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21. 재회
하지만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인 듯했다.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카메라가 한 차례 크게 흔들리며 몇 남아 있던 화면까지 완전히 꺼졌다.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린 교통센터 CCTV 화면들을 보며 곧바로 현장에 나간 이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 상황을 전달했다.
“현재 던전 내부를 비롯해 던전 주변 CCTV 모두 작동을 멈췄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루트가 모두 막혀 더는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 고생했어. 혹시 모르니 CCTV가 꺼진 경계 지점 쪽 카메라 계속 주시하고!
고생은 현장에 나간 팀원들이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 말을 들으니 괜히 기운이 났다. 긴장도 약간 풀리는 것 같았고 말이다. 나는 씩씩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 으윽! 던전에 균열이 생기는 일이 잦긴 했지만, 이렇게 크게 존재를 드러내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닙니까?
― 땅까지 울리는 거 보면 정말 위험한 거 같습니다!
―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군요. 균열이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에 클리어하는 게 최선일 듯합니다.
팀장의 말에 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트워크 너머에서 팀원들이 균열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 주무관에게 들었던 설명을 상기하며 열심히 균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던 참이었다.
― 잉여 아직 멀었대?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팀장이 질문을 던졌다. 그에 부팀장을 바라보자 부팀장은 날 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말하란 신호를 보내는 부팀장의 모습에 침을 삼키곤 답변했다.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 되도록 빨리 와 달라고 전해. 여기 언제 터질지 모르겠어! 곧 균열이 완전히 활성화될 거라고도 전하고!
팀장이 이렇게 김세현을 부르는 건 처음인 듯했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쥐곤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어디까지 왔냐는 문자를 보내고 고개를 드는데, 내가 보낸 메시지 옆의 숫자가 사라지더니 곧바로 김세현이 보낸 메시지가 떴다.
“10분 뒤 도착한다고 합니다!”
― 10분? 더 당길 순 없어?
이미 30분에서 10분으로 시간을 단축한 상황이었지만, 현장에선 그 10분도 엄청나게 길게 느껴질 터였다.
“한 번 더 물어볼게요.”
상황이 시급한 터라 도착 시간을 좀 더 앞당길 수 있냐는 답장을 보내고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
어서 답장이 왔으면 좋으련만, 왜 이리 늦는지 모르겠다. 초조함에 핸드폰 액정을 연신 터치하며 화면이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던 참이었다. 드디어 김세현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재빨리 내용을 확인하곤 침묵했다.
[더 빨리 가면 뭐 해 줄 거예요?]
“…….”
뭘 해 줄 거냐 물으니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우 촉박한 상황이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생각나는 걸 입력해 그대로 전송했다.
[…이거 진짜죠? (๑✧∀✧๑) 나중에 딴말하기 없는 거 알죠? (ლ˘╰╯˘).。.:*♡]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기란 어려웠다. 물론, 도로 담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김세현에게 제안한 건 그리 부담스럽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긍정했다.
[네.]
[하, 어쩔 수 없지! 형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성의를 무시할 순 없죠! 저 진짜 최대 속력으로 이동해 볼게요! ─≡Σ((( つ•̀ω•́)つ!!! 곧 도착해요.]
“…곧?”
“뭐라고 했습니까?”
나도 모르게 메시지 내용을 말한 모양이었다. 의아한 시선을 보내오는 부팀장을 보며 막 확인한 걸 재차 설명했다.
“세현 씨가 곧 도착한다고 해요.”
― 와, 정성도 이런 지극정성이 있나!
― 도대체 얼마나 잘 보이고 싶은 거야?
― 갓 도착한다고 하니 저희는 주변을 경계하는 쪽으로 전환하겠습니다!
― 잉여가 오기 전에 상황이 변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 알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닌 척해도 다소 절망스러운 듯한 분위기가 맴돌았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결 여유를 되찾은 듯한 팀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 전달되었다.
― 헉, 저기 잉여 아니야?
“네?”
곧 도착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30분이나 걸릴 거리를 이렇게 빨리 주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이미 협조 건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동 중이었을 테지만, 제아무리 세계 최고의 S급 헌터라고 할지언정 이렇게까지 시간 단축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잘못 본 게 아니냐고 물어보려는데, 미처 입술을 다 떼기도 전에 김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와, 진짜 한계가 있긴 한 거야? S급들은 다 저래?
― 막내야, 지금 잉여 도착해서 몬스터 사냥 중이야!
“정말, 도착했다고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가 도착했단 말을 들었음에도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죽 실감이 나지 않았으면 여유를 되찾은 팀원들이 농담하는 건가 의심까지 될 지경이었다.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여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강승빈이 말을 걸어왔다.
“김세현 헌터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충분하다고요?”
“그의 실력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소문이 협회에 돌곤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협회 내에 그런 소문이 돌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말없이 강승빈을 바라보자 그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실력으로 인해 이런 말도 돌곤 합니다. 김세현의 고삐를 잡은 자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다고.”
“…….”
사람에게 고삐라니. 물론 상투적으로 쓰이는 말인지라 가벼이 넘겨도 되었지만, 김세현에게 고삐를 물린다고 상상하니 영 불쾌했다. 그래, 이미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불편한 일들을 마다치 않고 해야만 했던 그에겐 그 무엇보다 자유가 어울렸다.
― 막내야!
“네, 박 주무관님.”
강승빈을 향해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했다. 나는 박 주무관의 부름에 답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 혹시나 해서 말인데. 잉여 일찍 오게끔 뭔가 미끼를 던졌다거나 한 거 있어?
“미, 끼요?”
어떻게 알았지?
미끼라는 표현이 좀 그랬지만, 따지고 보면 그와 비슷한 걸 언급하긴 했었다. 당황하며 되묻자 의아함으로 가득 찬 답변이 들려왔다.
― 왜 저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막 서비스라면서 제3 대피소 쪽도 싹 정리하고 중심부로 이동하더라고.
“…잘 모르겠어요.”
그래, 지금은 잘 몰라야 했고 또 아무것도 몰라야 했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뒤로한 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변하자 곧바로 박 주무관이 말했다.
― 오케이, 일단 알았어! 부팀장님, 계속해서 네트워크 통해 현장 상황 전달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
대수롭지 않게 내 말을 받아들인 박 주무관 때문일까,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하지만 양심에 찔린다고 김세현에게 스케줄이 맞을 때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고 할 순 없었다.
― 막내야, 나중에 상황 종료되4면 슬쩍 잉여한테 물어볼게. 왜 그리 기분이 좋은 거냐고.
“…그보단 조심하세요.”
한 번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겼다곤 하지만 더는 자연스레 넘기기는 힘들었다. 슬그머니 말을 돌리자 네트워크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우린 걱정하지 마. 다들 무사하니까!
― 하여간 우리 막내 덕분에 웃습니다. 이렇게 걱정해 주는 동료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전해도 조심할 테니까 마음 놓고 있어.
“네.”
반응을 보니 말을 잘 돌린 듯했다. 속으로 안도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막내 이젠 막내가 아니네?
― 오, 그러네요? 그럼 우리 팀 막내가 누가 되는 거지?
새로이 팀원이 들어오게 되었으니 막내 자리에서 벗어나게 된 건 맞았다. 하지만 그간 막내라 불리며 팀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일까, 괜히 아쉬웠다. 아주 조금은 새로이 막내가 될 사람에게 질투가 나기도 했고 말이다.
― 그럼 우리 팀 막낸 누가 되는 겁니까?
― 전 계약직이긴 했어도 제법 오랜 시간 헌터부 일을 해 왔습니다!
― 저도 마찬가집니다!
난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막내가 아님을 어필하는 대화를 경청하고 있을 때였다. 침묵하던 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 막내 이야긴 나중에 하고! 김세현에게 현장 오롯이 맡길 생각 말고 어서들 움직여!
― 예, 팀장님!
― 알겠습니다!
확실히 지금은 막내를 논할 때가 아니었다. 덩달아 정신을 차리곤 팀원들이 현장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곧바로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역시나, 라이브로 현장을 중계 중인 채널들이 제법 된다는 사실에 곧바로 한 영상을 클릭해 볼륨을 높였다.
― 현재 D-15 구역 안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두 차례 크게 땅이 흔들렸으며, 현재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들이 종횡무진 날뛰고 있습니다!
어디서 촬영 중인가 했는데, 저곳은 다름 아닌 D-15 구역 제 5 대피소였다. 카메라가 움직이며 스쳐 지나간 제 5 대피소 팻말을 확인하곤 다시금 방송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황급히 몸을 웅크린 VJ가 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이윽고 화면을 전환하더니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 방금 소리 들으셨습니까? 아무래도 근처 건물이 붕괴된 듯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헌터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협회는 무엇을 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
던전 클리어를 하려 얼마나 노력 중인데 저런 소릴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뭐라 뭐라 떠들어대는 남자가 이동하며 실내를 비추는데, 대피소 안엔 정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방금의 소요 탓인지 파리하게 질린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이보다 더 마음이 쓰일 수가 없다. 걱정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내 카메라가 바깥 상황을 비추기 시작했다.
― 잠시 바깥 동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지금쯤 대피소의 모든 문들이 외부와 차단되었어야 했지만, 아직도 대피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있어 최후의 최후까지 문은 열려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참 괜찮은 거 같네요. 자, 그럼 창밖 상황을 보시도록 하겠…. 어? 방금 전까지 저곳에 커다란 몬스터가 있었는데요! 모습을 감췄습니다!
남자가 가리킨 곳은 카메라 화면 우측 상단 지점이었다. 이 방송이 실제 시간과 얼마나 딜레이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분 차이라면 김세현이 도착한 시각과 얼추 맞아떨어질 듯했다. 부디 몬스터가 처리된 것이길 바라며 계속해서 방송을 볼 때였다.
― 던전 클리어!
생각지도 못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끔벅이며 던전 바깥 상황이라는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