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21. 재회
“마음 같아선 결사반대를 계속 외치고 싶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영혁 부장만 아니었어도 드러누웠을 겁니다.”
“안 그래도 시청에서도 이영혁 부장 운운하면서 면 살려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헌터부 구성을 놓고 양보하라는 건 이영혁 부장의 면을 살리는 방법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워 팀장을 주물러보려고 했다니. 이보다 실망스러울 순 없었다.
“와, 면 살리려면 구성을 양보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껏 들어본 헛소리 중 단연코 최고가 아닐까 싶어질 지경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래, 내 말이 바로 저 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격하게 공감하자 한 주무관이 잠깐 이쪽을 보는가 싶더니 크게 한숨을 뱉었다.
“하아. 시청이야 애당초 손에 쥐고 주물러보려고 한다지만, 그걸 등에 업고 올 사람들이 더 걱정이네요.”
“맞습니다. 서강민에 그놈까지. 벌써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단 예감이 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 주무관이 저런 예감이 든다고 하니 이보다 긴장될 수가 없다. 순간 차오른 긴장감에 주먹을 쥐었다가 풀길 반복할 때였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돼. 언제 누가 고꾸라질지도 모르는데, 미리 고민할 필욘 없지.”
심각해진 사무실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다름 아닌 팀장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팀장을 보는데 그의 시선은 내 옆을 향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전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김세현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눈이 마주친 김세현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세현 씨.”
“네, 형.”
바로 답하긴 했지만, 그 모습이 썩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방금 나눈 대화 내용을 곱씹어 보자 그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조금은 알 듯했다. 김세현이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는 했으나 누군가를 고꾸라뜨린다고는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 부름에 답한 김세현이 날 뚫어져라 바라본다.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라는 듯한 눈빛에 입을 열었다.
“곤란하면 안 하셔도 돼요.”
“…….”
“꼭 세현 씨가 해야 할 이윤 없으니까요. 부담 주고 싶지도 않고.”
나서서 뭔갈 하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래, 그렇게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무척 고마웠다.
“지금 나 걱정하는 거예요?”
“당연하죠.”
김세현을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하자 그의 표정이 뜻 모르게 변하는가 싶더니 돌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곤란하기는요. 전혀 곤란한 거 없어요. 설령 있어도 없어요.”
있어도 없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다.
놀라 그를 바라보니 김세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그뿐이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못해 자꾸만 거센 콧바람을 일으키며 미소 짓는 모습이 지금 상황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저리 밝을 이유가 있나 싶어 이율 물어보려는데, 김세현이 더 빨랐다.
“제가 이런 거에 부담가질 사람으로 보여요?”
“그건, 아니지만….”
부담을 떠나 김세현은 아닌 건 확실하게 아니라고 할 사람이었다. 우물쭈물 답하자 김세현의 턱이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하, 형이 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나 협회에서 제법 입김 있는 사람이거든요?”
김세현의 실력과 더불어 대단한 자신감이 믿음직스러웠지만, 협회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그가 속한 집단이기에 어떻게든 좋게 생각해보려 해도 그간 본 것이 있고 또 들은 것이 있었다. 사실, 제아무리 김세현이라고 할지라도 협회는 자신들의 뜻과 다른 이의 말을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떨떠름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김세현의 말에 답했다.
“그, 쵸?”
“…….”
뭔가 반응을 할 법도 한데, 김세현은 그저 날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대로 꽁꽁 얼어버린 듯한 모습에 말을 잘못했나 되짚어 보는데 순간 코앞까지 거리를 좁혀온 김세현이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말아 올렸다.
“…아무래도 말 나온 김에 다녀와야겠네요. 그놈이 왜 이쪽으로 옮겨 오려고 하는지만 알아내면 되죠? 아니지, 아예 출근하지 못하게 만들까요? 실력 발휘까진 아니더라도 내 입김 한 번이면 먼지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할 수 있….”
“아뇨, 정말 괜찮아요.”
앞의 말도 말이었지만, 이어진 말에서 느껴진 무게는 상당했다. 그간 상상을 넘어서는 일을 만들었던 김세현이기에 어쩌면 그 이상의 상황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뱉은 바를 실천하려는 듯 김세현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
“그냥 여기 계세요. 가면 불편한 상황 마주해야 하잖아요.”
김세현이 이용하는 방 곳곳에 카메라를 달아 뒀다던 이들이었다. 어제 이곳에 왔던 이가 쪽을 당하고 갔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떼어 내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보니까 오늘도 회의 있다고 문자가 불이 나게 오더라고요. 겸사겸사 가서 좀 뒤엎고 와도 좋고요.”
말론 부족했는지 김세현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내민다.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바라보니 그의 말처럼 메시지 함엔 제법 많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이거 한 번 봐요.”
“네?”
메시지가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만 보여 줄 줄 알았는데, 메시지까지 공유하려 들 줄은 미처 몰랐다. 당혹감에 황급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김세현이 고개를 내려 날 바라보았다.
“형, 이것 좀 보라니까요?”
“흠, 흠. 실례할게요.”
몰래 보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 주인이 메시지를 보여 주는 거라 당당하게 보면 되는데 괜히 기분이 이상해 헛기침하며 슬쩍 시선을 내렸을 때였다.
“아….”
어째서 김세현이 봐 달라 했는지 알 성싶다. 조금 전 회의 관련해 들르면 된다는 말 또한 이해되었고.
[김세현 헌터님, 부디 오늘이라도 좋으니 얼굴 한 번만 비춰 주십시오!]
[헌터님, 오늘은 꼭 회의에 참석해 주십시오.]
[오늘은 꼭 참석해 주셔야 합니다! 협회의 존망과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예정입니다.]
[김세현 헌터님, 오늘 오후 2시에 54층 대회의실에서 협회 정기 회의가 한 차례 더 열릴 예정입니다. 꼭 참석해 주십시오.]
[헌터님….]
“봤죠?”
“네.”
저런 문자가 몇 개만 왔다면 어제처럼 무시하고 말았을 거다. 수없이 쌓인 메시지들마다 김세현이 회의에 참석하길 바란다는 내용인 것이 그가 회의에 참석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듯했다.
“때마침 2시도 가까워졌겠다, 가서 한 번 엎고 올게요.”
“엎는 건 좀….”
“얌전히 참여할까요?”
“아뇨. 그것도 좀 아닌 거 같아요.”
김세현이 오냐오냐해 주게 된다면 협회는 끝 모르게 기어오를 것이었다. 이미 머리 위로 올라가려는 이들에게 쉬운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면 김세현만 손해였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라 말하는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김세현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곤 말을 이었다.
“엎지도 말고, 그렇다고 얌전하게 참석도 말고요. 할 말 있으면 하셨으면 좋겠어요.”
내 말이 제대로 전해진 걸까, 김세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 다운 게 좋다는 거죠?”
“네.”
“알았어요. 그럼 S급 헌터의 면모를 과시 좀 하고 올게요.”
고개를 끄덕이자 김세현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출입문 너머로 사라졌다. 괜한 아쉬움에 출입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무척 가까운 거리에서 책상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막내야.”
“네, 김 주무관님.”
내 책상 한쪽을 노크하던 자세 그대로 김 주무관이 날 바라본다. 무척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모습에 잠자코 기다리니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네? 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럴 텐데,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괜스레 입가를 끌어올리는데, 김 주무관은 퍽 진지한 얼굴로 노크하던 손을 내밀었다. 어서 악수하란 제스처에 곧바로 손을 맞잡았다.
“막내야,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할게.”
“나도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늘 씨.”
“막내야, 나도 잊지 말고.”
김 주무관과 악수하자 동시에 여기저기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해 온다. 갑작스러운 부탁이 당혹스럽기만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대답하지 않을 순 없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당연하지! 우린 언제나 막내 편이라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곳도 아니고 회사에서 이렇게 진심으로 편을 들어주겠다는 동료가 있다는 건 큰 복이었다. 이미 날 생각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또 들으니 이전보다 더 큰 감동이 몰려왔다. 입을 오물거리고 손가락을 연신 꼼지락대며 간질거리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던 와중이었다.
“…김세현이 자리를 비워서 하는 말인데 말입니다.”
말랑해진 분위기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목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나는 곧바로 박 주무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세현이 했다던 말, 진짜일까요?”
목소리만큼이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짐짓 심각해 보이는 표정에 감동을 애써 갈무리하곤 그에게 집중했다.
“무슨 말?”
“그 있잖습니까. 여기저기 카메라 설치해 뒀다던 거요. 어제 한 주무관님과 막내 자리 비웠을 때 부팀장님께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협회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세현의 말을 전부 믿을 순 없지만 말이야.”
“…….”
믿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팀장이 불쌍한 척하지 말라고 했을 때 혀를 차던 모습이 떠올라 버렸으니까. 그저 침묵한 채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어째서 S급 헌터까지 감시하려는 걸까요? 바로 들킬 텐데 말이죠.”
“그건 그렇지.”
“그렇게까지 통제할 이유가 있나 싶어서요. 스카웃 제의가 많이 들어와서 그런 건가 싶은데, 그것만으론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하기엔 너무 이유가 빈약한데…. S급 헌터의 방에 그걸 설치했다가 들켰을 때 리스크가 더 크지 않나요?”
“뭔가 내부적으로 알아내고자 하는 게 있지 않을까 싶군요.”
“그쵸, 부팀장님? 제가 봤을 때 그런 모험을 한다는 건 분명 S급 헌터에게 알려지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S급 헌터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다가 들키면 쉽사리 재설치하지 못했을 텐데, 계속해서 설치하는 것만 봐도 아주 의심스럽죠.”
음모론을 좋아하는 박 주무관이기에 어떻게 들으면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또 어떻게 들으면 정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였다.
“그냥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거나 한 거겠지. 협박이나 다른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잠자코 대화를 듣던 팀장이 의견을 냈다. 무척 가벼운 말투였지만, 말속에 담긴 내용은 쉬이 넘어갈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협박용으로 이용할 수도 있단 건 정말 최악 그 자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을요?”
“뭔가 꼬투리를 잡으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 계속 시도하는 걸 봐선 아직도 김세현과 관련해서 뭔갈 얻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겠지.”
“이거, 좀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겠는데요?”
심각해질 수도 있겠단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모두가 날 바라본다. 근심으로 가득 찬 시선을 보며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냈다.
“좋은 것만 줘도 붙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사람인데, 약점을 잡으려 불편하게 만든다니 협회 선택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네요.”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확실했다. 속내를 드러내자 팀원들이 멈칫하더니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무척이나 빠른 교환이었지만 그 잠깐 사이에도 서로의 뜻이 통했는지 다시금 그들은 날 바라보았다.
“우리 막내 말이 맞죠!”
“아무렴요! 좋은 걸 주고 또 줘도 붙잡지 못할 놈인데, 불편하게 만드는 건 그냥 결별하고 싶단 뜻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동의해 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상하게도 저 반응들이 무척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어느 때보다 과장된 모습이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김세현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곳으로 갔다고 하니 무척 신경 쓰였다. 나는 걱정을 감추지 못한 채 한참을 그렇게 협회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주었다.