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56)화 (156/246)

153화

21. 재회

청소 후 자리에 돌아오니 시간은 제법 흘러 있었다. 오기로 했던 10시가 되었다는 사실에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세를 바로 했다.

“…….”

청소할 때만 하더라도 긴장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갈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시간이 되었음을 확인한 동시에 고요해진 심정이 낯설었지만, 지금으로선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혹시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나 싶어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때마침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둘러보던 김 주무관과 눈이 마주쳤다.

“아침부터 잔뜩 긴장해 있더니 좀 괜찮아졌어?”

“네. 제법요.”

“난 이제야 막 떨리기 시작했는데, 부럽네.”

“우리 막내가 은근히 강심장이잖아요. 말랑말랑하게 생겨서는 물러서는 것도 모르고.”

“하긴, 외유내강이긴 하지.”

외유내강이라니 너무 후한 평가다. 민망했지만 싫은 건 아니었다. 씩 웃으며 팀원들을 보자 그들의 얼굴에도 슬며시 미소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슬슬 올 때 되지 않았습니까?”

한결 유해진 분위기 속에서 한 주무관이 벽시계를 가리켰다. 좀 전에 확인했을 때 이미 10시였기에 이미 오기로 한 시간은 지나 있었다.

“첫날이라 시청에서 뭔갈 하고 있나 보지.”

“첫날부터 이렇게 늦으면 곤란한데 말이죠.”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 모두 헌터부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길을 잃어 늦어진다는 건 아니었다. 도대체 이리 늦어지는 이유가 뭘까 궁금증이 커지던 중이었다.

“늦는다면 뻔하지. 시청에서 거창하게 뭔가 하는 모양이야.”

“그런 거라면 팀장님도 참석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됐다, 됐어. 월요일 아침부터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시청에서 얼마나 시달렸기에 저런 반응인 걸까.

이렇게까지 질겁하는 팀장은 처음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차올라 짠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돌연 팀장 자리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제 슬슬 오려나 보네.”

전화기를 빤히 바라보던 팀장이 한쪽 입가를 비뚜름하게 올리며 수화기를 쥐었다. 통화 전부터 저렇게 삐딱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인 듯했다. 나는 숨죽여 상황을 살폈다.

“예, 헌터붑니다. 그래서 언제 온다는 거요?”

“…….”

간단한 인사말을 한 뒤 곧바로 본론을 입에 담는다. 현재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죽거리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긴장되었다.

“…….”

바뀌기 전의 자리였다면 할 일이 있다는 듯 등져 앉아 귀만 쫑긋거리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필이면 팀장이 바로 보이는 자리라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팀장을 힐끔거리며 이어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열 시에 오기로 하지 않았나? 약속된 시간이 지나서야 전화해서는 점심시간이 돼서야 도착한다고요? 첫날부터 이리 지각하면 서로 좋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뭐요?”

잔뜩 비꼬는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가던 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놀라 그를 보니 얼굴 가득 경악이 서려 있었다.

“누가 같이 온다고? 부시장님이야 그렇다 쳐도 이영진 의원은 왜 또 온다는 겁니까!”

이영진, 의원?

잊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 듣던 대로 행동할 순 없었다. 얼굴을 알릴 자리를 기가 막히게 찾는다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팀원들의 표정이 보기 좋게 썩어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모르겠고, 사람 더 보내진 마쇼! 여기 지금 이영진 의원이랑 부시장님만 와도 꽉 들어차니까! 난 분명 말 전했습니다? 아, 그리고 방금 말한 시각까지 팀원들 오지 않으면 내가 이 부서에 있는 한 무척 예뻐해 줄 거라고 꼭 말 전하고요! 이만 끊소!”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팀장이 두통이 이는지 이마를 감싸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아.”

“한동안 잠잠하더라니. 기가 막히게 냄새 맡았네요.”

“도대체 누가 이영진에게 소식을 물어다 주는 걸까요?”

“그놈에, 서강민에, 이영진이라니. 물론, 이영진은 바로 간다곤 하지만, 월요일부터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네요.”

“점심시간쯤 도착한다면 아예 점심을 일찍 먹는다거나 혹은 이후에 먹거나 해야겠군요.”

부팀장의 말마따나 애매한 시간대였다. 그의 의견에 고개를 주억이는데, 김 주무관이 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차라리 미리 좀 뭔갈 챙겨 먹는 건 어떨까요? 얼굴 마주 보며 밥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긴 해도 얼마간은 계속 얼굴을 봐야 하잖습니까. 첫날이니만큼 같이 먹는 게 나을 테니 허기만 없애면 될 거 같은데요.”

“그래. 우선은 간단히 요기해 두는 것으로 하자. 사무실에 먹을 거 있어? 없으면 바로 나가서 사 오자고. 한 시간 정도 후에 온다니 삼십 분 내로 먹을 수 있는 걸로 먹으면 되겠네.”

“그런 거라면 빵이 최고죠. 바로 가서 사 오겠습니다.”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주무관이 자리서 일어났다. 그에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도 같이 다녀올게요.”

“여기 카드.”

팀장이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것을 받아 창가 쪽으로 빠져나오니 박 주무관이 어서 가자며 신호를 보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와 함께 사무실 근처에 있는 빵집으로 향했다.

빵을 사 와 팀원들과 함께 간단히 요기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돌연 팀장과 한 주무관이 벌떡 일어났다.

“왔다.”

“헉.”

“전부 나가 볼까요?”

“됐어. 나랑 부팀장만 나갔다 오는 거로 하지. 부팀장, 준비해.”

“예.”

부팀장을 호출한 팀장이 곧바로 그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창가로 가 활짝 열어 둔 창 너머의 상황을 살폈다.

“진짜 왔네.”

“귀가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한 주무관님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귀 좋은 거 하나만큼은 팀장님과 견줄 정도잖아. 그래서 팀장님이 믿고 한 주무관님 먼저 현장으로 보내는 거라고.”

그런 이유로 한 주무관이 먼저 현장으로 나가는 것일 줄은 미처 몰랐다. 어느새 곁으로 온 김 주무관과 박 주무관, 그리고 한 주무관의 대화를 들으며 아래 상황을 살펴보았다.

“…….”

차 다섯 대가 건물 정문 앞에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맨 앞의 차에서는 세 명이, 바로 뒤차에서는 두 명이 모습을 보였다. 나머지 차 두 대에서는 운전기사 혹은 조수석의 사람이 내려 뒷문을 여는데, 누가 봐도 뒤쪽 차량에 탄 이들은 높은 직위의 사람인 듯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차에 어떤 사람이 탔는지 알겠네요.”

“그러게요.”

“때마침 팀장님이랑 부팀장님도 잘 도착했네요.”

박 주무관이 사무실 바로 아래를 가리킨다. 그에 시선을 내리니 건물을 갓 빠져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제 긴장이 풀린 줄 알았는데, 막상 충원되는 사람들이 도착한 걸 깨닫고 나니 몸이 절로 얼었다.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다 못해 알 수 없는 잔떨림이 느껴지는 바람에 손을 그러모으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토닥거렸다.

“나만 긴장되는 줄 알았는데 막내도 슬슬 긴장되나 보네.”

“네.”

“이것도 잠시일 거야. 너라면 이영진 의원 얼굴을 본 순간 바로 긴장 풀릴 거 같으니까.”

“그걸 보면 우리도 긴장이 확 풀리겠지.”

“진짜 이 녀석처럼 무서운 거 없는 애도 없죠.”

“그렇지!”

“…저도 무서운 거 많아요.”

띄워 주는 건 좋았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눈을 큼지막하게 뜬 박 주무관이 웃으며 머리를 헤집었다.

“하여간 이래서 귀엽다니까? 다른 부서로 뺏기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다른 부서에 갔어도 충분히 귀여움받았을 거야. 물론, 우리만큼 귀여워하진 않았겠지만.”

한 주무관이 덧붙인 말은 나도 체감하는 부분이었다. 햇병아리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유도하고, 또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애정이 느껴졌다. 물론, 그것 말고도 많은 부분에서 느끼는 바이기도 했다.

“한 번 헌터부는 영원한 헌터부야. 잊지 마?”

“당연하죠!”

그야 당연했다. 이곳에 온 건 내 평생의 운을 다 쓴 것과도 다름없었으니까.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답하는 날 보며 멈칫하던 팀원들이 웃는다. 따라 웃으며 다시 창밖의 상황을 살피는데,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듯싶던 이들 말고도 다른 무리가 근방에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긴 또 언제 저렇게 몰렸대요?”

“와, 기자도 불렀어?”

“왜 늦었는지 알 듯하네.”

“저걸 보니 팀장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좀 알 것 같네요.”

나도 확실히 알겠다. 플래시가 계속해서 터지는 자리에 있다는 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청와대 발표를 처음 이행하는 곳이 서울시라 제법 관심이 쏠리는 모양이야. 하긴, 처음이 아니었다면 이영진 의원이 수저 올리러 오진 않았겠지.”

“좀 다른 말이지만 이영진 이영진 하니까 자꾸 이영혁 부장 생각나네요.”

“그치? 나도 생각나더라. 하필 두 사람 이름이 비슷하다니.”

다른 것도 아니고 헌터부에 큰 영향을 끼친 이영혁 부장과 딱히 없어도 그만인 이영진 의원과 이름이 비슷하다니. 이보다 더 극과 극일 순 없었다.

“밑에서 사진 좀 찍고 올라올 모양이네요.”

김 주무관의 말에 아래를 보자 아직도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김 주무관이 말했다.

“어째서 팀장님이 여기 있으라고 했는지 알겠네요. 플래시 세례를 받는 것도 받는 거지만, 막내 일도 아직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았으니까요.”

“하긴. 내려갔다가 서강민이 입 허투루 놀리기라도 하면 불편해지지. 안 그래도 이영진만큼 남 앞에서 뽐내고 싶어 하는 놈인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네.”

만약 밑으로 갔다면 방금 들은 말처럼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속으로 팀장을 향한 고마움을 표현하며 계속해서 밑의 상황을 살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