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84)화 (184/246)

181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일까, 김세현의 폭주 아닌 폭주가 벌어졌던 이후로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퇴근 시간이 되었다.

혹여 김세현이 벌인 일이 매체를 타거나 하진 않을까 전전긍긍했지만, 통제가 잘된 건지 그와 관련된 기사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뿐이랴, SNS에서도 그 내용은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었다.

“…….”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워낙 큰일이기도 했을뿐더러 상황이 벌어졌을 때 김세현이 워낙 이곳저곳을 오간 터라 분명 그 모습을 촬영하거나 한 사람이 있을 터였다. 정말 통제되고 있는 거라면 시간이 좀 흐른 뒤에 그와 관련된 촬영본이 인터넷에 올라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시나 해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확인했는데, 다행히 아직은 별다른 건 없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마저 짐을 챙긴 뒤 마지막으로 사무실 창문 잠금까지 확인하니 어느새 팀원 모두가 퇴근 준비를 마쳐 있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부팀장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걷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보조를 맞춰 걷기 시작했다.

“하늘 씨.”

“아, 서강민 씨.”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강민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간혹 서강민이 먼저 말을 걸 때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친근하게 굴었던 적은 없었다. 가까운 거리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자 서강민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오늘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김세현 헌터와 친분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랬, 나요?”

“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 헌턴 특히나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는 편이라 많이 놀랐습니다.”

“아, 네….”

“오늘 상황은 정말 위험했습니다. 그래도 김세현 헌터가 평소완 달리 자제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역시 하늘 씨란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아마 김세현 헌터도 하늘 씨의 친절함을 알아본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서강민을 접하긴 했지만, 단연 이번이 가장 부담스럽다. 누가 봐도 연기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도, 행동도 모두 자연스럽지 않았다. 스스로는 알까, 자신의 행동이 무척이나 과장되어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서강민의 뜻이 명확하게 보였다. 내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기색을 감출 생각이 없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저 어색한 미소를 띤 채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 이후에도 서강민은 내게 잘 보이려는 노력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로 인해 엘리베이터 안이 조용해졌다는 것조차 모르는 기색에 나는 결국 그를 제지할 수밖에 없었다.

“서강민 씨.”

“네, 하늘 씨.”

“이런 이야기 나누는 거, 좀 부담스럽네요.”

“아….”

“제가 일부러 친분을 만든 것도 아닐뿐더러 세현 씨가 S급 헌터라고 해서 그 혜택을 제가 받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세현 씨는 세현 씨고, 저는 저일 뿐이에요.”

그래, 김세현이 S급 헌터라고 해서 내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었다. 그랬기에 서강민이 이렇게까지 내게 잘 보이려 할 필요도 없었다.

허를 찌르는 말이었으면 했는데, 내가 제법 잘 받아친 모양인지 서강민의 입이 굳게 닫혔다. 혹여 너무 대놓고 말했나 싶어 힐끔 바라보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강하게 말했나 싶어 이번에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

“어투가 좀 강했다면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조금 전과 같은 이야기는 자제해 주셨으면 해요.”

“…예, 조심하겠습니다.”

조심하겠다 답하는 서강민의 말이 영 의기소침하게 들렸다. 그렇다고 다시 괜찮다고 답하면 괜히 더 어색해질 것만 같았다. 내가 입을 다물자 엘리베이터 안이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정적은 잠시였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함께 타고 있던 이들과 건물을 빠져나왔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곤 부팀장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입 밖으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막상 한숨을 뱉자 왜 이리 마음이 복잡해지는지 모르겠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차 문을 열고 자리에 앉는데, 부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이젠 정말 사람 대하는 부분만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군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나완 달리 부팀장의 기분은 무척 좋아 보였다.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 때문일까, 술렁거리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다. 나는 덩달아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좀 믿음직스럽나요?”

“예. 물러설 자리가 아니라면 하늘 씨를 우리 헌터부 대표로 내보내고 싶어질 지경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네요.”

농담이겠지만 저런 말을 들으니 괜히 기운이 났다. 순간 서강민에게 시달렸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말이다. 벨트를 매자 부팀장이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천천히 움직이던 차가 이내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로에 진입했다.

“그건 그렇고 도로 복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다행히 출퇴근하는 길목 쪽으론 피해가 없어 편히 이동할 수 있었지만, 협회 건물 쪽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슬쩍 몸을 틀어 뒤를 보니 아직도 보수가 되지 않았는지 도로 한복판에 움푹 팬 구덩이가 보였다.

“아마 협회 측에서 시청으로 연락을 넣었을 겁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오늘 밤 안으로 잘 메꿔질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김세현도 그 와중에 다른 곳은 건들지 않고 도로에만 피해를 남겼더군요. 물론, 협회 건물이 부서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건 나도 확인한 상황이었다. 박 주무관이 촬영한 피해 현황을 봤는데, 인도가 아닌 정확히 아스팔트 도로에만 움푹 팬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물론, 협회 건물의 유리가 깨지며 오가던 몇몇 이들이 다치고, 또 협회 건물 근처에 유리 조각이 흩뿌려지기도 했지만, 큰 소리가 나던 것에 비해 피해 규모는 현저히 적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한데, 막상 물어보려니 주저하게 되네요.”

“기다리면 알게 될 겁니다. 김세현이라면 굳이 묻지 않아도 하늘 씨 앞에서 모든 걸 이야기할 것 같으니까요.”

과연 그가 먼저 내게 말을 꺼낼까 싶었지만, 부팀장의 말을 들으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세현이 제법 손 안에 사정을 뒀더군요. 다른 때 같았다면 이 근방이 초토화되었을 겁니다.”

“초, 토화요?”

내가 아는 김세현은 다른 이들에게 그리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성격이 도도하고 또 다른 이들을 깔보는 듯한 경향이 있긴 했지만, 힘이 있다고 그것을 마구 휘두르진 않았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상황이라 여겼는데 부팀장의 말을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운전하는 그를 보자 부팀장이 날 곁눈질하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하늘 씨는 모르겠군요.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선을 넘는 사람이 있으면 김세현이 봐주지 않고 본때를 보여 주곤 합니다. 그 본때가 예상을 뛰어넘는 선인지라 협회도 그렇고, 다른 헌터들도 그렇고 되도록 김세현을 터치하려 들지 않죠.”

“아….”

생각해 보면 나보단 헌터 생활을 오래 한 부팀장이 김세현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간 쌓아온 김세현의 이미지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다른 이미지가 쌓이는 걸 느끼고 있으려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래도 이젠 제법 눈치도 볼 줄 알게 되었군요. 무척 고무적인 일이긴 하나 본 사람이 많아 하늘 씨에겐 썩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치 이야기를 하던 부팀장의 목소리가 끝에 가서는 심각해졌다. 내게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에 고민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아니, 하나 있긴 했다. 서강민처럼 사람들이 부쩍 친근함을 표현하는 상황 말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곤란하긴 하겠지만 그 정도쯤은 이겨 낼 수 있었다.

“그래도 세현 씨가 다른 사람에게 밉보이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하늘 씨에게 피해가 올 수도 있다는데, 김세현부터 챙기는 겁니까?”

“저야 좀 시달리다 말겠지만, 세현 씨는 아니잖아요.”

한두 사람 정도야 무시해도 되었으나 많은 사람이 김세현을 싫어한다면 제아무리 S급 헌터라 할지라도 좋지 않았다.

“하늘 씨 말마따나 이번 일만큼은 김세현을 달리 보는 사람들이 제법 될 겁니다. 다른 때 같았다면 다 부쉈을 사람이 상하수도관처럼 도로 밑에 묻혀 있는 시설엔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겉으로만 흔적을 남겼으니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부팀장이 저리 말해주니 이보다 안심일 순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부팀장이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하늘 씨,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한동안 듣지 못했던 말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 답하자 부팀장이 핸들을 꺾으며 말을 이어 갔다.

“오늘 일 때문에 앞으로 주변이 시끄러워질 겁니다. 저도 그렇고 김세현이 폭주했다고 여기지 않았던 만큼 협회 측에서도 그런 판단을 내린 이들이 제법 될 겁니다. 평소와 다른 S급 헌터의 행보에 이율 찾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죠.”

이율 찾을 거라니.

“그런데 그 의문 속에 하늘 씨가 김세현에게 접근한 겁니다. 그리곤 얌전히 김세현이 돌아갔죠.”

부팀장의 말을 들으니 정말 상황이 내가 그 이유처럼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밀듯 찾아든 여러 걱정으로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어진 부팀장의 말에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

“팀장님도 그리 판단하셨을 겁니다. 새로 온 팀원들도 있고, 하늘 씨가 몸을 사리지 않아서 걱정되어 한 말이니 속에 너무 담지 않되, 꼭 기억하고 있도록 해요.”

상황이 이런데 당연히 기억해야 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좋아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부팀장이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나는 그를 따라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부팀장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일은 오늘 못지않게 더욱 스펙터클한 하루가 될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푹 쉬는 게 이득이었다.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자 다짐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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