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21. 재회
“왜 그렇게 보십니까.”
너무 대놓고 봐서일까, 부팀장이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볼을 긁적이며 생각하던 걸 입에 담았다.
“그냥요. 부팀장님 덕분에 오래간만에 편히 있을 수 있게 된 거 같아서요.”
“이제야 이틀째인데 피로가 상당하군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부팀장도 이렇게나 피곤해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혹여 어디가 아픈데 티 내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그를 살필 때였다. 잠시 천장을 보는가 싶던 부팀장이 픽 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마주해왔다.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됩니다. 몸에 이상이 오거나 하진 않았으니까요.”
“네.”
딴에 조심했는데,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나 보다. 머쓱하게 웃으며 따라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으니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었다. 한적해진 분위기가 몹시 마음에 들었지만, 이제는 이런 한적함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전무하다고 봐야 했다.
현장에 나간 팀원들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누리는 게 좋았다. 느리게 눈을 끔벅이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부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하늘 씨, 리모컨 있습니까?”
“네, 여기요.”
팀장 자리에 있던 TV 리모컨을 건네자 부팀장이 곧바로 TV를 켜 채널을 돌렸다. 계속해서 넘어가던 채널이 이윽고 뉴스 채널에서 멈췄다. 현장에 나가 있는 듯 LIVE라고 오른쪽 상단에 뜬 영상이 보이자 집중해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
검은 연기가 여기저기 올라오는 장면과 더불어 이전에 봤을 때완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여기저기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비추는데 그저 참혹하단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 던전으로 인해 피해가 컸던 시민들이 걱정이군요.”
“무척이요.”
아직도 그날 기억이 생생했다.
균열도 균열이었지만 뇌리에 가장 깊숙하게 파고든 건 구슬땀을 흘리며 터전을 재건하려 노력하던 시민들이었다.
“현장에 가서 보니 나라의 지원이 못 미치는 부분도 더러 있더라고요.”
“그는 저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책이라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에 맞춰 세심하게 진행되지 못하기에 음영이 생길 수밖에요. 하지만 그 음영을 계속해서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를 비롯한 공무원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네.”
정말 어쩜 이렇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부팀장의 말마따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계속해서 줄여 나가는 노력이 필요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TV를 보는데 익숙한 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
어째서 저 사람이 저기 있는 거지?
“하늘 씨, 현장에 나간 이들에게 다시 연락 돌리죠. 이영진 의원이 저곳에 있다는 걸 팀원들이 모를 확률이 높습니다.”
“네.”
이영진 의원이 던전이 클리어된 곳에 나타난 거야 문제 될 것 없었다. 그래, 우리가 걱정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언론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이영진 의원이 카메라를 목전에 두고 자신이 헌터부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식으로 무슨 말을 떠들어 댈지 몰랐다. 황급히 박 주무관과 김 주무관, 그리고 한 주무관에게 연락을 넣어봤지만 세 사람 모두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요. 바로 네트워크 켜겠습니다.”
“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트워크를 켜 자리에 와 앉을 때였다. 네트워크 너머로 김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사무실에서 네트워크 연결했는데요?
목소리에서 다소 놀란 기색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상황이 종료되면 이후에는 사무실과 연결되었던 네트워크를 끄는 게 일반적이어서 그런 듯했다. 게다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네트워크를 다시 켜는 일이 없고 말이다.
― 무슨 일 있어?
― 무슨 일 있습니까?
그간 이런 적 없기 때문일까, 걱정스러움이 가득 묻은 물음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나는 잠자코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TV로 현장 중계를 보던 중 이영진 의원이 현장에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추이를 보건대 곧 인터뷰를 진행할 것처럼 보입니다.”
― 예? 지금 그게 무슨….
― 본인이 뭐라고 인터뷰를 해?
기가 막혔는지 팀장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럴 만도 했다. 난데없이 현장에 와서는 인터뷰를 한다는 건 그럴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정말 냄새 하난 잘 맡네요.”
그래, 헌터부 충원 건과 더불어 같은 장소에 연이어 난이도 높은 던전이 재생성되었다는 사실은 이영진 의원이 군침을 삼킬 만한 상황이긴 했다.
― 그렇지? 하, 우리 막내 말이 맞네!
― 맞습니다! 진짜 우리 막내 눈치 하난 최고라니까요?
목소리만 듣고 있어 팀원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 톤이 더 높아진 걸 보면 내가 정확히 맥점을 짚어 낸 모양이었다. 팀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TV로 시선을 주자 어느새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
가만히 광고를 보고 있자니 이영진 의원이 꼭 이 채널과 인터뷸 한단 보장이 없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현장에 매체가 수두룩할 텐데, 이영진 의원이라면 득이 됨직한 곳과 인터뷰를 진행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부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곤 다른 뉴스 채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 현장에 나왔으면 뭔가 거드는 모습이라도 보이든가! 손 안 대고 코나 풀려고 기회만 노리지!
― 팀장님이라도 기자단 쪽으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지금 상황이 어떤데! 이영진 입 단속하자고 시간 허비할 순 없어!
― 이제 막 인원이 충원되었는데
― 그래도 괜히 헌터부에게 불똥이 튀는 말이라도 나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막 겨우 인원이 충원되었는데, 상황이 복잡해지기라도 한다면 우리만 손해 아닙니까?
듣고 보니 박 주무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팀장이라면 무슨 상황이 벌어졌든 간에 현장을 우선시할 것이었다.
― 됐다, 됐어. 저곳에 가면 여기저기서 인터뷰해 달라고 할 텐데 그럴 시간에 몸 한 번 더 움직이는 게 낫지!
그래, 지금처럼 말이다.
역시 팀장이란 생각하며 계속해서 이리저리 화면을 돌릴 때였다. 순간 지나간 채널에서 이영진 의원의 얼굴이 언뜻 보이는 듯했다. 다시 채널을 돌려 확인하자, 역시나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있었다. 현장에 나간 기자와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에 곧바로 볼륨을 높였다.
― 안녕하십니까, 이영진 의원님.
― 예, 안녕하십니까.
―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임에도 선뜻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아닙니다. 이런 자리에 불러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 던전이 클리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도착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착 즉시 시민들과 함께 이야길 나누시던데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합니다.
― 현재 같은 구역에 던전이 두 차례 연달아 생성되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상황으로 현장에 계신 분들 모두 걱정을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보다 빨리 현장 복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약속드리고, 연이어 발생한 던전의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저희도 돕겠다는 이야기 정도 오갔을 뿐입니다.
― 복구 지원을 약속하셨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 저야 생각이 많습니다만, 그것을 이 자리에서 상세히 설명해 드리는 건 어려울 듯합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피해를 본 시민들 모두에게 정부의 손길이 닿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건 돌아가 당 의원들과 심도 있게 논하여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정말 말 하난 기막히게 잘했다. 진중해 보이는 모습 또한 제법 무게가 느껴졌고. 하지만 이영진 의원의 속내를 아는 이라면 저 모습이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 터였다.
그건 그렇고 이영진 의원이 저곳에 간 이유가 뭘까. 하지만 그 의문은 길지 않았다.
― 현재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시 헌터부에 인원이 충원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부분도 현장에 오신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개편을 위해 노력했던 게 있으니까요.
― 방금 하신 이야길 현장에 있는 분들이 들으면 정말 기뻐할 듯합니다.
― 그랬으면 좋겠군요.
― 짧게나마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기자와 인사를 나눈 이영진 의원이 카메라 사이드로 빠지며 쑥대밭으로 변해 버린 곳을 찍는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나는 한참 만에야 목에 걸린 숨을 뱉을 수 있었다.
“…하.”
“저 말을 현장에서 직접 들었다면 기가 찼겠군요.”
― 이미 찼습니다.
―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말한 거였으면 좋겠네요.
― 전 힘이 다 빠지는 거 같습니다.
― 그냥 정치 놀음하라고 두고, 우리는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 오늘은 밤샐 준비들 하고!
밤샘이라니….
이보다 신경 쓰이는 말은 없었다. 뭐라도 도와야겠단 생각에 얼른 입을 뗐다.
“저도 지원 나가겠습니다!”
― 막내는 부팀장이랑 시간 되면 퇴근해. 여기 지금 소방관도 접근 못 해.
― 여기 지금 일반인이 들어오기 곤란하거든? 마음만 받으마!
― 우리 막내가 아니지, 우리 연 주무관이 우리 생각하는 건 정말 세상 최고라니까요? 나도 마음만 받을게! 나중에 어느 정도 정리 끝나면 그때 나랑 같이 둘러보자고!
저들이 허투루 저리 말하진 않을 것이었다. 소방관조차 접근할 수 없단 설명을 들었음에도 도울 게 없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마음 쓰일 순 없었다. 나는 시무룩해진 마음을 다독이며 답했다.
“…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옆자리에서 들려온 말에 곧바로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저랑 같이 현장에 다녀오도록 하죠.”
“부팀장님과요?”
나중에 현장에 갈 때 박 주무관과 함께 가거나 하면 될 거라 여겼건만, 부팀장이 함께 가자고 할 줄은 몰랐다. 놀란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나완 달리 부팀장은 얼굴 가득 뿌듯함인지 대견함인지 모를 감정을 담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가끔은 현장에 나가 둘러보곤 합니다. 사무실에만 너무 머무르면 현장의 감을 잃기에 십상이니까요.”
― 그땐 내가 사무실 지키고 있을 테니 둘이 잘 둘러보고 와!
팀장이 대신 사무실에 있겠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가도 되는 모양이었다. 의기소침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설렘이 차올랐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주억이며 따라 입가를 끌어 올렸다.
“팀장님, 그러면 저희는 정시에 퇴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부팀장이 네트워크 기계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 좋지! 우리는 오늘 작업 마무리하고 좀 쉬었다가 내일 늦게 출근할 예정이니까 그런 줄 알고!
“예. 사무실은 맡겨 주십시오.”
― 그럼 네트워크 이만 종료하고! 아, 지금 종료하라는 건 사무실이니까 현장에 있는 이들은 네트워크는 계속 유지하고 있어!
―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려면 네트워크가 유지되긴 해야 했다. 부팀장이 네트워크를 끄려고 하자 황급히 인사를 건넸다.
“모두 내일 뵙겠습니다.”
― 하늘 씨, 내일 봐요!
네트워크를 종료하기 전 인사를 건네자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네 왔다. 서강민의 인사를 끝으로 네트워크가 종료되자 사무실 안은 TV 소리로 가득 찼다.
“혹시 현장 상황이 변할지도 모르니 좀 더 머무르다 가도록 하죠.”
“네.”
그러지 않아도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부팀장이 꺼낸 말에 동의하며 계속해서 던전 현황을 보여 주는 TV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