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70)화 (170/246)

167화

22. 약점

“비상약 드릴까요?”

“…….”

설마, 답할 기력도 없을 만큼 탈이 난 걸까?

황급히 부팀장에게 다가가며 그를 불러봤지만 이번에도 부팀장은 침묵할 뿐이었다.

“일단 소파에 앉아서…. 아니지, 좀 누워 계실래요? 얼른 약 챙겨서 올게요.”

그를 부축해 일단 자리에 눕혀야겠단 생각에 다가가 손을 뻗을 때였다. 손이 닿기 전 뒤로 물러선 부팀장이 입을 열었다.

“거실에 있는 저건 뭡니까.”

“저거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TV 옆에 둥그런 검은 물체 말입니다.”

“아!”

뭘 말하나 싶었는데 빔프로젝터를 가리키는 줄은 몰랐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답했다.

“빔프로젝터예요. 이전에 세현 씨가 줬다고 했던 그거요.”

“…저게, 빔프로젝터라고 했습니까?”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마치 저게 빔프로젝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진 채 물어보는데, 왜 그런지 의아했다.

“네? 네.”

“하.”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자니 뭐가 잘못된 것 같단 생각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이전에 나 역시 빔프로젝터를 보며 의심했던 걸 상기해 내곤 딴에 알아보았던 것을 입에 담았다.

“아, 저 빔프로젝터와 같은 라인 물건들이 같은 디자인이긴 하더라고요. 저도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었는데, 빔프로젝터 맞아요. 저걸로 영화도 보고 했거든요.”

만약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방범용 카메라란 의심을 내려놓지 못했을 거다. 부팀장도 집 주변에서 저것과 똑같은 걸 봤던지라 저런 반응을 보일 법도 했다.

같은 라인에 빔프로젝터가 있다는 말을 들은 부팀장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뿐이랴,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선 채 날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무척 생경했다.

“영화 보는 기능이 추가된 것이겠죠.”

“…네?”

이보다 시니컬한 어조는 들어 본 적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혹감에 눈을 끔벅이는데 부팀장이 고개를 들며 날 불렀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잠깐 방에서 나오도록 해요.”

말을 뱉은 부팀장이 굳은 얼굴로 먼저 자리를 뜨는데,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군소리 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

막상 방을 나오니 부팀장은 TV가 아닌 소파 쪽에 서 있었다. 다가가 말을 건네려는데, 별안간 부팀장이 내 몸을 끌어당겼다.

“어, 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터라 상황을 파악하는 데까진 시간이 제법 걸렸다.

부팀장에게 다가가자 손목이 붙잡혔고, 그대로 그가 당기자 속수무책으로 끌려간 몸이 소파 좌방석에 눕혀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부팀장이 내 행동을 제지하며 몸 위로 올라와서는 머리 양옆으로 손을 짚었다.

“부, 팀장님?”

“쉿.”

“…….”

조용히 하라고 하니 조용히 하겠지만,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치 위에서 물건이 떨어질 때 밑의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그런 자세로 부팀장이 내 위에 올라와 있는 걸 지켜볼 때였다.

“이것만큼 저것의 정체를 알아보기 쉬운 방법도 없죠.”

저거라면 예의 빔프로젝터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도대체 부팀장이 무엇을 발견했기에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걸까. 한 번 더 빔프로젝터를 살펴보기 위해 TV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부팀장이 그런 날 제지했다.

“지금 보면 효과가 떨어집니다.”

“효과라뇨?”

“한 번 실험해 보는 겁니다. 저게 정말 빔프로젝터가 맞는지.”

영화까지 봤는데 저게 빔프로젝터가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부팀장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있자니 한시라도 빨리 빔프로젝터임을 확인시켜 줘야만 할 듯했다. 그래, 저걸로 영상을 튼다면 의심은 빨리 사그라들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부팀장이 반응하는데 일단은 그의 말을 따르는 게 나음 직했다.

그렇게 몇 분을 부팀장의 밑에 누워 얌전히 기다리는데, 어째 시간이 흐를수록 부팀장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속이 안 좋았던 그인지라 지금도 속이 편치는 않을 것이었다. 힐끔 얼굴을 확인하자 역시나 부팀장의 얼굴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부팀장님, 인제 그만 확인하셔도….”

콰앙!

하지만 내 말은 제대로 끝맺을 수 없었다. 현관문 쪽에서 들려온 굉음에 놀라 몸을 일으키려니 내 위에 있던 부팀장이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붙잡고 일어나 앉으려던 때였다.

“하늘 혀엉!”

“…세현 씨?”

큰 굉음도 굉음이었지만 난데없이 김세현의 목소리가 들릴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놀라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김세현을 발견했다. 그래, 김세현은 이미 거실에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하지만 김세현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대신 부팀장을 향해 잔뜩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야말로 무슨 짓을 벌이는지 묻고 싶은데.”

“부, 팀장님?”

처음 부팀장을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말을 놓은 적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 듣는 부팀장의 말투,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온 김세현까지.

도무지 현 상황을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형, 이쪽으로 와요.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다들 속만 시커매서는!”

잔뜩 흥분한 게 여실히 느껴질 만큼 김세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기다 거친 숨까지 더해지자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제일 까만 건 김세현 너일 텐데.”

“내가 예전에 말했죠? 나 말고 다른 남자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내가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집 위치를 안다고 해서 불쑥 찾아왔을 리는 없겠고.”

“형, 난 언제나 형 편인 거 알죠? 피치 못할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면 언제든 내게 도움 청하면 돼요!”

“어디서 지켜보고 있었나 보지? 아니라면 뭔가로 지켜보고 있었다던가? 이렇게 즉각 달려온 거 보면 뭔가 있나 본데.”

“형,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혹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죠?”

“모르는 곳이라. 마치 이곳은 본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

서로 다른 말을 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던 와중이었다. 부팀장의 말에 김세현의 입이 꾹 다물렸다.

“매번 뚫린 입으로 주절거리기 바쁘던데 왜 말을 못 하지? 아, 정곡을 찔렸나 보군. 이곳을 손아귀에 쥐려고 선물인 척 건넨 저걸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저, 거?

부팀장이 가리키는 쪽으로 눈을 움직이니 그곳엔 빔프로젝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역시, 아직도 의심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역시 영상을 틀어야겠단 생각을 하며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

그간 보아온 김세현을 생각하면 지금쯤 무슨 말을 하거나 혹은 행동으로 저게 빔프로젝터가 맞는다는 걸 보여줬을 것이었다. 하지만 김세현은 그저 침묵을 고수할 뿐이었다. 한껏 떠들다가 침묵하는 그가 이상해 뚫어져라 바라볼 때였다. 이리저리 눈을 움직이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시선을 피했다.

“세현 씨?”

한 번 더 그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김세현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평소엔 이런 적 없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 불안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이 그런 일을 할 리 없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확신할 수 없었다. 뭐라도 좋으니 답해주길 바라며 김세현을 바라볼 때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부팀장이 TV 쪽으로 가더니 빔프로젝터를 들고 다시 곁으로 와 섰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순순히 자백할 것 같진 않으니 이거 분해하도록 하죠.”

“안 돼!”

당연히 나도 안 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김세현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무척 다급한 목소리에 다시금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

도대체 뭐가 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의심을 하게 되면 끝도 없이 하게 되기에 의심은 되도록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앞뒤 사정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부팀장 쪽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부팀장의 손에는 빔프로젝터가 두 동강 난 채 들려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놈도 자기 물건을 파손했다고 뭐라고 하지 못할 테니까.”

이젠 김세현을 저놈 취급하기 시작했다. 휙휙 바뀌는 부팀장의 반응을 보니 그 또한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평소완 다른 김세현을 의심하고 있는 듯했다.

빔프로젝터를 든 부팀장이 동강 난 기계 내부를 펼쳐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곁에서 함께 빔프로젝터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

어째서, 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건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닌 그 어떤 누구라 할지라도 지금 상황에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빔프로젝터 내부엔 기계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알고 있는, 한때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초소형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었으니까.

어떤 해명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김세현의 입은 도통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시선을 피하는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난데없이 찬 바람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

분명 문을 닫고 왔는데, 왜 이런 바람이 들어오는 건지 모르겠다. 현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슬그머니 움직여 무슨 일인지 확인했다. 그리곤 이번에도 역시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발견하곤 우뚝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닫혀 있던 현관도어가 반쯤 뜯긴 채 달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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