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22. 약점
“다들 수고했어. 내일은 다시 또 현장에 나가봐야 하니 다들 집에 들어가서 푹 쉬고.”
“예!”
“고생하셨습니다!”
“어우, 오후 출근을 했더니 바로 퇴근하고 괜히 좋네요.”
“그치? 전날 고생한 건 생각도 안 나네.”
출근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바로 퇴근한단 사실은 사람을 붕 뜨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침부터 출근한 나조차도 팀원들이 오후에 출근한 여파가 미쳤는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느낌이었다.
“…….”
그러고 보니 오늘 김세현도 일이 있다며 일찍 자리를 뜬 상황이었다. 김세현이 앉아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아뇨.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요.”
김세현이 앉는 의자가 팀장 자리 쪽에 있는지라 오해를 살 만도 했다.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팀장을 보며 고개를 젓자,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빈 의자로 옮겨졌다. 그리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런 거라면야.”
“…….”
저 웃음을 보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대번에 알아차린 듯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일어나니 뒤따라 부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 씨, 가죠.”
“네.”
아직도 짐을 꾸리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출입문 쪽으로 이동할 때였다.
“막, 연 주무관. 같이 가자!”
같이 가자며 박 주무관이 마저 짐을 챙기곤 곁으로 와 섰다.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씩 웃는 것이 할 말이 있어 보였다. 그를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팀장, 그리고 박 주무관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출근해 보니 일감이 많이 줄었더라고. 슬쩍 부팀장님께 여쭤보니까 네가 처리했다고 하더라.”
“많기는요. 전달받은 거 다 처리도 하지 못했는데요.”
기왕이면 팀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전부 처리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제대로 마무리도 짓지 못하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그정리 확실하게 해줘서 바로 내용 파악해서 이어서 마무리할 수 있었어. 우리 막, 연 주무관 일 처리가 아주 대단해!”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할 건 해야지!”
“맞습니다. 잘하는 건 칭찬해야죠.”
“…….”
박 주무관에 이어 부팀장까지 칭찬해야 한다고 하니 왜 이리 민망한지 모르겠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잠시 뒤, 문이 닫히는데 황급히 그 문을 잡는 손이 보였다.
“어!”
“아, 죄송합니다. 코앞에서 문이 닫히다 보니….”
“아닙니다. 어서 타세요.”
갑자기 튀어나온 손에 놀랐는데, 별 탈 없이 문이 다시 열려 다행이었다. 머쓱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온 팀원이 타고 얼마 안 가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혔다.
“어제오늘 고생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정규직이 되어서 그런지 힘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았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헌터라 할지라도 시험을 치르고 난 이후에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기에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으니까.
다시금 팀원을 살피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표정만큼은 그 무엇보다 밝아 보였다. 저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운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체력 안배 잘하셔야 합니다! 정신 차리고 보면 정말 체력 바닥날 수도 있어요!”
“하하, 예. 명심하죠.”
기운이 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사무실에 있을 때보다 활기를 띠는 박 주무관의 말을 들은 팀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덩달아 웃다 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해 있었다. 함께 내려 건물을 나서자 박 주무관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럼 연 주무관, 오늘 고마웠어! 부팀장님 들어가십쇼! 들어가세요!”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봅시다.”
짤막하게 인사를 나누곤 주차장으로 가 차에 오르자 등과 다리에 닿는 푹신한 감촉이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몸을 축 늘어뜨리며 긴 한숨을 뱉었다.
“하아.”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일하는 건 좋았는데, 아무래도 정신적인 피로가 좀 쌓였나 봐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빨리 끝나 기분이 좋았는데, 생각보다 몸은 피로했던 모양이었다.
“초반이라 그런 거니 차차 나아질 겁니다.”
정신적 피로라는 말을 듣곤 대번에 내가 생각하는 부분을 짚어 낸다. 역시 부팀장이라 추켜세우던 중 문득 든 생각에 바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부팀장님은 괜찮으세요?”
“저도 제법 피곤합니다. 이번 주 주말은 정말 푹 쉬어야 할 거 같군요.”
“저도요.”
새로운 이들이 오면서 주말에 쉬는 순번이 바뀌어 이번 주는 부팀장과 나, 그리고 강승빈이 쉬게 된 상황이었다.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네.”
출발한다는 말에 바로 벨트를 매자 부팀장이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던 중이었다. 부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혼자 다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요. 피치 못하게 혼자 다닐 일이 생긴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생길 시에는 김세현이라도 부르십시오.”
“세, 현 씨를요?”
그간 김세현과 단둘이 있지 말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던 터라 지금 부팀장의 말은 파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었다. 놀라 그를 보자 부팀장이 말을 이었다.
“항상 조심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김세현도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늘 씨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닌 듯하니까요.”
다른 팀원도 아니고 부팀장이 김세현을 이렇게 평가한다니 꿈이 아닐까 싶어질 지경이다. 하지만 그 평가가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가웠다. 그간 잉여에다 돈벌레 등등의 안 좋은 별명으로 불리던 이의 평가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과도 같았으니까.
“…명심할게요.”
“물론, 김세현을 부를 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우선입니다.”
“네.”
부팀장이 말하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는 게 맞았다. 한 번 더 답하자 부팀장이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
그나저나 오늘따라 차가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평소라면 지금쯤 집 근처의 골목으로 들어섰을 텐데, 사무실에서 나온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도로 위였다. 고요한 차 안이 부담스러웠는지 부팀장이 라디오를 켜 음악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었다.
“차가 제법 막히는군요. 아무래도 사고가 나거나 뭔가 다른 일이 발생한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가는 길에 패스트푸드점에 들러서 요기하지 않겠습니까? 제법 허기가 지는군요.”
“저야 좋죠.”
나 역시 슬슬 배가 고파 오던 참이었다. 반색하자 부팀장이 웃으며 차선을 변경했다.
“하늘 씨도 제법 배가 고팠나 봅니다.”
“햄버거 이야길 하니까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오래간만에 먹는 거기도 하고요.”
“가끔 퇴근길에 들러서 먹죠. 시간이 맞을 땐 같이 저녁도 먹으러 가고요.”
“네!”
혼자 저녁을 먹는 건 이제 제법 적응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럿이 먹는 밥이 더 맛있었다. 메뉴도 의논하여 각자 음식을 시켜 나눠 먹을 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자금의 압박으로 인해 자주 먹진 못하겠지만, 그간 함께 이동하며 부팀장이 제안을 해온 건 처음인지라 이보다 기쁠 순 없었다.
“저기 보이는군요. 드라이버스루도 된다고 하니 편히 주문하면 될 듯합니다.”
“어…. 차에서 먹나요?”
당연히 내려서 먹을 줄 알았다. 드라이버스루 이야기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괜히 눈에 띄어 좋지 않습니다. 특히나 대형 던전이 생성된 직후엔 더욱 몸을 사리는 게 맞고요.”
“아.”
“일례로, 과거에 한 번 던전 클리어한 직후 간단히 끼니를 때우려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헌터부 직원이라는 걸 알아본 이들이 인터넷에 그 사진과 함께 악의적인 내용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
“그 뒤론 던전 생성 직후만큼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지 않습니다.”
얼마나 악의적인 내용이었기에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하는 걸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지 부팀장의 표정이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눈치를 보던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부스러기 흘리지 않게 조심히 먹을게요.”
“풉, 좀 흘려도 됩니다.”
혹시나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부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안도하는데, 차가 패스트푸드점에 당도했다.
순서를 기다려 빠르게 주문을 마치고 잠시 뒤, 햄버거를 수령하자 차 안에 햄버거 냄새가 가득 찼다. 나는 꼴깍 침을 삼키며 부팀장의 것을 꺼내 그에게 먼저 전달했다.
“부팀장님, 여기 햄버거랑 음료요.”
“여기 주차장에서 간단히 먹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먹기엔 차가 너무 막히는군요.”
“좋아요.”
지금은 어디 이동하는 것보단 안전하게 먹는 편이 좋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부팀장이 주차장을 돌다가 나온 자리에 차를 주차한다. 시동이 꺼지고 부팀장이 벨트를 푸는 것을 확인하곤 나 역시 벨트를 풀며 햄버거를 손에 쥐었다.
“어서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
이 얼마 만에 먹는 햄버거인지 모르겠다. 코를 자극하는 향을 맡으며 한 입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퍼지는 햄버거 맛에 없던 식욕까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버거 하나를 해치우곤, 잠시 고민하다가 집에 가서 먹으려 아껴둔 햄버거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맛을 음미하며 먹겠다 다짐했지만, 그 버거 역시 내 손에 쥐어진 시간은 무척 짧았다.
“…….”
순식간에 해치웠기 때문일까, 좀처럼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빈 포장지를 바라보며 음료를 마시는데, 옆자리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말고 가는 길에 버거 더 사서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럼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먹는 데 집중하다 보니 함께 식사 중이던 부팀장을 신경 쓰지 못했다. 곧장 패스트푸드점으로 가 버거를 사고 돌아오니 부팀장 또한 식사를 마쳤는지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출발하죠.”
“네.”
워낙 빨리 식사가 끝난 터라 아직도 길은 막혀 있었지만, 이젠 집까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배를 채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밖을 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부팀장님, 그럼….”
인사를 건네며 옆을 보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부팀장의 낯이 어딘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낯익은 건 아마 같이 지낸 시간이 있기 때문일 거다. 나는 황급히 말을 꺼냈다.
“잠깐 들렀다 가실래요?”
“…첫 방문부터 화장실이라니 민망하군요.”
“아니에요.”
어지간히 급했는지 부팀장이 바로 차에서 내렸다. 재빨리 내려 집 문을 열곤 뒤따라 들어온 그에게 화장실 위치를 안내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짐 정리하고 있을게요.”
혹시나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곧바로 방으로 가 차근차근 짐을 정리한 뒤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생각보다 일찍 나왔는지 부팀장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데, 어느새 방문 앞에 당도한 그가 뚫어져라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조금 전보다 훨씬 창백해진 얼굴로 말이다. 나는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