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71)화 (171/246)

168화

22. 약점

“…아.”

아래 경첩에 겨우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문짝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멍하니 문짝만을 볼 때였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문짝이 좀 더 기울어졌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자극적인 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와 동시에 반쯤 놓고 있던 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려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

그간 보아온 김세현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이런저런 반응을 보였었다. 웃기도 하고, 눈으로 신호를 주기도 하고. 성큼 다가오기도 했고, 또 후욱거리며 거친 숨소리를 뱉기도 했고 말이다. 개중에는 시선을 피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회피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속이 훤히 보이는 행동 때문일까, 찬물을 끼얹기라도 한 듯 머릿속이 순간 차분하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덩달아 거세게 뛰던 심장 박동도 점차 평온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해진 걸 느끼며 계속해서 김세현을 응시했다.

하지만 김세현은 좀처럼 다시 눈을 마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세현 씨, 저게 뭐예요?”

“…….”

다른 때라면 뭐라 변명이라도 했을 텐데, 도통 답변이 없다. 그 모습에 진정되던 감정이 요동쳤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문짝 뜯은 건 뭐라 안 할게요. 그런데 빔프로젝터 안에 저거, 도대체 왜 저기 달려 있던 거예요?”

이미 정체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정체가 아닌 저걸 설치한 이유였다. 이번에도 역시나 김세현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저 내가 느끼기에 그런 것뿐인지, 아니면 정말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건지 모를 기다림이 이어질 때였다. 꿈쩍도 하지 않던 김세현이 드디어 눈을 마주해 왔다.

“형.”

“네, 세현 씨.”

부름과 동시에 바로 답하자 김세현이 멈칫하다가 이내 크게 한숨을 뱉었다. 그러더니 이내 눈가가 아래로 늘어졌다.

“…….”

이전 같았다면 저 눈가가 무척 신경이 쓰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대꾸 없이 그가 대답하기를 계속해서 기다렸다.

다른 날관 다른 반응에 김세현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푸른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는 모습에도 꿋꿋하게 침묵을 유지하니 마침내 그가 답했다.

“이상한 뜻으로 설치한 건 아니에요.”

“그럼요?”

“형이 걱정돼서 설치했어요.”

날 보호하려 설치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나를 이해시키기 힘들었다. 부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빛을 보내자 그가 모든 걸 포기한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는 떠듬떠듬 저것을 설치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형은 모르겠지만, 형에게 관심 있는 놈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게 중에는 위험한 놈들도 많고요. 혹시나 그놈들이 찾아오면 어쩌나 싶어서 카메라를 추가했을 뿐이에요. 따로 알리지 않은 건 형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래요, 그래서 그랬어요!”

처음에는 작았던 김세현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가서는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말문을 잃은 것도 잠시, 곧바로 그에게 되물었다.

“제게 관심을 보이는 노, 사람들이 많다고요?”

저 말이 핑계가 아닐까 싶은 건 내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시민이기 때문이었다. 내세울 거라곤 서울시 헌터부 소속 공무원이라는 것 말곤 없었다. 절로 찌푸려진 미간을 인지하며 김세현을 보는데, 돌연 그가 언성을 높였다.

“완전 많아요! 여기저기 도처에 다 깔려 있다고요!”

“…….”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아요? 혹여 형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확인할 정도라고요!”

“시간이, 날 때마다….”

순간 잉여란 별명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 건 뭘까.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통해 집 안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얼이 나갈 순 없었다. 하지만 나완 달리 김세현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형 옆에 떡하니 자리 지키고 있지만 저 제법 바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짬이 날 때마다 괜찮은가 확인 정도만 했어요! 저 카메란 도청기보다 소리를 더 잘 잡는다고 해서 설치했을 뿐이고요! 카메라 잘 확인해 봐요, 렌즈 확실하게 가렸으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형 사생활을 몰래 훔쳐볼 만큼 나 그렇게…. 그렇게 변탠 아니거든요?”

내 표정이나 눈빛이 영 좋지 않았는지 김세현이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변호했다. 변태란 말을 뱉으며 잔뜩 울상이 된 얼굴을 보니 정말 억울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무의식적으로 현관 쪽을 바라보다가 여태 눈에 들어오지 않던 빨래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시금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

렌즈가 가려져 있다곤 했지만,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터라 저 말을 믿기 힘들었다. 더욱더 강해진 의심을 안고 그를 보자 김세현이 답답하다는 듯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내리쳤다.

“진짜예요! 그렇게 못 믿겠으면 얼른 확인해 봐요!”

아무래도 저 말이 진짜인지 알아보려면 직접 확인하는 게 나을 듯했다. 나는 분해된 빔프로젝터를 가지고 있는 부팀장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

김세현의 말을 듣기 전부터였을지, 아니면 막 확인하기 시작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부팀장은 이미 빔프로젝터에 설치되었던 카메라의 렌즈 부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핸드폰 불빛을 이용해 렌즈를 확인하고, 또 이것저것 만져보는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부팀장이 고개를 들어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도청 내용 소장 중인 건 아니겠지?”

도청이라 확신하며 말하는 걸 보면 김세현이 했던 말처럼 확실히 카메라 렌즈가 가려져 있긴 했던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경직되었던 몸의 긴장이 풀려가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혼자 사는 집인지라 헐벗은 모습으로 욕실에서 나오던 일이 잦았는데 렌즈가 정말 가려져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변태야? 그런 걸 소장하게!”

부팀장의 말에 김세현이 그 어느 때보다 발끈했다.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펄쩍 뛰는데, 소장이란 단어조차 생각해 본 적 없어 보였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간에 허락받지 않고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문제지.”

“그건….”

부팀장의 말에 김세현이 말끝을 흐렸다. 그에 이번엔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눈이 마주친 그가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형이랑 관련된 일인데,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일 진행한 건 내 실책이에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쉬이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건 이 상황을 만든 사람이 김세현이기 때문이었다. 방금 본인이 말한 것처럼 적어도 한 마디 해 줬더라면 이렇게 허탈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진짜 매일 확인한다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얼마 전에 강승빈 그놈이 약점 어쩌고 해서 어제오늘 퇴근 시간에 맞춰서 형이 잘 있나 확인만 했어요!”

카메라 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강승빈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설령 강승빈을 거론할 상황이라고 한들 그날 김세현이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세현 씨는 약점이 없다면서요. …신경 써 주는 건 고맙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 만에 하나 약점이 있다고 해도 전 세현 씨 약점이 아니에요!”

그래, 김세현 말마따나 그에게 있어 난 약점이 아니라 떡하니 내놓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곧바로 반박하자 김세현이 바로 답했다.

“그건 나도 잘 알죠! 내가 말했잖아요, 형은 앞에 내놓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다만 걸리는 놈들이 있어서 만반의 준비를 하다 보니 형한테 말해야 한다는 걸 놓쳤던 거뿐이에요.”

도대체 언제부터 내게 관심을 보인 이들이 있었단 걸까. 이런 걸 집 안에 설치할 정도라면 이전부터 시그널이 있었는데, 내가 놓치고 있었단 뜻이었다. 혹시나 싶어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던 중이었다. 나는 예전에 기석이 녀석이 휴가를 나왔을 때 집 앞에서 김세현을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

“…….”

그러고 보니 검은 구체를 보게 된 게 그즈음이었다. 그날 처음 봤는지, 이전에도 봤었는지 또렷이 기억나진 않았지만, 그날 저 검은 구체를 인지한 것은 맞았다.

아니지, 달리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날 김세현이 처음으로 구체를 설치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날 이후 집 주변에서 검은 구체가 자주 발견되진 않았을 테니까. 나는 넌지시 운을 떼며 그 구체의 정체 또한 물어보았다.

“혹시 집 주변에 검은 구체 모양의 카메라 설치한 것도 세현 씨예요?”

“…맞아요.”

내 질문에 멈칫하던 김세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하며 넘겨짚었건만, 정말 카메라였을 줄이야.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토해 내자 김세현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에 반응할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

그는 손에 쥔 기계와 김세현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다 말고, 또 말고 하는 모습이 할 말이 많은데 제대로 정돈이 되지 않아 말을 고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시 김세현을 보려는데 부팀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누가 하늘 씨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몇몇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텐데?”

부팀장의 질문을 받아치는 김세현의 태도는 나를 대할 때완 딴판이었다.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한 그가 짝다리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에 똬리를 틀고 있는 편이 가장 나을 테지만 매번 그럴 수도 없으니까. 형은, 우리랑 달리 일반인이잖아?”

“…….”

“…저건 부수건 버리건 형 처분에 맡길게요. 하지만 집 주변 살피는 건 양보 못 해요. 형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진짜 눈 돌지도 모르니까.”

무슨 상상을 한 건지 김세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고개를 젓고는 애써 침착한 척 표정을 관리하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김세현 본인의 입으로 내가 약점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김세현이 말하고 행동하는 걸 보면 내가 그의 약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몹시 소중한, 그런 약점 말이다.

소중하다는 말을 떠올려서일까,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심장의 떨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떨림에 집중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 지금은 이 상황을 매듭짓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가 풀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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