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78)화 (178/246)

175화

22. 약점

주말 일과 시간은 평일과는 달리 무척 짧았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퇴근할 시간이 다가왔단 사실에 크게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

이전 던전의 여파 때문일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얼굴엔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던전이 생성될 때면 몸을 움직여야만 했기에 힘든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서강민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오늘 내가 출근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서강민이 출근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일이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며 얼굴을 비친 상황이었다.

일정 탓일까, 그게 아니라면 던전의 여파 때문일까. A급 헌터인 서강민의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걸 보니 내 휴식을 좀 더 뒤로 미룰 걸 그랬나 싶어졌다. 그랬다면 오늘 출근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지금쯤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예, 여긴 앞으로 그렇게 처리하시면 될 거예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요.”

“그렇죠? 현장에서 하던 게 있으니 이젠 요령만 터득하면 바로바로 가능할 겁니다.”

피곤함이 짙게 묻어나는 김 주무관이었지만, 그는 새로 온 팀원을 교육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내가 이곳에 온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는 게 느껴졌다. 김 주무관을 바라보는 내게 짐을 꾸리던 박 주무관이 말을 걸어왔다.

“막, 연 주무관. 짐 안 챙기고 뭐 해?”

“아, 이제 슬슬 챙기려고요.”

“난 또. 갑자기 멍해져서는 무슨 일 있나 했지.”

내가 너무 정신을 놓고 있었나 보다. 박 주무관의 지적에 민망한 웃음을 흘리니 그의 얼굴에도 슬며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얼른 챙겨. 주말엔 일 초라도 빨리 집에 가는 게 이득이야.”

“맞습니다. 특히 주말 출근은 쉴 시간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다음 주 생활이 달라지죠.”

“하하, 네.”

박 주무관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새로 온 팀원이 고개를 주억이며 맞장구를 쳤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니 왜 이리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내가 웃자 새 팀원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 이내 따라 웃기 시작했다.

“매번 말을 해 봐야지, 해 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말을 섞어 보네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푸근한 미소를 짓는 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오시자마자 일이 터진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네요. 다들 피곤해하시는데 괜히 말을 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신 겁니까?”

같은 팀원이라면 응당 생각하는 게 맞았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되묻는 이에 당황하는데, 박 주무관이 대화에 참여했다.

“아무렴요! 우리 막, 연 주무관이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기로 얼마나 유명한데요!”

“그래요?”

“…그렇게 비행기 태우시면 민망해요.”

팀원들이 날 아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로 온 팀원에게까지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걸 보니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싫은 건 또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새 팀원이 내게 관심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을 섞을 상황이 생기니 오히려 좋았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마저 짐을 꾸리는데, 박 주무관이 이번엔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팀장님, 이번 주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음 주 주말엔 꼭 쉬셔야 합니다?”

“아무렴. 몸이 멀쩡했다면 또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푹 쉬어야 빨리 나아.”

“이전처럼 무리해놓곤 괜찮다면서 사무실 지키다가 탈 나지 마시고요.”

팀장이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놀라 그를 바라보자 팀장은 휘휘 한 손을 저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철없던 시절 일이지!”

“철없던 시절이라고 하기엔 연 주무관이 오기 전에도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땐 걸어 다니는 게 용할 만큼 다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죠.”

“맞습니다! 오죽했으면 시청에서도 좀 쉬게 하라며 헌터부로 연락이 왔겠습니까!”

팀장의 말에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격하게 반응했다. 말을 들어보니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듯했다. 평소 헌터부를 터부시하다시피 하는 시청에서까지 말이 나올 정도였다면 당시 팀장의 상태가 그만큼 나빴음을 의미했다.

이미 이전 일이긴 했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출근했다는 것은 어쩌면 이번 부상을 팀장이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

역시, 나도 한마디 보태는 편이 낫겠다. 이번 주말만큼은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푹 쉬라는 말을 덧붙이려던 때였다. 슬쩍 내 쪽을 본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다들 퇴근할 준비 하자!”

“예!”

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직 짐을 꾸리지 않은 이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짐을 꾸리며 계속해서 팀장을 바라보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평소엔 잘만 마주치던 시선이 좀처럼 닿지 않았다. 마치 내가 한 소릴 하려던 걸 눈치라도 챈 듯이 말이다.

팀장이 날 의식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는 지금, 역시 말을 해둬야겠다. 곧바로 팀장을 부르려 입을 떼려는데 누군가 날 불렀다.

“연 주무관님.”

“네. 서강민 씨.”

갑작스러운 서강민의 부름에 놀라 답하자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혹시 오늘 저녁 같이 드실래요?”

“아…. 죄송해요. 할 일이 좀 많아서요.”

이미 집안일은 어제 다 끝내 둔 상태였지만, 서강민과 단둘이 식사한다거나 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없던 일도 만들어야만 했다. 혹여 일이 많다고 했음에도 계속 권유해 오진 않을까 싶어 곤란한 표정을 짓자, 서강민이 작게 한숨을 뱉었다.

“그럼 다음에 먹어요.”

“네.”

“식사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혹시 환영회 같은 건 없습니까?”

환영회, 라.

그러고 보니 내 환영회도 따로 하지 않았던 게 기억났다. 이번에 새로 충원된 사람도 제법 되니 환영회를 하는 것도 괜찮을 성싶었다. 환영회 자리를 빌려 아직 서먹서먹한 팀원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우리 팀은 휴식 시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환영회나 회식은 점심에 하니 술자리 생각은 말고.”

“그거 좋은데요?”

“따로 저녁 시간 비우지 않아도 되고, 무리해서 술 마시지 않아도 되고 좋네요!”

점심 회식을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이가 있진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그런 사람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반기는 이들을 보니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다음 주 중으로 자리 만들 테니 맛있게 먹어 보자고!”

“예!”

“네!”

“좋아. 짐들 다 챙겼지? 퇴근하자!”

팀원들을 쓱 둘러본 팀장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연이어 팀원들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김 주무관이 나와 문을 잠그는 걸 확인하고는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세계헌터협회 사람들은 와서 뭘 한다는 걸까요?”

“낸들 알겠어? 그저 우리한테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야.”

“맞습니다. 솔직히, 협회가 뭔갈 한단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안하네요.”

“…하긴, 협회가 한 소리 할 때마다 계약직 헌터들의 자리가 위험해질 때가 많았으니까요.”

“협조금이랑 정부 소속 계약직 헌터가 무슨 관계라고 협조금이 올라갈수록 계약직 인원을 감축하려고 혈안이죠.”

“그나마 염 팀장님이 저희 편을 들어 주셔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아마 계약직 인원도 많이 줄었을 겁니다. 계약직은 정말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존재니까요.”

“…….”

협회로 빠져나가는 돈과 헌터부 계약직의 자리가 이렇게까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는 표현만 봐도 얼마나 그들이 고생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뒤섞였지만, 섣불리 그런 마음을 드러내선 안 되었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오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나야 크게 한 건 없지. 다들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염 팀장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렴요!”

“…거참, 너무 그렇게 띄워 주면 내가 쑥스러운데.”

“하하.”

멋쩍어하는 표정과는 달리 귀만큼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정말 쑥스러웠던 듯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말에 반응하는 팀장이 새롭게 보여 그를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해 있었다.

다 같이 건물을 빠져나와 인사를 나누곤 팀장과 함께 주차된 차량으로 향할 때였다. 잠시 주변을 살피는가 싶던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아깐 잘 대처했어.”

아까라면….

순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니 딱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는 곧바로 입을 뗐다.

“저녁 말씀하시는 거죠?”

“응. 언젠간 이야기가 나오겠거니 했거든.”

“하하.”

저 말은즉슨, 서강민이 나에게 말을 걸기만을 기다렸다는 말과도 같았다. 이미 서강민이 몇 차례 말을 걸어오긴 했지만 팀장이 그걸 눈여겨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대처해. 혹시나 물고 늘어지거나 해도 계속 그러면 저쪽도 뭐라고 하진 못하겠지.”

“그럴게요.”

서강민과 단둘이 있는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말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칭찬받으니 이보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느끼며 팀장의 차에 올랐다. 잠시 후 느린 속도로 차가 움직였다.

“오늘 고생했으니 집에 가서 푹 쉬고.”

“팀장님도 집에 가시면 바로 쉬세요. 그리고…. 다음 주말엔 집에서 푹 쉬시고요.”

사무실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하자 팀장의 눈이 휘둥그레 변하더니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야지.”

대답 대신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화답한 나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요일 출근이었지만, 썩 나쁘지 않았던 건 어제 하루 쉬기도 했고, 또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저 사무실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었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일과를 이어 가야 했다.

나도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야겠다. 아니, 지금부터 좀 쉬어야겠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파묻으며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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