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21. 재회
“여긴 이렇게 처리하면 됩니다.”
“그렇군요.”
“하다가 막히는 부분 있으면 지체 없이 물어보도록 하세요. 끙끙댈 시간에 물어보면 하나라도 빨리 습득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이거…. 보시기에도 참 답이 없죠? 지금도 이런데 협회에서 수기 협조문 가지고 오라고 할 땐 정말 미치고 팔짝 뛰었죠. 하하.”
새로운 팀원들이 충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형성될 줄은 미처 몰랐다. 언뜻 들으면 다정한 듯하지만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의 말엔 뼈가 느껴졌다. 날 향한 게 아닌 걸 알면서도 양쪽에서 듣고 있자니 괜히 긴장될 지경이었다.
티 나지 않게 창가와 벽 쪽 자리로 시선을 주자 한 주무관의 뒤통수와 함께 김 주무관의 얼굴이 보였다.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한 주무관도 저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저 모습을 보니 두 사람이 안쓰럽다 느껴지기보다는 내가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만에 하나 서강민과 강승빈과 같은 처지였다면 정말 피가 말랐을 것이었다.
나는 몇 번 더 각 자리를 염탐하다가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두 사람도 저리 열심히 일하는데, 내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한 번 크게 심호흡한 뒤 어제 다 보지 못한 지도를 집중해 살피며 중간중간 다른 작업을 병행하는데, 부팀장이 날 불렀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오후 세 시까지 시간 됩니까? 작업할 게 좀 있어서 말입니다.”
할 일이 있긴 했지만 급하게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다. 혹여 급히 처리할 일이 있다고 한들 부팀장의 부탁을 무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세요.”
“예.”
내 대답을 들은 부팀장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 서류를 훑어보니 역시나 내가 할 수 있는 선의 일감이었다. 몇 번 더 꼼꼼하게 살핀 뒤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한참을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서류 작업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로 인해 내 집중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Rrrr- Rrrr-
던전을 클리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 전화가 울리는 걸까. 황급히 부팀장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 협탁 위의 긴급 전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김 주무관이 수화기를 드는 게 보였다.
“서울시 헌터부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바로 상황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통화할 때마다 김 주무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건 당연했지만, 오늘따라 그 정도가 심했다. 급박해 보이는 그를 보며 긴장하는데 이윽고 김 주무관이 전화를 끊었다.
“후우.”
무슨 소식을 전달하려고 저리 깊은 한숨을 뱉는 걸까. 발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긴장에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단 느낌을 받을 때였다. 김 주무관의 시선이 팀장을 향했다.
“팀장님.”
“무슨 상황이야.”
“던전이 생성되었다고 합니다. 등급은 난이도 A급, 규모 B급이고요.”
“헉.”
“A급이요?”
난이도 A급 던전이 생성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A급 던전이라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황급히 중계기를 오픈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다른 날관 달리 모두가 자리를 지키며 김 주무관만 바라보고 있었다.
“위치는?”
언제 끝날지 모르던 침묵을 깬 건 팀장이었다. 평소완 달리 감정이 배제된 딱딱한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이 상황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것이….”
선뜻 답하지 못한 채 말을 끝맺지 못하는 김 주무관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보여 주기식으로 행동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상황을 두고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반쯤 일어나다 만 자세로 계속해서 김 주무관의 답을 기다렸다.
“다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전달하기 힘든 내용인지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던 김 주무관이 한숨을 토해내듯 말을 꺼냈다. 저 말을 들으니 도대체 어디서 생성되었기에 이렇게 질질 끄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알았으니까 어서 말해. 현장 나가야지!”
그 생각은 팀장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재촉어린 질책에 김 주무관이 이윽고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뗐다.
“D-15 구역이라고 합니다.”
“…뭐?”
“예?”
D-15 구역이라면 귀에 익었다. 아니, 단순히 귀에 익은 수준이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에 던전이 생성되었던 곳이니까. 그 사실에 놀라 주변을 살피니 나만 놀란 게 아닌지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자리하고 있었다.
“율현 병원 근방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목격한 시민이 있다고 합니다.”
첫 말을 꺼내긴 힘들어도 한 번 터진 입은 멈출 새가 없었다. 김 주무관이 봇물이 터지듯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현재 D-15 구역에서 출동할 수 있는 소방관들과 경찰들이 시민의 대피를 돕고 있지만, 이전번에 피해를 본 구역이라 그런지 일손이 제법 부족하다고 합니다.”
“율현 병원이라면 이전번 던전 중심이랑 가까운 곳 아니었나?”
“중심이랑 그냥 가까운 것도 아니고 완전 가까운 곳 아니었나요?”
“그렇지.”
“저도 기억합니다.”
같은 구역에 연달아 높은 등급의 던전이 생성된 것도 모자라 몬스터가 나오는 위치까지 가깝다니. 한 주무관과 함께 현장을 둘러봤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추호도 몰랐다.
“연달아 같은 곳에서 던전이 생성될 수도 있는 겁니까?”
“스웨덴과 영국에 각 한 차례씩 생성된 전적이 있습니다만, 같은 난이도의 던전이 생성되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묻자, 부팀장이 답했다.
드문 확률에 더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사례가 하필 우리나라, 그것도 서울시 한복판에 생기다니. 현실감이라곤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냥 이렇게 멍청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마저 일어나 중계기와 네트워크를 오픈했다.
“중계기 및 네트워크 오픈했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한 주무관!”
잠시 나를 보는가 싶던 팀장이 고개를 돌리며 한 주무관을 불렀다.
“예!”
“새로 온 팀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이동하도록 해! 나는 서강민과 먼저 현장으로 가도록 하지! 강승빈 씨는 몸이 나을 때까지는 사무실 근무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가는 길에 네트워크 사용법 한 번 더 설명하도록 하지. 서강민 씨 거는 내가 챙길 테니까 한 주무관이 다른 이들 거 챙겨서 뒤따라 와. 던전으로 들어오지 말고 주변 경계하고!”
“알겠습니다!”
서랍에서 네트워크 기계 하날 꺼낸 팀장이 곧바로 창가로 향한다. 그에 서강민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을 바라보다가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시간 없어! 빨리 따라와!”
대번에 창문을 열어젖힌 팀장이 그대로 뛰어내렸다.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었던 모양인지 새로 온 팀원들 모두가 놀라 엉덩이를 들썩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팀원들을 두루 훑어본 서강민이 마지막으로 날 보며 인사를 건넸다. 고개를 주억이자 그 역시 창문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그 모습에 새 팀원 중 누군가가 물었다.
“…이거 오늘 처음이라고 보여 주기식인 거죠?”
“평소 팀장님이 이용하시는 문입니다.”
부팀장의 담담한 대답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의 침묵은 백 퍼센트 이해되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처음 저 장면을 봤을 때 까무러치게 놀랐었으니까. 출입문을 놔두고 창문을 이용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특히 사무실 층이 층인지라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생각지도 못한 부팀장의 답변에 사무실의 공기가 잠시 멈추는 듯했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다. 빠르게 네트워크 연결 기계를 챙겨 김 주무관과 새로운 팀원들을 데리고 나서는 한 주무관을 바라볼 때였다. 문자 전송을 마쳤는지 박 주무관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럼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막내야, 상황 보면서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해!”
“네!”
지난번 A급 던전은 김세현이 있어 빠르게 클리어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나는 정신을 다잡곤 교통센터에 접속해 현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참혹하군요.”
함께 모니터를 보던 부팀장이 침음을 삼켰다. 그도 그럴 만했다. 아주 조금씩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던 구역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으니까.
곧바로 율현 병원 쪽 상황을 보려 했지만 이미 병원 근처의 카메라는 모조리 작동을 멈춘 상태였다. 그에 CCTV 현황 지도를 둘러보곤 율현 병원과 약 2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가동 중인 카메라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화면에 비친 참혹한 상황에 말을 잃었다.
“…….”
“팀장님, 되도록 일찍 도착하셔야겠습니다.”
― 상황이 안 좋아?
“무척 안 좋습니다.”
― 알았어. 되도록 일찍 도착하는 것으로 하지. 서강민 씨, 속도 더 올리자고!
― 알겠습니다!
서강민이 네트워크 기계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생경했지만, 그도 잠시였다. 현재 가동 중인 카메라로 현장을 계속해서 둘러보는데 익숙한 몬스터가 화면에 잡혔다. 나는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팀장님, 클램 웜입니다!”
― 뭐? 클램 웜?
― 아니 오늘 무슨 일이랍니까? 같은 구역에 던전이 생성되다 못해 클램 웜이라뇨! 클램 웜도 드물게 나타나는 놈 아니었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었다. 새로운 팀원이 합류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긴급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 막내는 계속해서 상황 살펴! 개체 수 확인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네!”
그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나는 좀 더 면밀히,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CCTV 상황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