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줄 대 보려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현금을 보내?”
난데없이 현금 이야기가 거론된 연유를 모르겠다. 의아한 눈으로 팀장을 바라보는데, 순간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면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바로 돈이 든 상자를 건네는 그런 모습이 말이다.
“…….”
어째서 팀장이 저걸 받지도 않고 그대로 돌려보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저런 건 바로 돌려준다고 한들 받는 것 자체부터가 위험했다.
방금 돌려보낸 상자도 그렇고, 복도 한쪽을 가득 채운 저 선물들도 그렇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것들을 보내는 걸까. 내가 침묵하면 김세현에게 닿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한참을 그렇게 정리 중인 선물 아니, 물건들을 둘러보던 나는 이내 생각을 정리하곤 입을 열었다.
“저 이거 보낸 사람들 기억하고 있을까 봐요.”
“뭐?”
“기억해서 뭣 하려고? 그냥 잊어!”
내 말이 의외였는지 함께 복도에 나와 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것이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곤 예상치 못한 듯했다. 입만 벙긋거리며 날 바라보는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 그리고 묘한 시선을 보내 오는 서강민까지 보곤 마지막으로 팀장을 바라보았다.
“기억했다가 뭐 하려고?”
눈이 마주치자 팀장이 바로 물어 왔다. 나는 뜸 들이는 것 없이 즉각 답했다.
“피해야죠.”
김세현의 눈에 들고자 한다면 주변인인 나를 공략하는 것보단 본인에게 직접 다가가는 게 더 나았다. 나보단 본인에게 말하는 편이 통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더군다나 김세현을 말리보려 했던 게 불과 어제 일이었다. 제아무리 소문이 빨리 난다곤 하나 바로 다음 날 선물을 보낼 정도라면 건수가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물건을 보내 환심을 사 보고자 하는 이들일 확률이 높았다.
“하, 놀랬잖아!”
“난 또 몰래 받으려는 줄 알고 식겁했네!”
과장되게 느껴질 만큼 격하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보니 괜히 서운했다. 여기저기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치는 팀원들의 모습에 절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슨 무슨 법 때문에 그런 거 받으면 안 돼요. …받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함께 지내 온 시간이 얼마인데, 오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서운한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도 그럴 생각이 없단 뜻을 전달하자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또 속지, 속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럴 리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잘 알지!”
“…….”
두 사람의 얼굴에 짓궂음이 묻어나는 게 농담이었던 듯했다. 의심한 게 아니었다고 하니 괜히 안도하게 된다. 크게 숨을 뱉자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자, 대화도 끝난 듯하니 마저 정리해서 리스트 안으로 보내.”
복도에 나온 이들 모두에게 말을 건넨 팀장이 이번엔 날 바라보았다.
“부팀장한테 말해서 리스트에 간단하게 어떤 사람인지 체크도 해 둘 테니까 그거 참고하고.”
신경 써 주는 것도 고마운데,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표시해 주다니. 사람을 찾아보고 할 시간을 줄여주고자 하는 팀장의 배려가 그 어느 때보다 고마웠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인사는 이거 전부 처리한 다음에 한꺼번에 해. 먼저 들어갈 테니 마저 하던 일 하고.”
“옙!”
말을 마친 팀장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문을 반쯤 열어 둔 채 자리로 돌아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물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제법 많이 정리했다 여겼는데 아직도 체크할 게 제법 남아 있었다. 이전 같았다면 절로 한숨부터 나왔겠지만, 팀장의 호의 어린 말을 듣고 나니 저 정도 양은 금세 정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른 이쪽 일은 마무리하고 남은 건 함께 정리한 뒤 들어가야지. 그리고 고생한 팀원들에게 한 번 더 커피를 돌리며 고맙다고 해야겠다. 나는 크게 심호흡한 후 마저 물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후우.”
“드디어 끝이네요.”
마지막 물건까지 체크를 마치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만도 했다. 물건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드링크 박스처럼 퀵으로 배달 온 것들이 많아 그걸 상대하고 마저 정리하는 일은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피로했으니까.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굳은 몸을 푸는 팀원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건넸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뭘.”
“나중에 내게 이런 일 생기면 그때 손 보태 줄 거지?”
한쪽 눈을 찡긋거린 박 주무관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굳이 답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순 없었다. 나는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당연하죠.”
“난 안 하련다! 솔직히, 박 주무관에게 이런 일이 생길 리 없잖아?”
“그렇긴 하죠. 김 주무관님한테도 이런 일은 없을 테니 우리 서로 돕지 않는 걸로 하죠!”
“좋지!”
…하여간 장단이 잘 맞는 두 사람이다. 어느새 어깨동무까지 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자 두 사람의 입가에도 장난기가 다분한 미소가 번졌다.
“하늘 씨, 혹시 더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최대한 돕겠습니다.”
두 사람 곁에 조용히 있던 서강민 역시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보탰다. 그를 보고 또 서강민의 등 뒤로 차곡차곡 정리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자 기분이 참 묘했다.
서강민이 없었다면 아직도 저걸 정리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일련의 과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그가 속도를 내어 체크해 준 터라 예상보다 일찍 끝난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야말로 큰 도움 받았어요.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내 인사를 받은 서강민의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저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싶어 빤히 그를 바라보는데 박 주무관이 불쑥 내 앞에 와 섰다. 그러더니 김 주무관에게 말을 건넸다.
“자, 이제 인사도 나눴으니 바로 들어가죠.”
“이 이상 늦어지면 팀장님이 한마디 하실 수도 있어.”
“네.”
그러지 않아도 들어가려 했다. 고개를 주억이며 안으로 들어서자 사무실 내에 있던 팀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좀 더 늦으면 한마디 하려 했는데, 제때 들어왔네.”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팀장이 손에 든 서류를 바라보며 턱짓했다.
“저희 눈치가 예사 눈치가 아니긴 하죠. 하하!”
“됐고, 다들 자리로 가서 할 일 있으면 마저 처리해.”
“예!”
팀장의 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나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다가 모두에게 말을 건넸다.
“커피 드시겠어요? 자리로 가기 전에 한 잔씩 드리려고요.”
“오, 좋지!”
“저도 부탁드립니다.”
커피 이야기를 꺼내자 여기저기서 한 잔 부탁한단 말이 들려왔다. 물론 침묵하는 이들도 있었다. 새로 온 팀원들, 그러니까 서강민과 강승빈을 제외한 세 사람이 조용히 날 바라보는 걸 발견하곤 그들에게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커피 드시겠어요?”
“괜찮습니다.”
“…네.”
묻자마자 바로 괜찮다며 손사래부터 친다. 모두가 마셔야 하는 법은 없었지만, 어째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들을 보다가 정수기로 걸음을 옮겼다.
“…….”
너무 넘겨짚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건 바로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도 그럴 게 내게 호감을 내보이던 새 팀원이 날 탐색하기 시작한 것을 착각이라 여기기엔 그 눈빛이 너무 강렬했으니까.
날 보는 눈빛이 변한 건 어제 김세현을 만난 이후부터였다. 그리고 복도 한쪽에 쌓인 저것들을 보며 좀 더 강렬해졌지.
S급 헌터가 대단하긴 했지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반응인 걸까. S급 헌터는 내가 아닌 김세현인데 말이다.
복잡한 마음을 담아 커피를 타 팀원들에게 건네곤 자리로 돌아와 앉자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정이 치솟았다. 모두에게 방해가 될까 작게 숨을 뱉는데, 부팀장 쪽에서 서류철이 넘어왔다.
“체크 리스트입니다. 물건들은 내일 아침까지 가져가지 않으면 전부 버리겠다 해 뒀으니 가져갈 사람들은 가져갈 겁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이것도 받아.”
“네.”
부팀장에 이어 팀장도 정리된 리스트를 준다. 두 리스트를 받아 보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적혀 있었다. 나는 놀라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 이상은 알아서 찾아봐. 정 못 찾겠으면 물어보고.”
“그럴게요.”
이 정도만 해도 이미 과분할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좀 심란했는데, 두 사람의 호의가 가득 담긴 걸 받으니 이보다 기분이 좋아질 순 없었다. 웃으며 답하자 팀장이 픽 웃어 보였다.
“얼른 일이나 해.”
일은 당연히 할 것이었다. 새 팀원들이 보내는 시선에 조금 의기소침해졌지만, 이렇게 날 신경 써 준 두 사람을 생각하니 없던 기운도 절로 솟아났다. 나는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아마 한동안 이런 일이 많을 거야. 집으로 쓰레길 두고 가려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항상 경계하고. 되도록 집 안에 들이지 마.”
집까지 저걸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니.
그저 듣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부담감이 상당했다. 절로 굳어 가는 얼굴이 느껴지는 와중에 부팀장이 말을 얹었다.
“집에만 들이지 않으면 됩니다. 되도록 대문 안쪽으로 물건 들이지 마십시오.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현관문 안으로만 들이지 않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
집 안에만 들이지 않으면 된다 말하는 부팀장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가 싶었지만, 저리 확신하는 걸 보면 그만큼 믿을 수….
“아.”
설마, 그런 걸까?
순간 떠오른 생각에 놀라 부팀장을 다시 보자 그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짐작한 내용이 부팀장과 같은 것일까 싶었는데, 저리 확신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그게 맞는 듯했다.
집 밖 곳곳에 포진해 있는, 김세현이 설치해 둔 카메라가 도움이 될 줄이야.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 이럴 때 역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도착할 물건들에 대한 마음가짐이 조금 가벼워져 좋았다.
“…….”
마음이 놓여서일까, 집으로 찾아올 이들도, 물건도 두렵지 않았다. 모르는 체하고 또 돌려보내고 하다 보면 으레 일은 해결될 터였다.
나는 크게 심호흡한 뒤 남은 일과를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