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82)화 (182/246)

179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일이 있긴 한 모양이군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부팀장이 말을 뱉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김세현이 저러고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추이를 살피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에 보이지 않던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두커니 서 있는 김세현의 발밑으론 도로가 움푹 패여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상하다 느낀 부분은 파인 도로가 아니었다. 내가 본 것은 지면과 김세현의 발 사이였다.

“…….”

도대체 저게 뭐길래 김세현이 저리 한쪽 발로 짓누르고 있는 것일까. 혹여 좀 더 잘 보이진 않을까 싶어 눈을 가늘게 떠 보았지만, 거리가 있다 보니 제대로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그에 나는 부팀장 쪽으로 고갤 돌리며 물었다.

“부팀장님, 혹시 세현 씨 발아래에 뭐가 있는지 보이시나요?”

“사람입니다.”

“…네?”

사람? 저 형체가 사람이었다고?

놀라 다시 김세현이 있는 곳을 보는데 때마침 협회 건물에서 헐레벌떡 사람들이 뛰어나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갓 뛰쳐나온 이들이 팀장과 서강민 쪽에 있던 무리로 합세하더니 그들 모두가 김세현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사람을 밟고 선 그를 말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김세현에게 접근하던 그들은 일정 거리를 둔 채 그대로 멈춰 섰다.

“…….”

용무가 있다면 말이라도 걸어봐야 할 것 같은데, 저들은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 듯 주춤거리며 김세현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숨죽인 채 대치 상황을 지켜보는데 순간, 김세현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밟고 있던 사람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손에 붙들린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을 보며 놀라던 것도 잠시, 김세현이 재차 허리를 앞으로 숙이나 싶더니 커다란 굉음이 한 번 더 들려왔다.

소리에 놀라 파드득 몸을 떨면서도 김세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신을 완전히 차리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붙잡고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

사람이 먼저 사라졌는지 아니면 소리가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김세현이 움직임과 동시에 갑자기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그가 던졌다는 말과도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세현이 저리 일방적으로 힘을 사용하다니.

그간 김세현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면 협회 건물은 이미 진즉에 부서졌을 거고, 또한 이 일대 건물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툴툴거리긴 해도 필요할 때만 힘을 사용하는 김세현인 만큼 이번 일은 무척 이례적인….

쿠웅-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려 애쓰고 있는데, 이런 내 마음을 김세현은 모르는 듯했다. 순간 김세현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한 차례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연이어 굉음이 들려오는데, 이곳과 점차 거리가 멀어지는 듯 거리감이 제법 느껴졌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부팀장도 당혹스러워하긴 마찬가지인 듯했다. 침묵하던 그가 소리를 뱉자마자 나는 곧바로 부팀장에게 물었다.

“어떡하죠?”

“우선은 좀 말려야 할 것 같은데. 협회 사람들이 과연 말릴 수 있을까 싶군요.”

협회는 난다 긴다 하는 헌터들이 대거 포진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도 김세현을 섣불리 말릴 수 없을 거라니. 이보다 더 충격적인 말은 없었다.

사무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도 밖에서는 계속해서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거리가 점차 멀어지는 듯 작아지던 소리가 조금씩 커지는데, 아무래도 김세현이 방향을 틀어 다시 이곳으로 오는 듯했다. 나는 점차 커지는 소리에 조급해졌다.

김세현을 말리고 싶은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헌터들도 섣불리 말릴 수 없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래, 이대로 뒀다간 김세현의 명성에 큰 오점이 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가지 않고 이곳에 잠자코 있으려 했지만 역시,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가서 어떻게든 김세현을 말리고 싶었다. 나는 곧바로 부팀장에게 내 뜻을 전달했다.

“부팀장님, 밖에 나갔다 와도 될까요?”

“…….”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는지 부팀장의 눈이 커졌다. 이어 미간을 찌푸리는데, 바로 안 된다고 할 것만 같아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그냥, 뭐라도 해 봐야 할 거 같아서요. 이대로 두면 세현 씨한테 좋지 않잖아요.”

평범한 날이라 해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큰 문제일 텐데, 심지어 지금은 세계헌터협회에서 방문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기자회견이 끝나고 협회에 머무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뿐이랴, 정말 재수가 없다면 지금 협회엔 기자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거라면….

내 바람이 부팀장에게 제대로 전달된 걸까, 뚫어져라 날 바라보던 부팀장이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상황을 보니 나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근처에 팀원들도 있고. 거기다…. 아닙니다.”

말을 하다 마는 게 이상했지만, 허락이 떨어진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곧바로 부팀장에게 인사하곤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내가 나간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김세현이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당할지도 모르는 행동을 계속하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니 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유리 파편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도로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딜 때였다.

“어, 막내야!”

“한 주무관님.”

“사무실에 있지 않고! 설마, 잉여 때문에 내려온 거야?”

따로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날 바라보는 한 주무관과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네.”

“…마음 같아선 다시 올려 보내고 싶은데, 부팀장님이 허락해 주신 거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혹시 모르니까 나랑 같이 움직이자. 그러지 않아도 내가 확인할 쪽은 다 둘러봤어.”

동행해 준다니 오히려 이쪽에서 환영할 일이다. 한 주무관과 함께 협회 건물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때마침 이쪽으로 오던 팀장과 서강민, 두 사람과 마주쳤다.

“막내가 왜 여기 있어?”

“부팀장님께 허락받고 왔어요.”

“…상황이 안 좋아도 막내 보내는 건 좀 아니지!”

한 주무관보다 훨씬 놀란 얼굴로 날 보던 팀장의 얼굴이 짐짓 엄해졌다. 이대로 침묵했다간 불똥이 부팀장에게 튈 게 분명했다. 나는 황급히 말을 얹었다.

“제가 부탁드렸어요.”

대답을 들은 팀장이 뚫어져라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뭐가 되었건 간에 바로 돌아가자. 협회 놈들한테 지금 상황 관련해 따져 봤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수습하겠다고 하네. 이영혁 부장이 지금 협회에 있다며 그 사람이랑 이야기하겠다고 선 긋더라.”

“하늘 씨, 어서 사무실로 가죠. 얼핏 들었는데 세계헌터협회 측 누군가가 김세현 헌터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협회 문제니 협회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심기를 건드렸다는 표현만으론 김세현이 저리 날뛰는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 김세현이 저런 행동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 막 내려온 터라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팀장의 재촉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차마 알았단 답은 하지 못한 채 주저하는데 지근거리에서 다시금 큰 소리가 들려왔다.

“쯧! 가자. 괜히 여기 있다가 불똥 튈라.”

제아무리 협회 일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물러서도 될지 모르겠다. 나름 공무원인데 여기저기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 속에서 사무실로 돌아간다는 건 그랬다.

좀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단 욕심을 채우려 공무원이란 사실을 앞세우는 것 같았지만,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내 등을 밀며 돌아가자는 팀장의 말에 발에 힘을 실어 버텼다.

“세현 씨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놈 지금 아무도 못 말려. 눈 돌았어.”

“…….”

“아무리 너라고 해도 말릴 수 없을 거다. 괜히 일반인이 나섰다가 다치면 김세현한테 더 큰 피해가 갈 수 있어.”

“아.”

눈이 돌았다는 표현에도 멈칫하긴 했지만, 이어진 팀장의 설명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세현을 말리는 건 둘째 치고 괜히 내가 어설프게 상황에 끼어들었다가 일이라도 생기면 다른 문제로 비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말려 보려는 생각으로 나왔지만, 어째서 부팀장이 날 보며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건지 조금은 알 듯했다. 그리고 밑에 팀원들이 있단 말도 왜 덧붙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만 가자. 곧 여기로 올 거 같으니까.”

“네, 팀장님.”

알았으면 어서 자리를 피하는 게 옳았다. 팀장과 서강민, 그리고 한 주무관과 함께 사무실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사람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갑작스러운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자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김세현이 도로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곤죽이 된 사람을 든 채 말이다. 가까이서 봐서일까, 사람의 상태가 무척 심각해 보였다. 여기저기 상처로 뒤덮인 이를 보다가 고개를 들자 김세현이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 저런 표정을 지어도 되나 싶었지만, 그 생각은 잠시일 뿐이었다. 김세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나 싶더니 이윽고 얼굴 가득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표정이 바뀔 때 입꼬리도 함께 움직였기에 나도 모르게 웃는 줄 알았나 보다.

하긴, 이런 상황에 웃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모습을 보며 김세현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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