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52)화 (152/246)

149화

21. 재회

회의가 잘 풀리지 않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얼른 다녀오겠다던 김세현은 다음 날이 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주고받던 메시지조차 뚝 끊긴 터라 이만저만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

어제야 일이 많아 연락할 짬이 없는 모양이라고 마음을 다독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후로 접어들었음에도 오지도 않고 답장도 없는 이가 이보다 신경 쓰일 순 없었다. 자꾸만 협회 방향으로 향하는 시선을 붙잡아 보려 노력하던 참이었다.

“다들 어느 정도 일 마무리 했지?”

“예, 팀장님.”

“좋아. 그렇다면 슬슬 사무실 구조 어떻게 바꿀지 토의해 보자.”

정신이 산만한 와중 들려온 팀장의 제안은 무척 반가웠다. 빠르게 답하며 의자를 돌려 앉자, 팀장이 탕비실 쪽을 가리켰다.

“막내야, 저기 화이트보드 좀 가지고 와.”

“네, 팀장님.”

구석에 자리한 화이트보드를 끌고 팀장 자리 쪽으로 가자 팀장이 반대편 끝을 잡고 잡아당겼다. 함께 위치를 조정 후 자리로 돌아가자 팀장이 화이트보드 펜 뚜껑을 오픈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내가 세 가지 구상을 해봤어. 이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거 골라보고, 또 의견 있으면 그 의견 받아서 한번 수정해 보자.”

“예!”

말을 마친 팀장이 화이트보드에 구상안을 그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세 개의 그림을 그려 넣은 팀장이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첫 번째 건 우리랑 새로 합류하는 이들을 교차해 놓은 거고, 두 번째 건 현장 나가는 이들과 사무실 담당하는 이들 자리를 구분해 봤어. 세 번째 그림은…. 보면 알겠지?”

“네.”

저 그림을 보고 이해하지 못할 팀원은 없을 거다. 서강민과 그 남자의 자리를 멀리 떨어뜨린 그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니 팀장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안을 가리켰다.

“사실, 나는 두 번째 게 가장 좋아 보이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첫 번째 구상안이 공간 활용에는 좋아 보입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가 나아 보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차라리 두 번째랑 세 번째를 섞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거리가 가까워지잖아.”

“아…. 그걸 생각 못했네요.”

거리가 가까워진다고 말하며 팀원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안 모두 서강민과 그 남자 사이는 정반대인지라 가까워지려야 가까울 수 없었다. 나는 곧바로 질문했다.

“뭐랑 가까워지면 안 되는 건데요?”

“너.”

“…저요?”

“서강민도 그렇고 그놈도 그렇고, 분명 우리 막내한테 관심을 보일 거란 말이죠.”

“아.”

그저 공간 활용에만 치중해 생각한 터라 미처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

확실히 그 둘이라면 나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말을 걸어올 듯했다. 그저 상황을 떠올렸을 뿐인데 벌써 골치가 아픈 것이 되도록 그 둘과 내 자리가 먼 곳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사무실 크기가 작은 터라 멀어봤자 거기서 거기일 테지만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잉여가 올 때처럼 다들 자리 지키고 있을 거니까.”

“던전 생성되면 다 현장으로 끌고 나갈 생각이니까 그 부분도 걱정하지 말고.”

“여긴 항상 제가 지키고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왔다. 다분히 날 신경 쓰고 있단 팀원들을 봐서일까, 마음 한구석에 든든함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팀원들이 피식 웃더니 다시 자리 구성에 관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일단 막내랑 둘을 떼어 놓는 게 우선인데 말이죠.”

“되도록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조정하되, 티가 많이 나지 않는 게 최고일 거 같습니다.”

“역시 사무직 자리를 따로 구성하는 편이 나아 보이네요.”

“아예 팀장님이 중앙에 자리를 잡는 건 어떻습니까? 부팀장님과 막내가 팀장님 한쪽으로 자리 잡고 있으면 섣불리 말도 걸지 못할 거 같은데.”

“오, 박 주무관. 좋은 생각인데?”

“그렇다면 이건 어때?”

박 주무관의 의견을 들은 팀장이 첫 번째 그림을 지우곤 그곳에 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림이 완성되자, 그 어느 때보다도 긍정 어린 시선으로 팀장을 보았다.

“팀장님, 저는 이거 찬성입니다!”

“저도 좋아 보입니다.”

“사무직 쪽에 팀장님이 자리하면서 막내가 부팀장님과 팀장님 사이에 있는 구조 괜찮은데요?”

“저도 네 번째 그림에 한 표 행사하렵니다.”

“다들 첫 번째로 동의하는 거지?”

여기저기서 첫 번째 방안이 낫단 의견을 내자 팀장이 한 번 더 확인을 위해 되묻는다. 모두가 긍정하자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대로 자리 옮기는 것으로 하자. 언제 시청에서 연락이 올지 모르니 바로 자리 정리하자고!”

“네!”

“우선 우리 책상 위치부터 조정하고 지하 가자. 음, 지하에 갈 땐 한 사람은 사무실에 있어야 할 텐데….”

남아 있는 게 좋을 거 같단 말을 하며 팀장이 나를 보았다. 주변을 보니 팀원들 모두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누가 먼저 날 지목하기라도 한다면 빼도 박도 못한 채 그대로 사무실을 지켜야 할 거란 생각에 황급히 의견을 냈다.

“부팀장님이 남아 계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 부팀장이 남는 것도 좋지.”

“그럼 제가 남도록 하겠습니다.”

혹여 부팀장이 괜찮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 부팀장이 대기하는 것으로 하고. 빨리 움직이자. 오늘 내로 정리해 보고, 혹시라도 불편한 부분 있으면 다시 조정해 봐야지.”

“예!”

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사불란하게 일어난 팀원들이 빠르게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책상을 정리 후 무거운 물건들을 사무실 한쪽에 두곤 책상을 옮기는 데 합류했다.

얼마 전 감찰부가 왔던 터라 자리를 옮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순식간에 정돈된 사무실 내부를 훑어보곤 새로이 위치한 내 자리를 살폈다.

“…….”

내 왼쪽으론 창문과 팀장이, 오른쪽엔 부팀장의 책상이 자리한 걸 보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순 없다. 그뿐이랴, 맞은 편 자리엔 박 주무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막내랑 가끔 수다 떠는 게 좋았는데…. 멀어져도 자주 대화하자?”

하지만 안전하게 느끼는 만큼 멀어진 건 있었다. 협회 소속이었던 남자가 앉을 자리 옆에 앉아있던 김 주무관이 흐릿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아쉬움이 짙게 느껴지는 표정을 보니 이보다 더 아쉬울 순 없었다.

“네, 김 주무관님.”

“난 또 막내 맞은편 자리네. 이번엔 대각이 아니라 마주 보는 거라 더 반가워.”

“잘 부탁드려요, 박 주무관님.”

“이거 저만 손해 아닙니까? 우리 막내랑 오순도순 지내는 게 얼마나 좋았는데요!”

“앞으로 그놈이랑 오순도순 지내야지.”

“그건 아니죠!”

“김 주무관이 그놈 담당해야지. 여기서 그놈 얼굴 가장 많이 본 사람인데.”

“…그건 그렇지만요.”

팀장이 던진 말에 김 주무관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아직 책상이 채워지지 않아 외따로 떨어져 있는 김 주무관의 책상을 보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말없이 그를 보다가 생각해보니 한 주무관 쪽도 마찬가지란 생각에 창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는 이쪽으로 자리 잡겠습니다.”

시무룩한 김 주무관과는 달리 자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 주무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팀장을 보고 있었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미 올라간 입꼬리가 하늘 모르게 올라갔다. 지금처럼 그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처음 보는 듯했다. 한참을 한 주무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릴 때였다. 자리 이동으로 말미암아 비어버린 사무실 중앙이 눈에 들어왔다.

“…….”

책상이 놓여 있을 때만 해도 잘 몰랐는데, 치우고 보니 사무실이 제법 커 보였다. 물론, 이제 곧 채워질 책상이 들어온다면 빈 곳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어지겠지만 말이다. 더하여 팀원들이 충원된다면 그야말로 복작복작해질 것이었다.

“좋아. 나랑 바로 대화 나눌 수도 있고 좋은데?”

“예.”

내 책상과 박 주무관 책상의 세로 면에 가로로 놓인 팀장의 책상을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현장에 가장 먼저 나가는 한 주무관과 팀장의 책상이 책상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놓여 있어 이전의 위치보다 의견을 나누기 더 편할 성싶었다.

“자, 이제 정리도 끝났으니 바닥 대충 쓸고 책상 놓자. 책상에 물건 놓는 건 마지막에 하는 걸로 하고. 부팀장, 청소 좀 부탁해.”

“알겠습니다.”

“막내는 의자 담당해.”

“네.”

팀장의 말에 팀원들이 곧바로 출입문 쪽으로 향한다. 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팀장님.”

“음?”

“얼른 의자 옮기고 바로 책상 옮기는 거 도울게요.”

그래, 각자 맡은 걸 옮기면 책상 하나가 남게 될 것이었다. 얼른 의자를 옮기고 나서 다시 돌아와 함께 옮긴다면 번거롭게 여러 번 움직이지 않아도 될 터였다.

“풉, 그래. 막내야. 나 기다린다?”

“나도 기다려 볼까?”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날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주억이며 입가를 끌어올렸다.

“맡겨만 주세요.”

이제 나도 어느 정도는 팀원들의 빈말을 구분할 줄 알았다. 능숙하게 받아넘기자 순간 웃음소리가 사라지나 싶더니 이윽고 더 큰 웃음이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채웠다.

“와, 우리 막내. 이제 제법이네?”

“저 막내가 한 말 듣고 너무 놀랐잖아요.”

띵-

다들 내 반응에 놀라던 중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했다. 빠르게 의자를 챙겨 사무실로 올라가 내려놓고는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막내야, 여기! 이거 같이 들자.”

날 기다리겠다고 한 말이 농담이 아니었는지 박 주무관이 복도로 꺼내진 책상 앞에서 손짓했다. 곧바로 그와 함께 책상을 들고 8층으로 가는데, 너무도 멀쩡한 박 주무관과는 달리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앓는 소리를 내며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쉬지 않고 계단을 올라 이윽고 8층에 도달했다.

“막내야”

“네, 박 주무관님.”

“우리 조금만 쉬었다가 옮길까?”

“좋아요.”

쉬고 싶었는데, 이보다 반가운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곧바로 복도 한쪽에 책상을 내려놓곤 뻐근해진 몸과 팔을 풀며 숨을 돌릴 때였다.

“먼저 지나간다.”

“나도.”

“먼저 갈게.”

“…….”

책상을 들고 뒤따라 올라온 세 사람이 깃털 같은 걸음걸이로 날 지나친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아 보이는 세 사람이었지만, 특히 책상 두 개를 겹쳐 한 손으로 들고 이동 중인 팀장의 모습은 쉬이 말을 잇기 힘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박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혹시 박 주무관님도 혼자 드실 수 있던 거 아니에요?”

김 주무관이 저리 가뿐히 든 걸 보면 박 주무관 역시 책상을 쉽게 들 수 있단 것이었다. 8층까지 올라오면서 숨 한 번 거칠어지지 않은 이를 유심히 살펴보자, 그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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