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83)화 (183/246)

180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한 걸음, 한 걸음.

바닥에 한가득 깔린 유리를 밟고 그에게 다가가는데, 어째서인지 몰라도 웅성거리던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뿐이랴, 김세현을 경계하던 협회 측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 역시 자리에 멈춰 선 채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김세현에게 다가갈수록 주변 모두가 긴장하는 게 보였지만, 정작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세현 뒤로 보이는 이들을 한 번 훑어보곤 다시 그를 바라보자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당황하는데 마치 내게 못 볼 꼴이라도 보인 것처럼 보였다. 아무런 말 없이 거릴 좁혀 이윽고 김세현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별안간 김세현이 손을, 달리 표현하자면 들고 있던 사람을 재빨리 등 뒤로 감췄다.

“…….”

저 사람이 왜 저런 꼴이 되었는지 궁금했으나 이 또한 내 관심 밖이었다. 남은 손을 내게 뻗다가 황급히 그 손마저 등 뒤로 감추는 김세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좀 진정되셨어요?”

뜻밖의 말이라 그런 걸까, 김세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세현 씨가 이러는 건 그만한 일이 있다는 거겠지만, 보는 눈이 많아요. 괜히 안 좋은 소문이라도 돌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걱정을 입에 담았지만, 김세현은 좀처럼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나만 바라볼 뿐인 모습에 조금씩 민망함이 차올랐다.

“…….”

나까지 입을 다물자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주변에 제법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 점차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였다. 돌연 김세현이 한 걸음 다가왔다.

“형.”

“네, 세현 씨.”

“이제 생각 끝난 거예요?”

“아.”

갑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탓에 그런 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뛰쳐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하자 김세현의 눈가가 축 밑으로 쳐졌다.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데요?”

“그건, 나중에 말해요.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김세현과 있었던 일을 아는 사람은 부팀장밖에 없었다. 괜히 다른 이들 앞에서 그날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댄다면 이 또한 소문이 날 터였다. 내게 불리한 소문이야 그냥 넘길 수 있지만, 김세현에게는 타격이 클 것이었다.

하지만 김세현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조금 전보다 더욱 우울한 표정을 짓는데, 그의 뒤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들려왔다.

“세현 씨, 일단…. 그분 치료부터 해야 할 거 같아요.”

김세현도 김세현이지만 부상자도 챙겨야 했다. 슬쩍 김세현 뒤쪽의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데, 김세현이 몸을 틀며 시야를 차단했다.

“괜찮아요. 헌터는 치유력이 좋아서 가만둬도 빨리 나으니까. 물론, 이놈은 쉽게 나아선 안 될 놈이긴 하지만요.”

김세현이 이를 아드득 갈며 말하는데, 아무래도 저 사람과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떤 트러블이 있던 건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참견하지 않을 순 없었다. 나는 좀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요. 보는 눈이 많은데, 괜히 세현 씨한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걱정돼서요.”

“내가, 걱정된다고요?”

“네.”

걱정하지 않았다면 나오지 말라던 팀원들의 말을 뒤로하며 이렇게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

내 말을 들은 김세현이 순간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날 보는데, 눈 한 번 끔벅이지 않는 모습이 마치 듣지 못할 말이라도 들은 사람 같아 보였다. 많은 감정이 실린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려니 괜히 끼어들었나 하는 민망함이 차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용히 눈치를 살피는데 순간 그의 눈빛에 이채가 서리더니 김세현의 등 뒤에서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주려는데 어느새 거리를 좁혀온 김세현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형.”

“네.”

“내가 그렇게 걱정돼요?”

“…그건.”

당연히 걱정되었지만, 막상 저 표정을 보니 그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러웠다. 초롱초롱 빛나는 푸른 눈동자 하며, 귀에 걸릴 정도로 높이 치솟은 입꼬리 하며. 조금 전까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땐 언제고 갑자기 저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을 보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 형이 걱정하고 있다면야. 자제해 보려 노력해야죠.”

“…….”

한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가 이번엔 푸슬푸슬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상 좋아 보이는 얼굴로 자기 등 뒤를 가리켰다.

“거기, 너. 이거 치워.”

사람을 이거라고 불러도 되나 싶었지만, 그걸 지적하기엔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김세현이 지적한 협회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쭈뼛거리며 이쪽으로 올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다.

“안 치워?”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웃음기가 넘실대던 목소리가 싸늘해지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람들이 다가와 쓰러진 사람을 부축해 옮기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민첩한 움직임을 멍하니 지켜보는데,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아, 참. 형, 미안해요. 일이 좀 있어서 움직이다 보니 여기저기 피해 본 곳이 제법 되네요. 혹시 형 일이 많아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그건 아니에요.”

“그럼 됐어요.”

내게 피해가 없단 말을 듣자마자 됐다고 할 줄은 몰랐다. 눈을 끔벅이는데, 김세현이 내 옆으로 와 서더니 눈가를 곱게 접었다.

“형, 내가 사무실까지 바래다줄게요. 아니면 덩치한테까지라도요.”

바로 앞이 사무실인데, 바래다줄 필요가 있나 싶다. 하지만 거절한다고 해서 말을 들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미 김세현은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마음먹은 듯 보였으니까.

팀장을 거론한 김세현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금 더 거리를 좁혀왔다. 간혹 가까워질 때가 있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당황해 한 발짝 물러서려는데, 김세현이 내 등을 떠밀었다. 그에 엉거주춤하게 몇 발짝 떼는데 벌써 팀장 앞에 당도했다. 몇 차례 눈을 끔벅이며 팀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김세현을 보자 그가 좀 더 곱게 눈을 휘었다.

“형, 그럼 난 가 볼게요.”

“…네.”

혹 사무실 앞까지 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순순히 물러난다. 끄덕이는 내게 한 번 더 씩 웃어 보인 김세현이 협회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데, 누군가가 내 어깰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팀장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자.”

“네, 팀장님.”

무척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 역시 장소가 부담스러웠는지 어서 올라가자고만 할 뿐이었다. 어느새 무리에 합류해 있던 박 주무관, 그리고 다른 팀원들과 눈인사를 나눈 나는 함께 사무실로 올라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뭔가 말할 것만 같던 팀장은 사무실에 도착한 이후로도 좀처럼 말이 없었다. 그뿐이랴, 다른 팀원들 역시 잠잠했다. 눈치를 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팀장이 그제야 입을 뗐다.

“연하늘.”

“네, 팀장님.”

“방금 전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고는 있어?”

“…….”

“저놈이 그나마 너 보고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지, S급 헌터가 날뛰는데, 겁도 없이 다가가고 말이야!”

여태 이렇게까지 목소리를 높인 적 없던 팀장이었다. 하지만 내 행동이 위험했다는 지적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저 말을 뱉는 팀장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절대 나서지 마! 알겠어?”

“…네.”

“하, 진짜 무슨 일 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

한층 더 높아진 목소릴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솟구쳤다. 침울한 얼굴로 가만히 듣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맞습니다. 저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폭주하던 게 아니라 바로 알아봐 다행이지, 폭주 중이었으면 정말 우리가 모두 달려들어도 해결되지 않았을 겁니다.”

“협회 사람들 몽땅 달려들었어도 답 없었을 겁니다!”

“…….”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 그리고 한 주무관까지 와서는 걱정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벌인 짓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폭주라는 말을 들으니 더더욱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말이다. 헌터가 폭주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폭주 시 헌터가 지닌 힘 이상을 주변으로 쏟아 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조금 전 내 행동은 정말 위험해도 한참 위험했다.

“제가 제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했던 것 같아요. 다음엔 정말 조심할게요.”

“…그래야지.”

내 진심이 닿은 걸까, 좀처럼 성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팀장의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 마저 하던 일 하자.”

팀장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팀원들이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자리로 돌아가 앉는데, 여기저기서 진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 나는 뜻밖의 상황에 침묵했다.

“…….”

내 쪽을 보던 이들은 이번에 새로 헌터부에 합류한 팀원들이었다. 서강민과 강승빈이야 내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다른 세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그저 시선을 피했을 뿐인데, 기분이 이상한 건 너무 격한 반응이기 때문이었다. 마치 못 볼 걸 본 듯한 모습에 침묵하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뭐해, 일 안 하고.”

“바로 하겠습니다!”

팀장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곧바로 자세를 고쳐 앉고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후우.”

크고 작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 기분에 매몰되어 있을 순 없었다. 그래, 마음을 붙잡는 건 차근차근해 나갈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한 번 더 크게 심호흡하며 마저 하던 일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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