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21. 재회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 대피소 밖으로 나가 보라고요? 그건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고요. 설령 후원을 억 단위로 해 주셔도 나갈 수 없습니다. 한 번 들어오면 던전이 클리어되거나 위험 상황이 종료될 때까진 계속 머물러야만 하는 법이 있는데 어기면 안 되죠!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팀장의 말과 겹쳐진 방송 내용을 듣고 있으려니 확실히 딜레이가 있어 보였다. 나는 영상을 종료하며 입을 뗐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 하아, 이거 상태가 말이 아니네. 현장 완전 쑥대밭이야!
위험천만했던 몬스터들이 날뛰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김세현이 제아무리 일찍 도착했다고 한들 이미 피해가 컸던 상황이었다. 막 끈 영상 너머로도 현장이 얼마나 처참한지 볼 수 있었고 말이다.
― 난 정리되는 거 보다가 병원에 갈게. 중간에 자릴 비울 예정이니 처음부터 한 주무관이 현장 통솔하는 걸로 하지!
― 알겠습니다! 상황은 조금만 보시고 얼른 병원부터 가세요! 뼈 부러지셨다면서요!
― 아아, 그래야지. 상황이 종료되어 하는 말이지만 사실, 부러진 곳이 제법 아프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팀장이 아프다고 말하는 건 처음인 듯했다. 걱정이 스멀스멀 차오르는데 때마침 팀원이 팀장에게 물어봤다.
― 팀장님, 혹시 팔 말고도 다친 곳이 있으십니까?
― …눈치도 빠르지.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썩 좋진 않아. 갈비뼈도 여럿 나갔고.
그런 상황에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전투를 이어 나가려 했다니.
생각지도 못한 큰 부상 소식에 차마 말을 잊지 못할 때였다. 잠시 침묵하던 팀원들이 말을 얹기 시작했다.
― 상황 보지 마시고 어서 병원부터 가세요!
― 이 정돈 무리 없어! 병원 가면 며칠 입원할지도 모르니 볼 수 있을 때 좀 보고 가야지!
좀 전에 막내가 약국 위치 알려 줘서 진통젤 좀 주워 먹었더니 버틸 만해. 아, 돈은 확실하게 지불하고 왔으니 도둑 취급은 말고!
여기서 돈 이야기를 하는 이율 모르겠다. 아니, 알 것 같았지만 그에 응하고 싶진 않았다. 말을 돌리려거나 분위기를 환기해 보려는 팀장의 노력을 무시하곤 한마디 했다.
“지금 돈이 우선인가요? 팀장님이 우선이에요!”
― 맞습니다! 조금 전엔 팔만 부러진 것처럼 말씀해 놓곤 갈비뼈도 부러진 거 같다뇨! 그렇다는 건 다른 곳 상황도 썩 좋지 않다는 거잖습니까!
― 뭐, 그렇지?
본인 일임에도 이렇게까지 무덤덤할 수가 있나 싶어질 지경이다. 기가 막혀 말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에 고갤 돌려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내 시선을 본 부팀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 그래, 듣고 있어.
“그대로 병원으로 가시죠.”
― …어?
“곧장 병원으로 가겠다 답했다고 알겠습니다.”
침착한데 단호하기까지 하니 팀장도 할 말이 없을 듯했다.
― …알았어. 병원에 갔다가 상황 보면서 다시 현장으로 오든가 할게.
침묵하는가 싶던 팀장이 드디어 병원에 가보겠다며 답해왔다. 나는 깊은숨을 토해내며 안도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 저희도 계속해서 현장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팀장님, 병원 바로 가시고요!
― 아아.
“부탁합니다.”
“혹시 손 부족하시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한 주무관님이 알려 주신 건 잘 할 수 있습니다!”
던전이라는 큰 산을 하나 넘겼지만, 그 앞엔 현장 정리라는 더 큰 산이 존재했다. 피치 못할 상황으로 말미암아 팀장이 자리를 비우게 된 터라 현장은 고사리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것이었다. 그래, 이럴 땐 역시 지원을 나가는 게 맞았다. 며칠 전 한 주무관에게 배운 것도 있으니 적어도 그 일만큼은 거들 수 있었다!
― 오, 막내가? 우리야 좋지!
― 좋아. 손 많이 부족하면 막, 연 주무관도 현장에 투입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게. 부팀장님, 괜찮습니까?
내 마음이 전달된 건지 아니라면 정말 손이 부족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현장에 나간 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한 주무관의 말을 들으며 옆자리를 보자 부팀장이 웃는지 아닌지 모를 미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눈을 마주하던 부팀장이 입을 열었다. 나는 긴장한 채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으니 문제 될 건 없습니다. 다만 하늘 씨는 짝을 지어 움직이는 편이 나을 성싶군요.”
― 혹 막내 손 빌리게 되면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같이 다니면 됩니다!
같이 다니는 거야 좋았지만, 돕기 위해 가는 건데 발을 붙잡는 게 아닌가 싶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을 더 만들 수 있단 생각이 드니 선뜻 한 번 더 불러 달란 말을 하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주저하며 상황을 지켜볼 때였다. 퇴근까지 열리지 않을 듯싶던 사무실 출입문이 열리며 익숙한 이가 안으로 들어섰다.
“형!”
“세현 씨?”
“막 던전 클리어하고 왔는데, 소식 들었죠?”
“네. 듣긴 했지만….”
이야길 듣는 것도 듣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우선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김세현의 옷차림에 놀라 그를 바라보니 김세현은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성큼성큼 내 옆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강승빈이 김세현에게 말했다.
“손님, 외부인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모른 척하려고 해도 말이 너무 익숙했다. 이전에 내가 강승빈에게 건넸던 말을 그대로 김세현에게 하는 그를 보며 기막혀하는데, 김세현은 멈칫하는 것도 없이 다가와 옆자리를 꿰찼다.
“뭐래.”
“…….”
마치 하찮은 걸 마주한 듯한 기색으로 툭 말을 던진 김세현이 이윽고 날 바라봤다. 평소에도 반짝였지만, 오늘따라 푸른 눈동자에 빛이 가득했다. 말없이 눈동자를 바라보는데, 김세현이 말을 걸어왔다.
“맞다, 형. 내가 커피 한 잔 타다 줄까요?”
“괜찮아요.”
“그럼 율무차? 녹차? 아니면 뭐 사다 줄까요?”
어째서 박 주무관이 미끼 이야길 꺼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지금 김세현의 기분은 평소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좋아 보였으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텐션을 마주하고 있자니 점차 부담감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 만했다. 김세현의 텐션이 높아지게 된 이유를 제공한 게 바로 나였으니까.
괜찮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음료를 입에 담으며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그에게 한 번 더 괜찮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정말 괜찮아요.”
“그럼 말고요. 하, 너무 급하게 던전으로 달려가서 그런가? 목이 좀 마르네.”
이것도 괜찮다, 저것도 괜찮다 하니 김이 샜는지 의자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댄 김세현이 목이 탄다며 곁눈질로 날 바라봤다. 저 모습을 보고 그가 뭘 바라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곧바로 그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커피 타다 드려요?”
“석 잔 부탁해요.”
커필 마실 거냐 물으니 단번에 답이 돌아오는 것이 계속해서 음료를 입에 담던 이유가 확실해졌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팀장님도 뭐 드시겠어요?”
“율무차로 한 잔 부탁합니다.”
“강승빈 씨는요?”
“부팀장님과 같은 걸로 부탁합니다.”
물어보고 싶진 않았지만 아픈 사람을 모른 척할 순 없었다. 율무차를 마시겠단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율무차와 커피를 타 강승빈과 부팀장에게 전달한 뒤, 마지막으로 김세현에게 커피를 건넸다.
“아까는 아무것도 안 마시겠다면서요.”
“향 맡으니 좀 당겨서요.”
“내가 탔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
믹스커피야 온도가 맞고, 또 물만 잘 맞추면 맛있었다. 하지만 저 말을 들으니 그냥 그에게 맡길 걸 싶기도 했다. 뭐,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또 타다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부탁드릴게요.”
“뭐, 좋아요.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기분이 좋다며 은근한 눈빛을 보내온다. 빠르게 그 감정을 갈무리했지만, 뜻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내가 한 제안이 무척 마음에 들어 기분이 좋다는, 그런 뜻 말이다.
“하늘 씨, 중계기와 네트워크는 내가 종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팀장님.”
생각지도 못한 김세현의 등장도 등장이었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게 된 바람에 잠시 할 일을 잊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부팀장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큰 공헌을 한 이에게 커피 대접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뭐 바라는 거 있어?”
부팀장의 반응에 김세현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에 김세현을 보자 힐끔 날 보는가 싶던 그가 뒷말을 이었다.
“갑자기 대우하려고 하고 말이야.”
하긴, 김세현이 저리 받아들일 만도 했다. 그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존재가 없다는 듯 지내왔으니까. 나는 김세현을 보다가 다시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불퉁한 감정을 내보이는 김세현과는 달리 부팀장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는 눈이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오늘 던전은 시한폭탄과도 같았기에 김세현 씨의 공이 크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이거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가 들어도 좀 모호한 말이긴 했다. 하지만 그간의 관계를 따지고 본다면 이 상황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서로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넘겨짚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다.
“김세현 헌터님. 이곳은 수다를 떠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서 협회로 돌아가시죠.”
이번에도 역시나 강승빈이 말을 걸어왔다. 무척이나 사무적인 태도로 김세현을 대하는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협회 소속이었던 강승빈이 저러니 기이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보단 내가 훨씬 낫지. 던전 클리어도 하고 온 몸인데.”
강승빈이 일부러 자리를 지키는 건 아니었지만, 그의 편을 들고 싶진 않았다. 나는 침묵하며 두 사람의 언쟁인 듯 언쟁 아닌 대화를 경청했다.
“이렇게 자꾸 협회를 무시하고 이곳에 오는 건 좋지 않습니다.”
“내 알 바 아니고.”
“협회에서 언제까지 지켜보고 있을 거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헌터부 소속이 마치 협회를 대변하는 것처럼 말하네. 그쵸, 형?”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긍정하게 된다면 상황이 좀 애매해질 듯했다. 나는 어색하게 입가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약점이 생긴 사람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
도무지 김세현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일까, 조금 전보다 강한 어조로 강승빈이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정말 생각지도 못한 약점이란 단어를 운운하면서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세현을 바라보던 강승빈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의미 모를 시선을 보내는 이와 눈을 마주하던 나는 픽 웃는 소리에 옆자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