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77)화 (177/246)

174화

22. 약점

“좋은 아침입니다!”

차에 오르며 인사를 건네자 팀장이 픽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루 쉬었다고 벌써 기운이 넘치면 평일에 어쩌려고 그래?”

“대타로 나간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서요.”

내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면 팀장은 나보단 부팀장에게 먼저 연락했을 것이었다. 그랬다면 금요일 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부팀장이 출근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난 금요일에 큰 도움을 받았던 부팀장 대신 출근하게 된 상황이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주말 대타를 나오라는데 좋아할 사람은 막내 너밖에 없을 거다.”

“하하.”

“얼른 벨트 매. 출발하자.”

“네!”

출발하잔 말에 매자마자 팀장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골목길을 벗어나 도로에 진입하니 한적하기만 한 도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시간이라 차가 덜 막히는 거지, 시간 좀 지나면 다들 나들이 간답시고 길에 차가 가득할 거야.”

“오늘 같은 날씨엔 나들이가 제격이긴 하죠.”

조각구름 몇 개만 떠 있을 뿐인 청명한 하늘을 보니 오늘은 일요일 치고 더 많은 차가 길거리에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치? 하아, 나도 좀 푹 쉴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팀장이 쉬고 싶어 하는 건 당연했다. 뼈가 부러지는 중상임에도 불구하고 쉬지도 못하고 바로 다음 날 출근해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었으니까. A급 헌터인지라 재생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고 듣긴 했지만, 역시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옷으로 가려진 팀장의 손과 가슴 쪽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걱정돼?”

“네.”

“너무 걱정하지 마. 제법 나았으니까.”

“그래도 좀 쉬셔야 하는데….”

“이번 던전 일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세계헌터협회에서 사람들 다녀가면 휴가 내서 쉬어 볼까 하고 있어. 쉬지 않고 달려 왔더니 피로도 제법 쌓였고.”

“말씀만 하지 마시고 꼭 휴가 가셔야 해요.”

주말에 돌아가며 쉬긴 했지만, 팀장만큼 가장 오랜 시간 사무실을 지킨 사람은 또 없었다. 다른 사람이 쉴 때도 항상 사무실에 나와 있었고, 일이 생기면 한 주무관과 함께 현장에 바로 나가는 터라 알게 모르게 피로가 누적되어 있을 것이었다.

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짐을 지고 있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언제나 먼저 상황을 정리하고 또 힘든 내색 없이 움직이는 그가 너무도 자랑스럽기도 했다.

“…너무 그렇게 바라보면 민망한데 말이지.”

“아.”

생각에 잠겨 너무 빤히 바라봤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흘리며 볼을 긁적였다.

“그래도 뭐, 막내니까 봐준다!”

그렇게 말하는 팀장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피어 있었다. 그것도 짓궂기 짝이 없는 미소가 말이다. 팀장이 장난을 쳤단 생각에 안도하며 따라 웃을 때였다.

“아 참. 내가 그걸 안 물어봤네.”

전방을 주시하던 팀장이 내게 시선을 주었다. 순간 운전 중에 이래도 되나 싶어 놀랐지만, 차가 자율주행 중이라는 걸 깜박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아까 보니까 집 현관문이 바뀌었던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차에 오르기 전만 해도 혹여 이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했는데, 막상 시간 차로 질문이 들어오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 이상 놀라면 팀장이 이상하게 여길 터. 빠르게 감정을 갈무리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답변했다.

“네, 좀 문제가 있어서요.”

“그래?”

내 딴에 최대한 아무 일도 없는 척했지만, 역시 팀장의 날카로운 눈을 벗어나긴 부족했나 보다. 좀 더 설명해 보라는 눈빛을 보내는 이에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부팀장님도 문 교체할 때 같이 계셨거든요. 그거 보고 가셨어요.”

부팀장이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에 아리송한 표정이었던 팀장의 얼굴에 의문이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우리 부팀장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진짜 널 많이 아끼긴 하나 봐.”

“저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그저 그런 관계였다면 출퇴근하는 데 문제가 생겼을 때 관심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카풀을 하든 빔프로젝터가 있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터였다.

“부팀장뿐만이 아니라 나도 그렇고, 팀원들도 그렇고 널 정말 아끼고 있으니까 곤란한 일이 생기거나 하면 언제든 말해. 부담 갖지 말고.”

“네, 팀장님.”

이미 몇 번이고 들은 말이었지만, 다시 또 그 말을 들으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순 없었다. 웃으며 고갤 끄덕이자 팀장이 다시 몸을 바로 해 앉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편히 대화 나누는 것도 오래간만이네. 혹시 서강민이나 강승빈이 불편하게 한다거나 그런 적은 없어?”

“다행히 아직까지는요.”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팀원들 덕분인지 몰라도 강승빈과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서강민과는 이렇다 할 말이 오간 적 없었다.

“나중에 무슨 말을 듣게 되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놈들은 그놈들 수준에 맞춰서 대해야지, 네가 맞대응했다가는….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내가 두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울 거라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놀라 그를 바라보는데 팀장은 내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듯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바깥을 보던 팀장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더니 멈췄던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같이 머리 맞대서 해결해 보자.”

“네.”

덩달아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의자에 몸을 푹 기대며 슬쩍 내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물어봐도 될까?”

“당연하죠.”

“이게 사적인 질문이라 조심스러운데…. 혹시 잉여랑 싸웠어?”

“싸, 워요?”

팀장은 말 그대로 싸웠냐는 걸 물어보는 게 아닐 거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에 창문 열어 뒀었잖아. 멀리서 잉여가 너 보고 있던데.”

“아.”

“뭐, 너무 오냐오냐해 주면 그 녀석, 끝없이 기어오르고도 남지. 요즘은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아양 떠느라 바빠 보이긴 했지만 말이야.”

“…….”

역시 A급 헌터는 헌터였다.

부팀장을 제외하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해 침묵하자 팀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은 그렇게 거리도 두고, 티격태격하고 그래야지. 앞서 말했지만 너무 여지 주지 말고. 지금처럼 고삐도 팽팽하게 당기고 놓고 해야 그 녀석이 널 만만하게 여기지 않을 거야.”

“…명심할게요.”

만만하게 여긴다, 라.

순간 내가 만만해서 김세현이 말없이 그런 행동을 취한 건가 싶었지만, 그 생각은 잠깐이었다. 그래, 김세현이 날 정말 만만하게 여긴 거라면 그간 그가 보였던 행동들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

그래도 팀장의 말을 듣고 나니 김세현이 일언반구도 없이 카메라를 설치했는지 조금은 알 듯했다. 평소 제멋대로인 그인지라 아마 그것 역시 그냥 설치한 게 분명했다.

S급 헌터인 데다가 주변에서는 항상 김세현의 기분을 맞춰 주고, 또 그의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하니 그걸 설치한 것 역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

“막내야, 가는 길에 뭐 사 갈까?”

“좋죠.”

간단히 먹을 만한 게 있다면 시간을 보내는 데 제법 도움이 될 터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팀장이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기분이다! 내가 오늘 크게 한턱 내야겠어. 가는 길에 빵집 들를 테니 다 쓸어 담아 보자고!”

“네!”

팀장이라면 정말 있는 빵을 다 쓸어 담을 테니 적당히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는 팀장이 차에 부착된 기계에 주소를 입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경로를 재탐색한 차가 직진하던 것을 멈추고 신호를 받아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골목골목을 누볐다. 그러더니 한 빵집 앞에 차가 섰다.

“여기 주차 시간이 5분이거든? 그 안에 야무지게 챙겨 보자.”

어느새 벨트를 푼 팀장이 바로 차에서 내린다. 팀장을 뒤따라 빵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간 팀장이 사 오곤 하던 익숙한 빵의 외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사고, 이것도 사고.”

5분이라는 시간제한 때문인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팀장은 빵을 고르기 바빴다. 한 손에 트레이를 든 채 턱짓하며 음식을 가리키는 그를 따라 집게로 빵을 나르다 보니 몇 번 만에 이내 트레이 하나가 가득 찼다. 그런데 팀장은 성에 차지 않는지 꽉 찬 트레이를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새로운 트레이를 집어 들었다.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닐까요?”

이미 고른 것만으로도 제법 돈이 나갈 터였다. 걱정스럽게 묻자 팀장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팀원이 늘었으니 이 정돈 사야지.”

“그래도요.”

“걱정하지 마. 이럴 때 아니면 돈 쓸 일도 없어.”

정말 돈을 쓸 일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금 빵을 고르는 팀장을 말리는 건 어려울 듯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을까? 설렘이 가득한 팀장의 얼굴을 보니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를 말리는 걸 포기하곤 팀장이 말하는 빵을 트레이에 옮겨 담길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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