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저게, 뭡니까?”
“난들 알아?”
“…….”
뉴스가 진행 중이던 화면 하단에 생각지도 못한 속보 내용이 떴다. 그것도, 헌터부와 관련된 소식이었다.
[세계헌터협회, 서울시 헌터부 방문 예정]
“팀장님, 우리 뭐 전달받은 거라도 있습니까?”
“글쎄다. 마음 같아선 나도 아무에게나 물어보고 싶어질 지경이네.”
팀장이 이런 반응을 보일 법도 했다. 급작스러운 건 일단 뒤로하더라도, 저런 스케줄이 있다면 먼저 방문할 장소로 연락해 조율하는 것이 통례였다. 하지만 저 속보는 우리와 아무런 말도 오간 것이 없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통보였다.
“…….”
이런 통보도 정말 오래간만이다. 예전에 에드워드 왕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상황을 떠올리던 차에 팀원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혹시 우리 모르게 또 시청에 연락한 건 아닐까요?”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이는군요.”
“…정규직이 되면 시청에서 무시 좀 덜 받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봅니다.”
“언제 헌터들 잘 챙겨 주는 거 보셨습니까? 우린 언제나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죠.”
“…….”
계약직으로 일하던 헌터들의 입에서 회의적인 반응이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생성된 던전을 소멸시켜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 주는 이들이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느끼고 있단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박 주무관이 팀장에게 말을 걸어왔다.
“팀장님, 시청에 한번 연락 넣어 볼까요?”
지금 같은 상황엔 빠른 확인이 필요했다. 전화기를 든 그가 팀장의 답을 기다리는데,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됐어. 그냥 있어.”
“확인 안 하시고요?”
“그냥 일해. 우린 아무 연락도 못 받은 거야.”
심드렁히 말하는 팀장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그간 헌터부에 무슨 일이 생겼다 싶으면 불같이 들고 일어나던 모습만 봐 왔기 때문이었다. 낯선 그의 반응에 당황하는 나완 달리 팀원들은 평소와 같이 대답했다.
“옙!”
“예, 알겠습니다.”
“…만에 하나 시청에서 연락하는 거 깜박했다고 하면 이번엔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어째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건지 알겠다. 웃는 낯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팀장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태 본 적 없는, 그야말로 극도로 화가 난 팀장을 지켜보다가 자리서 일어났다.
현재 팀장의 몸은 회복 중이었다. 이럴 때 화내는 건 몸에 좋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시원한 물을 떠 와 팀장에게 건넸다.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
컵과 날 번갈아 보던 팀장이 단번에 잔을 비우고는 다시 그것을 내밀었다.
“한 잔 더 부탁해!”
그 정돈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조금 전보다 더 빨리 발을 움직였다.
팀장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물잔을 비웠다. 그리고는 몇 차례 크게 심호흡하더니 나와 눈을 마주해왔다.
“이만하면 됐어. 고마워.”
“뭘요.”
한결 누그러진 기세를 보니 시원한 물이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 듯했다. 자리로 돌아와 앉아 팀장을 살피니 확실히 그의 눈썹이 내려와 있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들 저 속보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
“알겠습니다!”
“편의를 봐주니 이젠 막 나가자는 모양인데, 내 알 바야?”
“…….”
치밀어 오른 감정은 어느 정도 진정된 듯했지만, 화가 완전히 가라앉으려면 멀어 보였다. 아니, 나조차도 화가 나는데 팀장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우린 사람이 오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거야. 막내야, TV 얼른 꺼.”
“넵!”
혹시나 협회 쪽으로 말을 전할까 싶었는지 팀장이 모르는 거라며 강승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TV를 끄곤 작업하던 문서를 눈에 담았다.
“후우.”
속보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화를 내는 팀장을 신경 쓰느라 체감되지 않았는데, 막상 작업물을 보자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리 뒤늦게 반응이 온 건 너무 놀라서도 아니었고, 설레서도 아니었다. 그래, 우리 쪽으론 연락 한번 주지 않고 멋대로 스케줄을 잡았다는 사실은 괘씸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괘씸하다고 계속 그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순 없었다. 내겐 오늘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곤 아직 다 처리하지 못한 오늘 일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래, 언제 세계헌터협회가 여길 방문한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일에 열중하던 참이었다. 문득 사무실 안이 너무도 고요하단 걸 깨닫고는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
모두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듯 보였지만, 모두의 손은 멈춰 있었다. 나 혼자 눈치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던 걸까 싶어 손을 멈추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저 할 일 하세요, 하늘 씨.”
“아, 네.”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부팀장의 지시에 다시 작업을 이어 갔지만, 한번 의식하니 이보다 더 신경 쓰일 수가 없다. 작업하는 중간중간 사무실을 둘러봤지만, 팀원들은 좀처럼 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부러 모니터만 바라보는 것 같단 느낌이 들 만큼 너무도 이질적인 모습이다. 나는 결국 다시 손을 멈추곤 팀장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나요?”
“경계 중이야.”
“경, 계요?”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놀라 주변을 둘러봤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사무실과 팀원들밖에 없었다. 어째 조금 전보다 훨씬 긴장한 듯 보이는데,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몸이 긴장되는 게 느껴졌다.
일반인인 난 느끼지 못해도 헌터인 팀원들은 무언갈 여실히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혹시나 해 맞은편 자리의 박 주무관을 바라봤지만 그 역시 모르는 무언가에 집중해 내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팀장님, 이거 우리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겁니까?”
“그냥 있어.”
“…나가서 뒤집어 버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쪽도 그냥 탐색 정도만 하는 거겠지.”
“이렇게 예의 없이 한다고요?”
한참의 침묵 끝에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누군가가 헌터부 사무실을 탐색하고 있고, 그로 인해 모두가 불편해하고 있단 점이었다. 도대체 누가 팀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한 번 더 창밖으로 시선을 주려는데 그 순간, 갑자기 찌를 듯한 시선이 느껴져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
이런 느낌은 살면서 처음 느껴본다.
내 몸 곳곳을 샅샅이 훑어보는 느낌과 더불어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발가락에서부터 소름이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소름이 정수리를 찍고 다시 온몸으로 퍼지던 참이었다. 밖에서 들려온 커다란 소리와 함께 기이한 느낌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이게 무슨 소리죠?”
“소리 나고 갑자기 탐색 기운이 사라졌는데요?”
“얼른 바깥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팀장의 말을 들은 한 주무관이 다급히 창가로 이동한다. 덩달아 몸을 일으키려는데, 부팀장이 옆에서 날 붙잡았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혹시, 하늘 씨도 느꼈습니까?”
어떻게 알았지?
절로 커진 눈으로 부팀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나기 전에 뭔가 제 몸 구석구석을 훑는 듯한 느낌을 받긴….”
콰앙-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건물 밖에서 다시금 굉음이 들려왔다. 무척 가까운 곳에서 난 소리인지라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부팀장이 내 손목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맙소사.”
그때였다. 창밖 상황을 지켜보던 한 주무관이 탄식을 뱉은 건.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팀장의 물음에 말끝을 흐린다. 쉬이 답변하지 못하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듯했다. 한 주무관이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자 팀장이 답답했는지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
창밖을 확인한 팀장 역시 말을 끝맺지 못했다. 멍하니 한곳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의 모습에 이번엔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 그리고 다른 팀원들이 하나둘씩 창가로 향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저게 무슨 상황입니까?”
나도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팀장이 계속해서 날 붙잡고 있기에 창가로 갈 수가 없었다. 그저 엉덩이만 들썩거리며 궁금해할 때였다. 한 번 더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더니 창밖에 커다란 물체가 땅을 향해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황급히 창문으로 뛰어내린 팀장의 모습과 함께 이어진 팀원들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팀장님!”
“건물 파편 잘 붙잡으셔야 합니다!”
“난데없이 협회 건물이 왜 저리 파괴된 겁니까?”
“그러게나 말이에요.”
협회란 말에 불현듯이 떠오른 건 다름 아닌 김세현이었다.
그가 인터뷰를 진행했던 공간이 협회 건물 내부였단 사실을 상기하곤 나는 심장이 발아래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