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59)화 (159/246)

156화

21. 재회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얼굴을 보기로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 때문에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다. 메시지 함을 눌러 내용을 확인하니 역시나 김세현은 언제 볼 거냔 재촉하는 메시지를 연이어 보내오고 있었다. 그것도 제법 오래전부터 말이다.

나는 황급히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확인이 늦어 미안해요. 시청에서 부시장님이 오신 바람에 이제야 확인했어요.]

[부시장은 갔어요? (*ᴗ͈ˬᴗ͈)ꕤ*.゚?]

[네. 지금 새로 온 팀원들과 막 점심 주문한 상황이에요.]

[(´∀`)!! 그럼 식사 전에 볼래요? 아니면 식사 후에 봐도 좋고. ( ˘ ³˘(◡‿◡˶)*]

[식사 전에 봐요. 바로 갈게요.]

화장실을 핑계로 잠깐 올라갔다 오면 될 것이었다. 옥상에서 보자고 했던 걸 상기하며 답하니 김세현은 대답 대신 잔뜩 설레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

대답 대신 도착한 이모티콘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뭐 먹으려고?”

“아뇨. 잠깐 나갔다 오려고요.”

“다녀와.”

“네.”

그간 어딜 돌아다닌 적 없기 때문인지 몰라도 따로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지 않아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에 안심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후우.”

옥상 문 앞에 도착하자 왜 이리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크게 한 번 심호흡한 뒤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을 때였다.

“형!”

“아.”

문을 열자 김세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따라 화창하기만 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환히 웃는 그를 보니 새삼스럽게 설렜다. 그저 얼굴을 본 것일 뿐인데, 가파르게 심장이 뛰는 건 전부 상대가 김세현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김세현이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 것도 새삼스럽다. 한참을 그렇게 문고리를 붙잡은 자세 그대로 그를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형, 보고 싶었어요.”

저런 말을 들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뿐이랴, 날 바라보는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느껴졌다.

“…….”

김세현은 평소대로 바라보는데, 혼자 이렇게 의식하는 건 뭘까. 평소보다 배 이상은 간질거리는 심장에 괜스레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흠, 흠! 저도….”

그래, 김세현이 저리 말했으니 나도 아주 조금은 표현해도 될 것이었다. 은근슬쩍 보고 싶었다는 말을 꺼내려 했지만 그 말을 끝맺을 순 없었다. 김세현이 손을 앞으로 뻗기 무섭게 그에게 안겨 있었으니까.

“지난주에도 얼굴 보지 못하고. 아쉬웠어요.”

나도 아쉽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정이 있다는 사람에게 보고 싶단 말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내가 그 말을 한다고 해서 김세현이 일정을 뺄까 싶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니지, 보고 싶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그를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

옷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내 허리를 감싼 김세현의 손 때문일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터질 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어느새 귀를 잠식했다. 그의 몸에 닿은 얼굴은 이전에 느껴 본 적 없는 뜨거움이 차오른 상태였다.

“형, 듣고 있어요?”

답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무리였다. 그저 가만히 몸을 맡기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으니까.

“형?”

대답이 없자 이상했는지 김세현이 안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며 반쯤 물러선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서는 눈을 마주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무리였다.

“여기가 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

한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도 잠시였다. 조금 전보다 더욱더 거세게 날 끌어안는 손길에 그대로 품에 안겨 있을 때였다.

“후욱.”

머리 위에서 점차 거친 숨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로 인해 아예 밀착되어버리자 김세현의 심장 소리인지, 내 소리인지 모를 박동이 거세게 뛰는 게 느껴졌다.

아마 이 소린 내 것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기왕이면 김세현도 나와 같았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

지이잉.

“아.”

어느새 몽롱했던 정신이 핸드폰 진동에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더하여 내가 김세현의 품에 안겨 있단 사실 또한 확실하게 느껴졌다. 파드득 몸을 떨며 황급히 그를 밀어내자 그대로 물러선 김세현이 불퉁한 표정을 짓는 게 눈에 들어왔다.

“쳇.”

“메시지 좀 확인할게요.”

평소 이 시간에 메시지가 오는 일은 드물었다. 아무래도 당장 확인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일 것 같았다. 양해를 구하며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음식이 도착했단 박 주무관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음식이 왔다고 하네요.”

“벌써요?”

“그러게요.”

자리를 뜨기 전에 주문한 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다니 나도 놀라웠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잠깐이라고 생각되었던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말이다.

어째서 박 주무관이 연락했는지 알 듯했다. 나는 다급해진 마음으로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죠.”

항상 뭔가를 원하거나 하려고 할 땐 항상 이런저런 말을 하며 날 붙잡곤 했는데, 오늘은 무척이나 담백하게 물러났다. 계속 붙잡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만큼 아쉬운 마음도 컸다.

“어서 가 봐요.”

“…네.”

“그리고 내일도 여기서 보고요.”

“내일도요?”

내가 부탁한 건 어디까지나 월요일 방문을 자제해 달란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김세현의 말에 놀라 그를 다시 보자 얼굴 가득 미소가 자리해 있었다.

“매일같이 붙어 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잠깐 만나는 것도 스릴 있고 좋네요.”

“아.”

“아쉽지만, 그래도 제법 성과가 있는 거 같아서 참을 수 있을 거 같고요.”

난데없는 성과란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상황에선 김세현의 이런 제안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미리 입을 맞춰 시간을 정해 여기서 만나면 그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놈은 왔어요?”

“그놈이요?”

“협회에서 넘어왔다는 그놈이요.”

“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팔이랑 다리에 깁스하고 왔더라고요.”

“…헌터라 빨리 붙나 보네.”

“네?”

가까워서인지 중얼거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난데없는 말이 의아해 그를 바라봤지만, 김세현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놈 사고당했다는 걸 우연히 들어서요. 면 퍼지겠네요. 어서 가 봐요.”

“…네.”

혹시 다른 이유가 있나 싶어 그를 살폈지만, 김세현에게선 그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면이 불겠단 말을 들으니 정말 이젠 가 봐야 할 듯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집어삼키며 사무실 층으로 내려갔다.

“후우.”

바로 사무실로 갈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꼴이 말이 아닐 듯했다. 잠깐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보니 여길 들리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꼴이 참으로 보기 우스웠다.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연거푸 세수 후 어느 정도 진정되자 사무실로 향했다.

“왔어?”

“네.”

“더 늦으면 데리러 가려고 했지.”

“속은 좀 괜찮고?”

“하하.”

오랜 시간 화장실에 머무르게 된 모양새라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당연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답을 얼버무리며 시선을 돌리는데, 팀장과 서강민, 그리고 한 주무관이 날 뚫어져라 응시하는 게 보였다. 무척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찔린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어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하아.”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팀장은 그저 날 보며 깊은 한숨만 뱉을 뿐이었다. 슬쩍 한 주무관을 보니 난감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한숨을 쉬는데, 그 모습을 보니 더더욱 눈치가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로 가 앉았다.

“어서 드세요. 아, 반찬 모자라신 분은 말씀하시면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사무실 공간이 좁아진 터라 뭉쳐서 먹던 이전과는 달리 각자 자리에서 먹게 된 상황이었다. 여기저기서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는데, 그 와중에도 좀처럼 팀장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

“아냐, 아무것도.”

혹시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싶어 물어봤지만, 팀장은 그저 됐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다 시선을 내리는데, 덩달아 그가 바라보는 곳을 보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짬뽕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설마, 그런 걸까?

생각해 보면 팀장은 오늘 자장면과 볶음밥을 주문했다. 자장면을 먹을 땐 짬뽕이 당기기도 했고, 짬뽕을 먹을 땐 자장이 당기기도 했으니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얼른 짬뽕 비닐을 벗기곤 슬그머니 그것을 팀장과 가까운 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이것도 좀 드세요.”

“어?”

움직이는 짬뽕 그릇을 보던 팀장이 시선을 들었다. 몹시 당황하는 걸 보니 이게 아닌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보았다.

“짬뽕 당겨서 보신 거 아니에요?”

“…내가, 잠깐 널 잊고 있었네.”

내 물음에 눈을 끔벅이던 팀장이 떠듬떠듬 말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호쾌한 것이 조금 전의 미묘한 분위기완 거리가 있었다. 한참을 웃던 팀장이 한결 개운해 보이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막내야.”

“네.”

“내가 너 믿는 거 알고 있지?”

“…네.”

“언제나 지금처럼만 해. 알겠어?”

지금처럼만 하라는 말을 하는 팀장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해 보였다. 그래, 마치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담은 느낌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좋아. 그렇다면…. 막내의 성의를 무시할 순 없지. 자장면 좀 덜어 줄 테니까 이거 절반 덜어간다?”

“네.”

내 대답을 들은 팀장이 짬뽕과 자장면을 그릇에 덜어 건넨다. 받은 그릇을 앞에 놓으니 이보다 책상이 꽉 차 보일 순 없었다. 솔솔 풍기는 음식 향이 자꾸만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연신 군침을 삼키는데 팀장에 이어 부팀장, 그리고 다른 팀원들이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한 번 더 침을 꿀꺽 삼키곤 젓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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