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85)화 (185/246)

182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어제 퇴근길에 부팀장이 주변이 시끄러워질지도 모른단 이야기를 나눈 뒤 어느 정도 마음을 먹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번잡스러워질 줄은 미처 몰랐다.

“…….”

부팀장과 함께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펼쳐진 눈앞의 광경에 나는 말을 잃었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하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꽃바구니 하나와 화환 하나론 비빌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땐 그나마 사무실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저걸 둘 공간조차 없었다. 새로 온 팀원이 없더라도 저 많은 것들을 사무실에 보관하긴 무리였다. 나는 부팀장이 떠미는 손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좀 더 자세히 복도 상황을 살폈다.

복도 양옆으로 선물 박스들과 꽃바구니, 과일바구니 등 수많은 물건이 나열되어 있었다. 쌓인 물건들이 주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말없이 부팀장과 함께 사무실로 이동하는데, 물건들이 거기까지 끝없이 줄지어 있을 정도였다. 그래, 마치 우리 사무실에 이것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듯 말이다.

“생각보다 많군요.”

말을 잃은 나와는 달리 부팀장은 전혀 놀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예상한 듯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해 출입증 카드를 찍는 부팀장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자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휘어졌다.

“하늘 씨는 모르겠지만, 그간 조용했던 게 이상했던 겁니다. 보통 S급 헌터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지면 여기저기서 줄을 대보려 선물 공세가 이어지곤 합니다. 아마 저기 도착한 선물 중에는 정치인이 보낸 것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이게, 전부 저한테 온 게 맞단 말씀이세요?”

“예.”

“…….”

예상은 했지만, 내게 온 게 맞다고 확인받으니 충격이 더 커진 기분이다. 멀거니 복도 양옆으로 쭉 나열된 선물들을 바라보는데, 부팀장이 문이 열렸다며 들어가자며 손짓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첫날부터 이러는 걸 보니 앞으로 도착할 양도 제법 될 것 같군요. 정리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겠어요.”

“…팀원들에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열심히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간에 내 앞으로 왔다면 마땅히 내가 정리해야 했다.

내 말을 들은 부팀장이 짐을 풀다 말곤 날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이윽고 피식 웃으며 고갤 내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쩔 수 없는 이를 바라보는 듯했다.

“우선 팀원들이 도착하면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죠. 아마 팀장님은 혼자 정리하겠다고 하면 성을 낼 겁니다. 가족인데 눈치 본다면서요.”

“아….”

“미안해할 필욘 없습니다. 저걸 보낸 사람들이 문제니까요.”

부팀장의 말마따나 저걸 보낸 사람들이 문제였지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물이랍시고 온 물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양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미안해하진 않았을 것이다. 침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팀원들이 하나둘 출근했다.

“와, 복도에 선물이 엄청나게 왔네요.”

“S급 헌터와 친분이 있으면 이래저래 혜택받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식의 선물도 존재하는군요.”

“어째서 사람들이 S급 헌터와 친분을 쌓아보고자 노력하는지 알 거 같습니다. 선물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겠는걸요?”

새로 들어온 팀원들이 내 눈치를 살피며 작게 소곤거렸다. 하지만 사무실이 크지 않아 그런 건지, 굳이 대화를 숨길 생각이 없었던 건지 내 귀에도 또렷이 들려왔다. 마치 내가 혜택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에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 말을 하는 것보단 팀원 전부가 모였을 때 말하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 듯했다. 그렇게 숨죽인 채 다른 이들의 출근을 기다리니 어느새 한 주무관과 강승빈을 제외한 이들이 자리를 채웠다.

슬슬 조회할 시간이 되었음에도 왜 이리 두 사람이 오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괜스레 출입문 쪽을 계속해서 힐끗거릴 때였다.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뗐다.

“오늘 조회는 아무래도 저기 밖에 있는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내용을 주로 해야겠어.”

“쓰, 레기요?”

“그건 연 주무관님께 우선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 선물들의 주인은 연 주무관님이잖습니까.”

팀장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새로 온 팀원들이었다. 어떻게 들으면 내 의견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지만, 혜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저 말속에 가시가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야 당연하지. 연 주무관, 저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새 팀원들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날 바라봤다.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곤 입을 열었다.

“우선, 보낸 분들에게 연락해 선물을 다시 돌려줄까 하고 있어요.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팀장님의 말마따나 폐기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긴, 그편이 나중을 생각하면 좋긴 하지. 연 주무관, 오늘 급히 처리해야 하는 거 있어?”

“아뇨. 이번 주는 없습니다.”

“좋아. 그러면 오전은 저거 처리하고, 오후에 일과 처리하면서 시간 나면 마저 마무리하는 쪽으로 해. 혹시 연 주무관 도울 사람 있어?”

“저 시간 됩니다!”

“저도 됩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 그리고 서강민과 부팀장이 손을 들었다. 헌터부 일도 아닌데, 이렇게 나서 준다니 정말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팀장이 사무실 안의 팀원들을 한번 쭉 훑어본 뒤 마지막으로 날 바라보았다.

“잘됐네. 때마침 나도 오늘 좀 한가해서 말이야. 오늘 중으로 최대한 저것들 처리하는 쪽으로 해 보자.”

“네!”

팀장까지 나서 준다면야 나야 좋았다. 고마운 마음을 듬뿍 담아 그를 바라보자 팀장의 눈가가 슬쩍 휘어졌다.

“흠, 흠! 조회는 이 정도면 되었고. 아, 이번 주 중으로 점심 회식하기로 한 거 잊지 말고 오늘 시간 조율해서 날 잡자.”

“예!”

“네!”

“그럼 바로 움직이자. 연 주무관은 사무실 출입문 쪽 선물이랑 보낸 사람 확인해서 기록하고. 박 주무관은 건너편 벽 쪽 물건 담당하도록 해. 그리고 서강민 씨는 박 주무관 쪽 물건 정리하는 거 돕고, 김 주무관은 연 주무관 쪽 물건 옮기는 거 돕도록 하지. 양쪽 다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면 바로 나랑 부팀장에게 명단 및 어떤 선물이 왔는지 알리고. 나랑 부팀장은 여기서 전화 돌리는 것으로 할 테니까.”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 팀장이 어서 나가 보라 손짓한다. 자리서 일어난 나는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곤 팀장이 지시한 대로 김 주무관과 함께 선물들을 확인하고 또 한쪽으로 정리하며 명단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잉여 명성에 비해 약하네요.”

“그치? 난 좀 더 거창한 것들이 오지 않을까 했거든.”

“이보다 더 거창할 수 있나요?”

내가 봤을 땐 이미 차고 넘치는 물건들이었다. 폐기란 말이 아까울 만큼 말이다. 물론, 아깝다고 해서 내가 쓰거나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것도 아닌데, 괜히 헛물켜며 설레는 건 정말 하릴없는 짓이었다.

빠르게 명단을 정리하다 보니 내 쪽도 그렇고, 박 주무관 쪽도 그렇고 정리된 내용이 상당해졌다. 나는 정리하다 말고 바로 박 주무관에게 가 손을 내밀었다.

“명단 주세요. 안에 전달하고 올게요.”

“오, 좋지! 여기.”

“네.”

박 주무관이 반색하며 정리한 리스트를 주었다. 그것을 받아 사무실로 들어가자 내 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한 주무관과 강승빈의 자리가 여태 비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팀장에게 그 두 사람의 출근 여부를 물어보았다.

“아, 전달한다는 걸 깜박했네. 한 주무관이랑 강승빈 씨는 오늘 좀 늦을 예정이야. 강승빈 씨는 병원에 들렀다 오기로 했고, 한 주무관은 오늘 오전 반차 써서 오후 출근하기로 했어.”

“그렇군요.”

혹여 어디 아프거나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고갤 끄덕이며 팀장과 부팀장에게 리스트를 건네곤 바로 복도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정리하고 또 리스트를 건네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윽고 복도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게 보였다. 좀처럼 줄지 않던 물건들이 정리되고 있단 티가 나니 괜히 기운이 솟았다. 잠시 휴식할 겸 함께 복도에 나와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커피라도 한잔하시겠어요?”

“오, 좋지!”

“저도 같이 돕겠습니다, 하늘 씨.”

“아니에요. 제 일 도와주시는 건데 제가 해야죠. 얼른 다녀올게요.”

“…그러시다면야.”

혹여 계속 같이 커피를 타러 가겠다고 하면 또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뻔했는데 다행이다. 서강민에게 눈인사를 건네곤 곧바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안의 사람들 몫까지 커피를 타 돌린 뒤 다시금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퀵 배, 달 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에서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걸어오던 이가 말을 하다 말고 멈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사무실 앞 복도를 가득 채운 물건들 때문인 듯했다. 자연스럽게 배달원의 손을 내려다보는데, 그의 손에는 생각보다 소박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피로 회복 드링크가 든 작은 박스를 옆구리에 든 이를 바라볼 때였다. 난데없이 박 주무관이 팀장을 호출했다.

“팀장님! 나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

드링크가 든 작은 박스일 뿐인데, 왜 호출하는 건지 모르겠다. 의아한 마음에 몸을 일으키는데 팀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뭐가 도착했길래 그….”

박 주무관을 보며 말하던 팀장의 시선이 이윽고 배달원에게 향하더니 말끝을 흐렸다. 박 주무관이야 그렇다고 쳐도 팀장까지 이런 반응을 보이니 당혹스러울 뿐이다. 침묵이 감도는 분위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 배달원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어떤 분이 보내셨나요?”

“아, 여기 보시면 보내는 분이….”

내 질문에 답하던 배달원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뿐이랴, 나 역시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눈을 끔벅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앞에 있던 배달원은 눈 깜박할 사이에 나와 상당히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더하여 배달원의 모습은 팀장의 몸으로 반쯤 가려진 상태였다.

“그거 우리 수령 안 하니까 그대로 다시 보낸 사람한테 돌려보내도록 해요. 배달비는 아마 거기서 알아서 낼 겁니다.”

“아, 그럼 미수령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예.”

팀장의 기세 때문일까, 배달원이 주춤거리더니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드링크가 든 박스에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이 또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이유가 말이다.

나는 천천히 뒤돌아서는 팀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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