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21. 재회
이 높이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플래시라면 현장에서는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만큼 번쩍이고 있을 터였다. 좀처럼 그치지 않는 플래시 세례를 보며 저 자리에 있을 팀장과 부팀장을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커지던 참이었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섬광이 순간 모습을 감췄다.
“드디어 끝났나?”
“출입문 쪽으로 가 기다리자고. 다른 이들이 있어서 뜻대로 될까 싶지만, 우선은 기선제압 좀 해야지.”
“좋죠!”
이번에 합류할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필요해 보였다.
팀원들을 따라 출입문 쪽의 공간으로 가서 서니 이제 곧 올라올 이들이 설 공간이 있나 걱정될 만큼 꽉 찼다. 너무 비좁아 보여 걱정되었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게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주무관이 말한 기선제압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을 듯했다.
“사무실이 꽉 차니 이점도 있네요.”
“그러게. 이거 들어오는 사람들마다 위압감 좀 느낄지도 모르겠어.”
“성인 넷이 출입문 가까이 서 있는 거 보면 놀라고도 남죠.”
내 말에 세 사람이 고개를 주억이며 의견을 내놓았다. 어서 올라와 놀라길 바라며 기다리는데, 몇 분이 지나도 복도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창가 쪽으로 향했다.
“상황 좀 보고 올게요.”
“건물로 들어오면 바로 알려줘.”
“네.”
바깥 동태가 신경 쓰이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닌 듯했다. 김 주무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조금 전보다 상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지금은 인터뷰 같은 걸 하네요.”
“하긴, 사진만 찍고 올라올 위인이 아니긴 하지.”
“잠시 이영진 의원이 같이 있단 걸 잊었네요. 기사 하나라도 더 내보내려 노력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볼 때마다 사람을 실망하게 하는 것도 능력이었다. 못마땅함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아래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부시장님이 같이 있으니 길진 않겠지.”
“좀 앉아서 기다릴까요?”
“그것도 괜찮을 거 같네. 막내가 바로 알려 주기로 했으니 그때 일어나도 되겠지.”
확실히 지금으로선 앉아서 기다리는 편이 더 나아 보였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맡겨만 주세요.”
내 대답을 들은 이들이 웃으며 자리로 가 앉는다. 마지막으로 박 주무관이 자리에 앉는 모습을 확인 후 재차 망을 보았다.
“…….”
분명 시청에서도 이런 자리가 있었을 것이었다. 플래시가 터졌다가 멈추고, 또 터지다 멈추길 반복하는 걸 계속해서 지켜볼 때였다. 드디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플래시 세례를 뒤로하고 한 무리의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이 소식을 알렸다.
“자, 준비하자.”
“예!”
“네!”
이미 한 번 기다렸기 때문일까, 줄 맞춰 서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렬로 나란히 서서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후우, 제법 긴장되네요.”
“부시장님과 이영진만 가면 딱히 긴장하지 않아도 될 거야. 옷매무새 마지막까지 확인하고.”
한 주무관의 말에 마지막까지 옷깃을 만지작거리다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바로 했다.
“문 열겠습니다.”
마치 우리에게도 신호를 주려는 듯 팀장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또렷이 들려왔다.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꼿꼿이 세움과 동시에 출입문이 열리며 부팀장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비좁지만 들어오십시오.”
문고리를 붙잡은 부팀장이 바깥을 향해 말한다. 잠시 뒤 헛기침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부시장과 이영진 의원을 보다가 뒤따라 들어오는 팀장과 다른 이들 쪽으로 눈을 움직였다.
“…….”
이미 본 사람도 있고, 또 처음 보는 사람도 섞인 조합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전보다 많이 좁아졌어.”
“아무래도 인원수에 맞게 책상을 넣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쯧! 청사를 두고 여기서 뭣 하는 짓인지.”
“피치 못할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요.”
이 자리에 협회 소속이었던 이들이 있는데, 저런 말을 눈치도 보지 않고 말하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슬쩍 남자를 바라보는데 이미 그는 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느리게 눈을 끔벅이던 남자가 이내 입가를 끌어 올렸다.
“…….”
평범하기 짝이 없는 미소지만, 기분이 이상한 건 이전에 보았던 것 때문일 거다. 소름이 끼치는 웃음을 짓던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자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피할 생각은 없었다.
계속해서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의 표정이 조금 묘하게 변하다 다시 얼굴 가득 미소가 자리 잡았다.
어떻게 보면 반가워 보였고, 또 어떻게 보면 무언가를 찾아낸 것 같은 미소라 그런 걸까, 여간 께름칙한 게 아니었다.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남자를 보는데, 사람들 사이로 가려진 그의 몸이 뭔가 좀 이상해 보였다.
이전에 봤을 때랑 달리 몸이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보인다. 각도에 따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각도 탓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막내야.”
“아.”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에 옆을 보니 박 주무관이 눈을 끔벅이며 눈치를 준다. 그에 주변을 살피니 이제 곧 부시장과 이영진 의원 두 사람에게 인사하려는 듯했다. 나는 몸을 바로 하며 팀장과 부팀장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도 인사드렸지만 한 번 더 인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됐고, 새로 온 이들과 인사 나누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나눌 줄 알았건만, 부시장은 그것조차 번거로운 모양이었다. 손사래를 치는 부시장 곁에 서 있던 이영진 의원의 표정이 보기 좋게 흔들렸지만, 그도 잠시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을 갈무리한 이영진 의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부시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들 우린 신경 쓰지 말고 일 보도록 해요.”
“두 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두 사람 아니, 한 사람의 뜻을 받아들인 팀장이 웃으며 팀원들을 바라봤다. 표정은 흔들림 없었지만, 그의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부시장의 뜻대로 흘러간단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어 보였으니까.
작게 헛기침을 한 팀장이 우리를 보며 새로 합류할 이들 쪽을 가리켰다.
“이쪽은 오늘부로 서울시 헌터부에 정식으로 들어오게 된 이들이야.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처음 보는 이들도 있을 테니 간략하게나마 자기소개부터 하도록 하지.”
말을 하던 팀장이 곁에 서 있던 다섯 명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차례대로 그들이 앞으로 나서며 이름을 밝혔다. 그리고, 맨 끝에 서 있던 서강민의 순서가 되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공간을 만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헌터부에 들어오게 된 서강민이라고 합니다. 다들 안면이 있는 터라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웃는 낯으로 인사하던 그가 마지막 말을 하며 날 바라본다. 얼굴 가득 반가움이 묻어나는 모습에 어색하게 입가를 끌어 올리려니 이내 예의 그 남자의 소개 차례가 돌아왔다. 서강민이 뒤로 물러서자 잠시 뒤, 남자가 절뚝이며 앞으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헌터부 소속이 된 강승빈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간 쌓아온 이미지와 이름이 이렇게까지 매치되지 않는 경우는 처음 봤다. 이름도 이름이었지만, 지금 내 눈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본인을 강승빈이라 소개한 남자는 이전에 봤을 때완 달리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으니까.
도대체 무슨 사고를 당했기에 왼쪽 팔다리 모두 깁스를 한 거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데, 다른 이들은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강승빈이 다시 뒤로 물러서자 팀장이 이번에는 우리를 가리키며 새로운 팀원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쪽도 소개하도록 하지. 부팀장, 먼저 해.”
“예.”
팀장의 말에 바로 부팀장이 자기를 소개한다. 이어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 그리고 박 주무관에 이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작게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헌터부 소속 연하늘 주무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내 소개도 하지. 나는 헌터부 팀장 염기태다.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해. 자, 인사는 이 정도면 되었고! 우선 가지고 온 짐들부터 자리에 놓도록 하지. 아, 자리는 여기 한 주무관과 김 주무관이 알려 줄 테니 그쪽으로 자리 잡으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두 분은 누추합니다만, 이쪽으로 오시죠.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그럼….”
“되었네. 서로 인사하는 것도 봤으니 볼 건 다 봤지.”
“…….”
커피를 마시며 상황을 살피려고 했는지 이영진 의원이 원탁 쪽으로 가려다가 부시장의 말에 멈칫하고 섰다. 참으로 보기 좋았지만, 그렇다고 웃을 순 없었다. 애써 주먹을 쥐었다가 풀며 마음을 다독이는데 부시장에게 한 번 더 권유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지 마시고 한 잔 드시고 가시죠. 우리 팀 막내…. 이젠 막내가 아니지만 연 주무관이 커피를 잘 탑니다.”
“…그래?”
커피를 잘 탄다는 말을 들은 부시장이 잠시 날 보는가 싶더니 헛기침하며 원탁으로 향한다. 그에 급하게 커피를 타 팀장님 몫까지 석 잔을 준비해 가져가자 부시장과 이영진 의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