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66)화 (166/246)

163화

21. 재회

“자꾸 약점, 약점 하는데. 아예 내게 약점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지?”

강승빈의 말에 김세현이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확실히 그간 김세현을 지켜보면 약점 따윈 없어 보였다. 실력도 뒤따를뿐더러 부와 명예까지 전부 가지고 있는 데다가 심지어 외부에 노출된 부분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결벽적일 정도로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걸 보며 문제가 있어 그런 거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김세현의 사생활은 너무도 깨끗했다.

“과연 없을까요?”

하지만 강승빈은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비스듬히 입꼬리를 말아 올린, 그야말로 비웃음으로 가득한 얼굴로 김세현을 보지 않았을 테니까.

“…….”

더는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 여겼는지 김세현은 침묵을 선택했다. 하긴, 여기서 더 말을 섞어봤자 김세현만 손해였다. 이미 강승빈은 김세현에게 약점이 있다고 확신했기에 굳이 입 아파가며 설명해줄 이윤 없었으니까.

비록 대화가 끊겼지만 서로 오가는 시선만큼은 여전했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데, 돌연 강승빈이 내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김세현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저 시선은 뭐고, 표정은 뭘까. 누가 보면 마치 내가 약점인 줄 알 법한 웃음이었다.

“…….”

그러고 보니 예전에 김세현과 함께 외국에 나갔었던 이도 마치 내가 약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도대체 뭘 보고 내가 김세현의 약점이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들의 생각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비록 김세현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내가 정말 김세현의 약점임이 확정될 것 같단 생각에 강승빈을 보며 입을 뗐다.

“실례지만, 저는 그 누구의 약점도 아닙니다만.”

“…….”

대화에 끼어들 줄은 몰랐는지 강승빈이 날 보며 눈을 끔벅였다. 그에 한 번 더 말을 하려는데 김세현이 한 박자 빨랐다.

“들었지? 하늘 형이 무슨 약점이라고. 떡하니 내놓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인데.”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당혹감에 그를 바라보자 김세현이 날 보며 씩 미소 지었다.

“하늘 형이 얼마나 대단한데.”

다른 사람이 이런 평가를 해줘도 기뻤을 테지만 김세현이 저리 말하니 이보다 더 벅찰 순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떨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김세현을 보자 그가 휘어진 눈꼬리를 더욱 휘었다.

“나한텐 형이 최고예요.”

저런 말을 듣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수줍게 말을 이었다.

“…저도요.”

김세현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는 언제나 최고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 진짜.”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가 싶던 김세현이 거칠게 뒷머리를 헤집는가 싶더니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가 후욱거리는 걸 본 게 오늘 하루만의 일이 아니었지만, 날 바라보는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 아니, 번질거린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듯했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데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싶지만 저 눈빛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내 뼈까지 꼭꼭 씹어 삼킬 것만 같았다. 김세현이 그럴 리가 없겠지만, 왠지 모를 오싹한 기분에 어색하게 웃으며 슬그머니 부팀장 쪽으로 의자 바퀴를 굴렸다.

“…….”

들키지 않으려 했건만, 그 움직임은 바로 걸린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김세현이 곧바로 시선을 내려 의자 바퀴 쪽을 보지 않았을 것이었다. 민망함에 발을 움직이다 말고 멈추는데, 내 뜻과는 달리 의자가 부팀장 쪽으로 쓱 끌려갔다.

“막내가 그만하자고 하니 여기까지 공을 인정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무실에 머무를 거라면 일 방해 말고 평소처럼 사진이나 찍도록 해요.”

“…….”

어째서 의자가 움직였나 했는데, 부팀장이 당긴 것일 줄이야.

덕분에 거리를 벌릴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김세현에게 건넨 말이 영 마음에 걸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평소처럼 사진이나 찍으라니.

그간 김세현의 행각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력한 보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지만 괜히 모른 척했나 싶어지는 말이었다.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부팀장을 보자 눈이 마주친 그가 말했다.

“오늘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았던 만큼 지원 요청을 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미리 해 둘 거 있으면 하도록 하세요.”

“네, 부팀장님!”

미처 그 생각까진 못했다. 부팀장의 말을 들으니 이럴 때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면 지원을 나가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 주무관과 현장에 가 배운 게 있으니 혹여 요청이 들어온다면 조금이나마 일손을 도울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남은 일과를 처리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차차차차찰칵!

“…….”

일을 시작하기 무섭게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더하여 강승빈 자리 쪽에서 헛바람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거슬리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이윽고 마지막 작업까지 끝마치곤 고개를 드니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으면 오후 4시가 목전이었다. 이 시간이 되도록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도 용했다. 크게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일 다 했어요?”

“아, 네.”

얼마나 집중했으면 김세현이 옆에 있다는 것조차 잊을 수 있을까. 미안함에 눈치를 살피는데, 의외로 그는 심통이 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데, 그 모습을 보니 더 미안해졌다.

“제가 너무 집중했죠?”

“뭘요. 일할 땐 확실하게 해야죠. 그나저나 진짜 열심히 일하던데요?”

“그, 래요?”

“자기가 할 일이라면 뚝딱 해치우는 것도 그렇고. 가만히 있어도 좋은데, 매번 멋진 모습 보여 줘도 되는 거예요?”

“…너무 띄우지 않으셔도 돼요.”

좋게 봐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쳤다. 낯간지러운 칭찬을 늘어놓는 이에 민망한 웃음을 흘리자 김세현이 덩달아 웃기 시작했다. 그와 눈을 마주하며 웃다가 잠시 망각하고 있던 걸 상기하곤 부팀장에게 물어보았다.

“부팀장님, 현장에서는 연락 없었나요?”

“다행히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팀원이 늘어 커버가 잘 되나 봅니다.”

“다행이네요.”

이전부터 함께 활동한 이들이긴 했지만 현장을 체크하는 건 정규직만 하던 일이었다. 손이 는 만큼 현장에 나간 팀원들의 부담이 한결 덜어졌다고 생각하니 무척 반가웠다. 안도하며 재차 김세현 쪽으로 고갤 돌릴 때였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형, 나 이제 일정이 있어서 가 봐야겠어요.”

“벌써요?”

갓 일을 마쳤는데 벌써 간다니. 이보다 아쉬울 순 없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만 머무르고 가면 안 되냐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있다는데 붙잡을 순 없었다. 나는 아쉬움으로 가득 찬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까지 배웅할게요.”

“나야 좋죠.”

배웅한단 말을 들은 김세현이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을 뗐다. 뒤따라 몇 걸음 이동하니 벌써 출입문이 목전이었다. 여기서 배웅해야 마땅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나는 결국 복도로 나간 김세현을 조금 더 배웅하고 싶단 욕심에 사무실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나 협회까지 바래다주려고요?”

한 발짝 내밀었을 뿐인데, 김세현이 휘둥그레 뜬 눈으로 물어보았다. 욕심을 부리는 김에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 배웅하려 했는데, 저 말을 들으니 더 따라가면 안 될 듯했다. 나는 머쓱함을 집어삼키며 답했다.

“아니에요. 여기서 배웅해야죠.”

“으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하니 김세현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마치 아차, 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정말 그렇게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김세현을 올려다보다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가세요.”

“…네에.”

말없이 나를 보던 김세현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답하더니 이내 터벅터벅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몇 걸음 이동하던 김세현이 난데없이 몸을 틀어 날 바라보았다.

“세현 씨?”

“형.”

“네.”

“난 약점 없는 사람이에요.”

“물론이에요.”

김세현에게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흠 하날 꼬집자면 위가 매우 크다는 것 말곤 없었다. 고갤 끄덕이자 뚫어져라 날 바라보던 김세현이 슬쩍 웃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다시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로 돌아가 앉으니 자연스럽게 부팀장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하늘 씨, 현장에 나간 박 주무관에게 현장 마무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연락 넣어요.”

혹여 방금 배웅을 나갔던 일을 물어보는 건가 했는데, 다행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강승빈 씨.”

부팀장이 이번엔 강승빈을 불렀다.

“예, 부팀장님.”

“4시에 퇴근하도록 해요.”

“…퇴근 시각까지 있어도 괜찮습니다.”

“헌터부가 바쁠 땐 계속 바쁩니다. 바쁠 땐 병원에 가기 힘든 날도 있으니 시간이 있을 때 다니도록 해요. 이건 경험자로서 하는 조언입니다.”

병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부팀장이기 때문일까, 강승빈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뿐이랴, 고갤 끄덕이는 그의 표정이 묘했다. 이런 호의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얼굴로 부팀장을 바라보는데 왜 그런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도 여기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귀염받을 줄은 몰랐으니까. 물론, 강승빈이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건 조금 다른 결이겠지만 말이다.

“이제 곧 4시니 퇴근 준비하도록 해요. 병원에 갔다가 다음 진료 일정 나오면 전달하십시오. 최대한 일정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혹여 더 머무르려나 싶었는지 한 번 더 부팀장이 퇴근 준비하라 일렀다. 그러자 강승빈이 차근차근 퇴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짐을 다 꾸린 이를 확인하곤 곧바로 박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현장이 소란스러운지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는다. 혹여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가 싶어 메시지까지 보내곤 부팀장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통화가 되지 않아 메시지로 연락 넣어 뒀습니다. 조금 이따가 다시 전화해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해요.”

“네, 부팀장님.”

“저는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사이에 짐을 다 챙겼는지 강승빈이 크로스백을 맨 채 비스듬히 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가 대신 문을 열어 주었다.

“조심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연 주무관님.”

“아닙니다. 그리고, 어서 나으시길 바라요.”

“…….”

내 인사를 들은 그가 문 쪽으로 걸어오다 멈춰 서서는 날 바라보았다. 놀란 얼굴을 보건대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정말 몰랐던 모양이었다. 괜히 머쓱해지려는데, 강승빈이 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내 그가 절뚝이며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문틈으로 그를 보다가 이내 자리로 돌아왔다.

“갔습니까?”

“네.”

“그럼 우리는 좀 편히 앉아 기다리도록 하죠. 일과는 이미 다 마쳤으니까.”

“하하.”

편히 기다리자며 부팀장이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는다. 몹시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조금 전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게 역시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숨을 돌릴 겸사겸사 그를 먼저 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뚫어져라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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