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53)화 (153/246)

150화

21. 재회

“그렇긴 하지만 이왕이면 같이하는 게 좋지.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던데, 같이 하니 정말 좋던데?”

“하, 하.”

손을 보태고자 했는데, 괜히 나섰다가 일만 만든 꼴이었다. 그에 의기소침해질 뻔했지만, 박 주무관이 한 말을 들으니 기운이 났다. 나는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박 주무관과 함께 마저 책상을 날랐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다. 사무실 양쪽으로 세 개씩 총 여섯 개의 책상이 ┌ 과 ┐ 모양으로 놓인 모습을 볼 때였다.

“그거만 놓으면 돼. 여기 놓을지, 아니면 저쪽에 놓을지 정하고.”

아무래도 인원이 홀수가 되는 터라 한쪽 빈 곳을 채워 넣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 주무관이 양쪽에 빈칸을 가리키며 말하자 자연스럽게 김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김 주무관이 울상을 지으며 한 주무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전 그 사람만으로도 벅찹니다. 한 주무관님 쪽에 두면 안 될까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곧 죽을상이야. 그거 이쪽으로 둬.”

“막내야, 옮기자.”

한 주무관의 허락이 떨어지자 박 주무관이 턱짓하며 창가 쪽을 가리켰다. 곧바로 책상을 옮기고는 내가 둔 위치 그대로 놓여 있던 의자들을 제 자리에 놓았다.

“…이거 사람 들어오면 정말 숨도 못 쉬게 꽉 들어찰 거 같은데요?”

“이 이상 공간을 만드는 건 무리일 거 같고.”

우리 책상만 옮겨 공간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공간을 야무지게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여겼건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래도 테트리스를 잘했는지 감찰부가 왔을 때보다 조금 더 차 보인단 것이었다. 물론, 사람이 자리를 채운다면 그땐 또 느낌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정리된 거 같으니 각자 자리 정리해. 방금 가져온 책상이랑 의자는 나중에 막내가 청소하고.”

“네.”

책상 세 갠 얼마 전까지 썼기에 두 개 분량만 열심히 닦아내면 되었다. 내 자리부터 정리하고 이어서 책상 청소하면 될 듯했다. 나는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책상을 정리하고, 새로 올 팀원들의 책상까지 마저 정리했을 무렵이었다. 별안간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쪽을 바라봤다가 익숙한 이의 모습에 반색했다.

“세현 씨!”

“…이거 무슨 상황이에요?”

출입문을 붙잡은 김세현이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사무실 안을 둘러본다. 생경한 것을 본다는 듯 사무실 안을 살피다가 나와 눈을 마주친 김세현이 이윽고 내 양옆 자리로 시선을 주었다.

“무슨 상황이긴. 새로 충원될 사람들 책상 넣어 둔 건데.”

“…….”

뜻 모를 눈으로 한참을 그렇게 팀장을 보던 이가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가와 내 옆자리, 그러니까 팀장 쪽의 빈 곳을 차지하고 앉았다.

“형, 메시지 보낸 거 방금 봤어요. 일이 좀 꼬인 바람에 이제야 봤네요.”

김세현이 다리를 꼬더니 날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일은 잘 마무리되셨고요?”

“무사히요.”

“그럼 다행이고요.”

일부러 메시지를 무시한 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일도 잘 마쳤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팀장이 말을 걸어왔다.

“막내야.”

“네, 팀장님.”

“좀 알아봤는지 물어봐.”

“아….”

따로 할 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저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협회 상황을 물어보라는 팀장의 말에 김세현에게 시선을 주니 그는 뚫어져라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전에는 거리라도 좀 있어서 중간에서 물어보는 척이라도 했지만, 정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말을 전하려니 이보다 민망할 순 없었다. 여러 차례 헛기침한 뒤 방금 전 팀장이 했던 말을 물어보았다.

“세현 씨, 협회에서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나요?”

“가자마자 회의실로 등 떠밀려 들어간 터라 몰랐는데, 끝나고 보니 분위기가 뒤숭숭하긴 했어요.”

“그래요?”

“그놈에 관해 물어보니 다들 입 다물더라고요. 정말 헌터부로 넘어올 심산인지 모습도 보이지 않고요. 뭐, 쉬쉬해봤자 높으신 양반들만 보면 답이 나왔지만요.”

“답이요?”

도대체 뭘 봤기에 답이 나왔다는 표현까지 쓰는 걸까. 곧바로 물어보자 김세현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끼었다.

“흠, 그걸 공짜로 알려줄 순 없는데….”

“커피 타다 드릴까요?”

“에이, 그걸론 안 되죠.”

다른 때 같았다면 커피면 되었다고 했을 텐데, 정말 큰 정보인 듯했다. 눈을 굴리며 대접할 만한 게 있나 고심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뭐, 그거 말고도 정리할 것도 있고 개인적인 일도 있어서 지금이야 오긴 했지만요.”

대번에 커피를 거절한 터라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하는 것도 좀 그랬다. 그래, 생각해볼 여지도 없다는 듯 걷어찬 걸 보면 정말 괜찮은 정보인 모양이었다. 뾰족한 수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것저것 생각해볼 때였다. 뇌리에 좋은 생각이 떠오른 순간 김세현이 날 불렀다.

“형.”

“아, 네. 세현 씨.”

“뭐 정리했는지 안 물어봐요?”

“카메라 정리한 거 아니었어요?”

가기 전 일을 생각해보면 가서 정리할 거라곤 카메라밖에 없었다. 물론, 먼지를 운운하던 말도 있었으나 제아무리 김세현일지라도 그런 행동을 하진 않았을 터.

“그것도 했지만….”

“했지만?”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말끝을 흐린 듯한데, 좀처럼 뒷말을 잇지 않는다. 괜히 궁금해져 김세현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궁금해요?”

“무척요.”

“그냥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

뭔가 말을 할 듯하면서 하지 않는 게 무척 답답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대답해 달라는 눈을 한 채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저 의뭉스러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하, 진짜. 뭐 하나 제대로 답변하는 게 없네.”

답답한 건 팀장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거칠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을 뱉는데, 지금으로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래, 방금 떠오른 제안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지만 역시 그 말을 하기엔 장소가 좋지 못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김세현에게 집에 놀러 오겠냐는 말을 꺼내게 된다면 문제가 커질 것이었다. 지금은 그저 눈치를 보는 게 상책이었다.

“형, 이번 주말엔 뭐 해요?”

“그냥 쉬어요.”

“잘 됐다. 그럼 내가 영화 보내 줄 테니까 그거 봐요. 꽤 재미난 거 같더라고요.”

“좋아요.”

그의 말을 거절할 상황은 아니었다. 곧바로 고개를 주억이자 김세현이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준 거 있죠? 그걸로 봐요.”

“그럴게요.”

“뭘 받았는데?”

“아, 빔프로젝터요. …준다고는 했지만, 나중에 돌려줄 예정이에요.”

갑자기 끼어든 팀장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를 말할 뻔했다. 김세현이 집에 왔다가 두고 갔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뻔했단 사실에 정신을 바짝 차리며 대충 말을 얼버무리자, 팀장이 묘한 시선을 보내왔다.

“뭐, 받은 게 아니라니 다행이긴 한데. 항상 조심해. 무슨 무슨 법 잊지 말고.”

“네, 팀장님.”

혹 상황을 눈치챈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안도하며 다시 김세현을 바라보자 그는 그저 날 보며 웃을 따름이었다.

“막내야.”

“네, 한 주무관님.”

“지도 작업한 거 한 번 더 검토할래?”

이 상황에 저 부탁은 무척 반가운 것이었다. 나는 대번에 답했다.

“바로 할게요.”

“하는 김에 내가 체크한 부분 봐 줘. 크로스 체크 하자. 파일 바로 보낸다?”

“네.”

파일을 보내겠단 말을 꺼내고 잠시 뒤, 한 주무관이 날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전송받은 파일을 열곤 빠르게 지도를 한 차례 훑어보았다.

“…….”

크로스 체크를 하는 만큼 더 꼼꼼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한 주무관의 기록물과 비교해 살필 것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김세현이 있다는 것조차 깜박 잊을 정도로 말이다.

“형.”

“…….”

한 주무관이 정리한 건 이보다 깔끔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내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저 보이는 대로 정리했을 뿐인 나완 달리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위치를 정돈하고, 가독성 있게 편집한 걸 보니 새삼스럽게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정리할 땐 꼭 이처럼 정리하자 다짐하던 참이었다.

“형!”

“아.”

순간 옆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김세현이 팔짱을 낀 채 몹시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고 있었다. 당황해 눈을 끔벅이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나 두고 너무 일에만 집중하는 거 아니에요? 오래간만에 봤는데?”

“아, 미안해요. 보다 보니 너무 집중했네요.”

처음엔 그저 잠시 내용을 훑어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정돈된 자료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말았다. 민망한 웃음을 흘리자, 김세현이 기가 찬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렇게 웃는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알아요?”

“…커피라도 타 드릴까요?”

“이것도 커피로 입막음 못해요.”

“아….”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하자 그가 샐쭉거렸다.

“난 형 생각해서 협회 다녀온 건데.”

“그게….”

“그런데 형은 나 말고 일에 집중하고. 출근했으니 일하는 건 맞지만, 내가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바로 일하고. 너무 빠르잖아요.”

볼멘소리를 계속해서 쏟아 내는 걸 보면 많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쉬지 않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평소엔 본 적 없던 격한 반응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와중이었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아까부터 좀 이상하다 여겼는데,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봐도 되겠냐 묻는 부팀장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 보였다. 나는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대화를 엿들어서 미안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이상한 거라뇨?”

이상하다고 하니 괜히 긴장되었다. 그럴 만도 했다. 김세현과 단둘이 만난 것도 여러 차례일뿐더러 서로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한 터라 한두 개 찔리는 게 나이었으니까. 혹여 말실수한 게 있나 싶어 초조해진 마음으로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빔프로젝터는 언제 받은 겁니까.”

“아.”

“여기서 전달하는 건 보지 못했는데.”

“…….”

그걸 물어볼 줄은 미처 몰랐다. 날카로운 눈으로 나와 김세현을 오가는 부팀장을 보다가 슬쩍 김세현에게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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