긴, 불필요한 접촉은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자, 그럼 오늘도 모두 고생하고! 오늘 점심은 따로 의견 모으지 않고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해서 먹도록 하자고! 아, 11시 즈음해서 메뉴 취합할 테니까 서강민 씨가 정리해서 주문해.”
“알겠습니다, 팀장님.”
“이상!”
언제나처럼 짤막한 조회를 마친 팀장이 자리에 앉아 일과를 시작한다. 그 모습에 나도 정신을 차리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
이제 3시간 후면 점심시간이었다. 그 전에 할 일을 해치우려면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이 필요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곤 하던 일과 더불어 오늘 처리할 일들을 체크한 뒤 빠르게 처리해 나갔다.
점심시간 전까지 일을 마치겠단 내 다짐은 음식이 도착하기 딱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지킬 수 있었다. 신문지를 바닥에 깐 뒤 모여앉아 함께 식사하고 바로 복도로 나와 정리하다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어제분에 이어 오늘 도착했던 물건들까지 정리를 마치니 어수선하던 복도가 제법 봐줌 직해졌다.
나는 뻐근해진 허리를 쭉 펴며 스트레칭을 하고는 곧바로 도움을 준 팀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도 감사드려요. 덕분에 빨리 정리할 수 있었어요.”
“뭘. 팀원이 곤란해하는 상황에 돕는 건 당연한 거지!”
“아무렴요! 우리도 항상 네 도움 받고 있는데, 손 보태는 건 당연한 거야!”
딱히 내가 뭘 했나 싶기도 했지만, 이리 말해 주니 고마운 마음이 더 커졌다. 진심을 가득 담아 팀원들을 보자 눈이 마주치는 이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감동할 일이야?”
“하여간 우리 막, 연 주무관 덕에 웃습니다, 웃어요!”
이런 일은 당연히 감동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날 보며 웃기 바쁜 팀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김 주무관이 말을 꺼냈다.
“벽에 택배나 퀵 사절한다고 붙인 거 효과가 있긴 하네요. 아까 정리하는데도 몇 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닫히길래 가서 확인해 봤거든요. 몰래 두고 갔나 싶었는데, 그런 건 없더라고요.”
“글귀도 그렇고 사람들이 치우는 걸 보면서 돌아간 게 아닐까 싶네요.”
혹여 글귀를 보지 못했다고 한들 저 말처럼 사람들이 정리하는 걸 보곤 뭔가 싶다가 문구를 보고 돌아간 이들도 있을 듯했다. 고개를 주억이며 맞장구를 치는데, 한 주무관이 기지개를 켠 뒤 의견을 냈다.
“오늘 밤에 도로 가져갈 사람도 몇 있겠고. 퀵 배달원과 배달기사, 그리고 물건 가지고 왔던 이들 입소문 타면 쓰레기 더 안 받겠다는 의사가 확실하게 전달되겠는데?”
“그래도 놓고 가면요?”
“뭘 어째. 그냥 버리면 되지. 이쪽은 분명히 버린다고 경고했으니 문제 삼지도 못해.”
“내일은 종량제 봉투 좀 챙겨 올게요.”
물건을 버리려면 종량제 봉투가 제법 필요할 것이었다. 군데군데 과일이나 건강기능식품이 든 것들도 있어 이 또한 제대로 처리하려면 봉투가 필수였다.
“사무실에 많은데 굳이 챙겨 오려고?”
“비품이잖아요. 제 앞으로 온 건데 제가 처리해야죠.”
한두 장 쓰고 마는 거라면 사무실에 있는 쓰레기 봉투를 사용했겠지만, 한두 장으론 어림없었다. 물론, 한두 장으로도 가능한 방법이 있긴 했다. …밤에 저 물건들 대부분을 도로 찾아간다면 말이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나중에 저거 정리할 때도 같이 하자.”
“저도 돕겠습니다, 하늘 씨.”
한 주무관의 말에 이어 서강민 역시 말을 얹었다. 오늘도 그의 도움이 컸던 터라 그저 말뿐이라도 고맙기만 했다. 나는 서강민을 비롯한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
“정리 다 끝났어?”
“예.”
“그럼 퇴근하는 길에 건물 출입문에도 붙이자고. 안 그래도 막 건물주한테 답장 왔어. 나중에 처리만 잘하라네.”
건물주에게까지 허락받았다니 이보다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출입문에 붙일 건 퇴근하며 직접 붙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가 앉는데, 앉자마자 앓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으으.”
함께 고생한 이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데, 혼자 이렇게 소리를 내니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집에 가서 파스 붙여야 하는 거 아냐?”
생각보다 큰 소리를 냈는지 퇴근 준비를 하던 한 주무관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온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바로 해 앉았다.
“내일 보면서 붙이든가 할까 봐요.”
“조금만 더 고생하자.”
택배 사절이라고 적어서 붙여뒀으니 앞으론 오늘처럼 물건이 많이 온다거나 하진 않을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관심도 차차 사그라질 테고 말이다.
“네.”
“자, 다들 퇴근 준비들 하자고! 저기 밖에 있는 쓰레기는 일단…. 다음 주 금요일까지 뒀다가 주말에 치우는 것으로 하자. 음식물은 그 전에 치워야겠지만 말이야.”
“네!”
퇴근 준비하란 팀장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 역시 책상 위를 정리하고선 짐을 챙기는데, 누군가가 날 바라보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새로 온 팀원들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각자 짐을 챙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다른 사람인가 싶어 같이 살폈지만, 날 바라보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착각이라고 하기엔 시선이 너무 강렬했던 터라 뭔가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아니지, 얼마 전 김세현이 일을 벌일 때에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긴 했다. 물론 그땐 팀원 전체가 반응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날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부팀장에게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마저 퇴근 준비를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