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23. 왜 제게 이러세요
일요일엔 별다른 소식이 전해지지 않던 세계헌터협회는 월요일이 되자 다시금 매체에 모습을 보였다.
-세계헌터협회는 던전이 생성되었던 D-15 구역에 재차 방문하여 피해를 입은 시민을 위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정부와 한국 협회 대표인 던전정책특별보좌관 이영혁 보좌관과 김세현 헌터를 비롯해 다른 인사들이 함께하였습니다.
“이영혁 부장님이 정말 열심히 하고 계시네요.”
“그러게요.”
제법 정리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현장엔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는 구역이 많았다. 그런 곳에서 헌터들과 함께 돌아다닌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현장을 둘러보고 D-15 구역에서 나오는 이영혁 부장의 얼굴에 짙은 피로가 자리한 걸 보자 절로 마음이 쓰였다.
“이영혁 부장 같은 분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큰 도움을 받았죠.”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도, 그리고 헌터부 사람들도 이영혁 부장에게 고마운 마음은 같았다. 계속해서 뉴스를 보던 중 한 사람이 의견을 제시했다.
“전 협회에서 난데없이 정부 측 사람을 데리고 간 게 의심스럽네요.”
“협회 측 힘이 세다고 해도 정부와 긴밀한 협조가 이어지지 않는 이상은 자리 잡기 힘들지.”
그건 팀장의 말이 맞았다. 제아무리 협회가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그것을 용인해 주지 않는다면 그 집단은 그저 불법 단체일 뿐이었다. 일례로 나라 소속이 되지 않은 헌터를 탄압하고 억압하기 바쁜 옆 나라가 있었고 말이다.
-오늘은 특별히 협회 측 대표로 나온 김세현 헌터와 정부 측 대표로 나온 이영혁 보좌관, 그리고 세계헌터협회 측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송아미 기자가 전합니다.
-전 세계 최초로 높은 난이도의 던전이 연달아 생성되었던 D-15 구역. 이 구역을 조사키 위해 세계헌터협회에서 지난주 한국으로 조사단을 급파하였습니다. 이들은 오늘로 총 두 차례 D-15 구역을 방문했는데요, 오늘 방문엔 한국 정부와 한국 협회 측 사람들과 함께였습니다. 특히 이 방문엔 평소 외부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한 김세현 헌터가 동행하여 이목을 끌었습니다. 김세현 헌터는 평소와는 달리 복면을 벗은 채 함께하고 있어 더더욱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현장과 관련된 소식부터 전달할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복면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어이가 없었지만, 뉴스는 이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 …모인 군중으로 인해 현장을 둘러보려던 이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사고는 없었습니다. 비공개로 현장을 둘러본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시겠습니다.
인터뷰?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아나운서가 김세현도 인터뷰에 참여했다고 했다. 이번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
화면 하단부에는 인터뷰 장소가 적혀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옆 건물인 협회 건물 내에 위치한 회의장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영혁 부장이 그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협회 측 일인지라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세계헌터협회에서는 연달아 같은 장소에 발생한 난이도 높은 던전이 다른 나라에서도 생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현재 세계 각지에 생성되는 던전의 난이도가 점차 올라가는 추세입니다. 특히 서울은 예전부터 세계적으로 던전 생성 빈도가 높은 장소였기에 이번과 같은 일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던전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할 방법은 없습니까?
-저희도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현재 던전 생성을 억제하는 것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게 있습니까?
-아쉽게도 지금은 없습니다.
“뭔가 거창해 보여서 단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저쪽도 딱히 아는 건 없나 봅니다.”
“아는 게 있어도 없다고 할 사람들이죠. 언제나 중요한 부분은 공유하지 않잖습니까. 정보가 곧 수입이라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한 주무관의 답변에 새 팀원이 말끝을 흐렸다. 잠시 그쪽을 보다가 다시 TV로 시선을 옮겼다.
계속해서 세계헌터협회 측 인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여 주던 화면은 제법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영혁 부장을 비추었다.
-보좌관님께도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헌터부 개편 직후 던전이 생성되었는데요, 난이도가 높다곤 하나 충원된 것치곤 피해가 큽니다. 이는 개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까요?
-헌터부를 개편하긴 했지만, 이제야 한 발짝 발을 내디딘 것과 같습니다. 또한 현재 나라에서 운용이 가능한 헌터의 숫자는 제한적이기도 합니다. 이번 던전의 피해가 막심하지만 헌터부는 제대로 대응하였고, 그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큰 피해로 번지는 걸 막았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인즉 처음부터 협회에 협조를 구했다면 더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단 말로도 들립니다.
-무릇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따스한 눈으로 지켜봐 주세요. 헌터부 소속 공무원들은 언제나 목숨을 걸고 던전 클리어를 위해 발 벗고 뛰고 있습니다.
기자들 중 누군가는 협회를 옹호하는 발언을 할 거라 여겼지만, 막상 들으니 기분이 참 그랬다. 누가 봐도 헌터부를 탓하려 드는 질문 내용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였다. 자연스럽게 화면이 바뀌며 김세현을 비췄다.
“…….”
매체를 뒤져 가며 김세현을 찾곤 했지만 막상 이렇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데 조명 탓인지, 아니면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김세현의 얼굴이 제법 핼쑥해 보였다. 나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김세현 헌터님. 이번 던전의 규모가 더 커지기 전 현장에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던전 상황이 어땠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참혹합니다.
-혹시 이번 던전이 이곳에 연달아 생성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생성되었구나, 하고 있습니다.
-세계헌터협회에서 나온 분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셨는데요, 그와 관련해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와.”
“저걸 그냥 내보낸다고? 협회에선 아무런 말도 없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던 걸까요?”
“글쎄.”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세현이 평소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 말이 짧으면 그를 싫어하는 이들이 물어뜯기 좋은 먹잇감과도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의견인 것은 아니었다.
“제가 듣기론 필요한 답변만 하는 거 같네요.”
“오, 저도요. 차라리 저리 간결하게 답하는 게 김세현 헌터랑 어울리기도 하고요.”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새로 들어온 팀원들의 의견을 들으니 그 말도 맞는 듯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던전 따윈 개의치 않아 한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아.”
김세현도 김세현이었다. 단답형으로 답할 만큼 입심이 약한 것도 아닌데, 오해를 사기 쉬운 말투로 인터뷰를 진행하다니. 적어도 호주에서 S급 던전을 클리어한 직후 진행한 깜짝 인터뷰 때처럼….
“아.”
그러고 보니 그때도 말이 짧았지.
뒤늦은 깨달음에 소리를 뱉자, 박 주무관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이를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 떠오른 거라도 있어?”
내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비단 박 주무관뿐만이 아닌 듯했다. 팀장까지 궁금해하자 나는 곧바로 호주 인터뷰 건을 입에 담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도 그렇긴 했지.”
“자기 할 말만 하고 말았죠?”
“…호주 인터뷰라면 저도 기억합니다! 난데없이 형이란 사람한테 라면 먹으러 가겠다고 했었죠?”
“그랬지.”
“라면은 잘 먹었는지 모르겠네요. 김세현이 그렇게 친근하게 말한 거 보면 정말 가까운 사이일 텐데 말이죠.”
“…….”
라면 이야기를 하는 새 팀원의 표정이 의미심장해 보였지만, 지금은 그에 반응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형이라는 존재가 나라는 게 밝혀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듯했다. 가십거리에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새 팀원들의 눈을 발견한 나는 다급히 박 주무관과 팀장에게 도와달란 시선을 보냈다.
“뭐, 그건 잉여 사생활 문제니까. 그때야 협회에서 인터뷰를 말릴 사람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번은 동행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 저걸 그냥 지켜봤다는 게 문제지.”
“협회에서도 김세현을 컨트롤할 만한 사람이 없긴 하지만, 너무 놔둔 게 아닌가 싶네요.”
내 시선을 캐치한 팀장과 박 주무관이 바로 말을 얹었다. 말을 돌렸지만 아직도 새 팀원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다. 그 모습에 언제, 누가 라면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 어쩌나 노심초사할 때였다. 뚫어져라 모니터를 보던 김 주무관이 입을 뗐다.
“으음, 생각보다 인터넷 여론이 제법 괜찮은데요?”
인터넷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나는 김 주무관의 말에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김세현에게 유리한 댓글들로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었다.
필요할 말만 하는 김세현이 멋지다는 내용부터 시작해 역시 김세현은 세계헌터협회에서도 조심한다, 국뽕이 차오른다는 둥의 댓글에 많은 사람이 동조하고 있었다.
간혹 정부에 질문을 하는 기자들의 태도가 영 좋지 않다는 의견, 그리고 저런 질문을 굳이 세계헌터협회 앞에서 해야 하냐는 의견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놓을 때였다. 제법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 사이에 있는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S급 헌터면 단가? 인터뷰하는 태도가 왜 저럼?]
“…….”
기왕이면 이 의견은 사람들이 무시해주었으면 했으나 이 의견에도 많은 사람이 동조하고 있었다. 대댓글 역시 많이 달려 있어 확인해 볼까 싶었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무슨 말이 오가고 있을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채널 돌려 봐. 우리 관련해서 뭐 다른 이야기 나오는 거 있나 확인해 보자고.”
“네.”
팀장의 말에 곧바로 리모컨을 집어 화면을 돌렸다. 뉴스 채널 전부 기자 회견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계속해서 리모컨 버튼을 누르던 차에 난데없이 팀장이 멀쩡한 손을 내 쪽으로 뻗어 왔다.
“채널, 멈춰 봐!”
“네? 네.”
무척이나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에 덩달아 놀란 나는 곧바로 이전 채널 버튼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