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73)화 (173/246)

170화

22. 약점

거실 청소를 마치고 부팀장과 함께 문을 수리하러 온 사람을 기다린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차가 제법 막히던 상황임에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수리기사들은 순식간에 뜯어진 현관문 자리에 새로운 문짝을 달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건 저희가 챙겨 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짤막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이들이 뒷정리를 마치곤 뜯어진 문짝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뒤따라 나가 그들을 배웅한 뒤 다시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새로 단 현관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는 나를 바라보는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

저들이 와서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김세현은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짝이 도착하기 전에도, 부팀장이 집 밖으로 나와 문을 다는 모습을 함께 지켜볼 때도 그는 문이 아닌 나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작게 한숨을 뱉곤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 씨, 잠금장치가 바로바로 작동하는군요.”

“감사합니다, 부팀장님.”

내가 확인해야 할 부분인데 부팀장이 봐줄 줄은 몰랐다. 문을 열고 나온 부팀장을 향해 인사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확실하게 확인해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부팀장이 열어 놓은 문짝 이곳저곳에 핸드폰 라이트를 비추며 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저리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싶겠지만, 빔프로젝터 일을 생각해 보면 저리 확인하는 것도 무린 아니었다. 한참 동안 문을 확인하던 부팀장이 이윽고 라이트를 껐다. 그러더니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엔 특별히 다른 장치가 보이지 않는군요.”

“네.”

“확인할 것도 했고, 현관문도 제대로 자리 잡은 것도 봤으니 이제 슬슬 가 봐야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부팀장님.”

“아닙니다. 만에 하나 내게 이런 일이 생겼다면 하늘 씨도 나와 똑같이 했을 겁니다. 물론, 다른 팀원들도 그렇고요.”

“네.”

부팀장의 말을 듣자 미안함이 한결 덜어지는 기분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부팀장이 슬쩍 입가를 말아 올리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럼 이제 나도 갈 테니, 김세현 씨도 돌아가도록 해요.”

문까지 확인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진정된 듯 부팀장의 말투가 평소대로 돌아왔다.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는 부팀장을 따라 눈길을 옮기니 역시나 바로 눈이 마주쳤다.

“하늘 형….”

말끝을 흐리는 것이 역시 단호한 내 태도 덕에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무언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는 듯한 김세현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멀쩡하던 문이 뜯긴 거라서 이 말을 해야 하나 싶지만, 새 현관문으로 바꿔 줘서 고마워요.”

이 상황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다. 고맙다는 인사말을 들은 김세현의 눈이 커지나 싶더니 얼굴 가득 기대감이 들어찼다.

“…….”

상황이 터지고 문짝이 수리될 때까지 잠시 생각할 시간이 있었던 지라 처음 카메라를 발견했을 때보단 제법 마음이 진정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저 얼굴을 보니 아주 잠깐 여지를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나는 한 번 더 마음을 굳게 다지며 김세현을 무시한 채 부팀장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 김세현 씨, 이제 나도 가는데 그쪽도 집에 가도록 해요.”

“혀엉.”

“조심히 가세요.”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김세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직 서운함도 다 풀리지 않았고 말이다. 내 단호한 답변 때문일까, 그가 깊은 한숨을 뱉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더니 부팀장을 지나쳐 먼저 대문을 나서는데, 그 모습이 제법 안쓰러워 보였다.

“그럼 하늘 씨,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도록 합시다. 먼저 들어가요. 문 닫히는 거 보고 가겠습니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겠단 말을 하며 슬쩍 대문 쪽을 흘겨보는 것이 아무래도 김세현이 다시 또 찾아올까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부팀장에게 인사를 건네곤 문을 닫았다.

띠리릭―

“…….”

부팀장이 이미 확인한 부분이긴 했지만, 문이 닫힘과 동시에 잠금장치가 동작하는 게 확실히 이전문에 달린 잠금장치와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이전문보다 훨씬 두꺼워진 문의 두께도 제법 든든하다 느껴졌고.

나는 한참을 그렇게 새로 단 문짝을 살펴보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이 벌어진 터라 자꾸만 정신을 놓게 되는 것 같았지만, 이젠 마음을 다잡을 때였다. 나는 한 번 더 거실 청소를 하고는 샤워하려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옷을 벗으려다가 행동을 멈췄다.

“후우.”

평소 같았다면 편히 옷을 벗어 던졌겠지만, 일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주저하게 된다. 욕실로 들어가 탈의해 옷을 밖으로 내던졌다가 방금 전 행동을 되짚곤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내 집에서 이렇게 조심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얼른 샤워부터 해야지.”

퇴근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기에 어서 씻어야 할 일을 좀 하고 잘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복잡한 머릿속도 물을 맞으면 좀 정리될 수도 있겠고 말이다. 나는 곧바로 샤워기 아래로 가 물을 틀었다.

다음 날 아침, 부팀장과 함께 출근길에 올라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라디오를 듣던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듣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뉴스를 흘려듣던 중 생각지도 못한 뉴스 내용이 흘러나오자 자세를 바로 했다.

― 다음 뉴스입니다. 며칠 전 D-15 구역에 난이도 A급, 규모 A급의 던전이 생성되었다는 건 소식을 들은 분이라면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특히 같은 지역에 난이도 높은 던전이 연이어 생성된 것이 처음이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요, 이번 던전 생성과 관련하여 세계헌터협회에서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조사단이라….”

운전하던 부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를 뱉었다. 나는 앞을 보다 말고 운전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 씨는 세계헌터협회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시선을 주기 무섭게 부팀장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각 나라 협회들이 모여 만든 곳이라는 거 말곤 특별히 아는 건 없어요.”

세계헌터협회가 존재한다고 듣긴 했지만, 그들이 활동하는 곳은 대체로 서부권 혹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그런 이들이 D-15 구역에 발생했던 던전을 조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니.

“세계헌터협회라곤 하지만, 썩 믿음이 가진 않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와 봤자 우리나라 협회 쪽과 공조할 테니까요. 서로 속닥거리며 장단을 맞출 꼴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군요.”

“정부와 공조하는 게 아니라요?”

“아쉽게도 그들 역시 우리나라 협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족속들이라서요.”

“아….”

그건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협회야 이미 안 좋은 모습들만 봤던 지라 적어도 세계협회만큼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쩌면 우리나라 협회가 그들에 비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헌터협회는 그야말로 돈, 혹은 강력한 헌터가 있는 나라의 입김이 강한 편입니다. 우리나라도 따지고 보면 후자에 속하지만, 힘 있는 헌터가 그쪽에 관심이 없는 터라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얼핏 들은 기억이 있군요.”

“…….”

여기서 힘 있는 헌터라 함은 예의 김세현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김세현의 이름을 떠올림과 동시에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쓴 미소를 지으며 이어지는 부팀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까진 김세현이 호주에 생성되었던 S급 던전을 순식간에 클리어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던전 클리어 이후 세계헌터협회도 태세가 바뀌지 않았을까 싶군요. 우리나라 협회야 무시해도 그만이겠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타국으로 이적이 가능한 김세현의 압도적인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요.”

“…기왕이면 우리나라 눈치를 좀 봐 줬으면 좋겠네요.”

“예.”

우리나라 협회가 영 별로긴 했지만, 그렇다고 외국 협회에게 무시당하는 꼴은 보기 싫었다. 기왕이면 한껏 눈치를 살피고 또 보길 바랐다.

“그건 그렇고.”

한창 세계헌터협회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데, 부팀장의 말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날 힐끗거렸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부팀장의 모습에 바로 반응했다.

“말씀하세요.”

“어제 일 말입니다.”

“…네.”

무슨 말을 하나 했는데, 어제 이야기를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순간 긴장된 마음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울 때였다.

“팀원들에겐 함구해 두겠습니다. 이제야 막 충원된 이들도 있어 쉬이 말을 꺼내기도 좀 그렇고요.”

“네.”

확실히 아직 잘 모르는 이들 앞에서 내 사생활을 거론하는 건 좀 그랬다. 특히나 김세현과 관련된 일인지라 더더욱 말조심하는 편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어제 김세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자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니.

“…….”

아직도 그 말이 아리송했지만, 조심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그래, 말조심하는 건 말할 때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부분이니 어렵지 않았다.

“물론, 침묵해도 된다고 결론을 내린 건 하늘 씨가 보인 태도 덕분이긴 합니다.”

“제 태도요?”

나는 특별히 뭔갈 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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