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58)화 (158/246)

155화

21. 재회

“그래, 어디 한 번 헌터부 천사가 마시는 커피 맛 좀 볼까?”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천사란 말을 들으니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부시장에게 그 말을 하지 말아 달란 부탁을 하기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곁에 서 있으려니 커피를 음미하던 부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야 거기서 거기지만, 팀장의 말을 들으니 제법 괜찮은 거 같기도 해.”

“다행입니다.”

여기서 대화를 마치고 싶었지만 뚫어져라 날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결국 그 시선을 무시하지 못한 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영진 의원에게 물어보았다.

“이영진 의원님 입에도 잘 맞으십니까?”

“나쁘진 않네.”

이 자리에 부시장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없었다면 이영진 의원이 평이한 어조로 답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항상 이 두 사람이 같이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막내야. 자리 가서 하던 일 계속해.”

조용히 곁에 서 있던 팀장이 어서 가 보라 손짓한다. 곧바로 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곤 자리로 가 앉아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지고 온 물건들은 편히 두시면 됩니다.”

“컴퓨터에 비번 설정해 두시고요. 다만 그 비번은 팀원들끼리는 공유되니 꼭 알려주십시오.”

짐을 정리하며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 그리고 박 주무관이 건네는 설명을 듣는 새 팀원들을 지켜볼 때였다. 김 주무관이 주변을 살피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강승빈을 가리키며 말을 걸어왔다.

“막내야, 남는 의자 있어?”

강승빈을 가리킨다는 건 아무래도 한쪽 다리에 깁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김세현이 앉던 의자가 있단 사실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김 주무관에게 건네주었다.

“땡큐. 거기 의자는…. 나중에 내가 아래서 하나 가지고 올게.”

“네.”

뭣하면 그가 갈 때 함께 다녀와도 되었고, 그가 시간이 되지 않으면 내가 다녀와도 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답하곤 다시 자리로 돌아와 계속해서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

자리를 조정하며 사무실 안 상황이 한눈에 보인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막상 사람이 꽉 들어찬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새로운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팀원들, 그리고 한쪽에서는 팀장과 대화를 나누는 부시장과 이영진 의원을 보다가 이내 마음을 바로잡았다.

이렇게 지켜보는 것도 좋았지만, 다들 저리 바쁘게 할 일을 하는데 혼자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하던 일을 마저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염 팀장, 시청으로 다시 돌아오는 편이 낫지 않겠나?”

“저희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협회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서요. 지금이야 협조문을 사이트를 통해 바로 전달하고 있습니다만 숨 쉬듯 마음이 바뀌는 게 그쪽인지라 좀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장은 자네가 가장 잘 아니 내가 뭐라 할 순 없지. 확신이 서면 언제든 연락해. 헌터부 사무실은 항상 비워 두고 있으니까.”

“예, 부시장님.”

집중하는 일보다 간단히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하길 잘했다. 손은 열심히 움직이되, 귀는 원탁 쪽에 집중하며 하던 일을 이어 나갈 때였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그쪽을 보니 서강민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그가 씩 웃으며 한 번 더 고개를 살짝 까닥인다. 몹시 반가워하는 모습에 나 역시 같은 동작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데 서강민이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

뭐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입 모양만 봐서는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한 주무관 너머로 그가 자리한 터라 한 주무관이 움직일 때마다 모습이 가려지는 통에 그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보는 건 힘겨웠다.

그렇다고 모르는 체하고 지나갈 순 없었다. 뭔가 중요한 말이라도 하려는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며 서강민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내려 노력하길 몇 차례, 한참만에야 그가 하려던 말을 알게 되자 이렇게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이것저것 물어보겠다는 정말 단순한 인사말이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열심히 알아내려고 했던 것에 비하면 허무한 내용이었다.

“하늘 씨.”

허탈함에 고개를 숙이려는데, 부팀장의 호출이 있었다. 옆을 보자 부팀장이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이거 나중에 팀장님께 전할 서륩니다. 간단히 체크하고 혹 문제 있으면 말해요.”

“네, 부팀장님.”

그간 이런 걸 내게 주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놀라 그를 바라보니 어서 그 작업을 하라며 턱짓하고는 다시 하던 작업을 이어 갈 뿐이었다.

“…….”

생각지도 못했지만, 이렇게 서류 검토를 부탁한 것은 손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곧바로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중해 서류를 확인하길 몇 차례, 따로 문제 될 게 보이지 않는단 판단이 서자 부팀장에게 그것을 건네었다.

“부팀장님. 이대로 전달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것도 한 번 확인해요.”

“…네.”

마치 내가 말을 걸길 기다렸다는 듯이 부팀장은 다른 서류를 건넸다. 알 수 없는 기시감에 기억을 계속해서 더듬으며 재차 서류를 확인할 때였다. 원탁 쪽에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던 세 사람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폈다.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고생은 팀원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간 헌터부 인원 충원을 해 보고자 노력했는데, 이번 기회에 수를 좀 채울 수 있어 다행이야.”

“예.”

“이번에 충원될 인원을 꾸리는 데 이 의원님의 입김도 한몫했지. 그 덕분에 이렇게 빨리 인원을 꾸릴 수 있게 된 거고.”

어떤 일이건 간에 양면이 존재했지만, 이영진 의원이 인원을 구성하는 상황에 손을 댔다고 하니 괜히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특히 시장과 가까운 사이인 이영진 의원이 끼어들었다는 건 시장의 뜻 또한 그와 같음을 의미했다.

“…….”

그간 헌터부를 달게 보지 않던 이 의원인 만큼 시장 또한 헌터부를 아니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마 전 충원되는 인원과 관련된 전화가 왔을 때 청와대에 연줄이 있느냐는 말이 오갔던 걸 보면 생각보다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렇군요. 이 의원님 덕분에 무사히 팀원 잘 꾸렸습니다. 헌터부에 적대적이신 줄 알았는데 제 생각이 너무 편협했던 모양입니다.”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을 뿐이지, 어느 한쪽 편을 든 적은 없으니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하지.”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을 텐데 조용했다. 혹시나 싶어 세 주무관의 표정을 살피니 애써 관리 중이긴 했지만,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반응하고 싶은 걸 애써 참아내는 듯했다.

“중립적이기에 더 큰 도움 받았습니다.”

이영진 의원의 말을 들었음에도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한다. 그걸 보니 저 말을 반복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 듯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영진 의원에게 거듭하여 고마움을 표할 사이가 아닌 만큼 딱히 좋은 뜻을 담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이 의원이 부담스러워하는 걸 보니 그만하면 되었네. 충분히 자네 마음 전해졌을 거야.”

“그래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허, 이 사람이.”

부시장이 봐도 너무 과했던 모양이었다. 부시장이 혀를 차자 팀장이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부시장의 반응에 어쩔 수 없이 여기서 그만하겠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이어갔으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이제 점심시간인데 다들 식사하면서 얘기들 나누고. 우리는 이만 빠지도록 하지. 이 의원님, 오늘 점심 스케줄 없으면 나와 함께 합시다.”

“좋습니다.”

“그래요. 그럼….”

순식간에 이영진 의원과 점심 약속을 끝낸 부시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이영진 의원까지 일어나자 부팀장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자 팀원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히 가십시오.”

“사람이 충원된 만큼 앞으로 지켜보겠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네가 노력한다고 말할 땐 그만한 성과를 항상 가지고 오곤 했지. 염 팀장만 믿고 있겠네.”

“조심히 가십시오. 그리고 이 의원님도 조심히 가시고요.”

부시장과 이영진 의원과 악수한 팀장이 곧바로 몸을 틀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에 곧바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가십시오.”

“다들 고생하도록 해요.”

부시장이 팀원들을 둘러보다 이내 사무실을 나선다. 그 뒤를 따라 이영진 의원과 팀장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입문이 닫혔다.

“하아.”

“후우.”

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크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덩달아 크게 숨을 뱉는데 옆에서 부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인사는 마쳤으니 따로 하진 않아도 될 것 같군요. 현재 자리가 양쪽으로 나뉘었는데, 창가 쪽에는 한 주무관이 교육을 담당할 것이고, 그 반대편은 김 주무관이 담당하게 될 겁니다. 자리는 제가 있는 사무직 담당 쪽과 외근을 나가는 쪽으로 구분 지어 두었습니다. 우선은 이대로 유지하고 좀 더 괜찮은 배치가 있으면 바꿀 예정입니다.”

“예.”

“우선은 점심시간이니 식사 메뉴부터 정하죠. 팀장님이 오시면 바로 주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날은 무조건 중식 아닙니까?”

“저는 양식도 좋습니다!”

“저는 한식이요!”

점심 이야기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역시나 기존에 있던 팀원들이었다. 부팀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 향하자 바로 입을 뗐다.

“전 다 좋아요.”

“그럼 오늘은 새로 온 팀원들이 메뉴 정하는 것으로 정합시다.”

자연스럽게 새 팀원들에게 메뉴 선택이 넘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윽고 중식으로 뜻이 모였다.

“그럼 오늘은 중식으로 가죠.”

“예!”

“메뉴는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거 드시면 됩니다. 그럼 하늘 씨.”

“네.”

메뉴를 받아 적고 주문하는 건 내 담당이었다. 부팀장의 부름에 즉각 답하며 모든 이에게 메뉴 전달받고 중국집 번호를 찾는데 팀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점심 메뉴 정했어?”

“예, 중식으로 정했습니다.”

“그럼 나는 자장면 곱빼기에 볶음밥 곱빼기.”

팀장이 자리로 와 앉으며 메뉴를 전달했다. 나는 그 또한 표시 후 바로 중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몇 분 걸린대?”

“점심시간이라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허기진 사람들은 저기 찬장에 빵 있으니 그걸로 허기 달래면 됩니다.”

“예.”

“점심 올 때까지 마저 짐 정리하십시오. 일은 찬찬히 익히면 되고, 현장에서는 언제나처럼 행동하면 됩니다. 아, 그리고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은 식사 전에 네트워크 사용 방법 알려 주고요.”

“알겠습니다, 부팀장님.”

“맡겨만 주십시오.”

하긴, 던전이 언제 생성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와 관련된 정보부터 습득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네트워크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빠르게 짐 정리를 시작한다. 이어 김 주무관과 한 주무관이 그들에게 네트워크와 관련된 설명을 해 주는 모습을 볼 때였다.

지이잉.

품에 넣어 둔 핸드폰 진동이 느껴진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내용을 봤다가 시간을 확인하곤 낭패 어린 표정을 지었다.

메시지의 주인은 다름 아닌 김세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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