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22. 약점
일정이 있다던 김세현은 역시나 세계헌터협회에서 나온 이들과 함께했다.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만큼 만인의 관심사인 김세현이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했단 사실은 매체들이 열광하고도 남음직한 일이었다. 덕분에 매체만 접하면 백이면 백 김세현의 모습이 보이는 통에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매체 너머로 김세현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
씻으러 가기 전 TV를 켜뒀던 터라 나오자마자 화면 속 김세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목이 타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곧바로 맥주를 챙겨 와 본격적으로 TV 앞에 자리를 잡았다.
“…….”
이미 사무실에서도 TV로, 그리고 검색 사이트로 그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 어떤 스케줄을 소화했고, 또 소화하고 있을지 좀 궁금하긴 했다.
이 궁금증은 세계헌터협회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고, 또 김세현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전자보단 후자를 향한 관심이 더 크긴 했다. 세계헌터협회야 이미 부팀장에게 들은 내용이 있기에 기대감이 없었지만, 김세현은 아니었다.
특히나 이번 자리에는 그간 얼굴을 가린 채 공적인 자리에 참석하던 그가 온전히 제 얼굴을 드러낸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인터넷은 그 어느 때보다 김세현의 외모를 찬양하는 글이 넘쳐흘렀고, 그게 어쩐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어지러운 마음에 괜스레 채널을 돌려봤지만, 어느새 채널은 돌아 뉴스 채널들이 포진한 번호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접한 뉴스 채널에서 손을 멈췄다.
“…….”
때마침 이 뉴스 채널은 세계헌터협회와 관련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뚫어져라 TV를 바라보았다.
― 세계헌터협회가 한국에서 공식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건 세미나를 제외하고 이번이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 행보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S급 헌터인 김세현 헌터가 동행하여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 그러고 보니 김세현 헌터가 이번에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들었습니다만.
― 예, 평소 공식적인 자리에선 항상 얼굴을 가리고 참석하곤 했는데요. 이번 세계헌터협회 방문 일정에서는 얼굴을 완전히 드러낸 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 김 기자님의 들으니 복면을 벗은 김세현 헌터의 모습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화면을 보며 계속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
세계 각국, 이라.
김세현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 여기저기서 관심을 보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뉴스로 그 사실을 접하니 이보다 실감 날 수가 없다. 나는 어느새 화면을 가득 채운 외국인들 사이에 독보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김세현을 발견했다.
“…….”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였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건 저 표정 때문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세계헌터협회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또 협회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건네는 말을 경청하는 이의 모습은 내가 아는 김세현과 거리가 멀었다.
얼굴 가득 감정을 내비치던 김세현이 저리 냉한 표정을 지으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어쩌면 저 냉한 분위기를 내뿜는 김세현을 힐끗거리는 사람들이 자꾸만 화면에 잡혀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김세현을 보고 입을 틀어막는 사람,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사람, 조금이라도 더 그를 카메라에 담아보고자 노력하는 사람 등등. 저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김세현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압살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 시선이 모이고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그래, 능력도 좋고, 외모도 최상위고, 명성까지 따르는 김세현에게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우.”
뛰어난 사람에게는 관심이 따르는 게 당연했지만, 나와 비슷한 마음가짐을 한 이들이 많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그랬다.
…김세현에게 한동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땐 언제고, 막상 다른 이들이 김세현에게 관심을 보이자 불쾌해지는 건 뭘까.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지금 이런 생각을 읽곤 기막히다고 할 게 분명했다.
“하아.”
맥주를 마시려 입을 뗐을 뿐인데 한숨이 나왔다. 깊은 한숨을 토해 내곤 대번에 남은 맥주를 마시는데, 보던 뉴스가 엔딩 멘트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채널을 돌려 다른 각도에서 찍은 김세현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
그렇게 김세현과 관련된 뉴스가 끝나면 채널을 돌리기 수차례, 더는 새로운 내용도 없단 사실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TV론 챙겨 본 것 이상의 것을 보기는 힘들 듯했다. 그래, 이 시간이라면 세계헌터협회에서 온 이들도 쉴 것이었고, 김세현 또한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어느새 열 시에 가까워진 시간임을 확인하곤 남은 맥주를 마신 뒤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이를 닦고 나와 방으로 가 누웠지만, 이보다 더 정신이 또랑또랑할 순 없었다.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김세현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결국 몸을 모로 누이며 핸드폰을 쥐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정보는 대중매체에 실리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었다. 조금 전 보았던 뉴스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이동하는 김세현을 일반인들이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러니 적어도 그때 찍은 사진이라던가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조금만 보고 자야지.”
그래, 궁금해도 조금만 더 보고 눈을 붙여야겠다. 내일은 쉬는 날이라 늦잠을 자도 되었지만, 그래도 너무 늦게 자게 된다면 생체리듬이 깨질 것이었다. 적어도 열 시에는 일어나려면 12시 전에는 눈을 붙여야 했다. 앞으로 두 시간만 보고 자겠다 다짐하며 SNS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아.”
12시 전에 꼭 자고 말겠다던 내 다짐은 그저 다짐일 뿐이었다.
하나만 더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계속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새벽 4시가 가까워질 무렵이 돼서야 정신을 차리곤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토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뜨게 되었고 말이다.
꿀맛과도 같은 토요일의 절반을 이렇게 날려 버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맞춰 둔 알람 소리조차 듣지 못한 터라 더더욱 아쉬울 따름이었다.
위이잉―
그런 내 아쉬움은 아는지 모르는지 청소기는 집 안 곳곳의 먼지를 빨아들이기 바빴다. 연거푸 한숨을 뱉으며 구석구석 꼼꼼히 청소한 뒤, 걸레 밀대로 닦는 것까지 완료하곤 그대로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TV나 볼까?”
생각해 보면 지금쯤 세계헌터협회와 김세현은 한창 스케줄을 이어 가고 있을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TV를 켜 김세현을 찾아본다면 다시금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듯했지만, TV를 켜고 싶단 생각이 드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켜고 싶어졌다.
“…….”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할 땐 언제고, 이렇게 김세현의 흔적만 쫓고 있다니.
이럴 거라면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고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바보 같은 스스로를 힐난하면서도 좀처럼 가시지 않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TV를 켜 뉴스 채널을 뒤적였다.
― …D-15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세계헌터협회 소속 헌터들과 김세현 헌터의 모습 보시죠.
운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다.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바뀌며 이윽고 폐허가 되어 버린 D-15 구역에 나간 외국인들과 김세현, 그리고 한국헌터협회 소속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이 화면에 잡히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을 비추다가도 중간중간 김세현을 담는 영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할 때였다. 나는 한국협회소속 사람들로 추정되는 이들 사이에서 낯익은 이를 발견했다.
“이, 영혁 부장님?”
세계헌터협회에서 나온 만큼 정부에서도 사람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설마 이영혁 부장이 저 자리에 가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느새 화면이 바뀌며 이영혁 부장과 김세현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나왔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여태 놓치고 있던 기자의 멘트가 들려왔다.
― 이번 자리에는 청와대에서도 사람을 파견해 현장의 심각함과 더불어 던전의 위험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던전의 위험을 체감하며 긴밀한 협조를 이어 나가기로 입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부팀장의 말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저 말을 철석같이 믿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뜻을 같이하자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의견을 주고받았을지도 몰랐지만, 역시 그럴 확률은 희박했다.
흰 눈으로 이어지는 뉴스를 볼 때였다. 나는 방에서 들려오는 핸드폰 벨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간에 전화한다거나 메시지를 보낼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TV에 나오는 김세현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황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뒤집혀 있던 핸드폰을 바로 하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아….”
당연히 김세현의 연락이라 여겼건만, 화면에 떠 있는 건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였다. 나는 차오르는 허탈함에 그대로 침대에 주저앉았다.
“후우.”
김세현의 전화가 아닐 수도 있음에도 당연하듯 그의 전화일 거라 여기며 뛰어 들어온 스스로가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어째 그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기 전보다 더 의식하는 기분이다. 나는 연거푸 한숨을 뱉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