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21. 재회
눈 한 번 깜박이는 것조차 아끼며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던 중이었다. 별 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CCTV 화면에 다른 쪽 카메라를 보려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화면 구석에 검 보랏빛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포착되었다.
“…….”
좀 더 자세히, 그리고 화면을 돌려 저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었지만, 하필 이 카메라는 고정 카메라였다. 게다가 화질도 썩 좋지 않았고 말이다. 빠르게 가동 중인 다른 카메라를 살폈지만, 이 구역 카메라는 지금 보는 이것만이 작동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그저 저것이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감질나게 조금 보였다 말았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며 계속해서 다른 쪽 상황을 살피던 중이었다. 내 바람을 듣기라도 했는지 검 보랏빛의 그것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보는 몬스터를 발견하곤 곧바로 부팀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팀장님, 이거 좀 봐 주시겠어요?”
“예.”
내 요청을 들은 부팀장이 중계기 쪽으로 연락을 취하려다 말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나는 처음 보는 몬스터의 모습이 담긴 카메라 화면을 모니터에 크게 띄웠다.
“위치와 몬스터 명을 알려야 하는데, 처음 보는 몬스터라서요.”
“이런….”
내 말을 들으며 뚫어져라 모니터를 보던 부팀장이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부팀장은 곧바로 감정을 갈무리하며 몬스터 명을 입에 담았다.
“퍼플 크랩이군요.”
― 뭐?
― 아니 걘 또 왜 나온답니까!
퍼플 크랩이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네트워크 너머에서 큰 반응이 돌아왔다. 놀라 부팀장을 보자 그가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클램 웜처럼 크랩 몬스터 또한 바닷가에서 주로 나타나는 몬스터입니다. 우리가 아는 게완 외양이 다르지만, 집게와 다리를 이용해 공격합니다. 크랩류는 무지개색으로 위험도를 분류하고, 그중 퍼플이 가장 강한 몬스터라고 할 수 있죠. 퍼플 한 개체는 A급으로, 그 크기에 따라 능력치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저 개체를 보아하니, 상당히 버거운 싸움이 될 듯하군요.”
“…협회에 증원 요청을 빨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클램 웜에 퍼플 크랩이라니.
바닷가가 절로 떠오르는 명칭들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한적하면서도 고즈넉한 바다와는 거리가 먼 몬스터들이었다. 부팀장의 설명을 들으니 저 검 보랏빛의 울퉁불퉁한 몬스터가 내뿜는 존재감이 이전 몬스터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퍼플 크랩이 움직일 때마다 발밑의 자동차가 인정사정없이 꿰뚫리는 모습을 보며 답을 기다릴 때였다. 팀장이 짧지만 긴 침묵을 깼다.
― 일단은 우리끼리 해 보자.
“예. 이미 첫 요청에 높은 등급의 헌터를 요청했으니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날과는 달리 팀장도, 부팀장도 빠른 증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에 뭔가 싶었지만 그 의문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증원을 요청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겁니다. 헌터부 소속 정규직이 늘었다고는 하나 나라에서 운용하는 헌터의 수는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너무 조용히 있어 사람이 있단 것도 잊고 있었다. 강승빈의 목소리에 어째서 두 사람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인지하곤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마저 상황 살펴요.”
“네, 부팀장님.”
강승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부팀장이 말했다. 나는 곧바로 답하며 다시 모니터 너머의 상황을 살폈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첫 요청을 넣어 둔 상황입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증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협회로 나가는 협조금을 아끼는 것보단 이 순간에도 피핼 입는 시민들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라에서 복구를 지원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의 삶이 급급한 이들은 부팀장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마치 자기 생각이 맞고, 부팀장의 생각이 아둔하다 탓하는 것만 같다. 잠자코 대화를 듣다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걸 모른다면 매번 던전이 생성될 때마다 목숨을 걸며 던전으로 향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잔뜩 날이 선 목소리 때문일까, 강승빈이 날 보며 입을 꾹 닫았다. 의미 모를 시선이 따라왔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이곳은 협회가 아닙니다. 물론, 강승빈 씨의 의견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일은 그 누구보다 팀장님과 부팀장님이 잘 알고 있단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의견에 힘 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표현이 영 별로였지만, 증원해야 하지 않겠냐는 내 의견에 동조한 건 사실이었다. 팀장과 부팀장의 선택을 존중해야 함을 전하고 뒤이어 고맙단 뜻을 전하자 강승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표현이 날이 섰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습니다.”
잠시 침묵하나 싶던 강승빈이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이전에 봤던 그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이 사과는 무척 의외였다.
“사과했으니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생각이 있어 결정한 거니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피드백은 이후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예.”
피드백을 받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한 부팀장이 슬쩍 휘어진 눈으로 날 바라본다. 따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치 고맙단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따라 슬쩍 웃으며 작게 고개를 저은 뒤 다시 현장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 우리 막내 박력 넘치는데요?
― 나 좀 감동한 거 같아.
― 다들 감동했으면 우리 막내의 믿음에 보답해야겠지? 오늘 현장 상황이 좋지 않으니 다들 긴장 늦추지 말고 최선을 다해 막아 보자!
― 예!
내 말에 감동했단 팀원들의 반응이 더 감동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현장을 살피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파이팅!”
― 좋아!
― 풉! 그래, 파이팅이다. 파이팅!
― 팀장님, 도착까지 몇 분 걸리십니까? 저희는 빨라도 10분 이상 걸릴 듯합니다.
― 경찰이랑 소방관들에게 상황 전달해 두마!
― 옙!
“현재 퍼플 크랩 한 개체와 클램 웜 세 개체가 던전을 활보하고 있습니다! …막 던전 외곽지 쪽에서 퍼플 크랩 한 개체가 더 발견되었습니다!”
― 거기서 무슨 모임이라도 갖는 걸까요? 왜 저리 등급 높은 개체들이 많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거였다. 퍼플 크랩이 한 개체가 더 발견되었다는 것은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간다는 뜻과도 같았다.
― 부팀장, 혹시 모르니 일단 협회 쪽에 말 넣어 둬.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A급 헌터가 둘이 있다고 한들 등급 높은 몬스터 다섯 개체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협조를 요청할 때 이미 A급 헌터를 요청한 듯했지만, 카메라에 잡힌 게 이 정도라면 카메라 사각지대에도 등급 높은 몬스터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동 중인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것밖에 없었다. 혹여 고정 카메라가 아님에도 고정 카메라로 여기고 그냥 넘어가진 않았나 재차 확인할 때였다.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네트워크 너머로 전해졌다.
― 현장 도착! 곧바로 중앙부 쪽으로 가지!
― 예!
팀장의 목소리에 이어 서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걸 보면 온 힘을 짜내어 이동한 듯했다. 안도감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나는 중앙부로 갈 테니 서강민 씨는 던전 경계 쪽을 살피도록 해!
― 알겠습니다, 팀장님!
“중앙부로 함께 이동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팀장 혼자 던전 중심으로 간다는 게 걱정되었는지 부팀장이 그에게 말했다.
― 지금으로썬 둘이 찢어져 움직이는 편이 나아! 팀원들이 도착하면 바로 중앙부로 오라고 해야겠지! 서강민 씨, 들었지?
― 바톤 터치 후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 좋아, 대답 하나는 시원시원해서 좋아!
― 감사합니다, 팀장님!
“…….”
어디의 누군가완 달리 무척이나 깍듯한 태도다. 슬쩍 강승빈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모니터를 살폈다.
― 뭐가 이렇게 많아? 막내야, 여기 한울 한의원 쪽인데, 카메라 돌아가?
“…아뇨. 멈춘 상태입니다. 현재 중앙부로 추정되는 율현 병원을 중심으로 해서 현재 200m가량 잠식당한 상황입니다. 특히 북쪽으론 50m 정도 더 던전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습니다!”
― 혹시 규모가 더 커지는지 확인하고!
“네, 확인 즉시 알리겠습니다!”
― 좋아!
몬스터와 격돌했는지 타격음 너머로 팀장의 답이 들려왔다. 매번 듣는 소리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잔뜩 긴장한 채 CCTV 현황을 살피고 또 네트워크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할 때였다.
― 서강민입니다! 현재 D-15 제3 대피소 쪽의 피해가 상당하니 현장에 도착하시는 헌터부 분들은 이쪽으로 지원 바랍니다!
― 뭐? 대피소 쪽?
“…….”
그간 대피소 방향으로 몬스터가 향하는 건 본 적 있었지만, 대피소에 직접적인 피해가 갔던 적은 없었다. 황급히 제3 대피소 쪽의 카메라를 확인해 보니 서강민의 말처럼 근방의 CCTV가 모조리 작동을 멈춘 상태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D-15구역에 있는 다섯 개의 대피소 상황을 모조리 살폈다.
“팀장님, 제3 대피소를 제외한 다른 대피소 쪽은 안전합니다!”
“바로 문자 발송하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문자를 발송해 현재 대피 중인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게 급선무였다. 황급히 자리서 일어난 부팀장이 곧바로 박 주무관의 자리로 이동해 메시지를 입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 큭!
그때였다. 네트워크 너머에서 커다란 굉음 뒤로 팀장의 앓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팀장님, 괜찮으세요?”
― 팀장님?
다른 때 같다면 바로 답이 돌아올 텐데 좀처럼 반응이 없다. 혹시 네트워크 기계가 떨어진 걸까?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몸에 부착한 기계는 떨어질 리 없었다.
삽시간에 조용해진 네트워크에선 현장에서 전해지는 소음만 전해질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고 또 손이 떨려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재차 그를 불렀다.
“팀장님!”
― 팀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 팀장님!
혹여 나 혼자 호들갑이면 어쩌나 싶었지만, 지금 상황이 낯선 건 팀원들도 매한가지인 듯했다. 팀장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계속해서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