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81)화 (181/246)

178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설마, 지금도 협회에 있는 건 아니겠지?

S급 던전을 산책하듯 클리어하고 나온 사람이 바로 김세현이었다. 그렇기에 협회 건물이 무너진다거나 습격받는다고 한들 그가 다친다거나 하진 않겠지만 걱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결국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부팀장의 손을 떼어 내곤 황급히 창가로 가 사무실 건물 아래부터 살폈다.

“…….”

협회 건물을 바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심각한 상황을 보게 된다면 심장이 멎을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마음의 준비라도 해 보려 아랠 봤지만, 그 또한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협회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이 비스듬히 서 있고, 그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건물 파편들이 한가득했다. 더하여 도로 인도 할 것 없이 길바닥이 유리로 반짝거리는데, 그 범위와 양이 상당한 걸 보면 협회 건물에 상당한 충격이 있었음을 의미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진정하려 애썼다.

“후우.”

예상보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나은 것도 있었다. 건물 파편이 예상보다 적었다. 그렇다는 건 유리창이 깨질 만큼의 충격은 있어도 건물은 극히 일부만 파괴되었단….

“바보다, 진짜.”

김세현에게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고개만 돌리면 바로 피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바닥만 보며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이 이보다 웃길 순 없었다. 자괴감에 혼자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김 주무관이 입을 열었다.

“세계헌터협회 측 사람들이야 뭐 능력자들이니 알아서 할 테지만…. 이영혁 부장은 괜찮겠죠?”

“글쎄다.”

“일단 우리도 바로 나가 수습하죠. 오가던 시민 중 부상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왔는지 등 뒤에서 부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외부로 나가 상황을 살펴보는 게 마땅함에도 부상자란 말을 들으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손을 얹고 있던 창틀을 강하게 움켜쥐며 정신을 다잡으려 했다.

“예!”

“박 주무관은 피해 현황을 살피십시오. 기록은 영상으로 남기도록 하죠. 서강민 씨는 바로 팀장님을 도우십시오. 다른 분들은 나가서 부상자부터 확인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바로 챙겨서 나가겠습니다!”

김세현이 너무 걱정되었지만 지금 당장은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정신을 다잡으며 함께 나가려는데, 부팀장이 날 불러세웠다.

“하늘 씨는 저랑 같이 이곳에 있도록 하죠. 강승빈 씨도 몸이 나을 때까진 사무실 지키도록 해요.”

“저도 나가서 돕고 싶습니다!”

협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만큼 한 사람이라도 더 나가 손을 보탬이 맞았다. 곧바로 부팀장에게 나가고 싶다고 피력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마음만 받을게.”

“그래, 막내는 여기 남아 있어.”

“다른 분들 말씀이 맞습니다. 하늘 씨는 여기 남아 계세요.”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 한 주무관에 이어 서강민까지 말을 얹는다. 사뭇 심각한 표정까지 짓는데, 문득 이러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이럴 땐 뜻을 따르는 게 이로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어서 나가 봐요. 유리가 잔뜩 깨진 터라 다친 시민들이 많을 겁니다.”

내가 고집을 꺾자 부팀장이 한 번 더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팀원들이 다급히 출입문 쪽으로 향하는데, 한 주무관이 그들을 붙잡아 세웠다.

“부팀장님, 혹시 모르니 네트워크 기계 챙겨서 나가겠습니다.”

“그러도록 해요.”

부팀장과 한 주무관의 대화를 들은 팀원들이 자리로 돌아가 기계를 챙겨 밖으로 나간다. 나는 출입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눈을 옮겼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건물 일부만 피해를 보았을뿐더러 회의장이 있는 층관 거리가 제법 떨어진 저층에서 발생한 일이니까요.”

“아.”

차마 협회 건물 쪽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부팀장의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내가 생각하는 일부와 부팀장이 생각하는 일부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가 괜히 일부란 단어를 입에 담진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아래에만 고정하던 시선을 협회 건물 쪽으로 돌렸다.

“…아.”

부디 나와 부팀장이 생각하는 일부가 같길 바랐지만, 내 예상보단 피해가 컸다. 2~3층 높이 정도 되는 콘크리트 조각과 한쪽 벽 일부가 뻥 뚫린 협회 건물을 번갈아 보길 몇 차례, 나는 뒤늦게 부팀장의 말처럼 건물이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단 걸 인지하곤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세계헌터협회가 적이 많습니다. 간혹 테러가 발생한다고 하던데, 아마 그것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군요.”

“그렇군요.”

“뜻밖의 사고지만, 이 상황이 반갑긴 합니다.”

“부, 팀장님?”

다른 사람도 아닌 부팀장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놀라 그를 바라보자 부팀장이 협회 건물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늘 씨도 느꼈을 겁니다. 누군지 모를 이가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감각을 말입니다.”

“네, 느꼈어요.”

집요하리만큼 날 살피는 듯한 감각에 소름이 돋는데, 정말 그 감각은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건 헌터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치부되는 무례한 행동입니다. 특히 일반인에게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협회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면 팀장님을 비롯해 팀원 전부가 나섰을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사무실에 벌어지고 있었다니. 어째서 부팀장이 이 상황을 반가워했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이쪽을 주시하던 그 누군가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언제 다시 이쪽을 향할진 아무도 모릅니다.”

역시, 다른 뜻이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부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 있을게요.”

“잘 생각했어요.”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잠시 날 바라보며 웃더니 다시 협회 쪽을 바라본다. 나 역시 부팀장의 어깨 너머로 상황을 보았다.

“…다들 괜찮겠죠?”

“전부 괜찮을 거란 보장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협회 쪽에서는 크게 다친 사람이 나오거나 하진 않을 것 같군요. 부상자가 있었다면 저리 조용하진 않을 겁니다.”

단호한 부팀장의 말을 들어서일까, 조금 전보다 훨씬 떨림이 잦아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잔뜩 힘을 주며 붙잡고 있던 창문틀에서 손을 떼어 냈다.

“그건 그렇고 협회 건물 내에 세계헌터협회 소속 사람들이 남아 있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을 듯하군요. 강승빈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팀장님의 말마따나 상황이 복잡해질 겁니다. 테러라면 그만큼 협회에서 제대로 방비하지 못했단 말이 나올 거고, 만에 하나….”

강승빈이 말끝을 흐리며 힐끔 날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 갔다.

“만에 하나 다른 문제로 벌어진 상황이라면 그것대로 골치 아플 겁니다. 하지만 후자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쪽도 문제 삼진 못할 거로 생각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김세현 헌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세계헌터협회에서도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후자 이야길 하며 어째서 날 보고 또 김세현을 거론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들이 김세현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김세현 말이다.

“…….”

다친 이들이 없을 거라 듣긴 했지만, 김세현을 떠올리니 왜 이리 걱정되는지 모르겠다.

어느 정도 진정되던 마음에 다시 긴장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좋지 않은 생각만 하며 긴장하며 계속 매몰되어 있을 순 없었다. 나는 다시금 창밖을 보며 팀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폈다.

거리가 가까워서일까, 그 사이 팀원들은 이미 사무실 건물과 협회 건물 그 중간에 도착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은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 한 사람이 건물 파편 아래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그 사람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와중, 눈에 들어온 상황에 절로 눈이 커졌다.

“아.”

“무슨 일 있습니까?”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뱉었는지 부팀장이 곁으로 다가왔다. 바로 지척에서 부팀장의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나는 바라보던 곳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커다란 건물 파편이 이리저리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그 아래서 조금 전 그쪽으로 향한 사람이 아닌 다른 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쪽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어깨를 풀더니 파편 쪽으로 몸을 틀곤 자길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리고는 협회 쪽으로 그가 걸음을 떼자 건물 파편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팀장이 A급 헌터이며, 그가 던전에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간 종종 듣기도 했지만 직접 두 눈으로 무위를 확인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팀장은 현재 몸이 온전치 않은 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리 강하다면 평소의 A급은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S급 헌터는 또 어떻고 말이다.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능력에 멍하니 그들을 따라 시선을 움직일 때였다. 어느새 협회 앞에 당도한 팀장이 파편 아래에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서강민과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파편이 협회 건물에 기대듯 놓였다. 그와 동시에 협회 건물에서 사람 여럿이 나와 팀장과 서강민 쪽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두 사람을 에워싼 이들을 보며 한마디 하려 입을 뗄 때였다.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이내 한 번 더 커다란 굉음이 사무실을 채웠다.

불시에 들려온 소음에 귀가 먹먹했다.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양손으로 귀를 만지작거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자 협회 건물 앞, 팀장과 서강민이 있는 곳 근처에서 먼지바람이 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옆에서 부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난데없이 나타난 먼지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도로 한복판을 응시하던 나는 잠시 뒤, 먼지가 걷히면서 한 인영이 모습을 보이자 탄식했다.

“아….”

거리가 있었지만, 저 사람을 내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는 멍하니 김세현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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