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54)화 (154/246)

151화

21. 재회

“여긴 사적인 것까지 확인받아야 하나 보네요, 형.”

눈이 마주친 김세현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뱉었다. 놀라 그를 바라보는데, 이미 그는 생각 정리를 마친 듯 보였다.

“여기나 협회나 별반 다를 게 있나 싶은데.”

“아니에요.”

그래, 협회와 이곳은 천양지차였다. 협회는 김세현의 약점을 찾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것일 뿐이지만, 팀원들은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황급히 답하며 부정했지만, 김세현의 표정이 더 나빠지는 게 아무래도 내 대답을 다르게 이해한 듯했다.

“형은 의심을 안 해서 탈이에요. 좋아 보일수록 뭐든 의심부터 해야죠.”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말 그만 돌리고. 어디서 우리 막내한테 선물했는지나 말해.”

잠자코 듣던 팀장까지 대화에 참여했다. 생각보다 커진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완 달리 정작 김세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연하늘.”

김세현이 답하지 않자, 이번엔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다. 팀장을 보자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눈을 느리게 끔벅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난감했지만 뭐라도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사무실 안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는 사실에 떠듬떠듬 말을 뱉었다.

“그게….”

상황이 그래서인지 쉬이 뒷말을 잇기 힘들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모두가 뒷목을 잡을 듯싶고,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로 상황을 무마하기엔 여태 말을 얼버무린 상황이었다. 짧은 시간일지, 아니면 긴 시간일지 감조차 오지 않는 시간이 이토록 마음을 좀먹을 줄은 몰랐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다시 말을 이어가려던 참이었다.

“형 집에 찾아가서 선물 주고 왔는데.”

“아….”

“그쵸, 형?”

말을 가로챈 김세현이 간략히 상황을 정리하곤 내게 동의를 구했다. 여기서 아니라고 부정하게 된다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양심을 모르는 체하며 재차 고갤 끄덕였다.

“네.”

“언제?”

“…주말에요.”

“지난주?”

“네.”

“와, 지금 집까지 찾아가서 선물 공세 한다고?”

“이미 집 위치는 알고 있었으니 아예 선물을 그쪽으로 가지고 가서 줬나 본데요.”

지난주라 말함과 동시에 팀원들이 말을 쏟아냈다. 기막혀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한 번 더 심장이 철렁거릴 말이 들려왔다.

“그러다 은근슬쩍 집으로 들어가 보려 수작도 부렸을 테고.”

마치 상황을 지켜본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막내야 허술해 보여도 그런 쪽으론 똑 부러진 녀석이니 집에 들이지 않았겠지.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잉여 너도 적당히 해. 괜히 막내 주목받게 하지 말고.”

믿음으로 가득 찬 팀장의 말을 들으니 그 어느 때보다 양심에 찔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드러낼 순 없었다.

“걱정이 과하네. 돌아가는 상황은 내가 더 잘 아는데.”

“어련하시겠어. 그럼 자제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겠네?”

“그건 덩치가 알 바 아니고.”

“…….”

날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니 이보다 더 다행일 순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이 날카로워 바로 중재해야 할 듯했다.

“아는 거 많으신 양반이 혼자서 정보 독식하지 말고 좀 자세히 설명해 보지?”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협회에 아는 사람이 제법 될 텐데? 뭣하면 턱수염한테 물어보든가.”

“그 사람은 일하느라 바빠.”

“나도 할 게 많은 사람이야.”

“하.”

김세현의 우격다짐 같은 발언에 결국 팀장이 말을 잃었다.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김세현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내 얼굴이 괜히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꾸 딴소리나 하면서 할 말 안 할 거야?”

말을 섞을수록 손해라 여겼는지 팀장이 다시 대화를 제자리로 돌렸다.

“기다려 보면 안다니까.”

말을 섞을수록 손해라 판단을 내렸는지 팀장이 다시 협회와 관련된 걸 입에 담았다. 하지만 김세현의 답은 내가 물어봤을 때와 같았다. 팀장은 정보를 캐내려 하고, 김세현은 내게 설명했던 것처럼 뭉뚱그려 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실례합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에 반사적으로 고갤 돌려 인사하려던 참이었다.

“어, 헌터님.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헌터?

반색하며 김 주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다가 다시 헌터라 불린 이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헌터들이 정식으로 출근할 예정이란 소식 전하러 왔습니다. 시청에선 내일 연락이 올 겁니다. 저는 미리 소식 전달한다는 핑계 삼아 들른 거라서요. 제 자리도 둘러보고…. 하려고 말입니다.”

“아.”

그의 시선이 아직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책상으로 향했다. 나는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막 책상을 가지고 온 참이라서요. 바로 정리해 두겠습니다.”

“…어.”

갑작스럽게 끼어든 날 빤히 보던 이의 눈이 순간 커졌다. 마치 날 알아보는 듯한 모양새에 끔벅이며 바라볼 때였다. 순간 어떤 상황이 뇌리를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칭찬상 받았다던 헌터부 천삽니까?”

“풉!”

“크흑!”

“아….”

칭찬상을 받은 지 꽤 되었기에 대뜸 저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남자의 물음과 동시에 사무실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역시나 그 말이었다. 잔뜩 의기소침해진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남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들 웃습니까? 시청에 이 사람 소문 파다하게 났던 거 모르는 것처럼.”

“첫인사부터 그 말을 할 줄은 몰랐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 너무 오래간만에 듣는 말이라서요.”

“…그만 하세요.”

“우리가 그 천사 이야기에 정말 많은 사연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무렴요! 쉬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있었죠.”

상을 받은 것도 맞고, 그때 그 일로 인해 천사라고 칭하는 이들이 몇 된다는 것 또한 그간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묻히던 일을 다시 부각시킬 필욘 없었다. 오래간만에 들은 말 때문일까, 잔뜩 신이 난 팀원들이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결국 방향을 틀어 반쯤 사정하듯 말을 건넸다.

“처음 뵙는데 죄송하지만, 그…. 그 천사 이야기 안 하시면 안 될까요?”

“민망해서 그래요?”

“…네.”

민망함도 민망함이었지만, 그 소문을 제조한 인물이 사무실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등 뒤로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을 때였다. 날 보던 헌터의 시선이 문득 내 뒤로 향하더니 이윽고 한곳에 머물렀다.

“…….”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듯했다. 헌터의 얼굴에 떠오르기 시작한 경악이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이를 봤기 때문일까, 시청 소속 헌터는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입만 벙긋거리며 멍하니 김세현을 바라보는 이를 보는데 뒤에서 김세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마냥 서 있지 말고 얼른 치우고 와요.”

“…그럴게요.”

“혀, 엉?”

생각지도 못한 호칭이었는지 남자의 시선이 내게 옮겨졌다. 아연실색한 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꽉 들어찼다. 이보다 커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커진 눈동자를 보며 어색하게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

상대의 눈을 먼저 피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이상 부담스러운 시선을 마주하기엔 내가 곤란했다. 시선을 피해 부산스럽게 책상과 의자를 닦는데 꺼내 둔 의자를 집어넣는 손이 보였다.

“막내야, 여기 다 닦은 거지?”

“네, 박 주무관님.”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기왕이면 반듯하게 닦은 책상으로 모시고 싶은데, 보시다시피 정리가 다 안 되어 말입니다.”

“…아, 예. 한 잔 주시죠.”

다정한 말투에 조금 정신이 돌아왔는지 남자가 답하며 박 주무관이 안내하는 원탁 쪽으로 이동했다. 슬쩍 곁눈질로 그쪽을 보니 원탁에 자리 잡은 남자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커피를 준비하는 박 주무관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혹여 날 다시 바라보면 어쩌나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머지 책상과 의자를 다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팀장님.”

별안간 팀장을 부르는 소리에 멈칫했지만, 그도 잠시였다. 날 부른 게 아니니 이 이상 반응할 필욘 없었다. 빠르게 청소를 마무리한 뒤 사무실 안의 화장실로 가 청소도구 뒷정리를 시작했다.

“말해요.”

반쯤 열린 문 너머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 너머로 귀를 쫑긋 세웠다.

“혹시 자리 선점 같은 것도 가능합니까?”

“뭐, 원한다면. 다만 두 자린 이미 주인이 있으니 그 자리 빼고 정해.”

“정해진 자리가 어딥니까?”

“저랑, 저기 박 주무관 옆자리입니다.”

“…이런. 벌써 명당자리는 다 선약이 되었군요.”

확실히 서강민과 협회 그 남자의 자리가 본의 아니게 명당이긴 했다. 한쪽은 창가 쪽으로, 또 한쪽은 벽 쪽으로 자리 잡은 책상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이는데, 밖에서 잠시 끊겼던 대화가 이어졌다.

“저는 그럼 이쪽에 자리 잡겠습니다.”

“그래요.”

“음…. 전할 말도 하고, 할 것도 했으니 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예.”

걸레를 빠는 와중에 돌아간단 말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화장실 너머로 얼굴을 내밀곤 꾸벅 인사를 건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눈이 마주친 그가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따라 꾸벅이곤 사무실을 나선다. 출입문이 완전히 닫히자 마저 하던 걸 마무리하고 나오는데,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냐. 얼른 자리로 가.”

“네.”

물어봄과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어서 자리로 돌아가란 신호를 보낸다. 그에 자리로 돌아가 앉으니 팀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할 일을 하기 바빴다. 이럴 때면 항상 뭔가 내가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게 없는 듯했다. 방금 다녀간 헌터에 대한 말조차 없는 상황이 아쉬웠지만, 갓 일을 다시 시작한 이들에게 말을 걸어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생각은 없었다.

“…….”

월요일이라고 했지.

그래, 월요일이 되면 오늘 왔던 이에 대한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퇴근길에 부팀장에게 물어봐도 되었고. 바로 일을 시작하려 했지만, 옆자리에서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이가 느껴졌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김세현을 바라보았다.

“왜요?”

마치 고갤 돌리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바로 반응한다. 누가 보면 내가 주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잠시 한 생각이나 이보다 웃긴 생각은 또 없을 듯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냥요.”

“생각보다 빨리 오네요. 월요일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월요일에요?”

“네.”

조금 있으면 알 수 있을 거라던 예의 그 말에 대한 답인 듯했다. 얼굴 가득 피어오른 미소를 보며 다시 호기심이 차올랐지만, 월요일이 돼야 알 수 있을 거라 단언한 걸 보면 김세현이 쉬이 입을 열지 않을 것이었다.

“…….”

혹시나 싶어 빤히 바라봤지만 김세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에 나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지금으로선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서 월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며 마저 크로스 체크를 이어갔다.

…월요일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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